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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8장. 레위인을 구별한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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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8장. 레위인을 구별한다는 의미

민수기 8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8-05-01

말씀내용
8장. 레위인을 구별한다는 의미 (찬 321)

1. 8장은 레위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거룩히 드리는 내용인데, 먼저 성막의 등잔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한다(1~4). 이것은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하나님의 ‘살아있는 등불’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성별과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삼는 이상을 구현했다. 여기서 등은 하나님께서 빛의 근원이심을 가르쳐주는 상징이고 일곱개의 가지들은 ‘성령의 기름을 공급받아 사는 교회’를 상징한다. 3절에 ‘등잔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도록 켰다’고 했는데 이 빛은 진설병이 있는 테이블을 정면으로 비추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아가는 비결은 하나님의 지시와 말씀의 빛 속에서 걸어가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한 시편 기자의 고백은 매우 실제적인 고백이었다(시 119:105). 사도 베드로의 고백도 이것을 보여준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벧후 1:19).”

2.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을 성별하는 의식을 명령하셨다(5~13). 왜 레위인을 구별하고 정결케 하는 이런 의식이 필요한가? 의식은 상징을 가지며, 이 상징은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요구한다. 그리고 모든 상징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시다. 이 정결의식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상호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들이다. 성찬식에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은혜를 주는 것이 아니기에(실제로 고린도교회에서는 무분별하게 성찬에 참여한 자들이 죽거나 병들었다) 믿음으로 참여해야 하듯이, 구약 시대에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레위인 정결의식의 목적은 레위인을 성별하는 것이었다. 거룩한 곳에 서기를 원하는 자들은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해야’(시 24:4) 했는데 바로 이것을 요구하는 것이 정결의식이었다. “그들을 정결하게 하되 곧 속죄의 물을 그들에게 뿌리고 그들에게 그들의 전신을 삭도로 밀게 하고 그 의복을 빨게 하여 몸을 정결하게 하고”(7). 이것은 신약에 ‘중생의 씻음’이나 거듭남 그리고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는 것’과 유사한 표현들이라고 볼 수 있다(딛 3:5; 히 10:22). 죄의 더러움과 오염에서 새로워진 신자들의 마음의 영적 정결을 상징하는 것이다. 의식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먼저 레위인들에게 안수했고(10)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요제로 드려졌다(11).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진 것과 같다. 첫째로는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레위인은 열 두 지파의 장자를 대신하였고, 둘째로는 하나님께 대한 온 민족의 헌신을 대표했으며, 세째로 백성들의 죄에 대한 상징적인 희생 제물이 되었다. 레위인들이 수송아지에 안수하여 한 마리는 속죄제로, 한 마리는 번제로 드린 것은 레위인 자신들을 위한 속죄였다(12). 이 모든 안수 행위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레위인은 동일시되었고 다시 레위인과 수송아지가 동일시되었다. 이것은 속죄가 봉사의 기초임을 다시 가르쳐준다. 먼저 속죄제물로 드려지고 이어 번제로 드려지는 것이다!

3. 이렇게 레위인을 특별히 구별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레위인은 하나님께 바쳐진 초태생을 대신한다(16,17). 애굽에서 나오던 날 초태생이 다 죽었는데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들도 하나님께 바쳐진 바 된 것이다. 여기서 바쳐졌다는 것은 사실상 죽음을 내포한다. 이 장자들의 생명을 대신하는 것이 레위인의 존재였다. 이 점에서 하나님께 장자들을 대신하여 바쳐진 레위인들의 삶은 자신에 대하여 죽은 삶이어야 했다.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20~22). 그리고 레위인 자신들이 순종했다. 그들은 스스로 정결케 하였다. 죄에서 떠났다. 그리고 제사장들 앞에서 봉사하였다.

4. 레위인들의 은퇴 규정이 나온다(23~26). 레위인은 25세에서 50세 이전까지만 회막에서 봉사하는 것이 허락되었고 이후에는 은퇴를 해야 했다(25세부터 30세 전까지는 수습기간이었을 것이다). 은퇴 후에는 스스로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은퇴하지 않은 레위인 형제들을 도와서 일을 할 수는 있었다.

5. 본문은 몇 가지 분명한 교훈을 준다. 첫째, 하나님의 빛은 오늘날도 말씀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향하여 비추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빛을 따라서 걷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 지혜와 세상의 빛 안에서 걷고 있는가? 둘째, 레위인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확인해야 했다. 세상에서 누리는 재산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들의 기업이 되시며, 인생의 모든 시간이 다 하나님께 바쳐진 삶이 자신들의 삶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레위인들은 그저 이스라엘 민족의 대신일 뿐이었다. 그들은 레위인들에게 안수했다! 셋째,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것은 레위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죽었다는 의미다. 자기의 사적 삶에 대하여 죽는 것이다. 더 이상 자기를 위해 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롬 14:7에서 한 말의 의미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여기에 있다. 우리 모두가 레위인이다!

6.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삶이 저희 삶이라는 사실을 다시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가 가진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알고,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삶,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