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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설교분류별모음 > 민수기 강해 (34) -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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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자 양육 - 하나님을 아는 지식 (2) - 권위 (민수기 강해 34)

민수기 17:1-12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16-09-21

말씀내용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왜 그런 기이한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팡이를 지성소에 간직하라고 하신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10절에서 보는대로,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하나님께 대한 원망을 그쳐 죽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에 대한 반역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운 제사장인 아론과 레위 지파의 직분의 권위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이 이야기는 권위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팡이의 기적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이루신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아는 것입니다.

1. 큰 문맥과 주제
본문은 사실상 고라의 반역 이야기에 연결된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 반역은 제사장 직분, 레위 지파의 특별한 직분과 관련된 반역이었습니다. 이 반역은 세 이야기로 구성되는데, 첫번째 이야기는 반역의 지도자들과 그들에게 속한 자들을 지진과 불로 심판하심으로써 일단락된 이야기입니다(16:1~35).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는 반역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는 것을 본 백성들이 이튿날 일제히 모세와 아론에 대해서 반역을 일으킨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염병으로 치시는 내용입니다. 이 사건은 아론이 향로를 가지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로 들어가 속죄를 함으로써 일단락됩니다. 두 이야기 모두 아론의 제사장직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쯤되면, 대다수의 백성들은 아론의 제사장 직분과 레위 지파를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셨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인정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들 중에 있던 원망과 불평도 다 그쳤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권위에 대한 반역의 사건에 대하여 마치 마지막 다짐을 하듯이, 주도적으로 모세에게 명하여 뭔가를 행하십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앞의 두 이야기는 모두 백성들의 불만과 원망으로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반응하신 이야기라면, 세번째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시작하시고 마지막에 백성들이 죽게 되었다고 탄식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주권적으로 정하여 세우신 아론의 제사장직분과 레위지파의 권위를 친히 분명하게 세우십니다.

2. 지팡이를 취하라(1~7)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각 지파 지휘관들의 지팡이를 취하여 각각 이름을 쓰고 지성소 안의 증거궤 앞에 두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시작합니다. 지팡이는 마치 왕의 규와 같이 지도자의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문제가 지도자의 권위의 문제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권위를 상징하는 지도자들의 지팡이를 가지고 뭔가를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팡이는 ‘지파’라는 의미도 가지는 단어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우신 지파가 레위 지파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맥락과 상관이 있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지성소 안에 둔 열 두 개의 지팡이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택한 자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5). 죽은 나무 지팡이에서 싹이 나오는 표적을 분명하게 모든 지파 지도자들에게 부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보이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세우신 지도자의 권위에 대한 불평이나 원망을 그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모세는 아론의 지팡이를 포함하여 열 두 지파의 지도자들의 지팡이를 모아서 각각 지도자들의 이름을 써서 증거의 장막 안 그러니까 지성소의 언약궤 앞에 두게 됩니다. 6절에 보면 모두 열 두 개의 지팡이라고 했는데, 아마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요셉 지파로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세웠거나, 이것이 아니라면, 열 두 개의 지팡이 외에 아론의 지팡이가 더해졌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생각합니다. 어쨌든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의 지팡이가 증거의 장막 안 지성소 안에 두어졌습니다.

3. 표적이 나타나다(8~11)
하루가 지났습니다. 이튿날 모세는 다시 증거의 장막 안에 들어가 열 두 개의 지팡이를 확인합니다. 거기서 놀라운 표적을 보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지팡이에서 싹이 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모세는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싹만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론의 지팡이는 하나의 살아있는 살구 나무가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움이 돋았고 순이 났으며 꽃이 만개했을 뿐 아니라, 살구 열매까지 맺혀 있었습니다.
여기 살구 나무라고 한 것은 사실 아몬드 나무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요즘 많이 먹는 견과류 중에 아몬드가 바로 이 나무에서 나는 열매의 씨입니다. 이것을 우리 말로는 편도 나무라고도 한답니다. 야곱이 애굽의 총리가 자기 아들 요셉인지 모를 때, 그에게 보내는 선물 중에 감복숭아라고 번역된 것이 바로 이 아몬드이고(창 43:11) 이것은 이스라엘의 토산물 중에 아주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몬드 나무의 꽃은 벚꽃과도 비슷한 아름다운 흰색이고 그 열매는 매실이나 풋 복숭아처럼 생겼지만 완전히 익으면 껍질이 갈라져서 뒤로 접혀 말라 떨어지고 씨만 나무에 달리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아몬드랍니다. 어쨌든 모세는 아론의 지팡이에서 움과 순과 꽃 그리고 열매가 달린 모습을 보았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들을 가지고 나와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보였을 때 그들이 놀랐을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아론의 지팡이를 바라보면서, 각 지파의 지휘관들은 각각 자기 이름이 쓰여진 지팡이를 확인하고 집어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들이 부인할 수 없는 너무나 명백한 증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게 하신 지도자는 아론이며, 열 두 지파 가운데서 레위 지파는 특별히 구별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지파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만들어낸 일이라고 의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표적이었습니다. 이미 아론의 중보를 통해서 살아남을 경험한 백성들의 마음은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보이신 이 표적은 그야말로 권위에 시비를 거는 모든 악한 마음에 종지부를 찍는 표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모세에게 아론의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도로 가져다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10). 그래서 이 표징을 보고 다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하여 죽음을 면하라는 경고를 주십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대로 순종합니다.

4. 살구나무의 교훈
우리는 여기서 잠시 왜 아몬드 나무인가를 좀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론과 레위 지파의 직무와 권위를 인정하는 것만을 생각하셨다면 아론의 지팡이가 서 있고 다른 지팡이들은 그 앞에 절하는 모습으로 만드셨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론의 지팡이에 아몬드 꽃과 열매가 맺히게 하셨습니다. 이 아몬드 나무와 관련해서 우리가 뚜렷하게 생각할 수 있는 본문이 두 개가 있습니다.

A.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렘 1:11~13)
하나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부르실 때의 장면입니다(렘 1:11~13). 하나님께서 두 개의 환상을 보여주심으로써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는데 그 하나가 살구나무 가지 환상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살구나무는 아몬드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러자 예레미야가 대답합니다.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의미를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지켜’입니다. 우리말에서는 그 의미를 충분히 알기가 어려운데, 여기에는 언어의 유희가 있습니다. 아몬드 나무라는 말과 ‘지킨다 혹은 지켜본다’는 말은 히브리말로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살구나무 가지를 보여주시고 내가 내 말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시겠다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될 것을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망할 것을 예언해야 합니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고 반응하지 않을 것이며, 도리어 이 예언 때문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왕과 고관들과 백성들의 미움을 받는 대상이 되고 고생을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그 말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지켜보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구나무 가지의 환상을 보여주시고 네가 예언하는 동안에 절대로 이것?하나님께서 그 말씀 그대로 성취하실 것?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론의 죽은 지팡이가 살아있는 살구 나무가 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들을 지켜보고 계심을 알라는 메시지가 암묵적으로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B. 생명의 하나님(출 25:33; 37:19)
두번째로 살구나무와 관련해서 우리가 보게 되는 본문은 성막의 금등대와 관련한 말씀입니다. 성막의 성소에는 세 개의 기구가 이었습니다. 금향단이 지성소를 향한 중앙에 있었고, 성소의 좌우(남과 북)에 각각 금등대와 떡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금등대입니다. 금등대의 모양이 어떠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출애굽기 25:33을 봅니다. “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쪽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같게 할지며.” 바로 살구나무 즉 아몬드나무의 모양이었습니다. 이 등대는 맞은 편에 있는 떡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떡상 위에 놓여진 열 두 개의 진설병은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가면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 떡을 비추고 있는 등대는 자녀들의 필요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실 뿐 아니라, 공급하십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삶을 지켜보십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아몬드나무 형상으로 만들어진 등대는 하나님께서 빛이실 뿐 아니라, 또한 생명이심을 보여줍니다. 사실상, 성소 안의 금등대는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보았던 생명나무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시고,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마른 막대기도 살아있는 나무로 열매를 맺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은 이렇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소에서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언제나 이것을 계시하셨고 알게 하셨을 뿐 아니라, 이제 이스라엘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 생명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죽어서 마른 막대기라도 살아서 열매를 맺는 나무로 만드시는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십니다. 고라의 일로 죽은 자와 염병에 죽은 자가 만 오천 명이었습니다(16:49). 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권위의 문제를 매듭지으시면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속성은 죽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살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알라는 것입니다.

5. 두려움과 절망(12~13)
오늘 본문에서 정말 기이하게 여겨지는 대목은 사실 12~13절에 나타나는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그렇게 지치지 않고 원망하던 백성들이 이제 어떻게 반응합니까? 모세에게 하는 말을 보십시오.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12~13).” 여기 ‘죽게 되었다’, ‘망하게 되었다’, ‘죽사오니’, ‘망하여야 하리이까’라는 단어들의 반복을 보십시오. 그들은 정말 두려웠습니다. 죽은 나무,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 움이 돋고 싹이 나고 꽃이 만개하고 아몬드 열매까지 맺힌 것을 본 백성들은 두려웠습니다. 그들이 원망했던 일들이 바로 하나님을 향하여 했던 원망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그들은 두려워떨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하게 되면 사람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기고만장하고 유아독존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 때 이렇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고라의 반역으로 시작된 일련의 이야기는 마무리되고 이제 남겨진 것은 하나님께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가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를 절망하고 좌절하는 그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18장).

6. 적용과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정리해보겠습니다.

A.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고 순복함(딛 1:9; 벧전 5:5)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정리할 교훈은 권위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고 거기 순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구약시대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하라”고 교훈하십니다(10).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반역하는 것을 경고하십니다.
우리가 18장으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보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과 레위 지파를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제사장이요, 거룩한 지파라고 여기고 인정한다면, 그들은 이제 첫 열매를 드리고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제사장과 레위 지파를 후원하는 책임을 합당하게 여기고 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이야말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자기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없다면, 그들은 모두 죄 가운데서 죽을 것입니다. 이들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의 죄의 속함을 얻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에서 살펴보게 될 사항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신약의 상황에 적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으로 주신 권면을 보지요. 베드로전서 5:5입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사도는 교회의 장로들에 대해서 말하는 가운데, 그들을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직분자들로 인정하면서, 젊은 자들에게 권면합니다. 젊은 자는 단지 나이 어린 사람을 의미하기 보다 장로에게 순복해야할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한다고 말하는 것은 고라가 한 말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질서도 존중하고 그 지도자에게 순종함으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도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딛 1:9).” 이것은 감독의 직분에 관한 말씀 중에 나옵니다. 감독은 오늘날의 목사나 장로를 가리킵니다. 감독은 ‘바른 말씀으로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는’ 직분이기에 스스로가 말씀의 가르침을 순종하여 살아야 권위가 섭니다. 우리는 또한 ‘거슬러 말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책망받아야 마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 더 말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분별하셔야 합니다. 그가 참된 목자인지를 분별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판단해야 하는 것이기에 참된 순종을 하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일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없이 어떻게 분별하겠습니까? 오늘날 너무나 많은 거짓 선지자와 같은 목사들이 권세를 부리는 것은 바로 백성들의 영적 무지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지도자 직분에 순종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B. 자기 증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증명하심(민 20)
지도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하나 주목하게 되는 것은, 아론과 모세가 권위에 대한 반역에 직면할 때,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권위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전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직분을 가진 사람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권위를 입증하기 위해서 주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라와 반역 지도자들을 죽이심으로 심판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모세나 아론이 신기한 능력으로 그들을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또 염병으로 그 백성들을 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오히려 모세는 아론으로 하여금 향로를 가지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들어가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론의 죽은 지팡이에서 아몬드 움이 돋고 싹이 나고 꽃이 피며 열매가 맺게 한 것은 모세나 아론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입니다. 세상의 지도자와 달리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는 자기가 스스로 그 권위를 입증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입증해 주셔야 합니다. 이점에서도 하나님께서 지도자 직분으로 세운 사람들은 스스로를 바라보아야 하고, 또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로써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우리가 보게 될 민수기 20장은 모세가 스스로 자기의 권위를 드러내려고 한 일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입증해 주십니다.

C.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바라보라(히 10:19~25)
마지막으로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 아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점에서 아론보다 우월하신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아론의 지팡이에 아몬드 꽃과 열매가 맺힌 것을 본 백성들은 절망하며, 이제 아무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생명의 하나님 앞에서 죽고 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야 알겠느냐? 그래서 아론이 있고 레위 지파가 있는거란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론은 불완전한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 자신이 죄인이었고, 그는 죽어야 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주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히 4:15). 우리는 우리 주님의 대제사장직의 완전한 성취로 말미암아 이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언제라도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우리는 더 이상 절망하지 않아도 되고, 탄식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세워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원망할 이유가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게 하셨고(고전 1:30)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아는데(롬 8:32) 우리가 무엇 때문에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마른 막대기, 죽은 나무,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싹이 나고 꽃이 만개하고 아몬드 열매가 맺게 하시는 생명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데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절망하고 탄식하겠습니까? 사무엘 러더포드의 말입니다. “당신의 어깨에 짊어진 십자가의 가장 무거운 쪽 끝은 당신의 강하신 구주의 어깨에 올려져 있습니다.” 이런 대제사장이 계시니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원망을 그치고 감사함과 찬송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은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여러분이 처한 모든 상황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