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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9편. 믿음으로 잠잠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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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9편. 믿음으로 잠잠해야 할 때

시편 39편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2-04-28

말씀내용
39편. 믿음으로 잠잠해야 할 때 (찬 312)

1. 다윗은 입을 열지 않기로 결심했다(1~2). 입을 열면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자기 앞에 있는 악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으로 범죄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1).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가 살면서 많이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혀의 무서움, 입의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가? 때론 말하기 보다는 잠잠한 것이 영적으로 지혜로운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다윗은 인정한다. 다윗은 오히려 의식적으로 묵상-읊조림-을 했다(3). 기도는 묵상의 자녀다(토마스 왓슨). 묵상은 선한 생각들을 마음속에 주입하고 그 생각들을 기도로 표출시킨다. 묵상은 기도의 제목들을 제시하며 기도할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묵상은 기도하게 하는 힘이다. 기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묵상이 없다. 묵상은 다윗의 마음을 뜨겁게 하여 기도하게 하였다. 4절에 이어지는 기도는 묵상의 결과다.

2. 다윗은 자기 종말과 남은 인생의 길이를 앎으로써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시기를 구했다(4). 고난은 인생의 무상을 알게 하여(4~6), 헛된 일에 분주하여 목숨을 걸고 살지 않게 된다. 자신의 약함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은혜다. 당신은 이것을 아는가? 다윗이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은 단순한 인생무상이 아니라 인생이 하나님께 있을 때만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7).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발견할 때 이 고백을 할 수 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욕을 당할까 두려워했다(8). 그러나 이런 마음 때문에 다윗은 자기를 보는 영적 안목과 통찰을 가지게 되었다. 자기 죄를 살핀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잃어버렸다. 자신의 죄를 살핌으로써 어리석은 자들에게 욕을 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귀하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것을 살폈더라면 오늘날처럼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예였다.

3. 다윗이 1~2절에서 입을 열지 않은 이유가 설명된다(9).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행하셨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조지 뮬러는 사랑하는 아내가 치명적인 류머티스로 병석에 누웠을 때 이렇게 기도했다. “아버지, 사랑하는 아내의 시간이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 삶이든 죽음이든 아내와 저에게 가장 좋은 대로 해주십시오. 소중한 아내를 다시 일으키시는 게 저와 아내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면 아내가 아무리 아파도 주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의 거룩한 뜻에 변함없이 온전히 만족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십시오.” 아내는 결국 죽었지만 뮬러는 아내의 장례식 설교에서 시 119:68을 읽고 설교했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하여 잠잠하는 태도이다. 이것은 믿음과 은혜의 능력이다. 이것이 우리가 사모할 믿음의 자리다.

4. 다윗이 자기가 지금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10~11). 징계 가운데 있는 자가 잠잠한 것은 합당한 태도다. 징계를 잘 받는 것은 중요하다. 징계에는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그 유익을 얻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위험하고 무익하다. 다윗은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주의 징계는 사람의 영광을 좀먹음 같이 소멸시킨다(11). 교만을 꺾어 우리를 낮추어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든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게 한다. 다윗은 지금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고백한다. 징계가 없으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알았다.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사람이란 한낱 입김에 지나지 않사옵니다(공동번역,11).”

5. 다윗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눈물로 탄원하는데 여기에는 놀라운 자기 정체성 고백이 나온다.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12).” 그는 객이요, 거류자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나그네요 떠돌이다. 소유도 없이, 애착이나 미련도 없이 길을 가는 그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다. 실상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표준적 정체성 고백이다. 다윗은 이렇게 구한다. “저는 없어질 존재지만 주님, 그 전에 저는 회복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기뻐하고 싶습니다(13).” 이것이 멋진 죽음을 기대하는 다윗의 소박한 고백이다. Spare me so I can smile again before I am gone and exist no more(NLT). 인생의 마지막을 향한 당신의 소원과 고백은 무엇인가?

6. 우리도 다윗처럼 잠잠해야 할 때가 적지 않다. 징계일지라도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며 그것은 선한 것임을 우리가 믿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가 결심할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 이것만이 우리를 더 깊은 기도, 하나님을 향한 겸손한 기도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7. “하나님 아버지, 저희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잠잠해야 할 때가 많으나 그것도 하나님의 선하심인줄 알고 받게 하시고 그 시간에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저희의 묵상이 깊어지고 주 앞에서 저희를 보게 하사 더 깊고 더 겸손한 기도로 나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