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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1장. 바른 교훈이 교회의 기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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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1장. 바른 교훈이 교회의 기초다

디모데전서 1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5-10-23

말씀내용
<디모데전서 개요>
바울 사도는 로마 감옥에서 잠시 풀려났던 주후 63년경 마게도냐에서 이 서신을 쓴 것 같다. 이것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서신이지만, 목회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디모데는 바울 사도가 오래도록 많은 수고를 감당한 에베소 교회의 목사로 세움을 입어 목회를 할 때 사도로부터 이 서신을 받게 된다. 이 서신은 거의 모든 신약 서신들이 다루는 거짓 가르침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1:3~20; 4:1~16; 6:3~5), 교회 예배에 있어서의 몇 가지 구체적 지침들(2:9~15), 교회 지도자를 세우는 문제(3:1~16), 교회 안에서의 인간관계들(5:3~25; 6:1~2), 물질주의의 위험(6:6~10) 등을 폭넓게 다룬다. 이 서신은 디모데후서, 디도서와 함께 목회의 원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목회서신이라 불린다.

1장 바른 교훈이 교회의 기초다.

1. 디모데전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으로 사도된 바울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쓴 편지다(1). 사도는 자신을 대신하여 에베소 교회를 섬기는 디모데에게 직접적으로 거짓 교훈의 문제를 다루라고 명하는 것으로 서신을 시작한다(3~11). 사도는 거짓 교훈을 다루기 위해서 디모데를 에베소에 두었기 때문이다(3). 거짓 교훈들 가운데에 유대교의 신화와 끝없는 족보 논쟁이 있었다(3). 사도는 특별히 영지주의가 다루는 신화와 조상들의 족보를 지적하여 말하는 것일텐데, 이런 것들은 변론만 만들어낼 뿐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4). 신앙 생활에서 늘 조심해야 할 것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사변적인 토론, 그저 말장난(헛된 말)에 지나지 않을 것들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6).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가르치려 드는 것인데, 그들은 사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떠드는 자들이다(7).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사도가 이렇게 경계를 하는 목적은 분명하다(5).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강조하고 드러내려 함이다. 보라!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 그리고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온다. 이것이 참된 복음의 열매다. 우리는 그런 증거와 열매를 드러내는가? 이 사랑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거짓 교훈이다. 그래서 사도는 그것을 경계한다.

2. 사도는 율법 오용의 문제도 거짓 교훈의 차원에서 다룬다(8~11). 거짓 교사들은 율법을 마음대로 오용함으로써 교인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하거나 잘못된 확신에 이르게 하였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고소하고 정죄하는 것이지 복음 아래 있는 사람들을 고소하거나 정죄할 수 없다는 것이다(8~9a). 사도는 율법 아래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율법을 범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사도는 십계명에 해당하는 규정들을 언급하는데(9b~10), 이 내용은 사실상 사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전하도록 위임받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에 근거한 것이다(11). 복음의 빛 아래서 율법을 이해할 때 율법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할 수 있다. 그렇게 쓰면 율법은 무익한 두려움으로 영혼을 인도하지 않으며 도리어 주의 기쁘신 뜻을 드러냄으로 성도를 유익하게 한다.

3. 사도는 디모데에게 자신의 영적 순례 여정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킴으로써 복음의 은혜와 능력을 나타낸다(12~17).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비방자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박해자였으며 학대하는 폭행자였다(13). 그는 자신이 죄인의 괴수 곧 우두머리라고 고백한다(15). 이런 그를 무엇이 새 사람으로 변화시켰는가?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이며(12), ‘우리 주의 은혜’이고(14), ‘긍휼’(16)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그 은혜가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바울의 삶이다. 사도가 그리스도의 ‘일체 오래 참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면(16) 이것은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게 하심이 아니겠는가? 사도는 디모데가 혹시라도 낙심하거나 마음이 상했다면 바울 자신을 봄으로 힘을 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바울도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바울이 구원을 받았다면 어느 누가 소망이 없다고 하겠는가? 사도는 그 은혜를 말할 때,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마음이 터져오르는 것을 느꼈으리라.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이다. 아멘(17).”

4. ‘전에 지도한 예언’은 디모데가 받은 말씀의 직분이 하나님의 구체적 지시에 따른 것이었음을 가리킨다(18). 그러므로 디모데는 목회가 영적 싸움이며 선한 싸움임을 알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이 싸움에서 중요한 것 두 가지는 믿음과 착한 양심이다(19). 사도는 이 두 가지에서 실패한 이들이 많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양심을 버렸고 어떤 사람은 믿음에 파선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함께 간다. 착한 양심은 믿음을 담는 그릇과 같다. 양심을 타협하거나 팔아버리면 믿음은 다 새나가고 만다. 사도는 디모데 자신이 알고 있을 두 사람을 예로 든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다(20). 사도는 그 두 사람을 사탄에게 내어주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교회 공동체에서 그들을 내쫓은 것을 가리킨다(참고, 고전 5:3~5). 왜 사도가 이 두 사람에게 출교라는 권징을 하였는가? 저희가 이 징계를 받아 다시는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도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모독하던 자로서 은혜를 입어 변했듯이 그들을 징계함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일을 그치고 돌아오기를 바란 것이다. 회개와 교정이 권징의 중요한 목적이다.

5. 참되고 바른 성경의 교훈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 바탕 위에서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이 일어난다. 우리는 그런가? 우리는 이것을 경험하는가? 사도는 그리스도의 원수로 행하던 자신에게 긍휼과 무한히 오래 참으심으로 찾아오신 주의 은혜를 잊어버릴 수 없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닌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 오직 그리스도로만 설명이 가능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찬송이 있다. 우리는 그런 찬송을 가슴 속에 가지고 사는가? 무엇보다 양심을 지키라. 양심이 믿음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양심을 팔아먹은 영적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내 믿음만은 괜찮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미 그들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목회자들이 참으로 착한 양심과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기도할 일이다.

6. “하나님 아버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 그리고 거짓 없는 믿음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이 교회에 충만하게 하옵소서. 또한 주 예수님과 그 은혜로만 설명되는 삶을 살게 하옵시고 무엇보다 저희 선한 양심을 지켜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이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