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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1장, 12장. 먹는 문제와 출산에서의 정결 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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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1장, 12장. 먹는 문제와 출산에서의 정결 규례

레위기 11,12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6-04-08

말씀내용
11~12장. 먹는 문제와 출산에서의 정결 규례 (찬 287)

1. 레위기 11~15장은 생활 속에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라는 규정이다. 가령, 음식(11장), 출산(12장), 피부병과 곰팡이(13~14장), 육체의 유출(15장) 등이다. 이 본문은 16장의 속죄일 규정에 앞서 일상 생활 속에서의 죄의 기준을 제시한다.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해야 하는 제사장의 직무의 기준이기도 하다(10:10).

2. 음식의 정결규례는(11장)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구별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의도에서 주어졌다. 가나안의 종교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가나안의 저속한 더러움과 악들로부터 보존하려는 것이었다. 관계는 함께 먹고 마시는 데서 오기 때문이다.

3. 먹을 수 있는 정한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부정한 동물의 구분에 대해서 많은 설명이 있다. 위생학적 설명은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성경이 거기에 대한 어떤 힌트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제의적 설명은 이스라엘 말고도 다른 민족들도 이스라엘과 동일한 동물들을 제사로 드렸다는 점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 이 구분이 임의적 구분이라는 설명은 하나님께서 단지 순종과 불순종을 가르치시기 위한 의도를 강조하는 것이다. 상징적 구분론은 이 구분이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창조 질서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쨌든 정하고 부정한 동물의 구분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임을 보여준다.

4. 본문에 나오는 음식 구분의 순서는 먼저 육지 생물(2~8), 수중 생물(9~12), 날짐승(13~23) 순이다. 그리고 특정한 접촉으로 부정해지는 경우를 설명하는데(24~40), 이것도 부정한 동물의 사체를 만진 경우(24~28), 부정한 동물들로서 기어 다니는 동물의 사체에 접촉한 경우(29~38), 정결한 동물의 사체에 접촉한 경우다(39~40). 규정은 1)부정한 동물의 죽은 사체를 만지는 것은 사람을 부정하게 하고 2)쥐나 도마뱀처럼 기어 다니는 다른 동물들은 부정해서 그릇도 오염시킬 수 있으며 3)자연적 이유로 죽은 정결한 동물의 사체도 부정하므로 먹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5.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부정한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야 한다(44~45). 음식 규례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른 것이라면 이 규례들을 따르는 것은 창조주의 거룩한 계획을 좇아 사는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이것을 명하시는 것은 마땅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건강하고, 순결하고 정결하고 온전하기 위해서(이 열거된 단어들이 바로 정결하다는 구약 언어의 다양한 의미들이다) 하나님을 닮아가야 했다. 율법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 의무를 생각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모든 생활 방식 속에서(특히 먹는 식생활에서) 반드시 그분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야 한다(벧전 2:1; 1:13,16).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음식의 정결 규례는 종결되었으므로 더 이상 성도들을 속박하는 규정들은 아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환상 이전에도(행 10:11~16) 예수님께서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실 때에도 드러났다(막 7:18~19).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안에 살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그들처럼 되지 않는 것은 중요하고, 이것은 성숙한 믿음을 요구한다.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들은 결코 신앙과 동떨어진 문제들이 아니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그리고 창조주의 계획과 조화를 이루어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먹는 문제는 사소하고 작은 문제가 아니라 거룩함을 드러내는 중요한 문제다. 성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도록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전 10:31).

6. 12장은 출산에 관한 정결 규정이다. 여기서 부정한 것은 아이를 낳은 것 자체가 아니라 출산과 관련된 하혈과 분비로 인해 출산 직후에 겪게 되는 의식적 정결의 문제였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려면 개인의 온전함이 요구되는데, 여인이 출산 후에 가지게 되는 상태는 비정상적 상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피를 흘린 사람은 성소가 요구하는 온전함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겨졌다. 성소에는 오직 제물의 피만 가지고 오도록 허용되었다. 그러므로 출산 후 유출이 멎고 정결함의 요구가 충족될 때까지 여인은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성소에는 평범한 것, 부정한 것, 병든 것, 혹은 낯선 것은 들어갈 수 없다. 이 규례는 하나님의 거룩성이 얼마나 지상의 일상적 불결함들과 함께 할 수 없는가를 교훈한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가 존재한다. 출산한 아들의 할례를 위해서 생후 8일째 되는 날에는 여인이 부정한 기간일지라도 성소에 갈 수 있도록 예외가 허락되었다. 이것은 할례가 의식법이 아니라, 아브라함 언약의 표시로서 정결 규정 보다 상위법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7. 아들과 딸의 출산에 대한 정결 기간의 차이는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여인은 정결기간을 마치고 성소에 참여하기 위해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여인의 출산이나 출산 이후의 부정함이 고백해야 할 죄라거나 도덕적 죄로 여겨진다는 뜻은 아니다. 번제와 속죄제는 여인이 성소에 참여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이었다. 본문을 이해할 때, 출산이나 갓 태어난 아이가 죄의 열매이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보는 것은 대단히 비성경적인 것이다. 이것들은 도덕적 죄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의식상의 부정함과 연결되었다는 사실과 거룩과 속됨의 구분이 정결과 부정의 의식적 구분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8. 구약에서 성소에 참여한다는 것이 오늘날 교회에 참여하는 것과 대응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성소(천국)에 대응되는 것임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부정하고 정결하지 못한 것은 하늘의 성소에도 들어갈 수 없다(계 21:27). 거기는 질병도, 타락도, 아픔도, 육체의 결함도, 출생도, 부정한 것들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모든 질병과 연약함이 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로 옮겨졌다는 사실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그리고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고 영화로운 구원을 얻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모든 속됨과 모든 부정으로부터 온전하게 거룩하고 정결하게 만드신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은혜를 인하여 감사하라.

9.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세상의 방식에 동화되지 않고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임을 알고 살기를 원합니다. 먹는 것과 같은 문제에서나 출산과 같은 문제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함을 드러내게 하사 세상의 영향을 받기 보다 세상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삶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