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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자 양육 - 회심 - 다시 보는 천로역정 (18) - 무신론자와 만나고 마법의 땅을 통과하다

요한복음 6:35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19-03-06

말씀내용
1. 18장이 다루는 주제
A. 무신론자는 또 한 사람의 거짓 교사이고 아첨꾼이다.
B. 마법의 땅은 성도의 삶이 깨어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설정이다(마 24:42,43; 25:13; 26:41; 눅 12:37; 고전 16:13; 엡 6:18; 골 4:2; 살전 5:6; 딤후 2:26; 벧전 5:8; 계 16:15).
C. 소망의 회심 체험은 회심의 전형을 보여주고, 크리스천의 체험 보다 과정에 있어서 더 구체적이다. 회심한 모든 성도가 자신의 회심을 이렇게 다 표현할 수 있지는 않다.

2. 무신론자를 만나다.
A. 시온산을 뒤로 하고 거꾸로 내려오는 자
B. “순례 여정은 무지몽매한 사람들이나 하는 우스꽝스러운 여행이다. 이 세상에 그들이 가려고 했던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20년 간 찾아 헤맸지만 출발하던 첫날에 보았던 것 이상의 것을 본 적이 없다(전 10:15; 렘 17:15). 나는 당신들보다 훨씬 더 멀리 가 본 사람으로써 말하는 것이다.”
C. 무신론자는 ‘이 세상 신으로 인해 눈이 먼’ 아첨꾼이다(고후 4:4).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는다(요일 2:21).
D. 이 시대의 무신론자들:
i.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
ii.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목사들
E.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잠19:27;히 10:39).”

3. 마법의 땅(Enchanted Groun)에 들어서다.
A. 누구든지 외부인이 이곳 공기를 마시면 자연히 졸립게 되는 곳
B. 마법의 땅에서 졸지 말라고 한 목자의 경고를 생각, 졸음을 피하려고 대화를 시작함
C. [크리스천의 노래] “성도들의 교제는 잘만 유지되면 / 그들을 깨어 있게 하고 지옥도 물리칠 수 있다오.”

4. [소망의 회심 간증] 소망이 어떻게 회심하게 되었는가?
A. 아무런 죄의식 없이 세속에 푹 빠져 살던 소망
i. “매우 오랫동안 나는 우리 시장에서 전시되고 또 팔리는 물건들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믿기에 만약 내가 여전히 그 가운데 있었다면 그 물건들은 나를 파멸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것입니다.”
ii. (그 물건들은) “세상의 모든 보화와 부귀지요. 또한 나는 떠들고 흥청거리고 술마시고 욕하고 거짓말하고 추잡한 일 행하고 안식일 범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지요. 그런 일들은 모두 내 영혼을 파괴시키는 것들이었지요.”

B. 여러 상황을 통하여 죄를 자각하기 시작하는 소망
i. 허영의 시장에서 “순교 당한 믿음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이 일들의 마지막은 사망이요’,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롬 6:21,23; 엡 5:6).”
ii. [소망은 이후에 즉각 이런 확신을 따라 살지 못했다] “내 마음이 말씀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나는 죄에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해 왔지요. 하지만 계속해서 죄를 짓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들은,
1. 소망은 그런 변화가 하나님의 역사인 줄 알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써 죄인의 회심 역사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냥 좀 마음이 찜찜한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정도로 가는 것은 얼마나 무지한 일인가?
2. 죄는 여전히 육체에 즐거움을 주었고 그것을 떠나기 싫었다.
3. 옛 친구들과 결별할 수가 없었다.
4. 죄의식이 소망을 덮칠 때는 심히 고통스럽고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죄 가운데 들어가면 잠시 이런 것도 잊혀질 수 있었다.
 이런 죄의식 자체는 아직 그가 중생했거나 회심했다는 증거일 수는 없다(막 6:20; 행 24:25).

iii. [죄의 자각이 특별히 일어날 때들] 거리에서 착한 사람을 만날 때, 성경책을 읽을 때, 머리가 아프기 시작할 때, 이웃 중 어떤 사람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죽은 자들을 위해 울리는 조종 소리를 들을 때, 자신의 죽음에 관해 생각할 때, 어떤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자신이 곧 심판을 받게 된다는 생각이 들 때..
iv. [소망은 이런 죄의식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 “죄의식이 내 양심을 하도 굳세게 붙들었기 때문에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죄로 돌아가려고 하면 고통은 두 배로 커졌습니다.”

C. 그래서 종교적인 의무를 열심히 행하는 소망
i. “나는 죄 뿐 아니라 죄악된 친구들을 피하고 여러가지 종교적 의무들을 수행했지요. 가령 기도나 성경읽기, 울며 자복하기, 이웃들에게 진리의 말씀 전하기 등이었습니다. 다른 여러가지 것들을 비롯해 내가 행한 이 일들은 하도 많아 여기서 다 열거를 할 수 없습니다.”
ii. [종교적 의무 노력은 죄의식을 덜어주지 못했다] “잠시 동안은 죄의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고통은 다시 나를 엄습해왔기 때문에 나의 개혁 (노력)은 별로 소용이 없게 되었지요.”
iii. [해설] 제임스 뷰캐넌: "회심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죄의 각성과 확신의 상태에 있을 때에는 중대한 결심을 할 수도 있으며 그의 삶을 보다 선하게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기 만족의 영에 근거해서 수행되는 것들이다. 이러한 노력에는 성령 하나님을 위한 심각하고도 진지한 기도가 없으며 결국 아무 것도 생산해 내지 못하는 노력으로 전락하게 된다."

D. 죄의 자각과 죄의식은 성경의 진리를 통하여 더욱 가중되었다.
i. [성경말씀들이 소망의 양심을 찌르기 시작했다]
1.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사 64:6).”
2.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3.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ii. [성경 말씀들을 통해서 내린 결론] “나는 나 자신에 관해 이렇게 생각했지요. ‘나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회계 장부에 빚이 많이 올라 있다. 그리고 나의 지금 이 개혁된 생활로는 그 빚을 청산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조용히 지금의 개선된 생활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iii. “내가 생활을 개선한 후에도 계속 나를 괴롭혀 온 또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내가 시야를 좁혀 내 최선의 행위만을 바라보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서 여전히 죄를 발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죄는 새로운 죄로써, 내 최선의 행위와 함께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지금껏 나 자신과 내 의무들에 대해 어리석은 자부심을 가져왔지만 설사 나의 예전 생활에 전혀 흠이 없었다 하더라도 지금 하루 동안에 내가 짓는 죄는 나를 지옥으로 보내기에 충분하다.’”

E. 자문을 구하는 소망에게 믿음이 준 권면 (소망은 본래 믿음과 아는 사이였다).
i. 소망에게는 완전한 의가 필요하다.
ii.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게 의로우신 분이다.
iii. 칭의를 위하여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iv. [소망의 반응] “만약 내가 자신의 개선된 삶을 기뻐하고 거기서 만족을 얻고 있을 때 그(믿음)가 그런 말을 했다면 나는 그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그를 바보라고 놀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었고 또 내 최선의 행실 속에 끼어들어있는 죄의 실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의견에 끌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 소망의 반응에 대한 정직한 대답은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회중석에 앉아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자기 노력에 어느 정도의 만족을 느끼고 있고, 성령의 죄에 대한 증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요 16:9). 그러나 성령의 부르심을 받는 자는 다 응답한다. 문제는 자신이 자신의 개선 노력 안에 있는 더러움과 죄를 보고 하나님의 완전한 의의 요구 앞에 서는가이다.

F. 소망은 믿음의 권면에 이의를 제기했다.
i.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은 주제 넘은 짓이다]
1. [소망] “그분이 나를 구원하고 싶어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그를 믿지 않겠다.”
2. [믿음] “직접 가서 그분을 만나보십시오.”
3. [소망] “주제넘는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4. [믿음] “그분이 당신을 초청하셨으니 그것은 주제넘은 짓이 아닙니다(마 11:28).” 믿음은 소망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담긴 책을 주며 이 글들은 천지가 없어질 때까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마 24:35).
ii. [그리스도께 나아온다는 것은 무엇인가]
1. [소망] “그분에게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 [믿음] “무릎을 꿇고(시 95:6; 렘 29:12,13; 단 6:10) 마음과 뜻을 다해 아버지께 그 분을 계시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3. [소망] “그분에게 청원을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4. [믿음] “시은소 위에서 그분을 찾을 수 있으리니(출 25:22; 레 16:2; 히 4:16) 그분은 오래 전부터 거기 계시면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용서와 죄 사함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5. [소망] “그분을 찾아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6. [믿음] “이렇게 말씀드리세요. ‘하나님,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저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또 믿게 하옵소서. 만약 그의 의가 없으면 또 내가 그의 의를 믿지 아니하면 나는 결국 내쫓김 당할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여, 나는 당신이 자비의 하나님이시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세상의 구주가 되게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이 불쌍한 죄인들을 위해(나는 참으로 죄인입니다!) 아들을 기꺼이 바치셨다는 사실도 압니다. 그러니 주여, 지금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 영혼을 구원하시어 당신의 크신 은혜를 나타내시옵소서. 아멘.’”
 영접 기도와 여기 이 기도의 차이가 무엇인가? 영접기도는 주어가 자신이지만, 이 기도는 구원을 청원하는 기도이다. 구원은 내 결단과 고백으로 내가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다.

G. [끈질긴 기도: 얼마나 구해야 하는가?] 소망은 드디어 기도를 시작했다!
i. “예, 기도하고 또 했습니다.”
ii. “첫번째 기도 할 때도 안 해 주시고 두 번째 기도할 때도, 세 번째 할 때도, 네 번째 할 때도, 다섯 번째 할 때도, 여섯 번째 할 때도 안 해 주셨습니다.”
iii. “수백 번도 더 기도를 그만 둘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의 의가 없으면 세상이 결코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는 말이 진실이라고 믿어졌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 기도를 그만 두면 꼭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죽더라도 은혜의 보좌 앞에서 죽기로 한 것이지요. 그런 가운데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합 2:3)’는 말씀이 마음에 떠올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계시해 주실 때까지 기도를 계속하게 되었지요.”

H. 소망이 의와 구원의 유일한 구주로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
i. (결국) “나는 그분을 육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보았지요(엡 1:18,19)...어느 날 나는 서글픔에 빠져 있었는데, 이렇게 서글퍼진 이유는 내 죄가 얼마나 크고 추악한지 다시금 새로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다만 지옥과 내 영혼의 영원한 저주만을 바라고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주 예수께서 내려오시는 모습이 마음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1. [예수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0,31).’
2. [소망] ‘주여, 저는 큰 죄인, 아주 큰 죄인입니다.’
3. [예수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ii. 이때, 소망은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는 말씀을 통해 믿는 것과 오는 것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든지 그에게 나아오는 자, 즉 그리스도의 구원을 얻기 위해 진심과 애정을 갖고 달려 나오는 자는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사실을 안 것이다. 소망의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1. [소망] ‘주여, 나 같이 큰 죄인도 받아주시고 구원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2. [예수님]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3. [소망] ‘하지만 주님, 내가 당신께 가더라도 나의 믿음이 온전히 당신 위에 놓여질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4. [예수님]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딤전 1:15).’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그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시라.’ ‘그가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iii. 이 말씀들을 통해서 소망은 1)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있는 의와 2)그의 피를 통한 죄의 보상을 바라보아야 함을 깨달았다.
 번연은 여기서 그리스도의 적극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가르친다.

I. 소망이 구원을 받고 확신에 이르다:
i. 소망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으며 가슴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백성과 그 길에 대한 사랑으로 울렁거렸다.

J. 구원을 받은 소망의 영혼의 변화
i.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세상/죄인 인식] “나는 세상이 아무리 자기 의를 주장해도 이는 이미 저주 받은 상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ii. [하나님의 속성(공의와 사랑)을 깨달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비록 의로운 분이시지만 자기에게 나아오는 죄인들을 공의롭게 의롭다 하실 수 있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iii. [죄에 대한 수치와 미움] “예전의 사악한 생활을 심히 부끄러워 하게 되었습니다.”
iv. [자신의 무지 인식] “내 자신의 무지함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이 깨달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v.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깨달음]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깨달아졌고,”
vi. [거룩한 생활에 대한 사랑] “거룩한 생활에 대한 사랑이 일어났습니다.”
vii.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하는 헌신] “그리고 주 예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만약 내 몸에 100갤론의 피가 있다면 이것을 주 예수님을 위해 다 쏟아 부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교훈과 적용
A. 회심은 성령님의 역사다. 회심은 성령님께서 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의 본질과 비참한 실상을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보게 하심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회심을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그런 은혜를 구해야 한다. 만일, 성령님의 각성의 은혜가 없이 자기 죄의 상태를 안다는 전제에서 자신이 믿고 회개를 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이 양심의 상태에서 하는 자기 개선 노력에 지나지 않으므로 참된 회심으로 볼 수 없고, 그 사람은 그런 믿음과 회개의 행위에도 불구하고 참된 은혜를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B.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그리스도를 자신에게 계시하여 주실 때까지 구원을 열망하는 죄인은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존 에인절 제임스, 『구원을 열망하는 자들을 위하여』, 청교도신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