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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름이들 - (9). 마음

잠언 4:23, 사도행전 13:22, 잠언 16:2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22-05-01

말씀내용
여러분의 마음은 온전합니까?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문에서 “사람의 첫째가며 가장 높은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대요리문답 1문에 의하면, 마음이 온전하다는 것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역대하 16:9).”라고 말씀합니다. 전심으로 즉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 처럼 복된 사람은 없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문제는 마음입니다.


1. 문제는 ‘마음’이다 (대하 16:9)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보지요. 20세기 전반기 영미권 교회들을 향한 아더 핑크의 지적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열심히 달리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목표를 향해 뛰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구원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자는 극히 드뭅니다. 경건의 모양은 넘치지만 경건의 능력은 희박합니다. <경건의 능력>이란 우리를 세상과 구별되고, 이기적인 삶에서 벗어나게 하며, 사탄의 공격을 막아주고, 죄를 싫어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하며, 악한 오류에서 벗어나게 하고, 진리를 소중히 여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이 요즘은 너무 드뭅니다.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쫓는 자는 어디 있는 걸까요? (마 16:24) 그리스도를 위해 수치와 모욕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어디 숨어있나요? 매일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주시고 기꺼이 힘과 능력을 보여주시는 자는 도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아더 핑크, 『네 마음을 지켜라』)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한국 교회는 크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저는 21세기 한국 교회는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능력을 잃어버렸습니까? 그저 하나님의 말씀 대신 인간의 말을 전하는 교회만을 염두에 둔 말이 아닙니다. 좋은 말씀을 듣고 바른 교리를 배우고 주를 위해 많은 수고를 함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가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자신의 삶을 놓고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영적 능력을 알고 그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신자입니까? 저는 거짓 신자에게 묻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참된 구원 얻는 신앙을 가진 참된 신자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잃어버린 신자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마음으로부터 생명의 근원이 나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음을 지키는 일은 생명을 지키는 일이고, 삶의 모든 것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맥락은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두는 보고이기에, 그 누구도, 또는 그 무엇도 마음을 열고 말씀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라는 것 같습니다. 영적인 능력도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마음을 지키는 일에서 실패하면 영적 능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더 핑크는 이렇게 도전합니다. “냉랭하고 세속적이고 죽어 있는 당신의 마음 때문에 눈물 흘린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마음을 지키고 청소하고 개선하려고 단 5분이라도 투자한 적이 있습니까?”
청교도 존 플라벨(1628-1691)의 말도 인용하겠습니다: “느슨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다니며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주님 앞에서 우리의 헛된 생각을 바로잡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유창한 말로 능수능란하게 기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깨어진 심령으로 죄를 고백하고 값없이 주신 은혜에 녹아 내리고 주님의 무한한 거룩함에 압도돼 진실로 낮아지도록 마음을 지키는 것은 영혼을 고통스럽게 할 만큼 힘든 일이다. 죄가 밖으로 드러나지 못하게 억누르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행동을 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도 상식에 따라 그렇게 살 수 있다. 하지만 내면의 썩은 뿌리를 뽑고 생각을 거룩하게 지키고 마음의 모든 것을 바르게 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중차대한 주제, 마음 또는 마음을 지키는 것에 관한 주제로 주의 말씀을 상고할텐데, 특별히 다윗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이 주제를 살펴보겠습니다.


2. 마음을 지킨 사람, 다윗 (삼상 13:14; 행 13:22; 대하 7:17; 28:1; 29:2; 34:2)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인물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의 왕위를 폐하고 하나님께서 새로 세우실 왕 다윗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사무엘상 13:14).” 사도행전 13:22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 사도가 이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구약성경에서 왕들, 특히 유다 왕들의 역사를 읽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왕들을 평가하시는 기준이 다윗이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네가 만일 내 앞에서 행하기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한 것과 같이 하여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행하여 내 율례와 법규를 지키면(역대하 7:17).”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아하스 왕을 평가하시기를,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역대하 28:1b).”라고 하십니다. 반면, 히스기야와 요시아를 칭찬하실 때에도 다윗이 그 기준입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역대하 29: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역대하 34:2).”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다윗을 그처럼 위대한 왕이 되게 만들었는가? 다윗의 어떤 점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그토록 높이 평가하신 것일까? 사실, 다윗은 목욕하는 여인을 훔쳐보았고 그녀가 자기 장수의 부인인 것을 알고도 그녀와 동침하였으며 그 범죄를 감추기 위해 충성스러운 장수를 살인 교사한 사람이 아닙니까? 이런 흠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대한 왕의 기준으로 삼으신 까닭, 그를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마음을 지킨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A. 기다림과 마음 지킴 (삼하 5:4-5; 시 57:1-2)
다윗의 마음 지킴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자리는 기다림과 인내의 영역입니다. 10대 소년 시절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지만, 그가 유다의 왕이 된 것은 30세가 넘어서였습니다(삼하 5:4-5). 참을성 없는 젊은 시절에 그는 십 수년을 기다림의 세월로 보내야 했습니다. 다윗에게 이 기다림의 시간은 한편 깨어짐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위대함의 열매는 깨어짐의 씨앗을 통해서 결실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조금의 흠도 없는 도자기가 아니라 금이 가고 깨어질 질그릇을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질그릇의 깨어진 틈새로 흘러나오는 것은 복음의 영광스러운 빛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다림과 깨어짐의 세월을 통해, 다윗의 자기 신뢰, 자만심, 의지와 같은 것들을 깨뜨리셨습니다. 그렇게 다윗은 자신만만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잡는 사람으로 빚어져 갔습니다. 이 기다림 속에서 그는 자기 인생 계획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 기간의 대부분은 무고하게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의 칼을 피해 도망 다녀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무고히 자기를 해치려는 적대적 존재가 있을 때, 마음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번은 사울의 곁에서 수금을 타던 다윗을 향하여 사울이 창을 던진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두 차례나 반복되었습니다(삼상 18:10-11; 19:9-10). 우리도 인생에서 비슷한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이유 없이 여러분을 적대할 수 있습니다. 이때 어떻게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지킬 수 있습니까? 다윗에게 이런 상황은 십 수년 계속 되었습니다. 사람은 경험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마음이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음이 굳어지지도, 상하지도 또 강퍅해지지도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울이 던진 창이 다윗의 등 뒤 벽에 박혔을 때, 그 건장한 청년은 창을 뽑아 사울에게 던졌을 수도 있었습니다. 거의 반사적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 긴 기다림의 세월 속에서 그리고 무고히 자신을 적대하는 왕에게 쫓기면서, 억울함의 감정,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 무고히 당하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사람은 거의 미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께 쏟아내는 법을 알았습니다. 150편의 시편 가운데 거의 절반이 분명하게 다윗의 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대표적인 고백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시편 57:1–2).”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내는 것은 긴 기다림과 깨어짐의 시간 동안, 심령이 상하고 마음이 망가지는 것으로부터 다윗을 지켜주었을 것입니다.

B. 하나님을 사랑함과 마음 지킴 (막 12:28-31; 삼상 17:45; 시 84:10)
마음 지킴과 관련해서 두번째로 생각할 요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입니다. 믿음은 신앙의 내용과 교리에 대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냐고 묻는 서기관에게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막 12:28-31).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의 시편들과 사무엘상하와 역대상의 기록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역사의 무대에 처음 등장했던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골리앗을 참지 못하고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고 하며 골리앗을 대적하는 다윗에게서 우리는 그 사랑을 봅니다.
시편 84편은 [고라 자손의 시]라고 되어 있는데, 스펄전은 이 시를 다윗이 썼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편 84:10).” 신앙은 이런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하고 좋아했기에, 마음이 망가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고생을 많이 한다고 마음이 망가지는 게 아닙니다. 비록 그럴지라도 부부 간에, 가정 안에서 서로를 깊이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람의 마음은 망가지지 않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은 잘 망가지지 않습니다. 신앙은 영원토록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그런 분이셨고, 이것은 다윗의 마음을 지켜주었습니다.

C. 자기 살핌과 마음 지킴 (삼상 24:5; 롬 12:19,21; 눅 6:27-28; 시 34:8; 삼하 16:10-12; 시 139:23-24)
세번째로 우리가 주목하려고 하는 부분은 자기 살핌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를 두 번이나 맞게 되지만 두 번 다 살려 보냅니다. 사울은 삼천 명의 군사를 데리고 다윗이 있는 엔게디 광야로 수색을 나왔습니다(삼상 24). 이때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온 굴이 바로 다윗이 숨어있던 굴이었고 다윗은 원수를 죽일 절호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부하들은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원수를 넘겨주시는 날이라고 확언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 끝만 베고 맙니다. 자기 손을 들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을 치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울을 살려주었어도 그의 옷자락을 벤 것 때문에, 다윗의 마음이 찔렸다는 것은 다윗의 마음 상태가 얼마나 순전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삼상 24:5).
이렇게 사울을 살려준 일은 다시 한 번 있었습니다. 이로써 성경은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순전했을 뿐 아니라,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에 그가 어떤 태도로 순종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윗처럼 이런 상황을 오래 겪다가 우리가 무너지는 순간은 속에서 복수심이 일어날 때입니다. 이것은 악을 악으로 갚겠다는 너무나 정당해 보이는 생각입니다. 이때 우리는 사랑할 힘을 잃어버리고, 미움의 지배를 받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귀에게 틈을 제공해주는 일입니다. 이점에서 우리가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영적 전투입니다. 마귀는 계속 정당한 대처를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친히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 12:19,21).”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고 하십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누가복음 6:27–28).”
이 말씀은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모든 관계에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우리 마음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선으로 악을 이기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려면, 분명히 알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전개되거나 우리가 평안한 만족을 누리고 있을 때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깊이 맛본 때는 그가 사울에게 쫓겨 목숨이 경각간에 있을 때였습니다(시 34:8).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긴 세월 동안 깊은 고난의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특별한 방식으로 맛보아 알게 하심은, 우리의 마음이 상하고 망가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려는 아버지의 마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면밀히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 왕궁을 떠나 기드론 시내를 따라 슬피 울며 도피하던 다윗은 사울의 신하였던 시므이가 자기를 저주하고 모욕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때 부하 아비새는 그 머리를 베게 해달라고 구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말하지요.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사무엘하 16:10–12).”
원수를 갚지 않는 다윗의 방식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는 자신을 살피는 것입니다. 그는 정당하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취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봅니다. 이것은 거룩한 습관입니다. 다윗의 기도가 이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편 139:23–24).”

D. 즉각적 회개와 마음 지킴 (삼하 12:13; 24:10; 시 51:17)
다윗은 누구보다도 치졸한 범죄로 넘어진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마음을 지키는 일에서 넘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와서 그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한 일은 유명합니다(삼하 12). 그때 다윗은 변명하거나 나단 선지자를 죽이는 대신, 즉각적으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자기의 죄를 인정했고 회개했습니다(삼하 12:13). 이번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교만하여 인구 조사를 하였을 때에도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자 곧 바로 회개로 반응했습니다.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사무엘하 24:10).”
깨어짐의 오랜 세월을 지낸 사람 답게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깨어질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 깨어진 마음임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시 51:17). 그는 시간을 끌지 않고 하나님께 상한 심령의 제사, 회개함으로 나아갔습니다. 즉각적으로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것은, 마음을 망가짐과 상함으로부터 지키는 매우 유효한 처방입니다.


3. 마음을 지키는 삶 (잠 16:2; 24:12)
다윗의 삶을 우리는 행복했다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십 수년 동안 억울한 도피의 생활을 해야 했고, 왕이 된 후에도 수많은 전쟁과 가정 안에서의 고통스러운 사건들, 자식들 안에서 일어난 강간과 살인, 그리고 아들 압살롬의 반란 등 인간으로서는 겪고 싶지 않은 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일에서 마음이 망가지지 않았고 마음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그 추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판단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이 다윗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는 마음을 지키는 삶 보다 나은 삶이 없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마음을 지키는 일에서 실패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이후 유다 왕들을 판단하실 때, 솔로몬이 아닌 다윗을 기준으로 판단하셨습니다. 그가 마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잠언 16:2은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람 보기에 옳은 것, 사람들의 칭찬과 평판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령 곧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하나님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마음을 지키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할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지도 않고 하나님께 유익한 자도 못 되며 세상에 큰 위로를 주는 자도 될 수 없습니다.
마음을 지키려면 여러분이 하는 일 자체에 지나치게 몰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일 자체에 몰입하면 영원한 가치를 지닌 영적인 문제에 집중할 수가 없고 그때 우리는 마음을 지키는 일에서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래도 먹고는 살려면 온 마음을 다 드려야 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언젠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때 마음을 지킨 일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어떤 노력도 없이 깊어지고 성숙해지며 풍성함을 경험하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날마다 일정한 시간을 마음을 살피고 지키는 일에 써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 의도, 소망, 계획, 동기를 살피십시오. 자신의 마음에 거룩함, 의로움, 지혜, 분별, 정의, 진실, 자비, 친절과 같은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서 거룩함이 자라고 있는지도 살피십시오. 마치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매일 아침 저울 위에 서는 것처럼,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저울대에 선다고 여기십시오. 하나님은 마음을 저울질하는 분이십니다(잠 24:12).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네 마음을 지켜라.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다.”
매튜 헨리의 말을 인용함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마음은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며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기도 하다. 마음을 온전히 드리지 않는 한, 우리가 무엇을 바치든 주님께선 받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주님과 마음을 나누어야 하며 하나님께 가장 큰 목적을 두고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집중해야 한다. 자유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온전히 주님께만 헌신하며 마음이 하나님과 세상을 향해 둘로 나뉘면 안 된다. 주님은 전부가 아니면 받지 않으신다. ‘온 마음을 다해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우리는 즉시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아버지, 제 마음을 온전히 받으소서. 원래부터 주님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을 소유하시고 그 속에 주님의 보좌를 세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