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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5, 16편. 하나님과 사귀는 자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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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5, 16편. 하나님과 사귀는 자의 조건

시편 15, 16편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2-04-09

말씀내용
15~16편. 하나님과 사귀는 자의 조건 (찬 95)

1. 15편은 하나님의 장막에 들어가 성삼위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거듭난 자의 열매에 초점을 맞춘 기도다. 거듭남은 열매로 확인된다. 이 열매는 모두 하나님의 성품에 부합한다. 하나님과 사귀는 자는 거룩한 성품을 맺는 자다. 열매는 참 그리스도인의 표지다. 그것은 첫째 정직하게 행함이다(2). 자기를 속이거나 남을 속이는 자는 하나님도 속인다. 정직하지 않으면 은혜를 받지 못한다. 은혜가 정직한 마음과 함께 하지 않을 때 그것은 덕의 가면을 쓴 독이 된다. 성경이 말하는 정직은 언제나 믿음에서 나온다. 베르나르에 의하면, 우리의 선행이 우리를 성산에 오르게 하는 근거는 아니지만 우리는 선행의 길을 따라 성산에 오른다. 둘째, 공의를 행함이다(2). 하나님은 사람들의 평판에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오직 믿음에서 나온 공의의 행동을 보신다. 셋째,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함이다(2). 신자는 하나님의 눈이 항상 자기를 살피신다는 것을 알고 행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속일 수 없고 허영이 없으며 자신에게 진실을 말하고 자기를 속이지 않는다. 넷째, 남을 허물하지 않고 이웃에게 악하게 행동하지 않음이다(3). 뒤에서 하는 험담은 사랑과 진실(정직)이 없는 행동이기에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 다섯째, 망령된 자를 미워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함이다(4). 하나님이 싫어하는 거짓과 헛됨으로 치장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길 수 없고 그와 친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를 보면 그가 어떤 지위, 어떤 형편에 있든지 그를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긴다. 이것은 성도의 당연한 정서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기호는 그의 신앙을 반영한다. 여섯째,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지키는 것이다(4). 하나님께 신실함을 잃어버린 자가 하나님과 사귈 수 없다. 변덕스러움이 아니라 시종일관 같은 마음과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해로워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태도다. 일곱째, 이자놀이를 하지 않는 것이다(5).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직업관과 관련된다. 단순히 은행의 일이나 이자 자체를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 돈을 사람보다 귀하게 여기지 말라는 말씀이고 가진 돈으로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고, 기독교 신앙은 어떤 자세를 요구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여덟째,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않음이다(5). 의와 불의는 굽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도는 이익에 따라 말을 바꾸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해야 한다. 이런 자는 영원히 요동치 않는다. 이런 일을 가르치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편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이 세상의 기준으로 타협하고 사는가를 돌아보자. 우리의 양심은 얼마나 둔감해졌는가? 성도는 이 땅을 살되 이 땅의 기준에 적응해서 사는 자가 아니라 예민한 양심으로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자다. 이익에 의해 가볍게 살지 않는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장막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자다. 이것은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말씀이 아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의를 완전하게 이루셨다. 주님을 믿는 모든 자는 그와 연합하고 그의 의를 전가받아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은혜를 얻는다.

2. 16편은 다윗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이 모든 상황에서 현재와 미래를 아우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윗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피하는 것을 철저하게 배웠다(1). 이것이 신앙의 기본이다. 2~4절에서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만을 신뢰한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이 그의 최고의 행복이다(2). 다윗의 또 한 가지 기쁨은 땅에 있는 성도들의 존재다(3). 하나님과 가지는 복된 관계는 이 땅에 사는 성도들과 가지는 복된 관계로 연결된다. 당신 곁의 성도들이 당신에게 참된 기쁨이 되는가? 여기 교회의 행복이 있다. 5~7절에서 다윗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족한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줄로 재어 주신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다(5~6). 여기에 참 성도의 자족이 있다. 지금 상황이 어떠하든지 이것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줄로 재어 주신 것이므로 이 상황 안에서 자족하는 것이 신앙이다. 하나님께서 밤에도 이런 생각들로 자기를 가르치시니 언제라도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할 준비가 되어있다(7). 다윗의 신앙은 현재에만 머무르지 않고 장래의 은혜로 이어진다(8~11). 다윗이 언제나 요동하지 않고 안정을 누릴 수 있는 근거는 자기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신앙이다(8). 하나님께서 언제나 자기 우편에 계심을 그는 안다. 신앙은 요동치 않게 한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그의 마음은 기쁘고 즐겁고 안정을 누린다(9).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지 않으실 것을 알기 때문이다(10). 그러나 이 구절은 특별히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다.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10).” 주님은 이 약속을 붙들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리고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11). 어찌 주님에게만 이 소망이 해당되겠는가? 모든 성도에게 이 구절은 소망의 약속이고 장래의 은혜다. 당신은 주께만 소망이 있고 주께만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이 있음을 아는가? 그것을 바라고 살아가는가? 현재의 자족이 없다면 장래의 은혜도 없다.

3. “하나님 아버지,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그리스도께서 저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이제 저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 삼위 하나님과 영원한 사귐 가운데 들어오게 되었나이다. 임마누엘을 통하여 저희와 영원히 함께 하기를 기뻐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가 하나님의 의와 거룩을 추구하고 살게 하옵시고 오직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주신 상황 속에서 자족하며 하나님 안에서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맛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