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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위에 세워지는 가정 - (1). 복음적 부모의 길

시편 78:1-8, 신명기 6:6-9, 잠언 22:15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22-05-15

말씀내용
가정은 여러분에게 무엇입니까? 인간의 삶은 보통 가정에서 시작하고 가정이란 환경에서 성장합니다. 많은 교회가 5월을 가정의 달로 삼고 가정에 대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길따름이들] 시리즈를 잠시 멈추고, [복음 위에 세워지는 가정]이라는 주제로 세 차례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다룰 첫 주제는 ‘복음적 부모의 길’입니다.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녀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말씀이 단지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이와 미혼/기혼, 자녀의 유무 여부에 상관없이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정 외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가정인 교회가 있기 때문이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육적, 영적 자녀들을 길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길이라는 주제는 결국 모든 세대에게 존재하는 다음 세대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복음적 부모의 책임 (창 1:28)
가정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세우신 인간 공동체의 최소 단위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은 가정을 전제로 주신 명령이었습니다(창 1:28). 교회도, 학교도 본질적으로는 가정의 단위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곧 학교이고 교회입니다. 사람은 가정에서 배우고 성장합니다. 제도로서의 학교가 별도로 존재하게 되면서 교사로서의 부모의 역할이 축소되었다고 할지라도 가정 교육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오늘날 학교 교육 이전에, 가정 교육의 부재야말로 가장 심각한 사회 현상일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신앙의 교육은 가정에서 부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해주는 것은 부모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고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이기도 합니다. 본문 3-6절은 신앙이 이전 세대에서 현세대에게로, 그리고 현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것임을 잘 보여줍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해주라는 권고와 명령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강조되는 바입니다. 부모가 가지는 신앙 전수의 책임은 교회가 존재하기 전의 시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현대사회에서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바쁜 부모들을 대신하여 교회가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책임지는 형태로 변한 것은 사실상 성경의 원리를 왜곡시킨 것입니다. 아이들이 주일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개 일주일에 달랑 한 시간인데, 이 한 시간으로 일주일 168시간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신앙을 전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그 많은 시간을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부모와 자녀가 단 한 시간도 함께 앉아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없는 현실은 더 기가 막힌 현실입니다.
복음적 부모의 길은 그저 세상의 정신과 문화로부터 자녀들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율법주의적 부모의 길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거듭났다고 가정하고, 세속적인 것들을 금하는 것으로는 자녀들을 그리스도이 제자들로 삼을 수 없습니다. 복음적 부모는 자녀들이 그저 도덕적으로 괜찮은 것과 거듭남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새 마음을 주시고(중생) 속으로부터 변화를 만들어주시도록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고 이것이 복음적 부모의 길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그러하다면, 자녀들이 부모를 통해 복음을 들어야 하고, 부모의 삶을 통해 복음적 삶을 보고 배워야 함은 자명합니다. 이렇게 신앙의 대를 잇는 가정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2. 애통하라—간구 (Crying)
우리는 실패라는 현실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와 가정, 그리고 교회의 현실은 우리가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일에서 실패했음을 여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가정들이 무너졌고 다음 세대는 도미노처럼 가치관의 붕괴 현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교회 주일학교의 경우, 예장통합 교단의 통계에 근거하여 현재의 추세라면 2030년에는 주일학교 90%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 바 있습니다. 우리 교단의 경우에는 지난 해 말, 22.4%의 교회에 이미 주일학교가 없다는 통계가 발표되었습니다. 10여 년 전(2011년), 영국 성공회가 발표한 통계는 마치 한국교회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 싶습니다. 이전 40년 동안 영국 성공회는 성인이 50%, 주일학교 자녀들은 80%가 교회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복음주의 가정에서 자라난 십대들이 비기독교 또래들과 비교할 때, 도덕적인 삶에서 특히 최초 성경험 연령에서 조금도 낫지 않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런 거시적인 이야기도 좋지만, 사실 우리 가정의 상황과 우리 교회의 상황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녀들이 장성한 지금, 저의 자녀 양육을 돌아보면 많은 잘못들과 부족함들이 떠오릅니다. 제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렇게 하고 싶다는 성경적 원리들과 실천들도 적지 않습니다. 사실 아무런 준비 없이 부모가 되었고 기르면서 부모가 되어져 간 것이 사실입니다. 제 인생과 자녀들의 인생,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지만, 이것이 다음 세대인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해주어야 하는 부모 세대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된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자녀들의 인생을 소위 ‘우연이나 운’에 맡기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몇 가지 묻고 싶습니다. 어떤 교우들에게는 불편한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거듭났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합니까?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부모입니까?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복음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저는 여러분을 낙담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의 자녀들의 영적 현실이 참담하다면, 그것은 낙담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우리 교회의 다음 세대인 자녀들의 영적 현실을 보면서 참담함을 느낍니다. 거듭났거나 회심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자녀들은 손에 꼽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절망하거나 낙담하면 될 일이 아닙니다. 제가 이 참담한 현실로 여러분을 안내하는 것은 함께 애통하기 위해서 입니다. 애통함은 낙담이 아닙니다.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 현실을 잊으려 하지 말고, 이 현실을 자녀들의 학업적 성취로 가리려 하지 말고, 함께 애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의 영혼이 점점 더 세상의 정신에 사로잡히고 하나님을 경멸하며 지옥으로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데, 울지 않을 부모가 누구이겠습니까? 그 부모가 어떤 다른 것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울어야 할 때입니다. 이 애통함을 회피하는 것은 현실의 왜곡을 남길 것이고 그 뒤에는 신앙의 왜곡이 뒤를 이을 것입니다. 반면, 돈 샐리어스의 말대로, 찬양과 애통은 교회의 기도에 담긴 원초적 리듬이고, 애통은 언제나 찬양으로 돌아가게 하는 문입니다(『예배의 감각』비아, p.88). 지금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 울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할 때입니다. 자신들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는 부모를 가진 자녀들은 얼마나 복된 자녀들입니까? 거듭나게 하심은 성령님의 일일지라도, 여러분의 자녀들은 그런 자녀들이 되게 하십시오.


3. 가르치라—교훈(teaching) (출 13:14-15; 10:1-2; 신 6:20-21; 수 4:20-22; 신 6:6-9; 잠 22:15; 29:15; 삼상 3:13; 왕상 1:6; 엡 6:4; 골 3:21)
하지만 애통함이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전부는 아닙니다. 성경에 의하면, 부모는 가르치는 자입니다. 특별히 본문은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라고 말씀합니다(4). 이것은 조상들에게서 들은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후세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유월절 규례에서뿐 아니라(출 13:14-15), 일반적인 자녀 양육에서 강조해야 할 가르침이 이전에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였습니다(출 10:1-2; 신 6:20-21; 수 4:20-22). 부모가 자신의 구원 이야기를 전해줄 때, 신앙은 더 실제적으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충성, 경외심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 들을 때 일어납니다. 그리고 배운 말씀과 교리들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그 외에도 많습니다. 교리문답을 통해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전체 내용을 알도록 계속 강조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교리문답은 믿음의 내용인 사도신경과 행해야 할 바인 십계명, 그리고 기도를 가르치는 주기도문에 대한 교훈들을 담고 있으니, 기독교 신앙과 삶의 전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교사들의 신실한 수고로 자녀들이 교리문답을 배우지만, 이들은 보조적 역할을 감당할 뿐이고, 진정한 교사는 모든 부모들입니다. 신명기 6장의 말씀대로, 부모는 ‘부지런히’ 주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명기 6:6–9).”
부모는 자녀들이 마땅히 행할 바를 주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훈육해야 하는데, 여기에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이 전제는 현대 교육학의 전제와는 상반되는 것인데, 자녀들은 본성이 부패한 죄인이라는 전제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고(잠 22:15)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므로 채찍과 꾸지람이 필요하다(잠 29:15)”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제멋대로 굴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그들 안에 부패와 악이 역사함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어린 자녀들은 징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엘리 제사장이 자녀들을 징계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서 책망하셨고(삼상 3:13), 다윗이 아들 아도니야를 한 번도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기에 아도니야가 멸망의 길을 갔다는(왕상 1:6) 성경의 지적을 우리는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징계를 통해 자녀들은 권위에 순종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징계는 자녀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할 뿐 복음을 경험하는 자리로 데려가지 않는다는 반대의 극단도 경계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의 반복된 말씀처럼, 자녀들을 노엽고 억울하게 만들 만큼 징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엡 6:4; 골 3:21). 징계를 통해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느끼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징계를 통해 자녀들 안에 평생을 지배하는 성품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가정 만큼 성품에 깊은 영향을 주는 학교는 없습니다. 특히 언어, 태도, 습관, 사고방식과 성품이 형성되는 데에는 출생 후 몇 년 간의 양육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통해 결정적으로 받는 영향 중에는, 신앙, 정치적 관점, 말(감사와 불평, 비판하는 말) 그리고 돈에 대한 태도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이 모두가 균형 잡힌 성숙한 신앙에 절대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회심은 성령님의 몫이지만, 부모는 주의 말씀의 원리로 자녀들을 가르치고 훈육해야 합니다.


4. 보여줘라—모범(Modeling)
그러나 자녀 양육에는 가르침과 훈육 이상이 요구됩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삶으로 보여주는 모범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신앙의 위선을 가장 예리하게 찾아내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정말 원하는 것이 세상에서 학업이나 특정 영역에서 성공하는 것인지 아니면 가르친 대로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을 사는 것인지는 속일 수 없게 드러납니다. 완벽함을 보여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비록 연약한 믿음일지라도 참된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개혁주의 신앙에 중요한 세 가지 삶의 중심이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그리고 교회 중심입니다. 이것은 이론으로만 가르칠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삶에서 언제나 하나님이 중심인지, 아니면 사업과 돈과 성공이 중심인지 자녀들은 보고 압니다. 또 성경이 중심인지 세상 가치나 쾌락이 중심인지도 봅니다. 부모가 은혜의 방편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가르쳐야 합니다. 가정예배 보다 하나님 중심과 성경 중심의 삶을 보여주며 가르칠 수 있는 더 좋은 방편은 없습니다. 교회 중심의 삶은 어떻습니까? 부모가 주일과 예배와 교회 중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범으로 보여줌으로써 가르쳐야 합니다. 존 라일이 『부모의 의무: 자녀양육을 위한 17가지 원리』(복있는사람, 2012)에서 한 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주일에 교회를 가지 않는 습관을 갖지 않도록 가르치라.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자기 영혼을 살해하는 일이라고 분명히 가르치라. 부모와 함께 예배 드리는 것을 배우게 하라.” 혹시 여러분 중에는, 어린 아이 시절, 어머니의 포대기에 싸여 예배당 바닥에서 기도하는 어머니 옆에서 잠들었던 경험을 가진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권면합니다. 그런 축복된 경험을 여러분의 자녀들의 인생에서 빼앗지 마십시오. 그것은 어떤 금은보화보다 귀한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율법주의를 익히지 않도록 복음을 선명하게 반복해서 말해주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루시고 완성하신 것을 자주 말해주십시오. 우리가 바르고 좋은 행위로 하나님의 인정을 획득하지 않음을, 그 사랑과 은혜가 완전한 선물임을 말해주십시오. 용서와 회개는 복음을 경험하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부모의 자비로운 용서를 믿고 용서를 구할 여유를 주는 부모, 그리고 부모도 잘못 행할 때 자녀에게 용서를 구하는 복음적 부모의 모습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5. 성장하라—영적 성장(Spiritual Growth)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하지만 좀 부담스럽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양질의 세상 교육을 제공하려는 부담은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에 대한 영적 부담만은 피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부모의 영적 깊이와 진정성이 자녀 양육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소”라고 말하는 윌리엄 팔리(William P. Farley)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복음의 능력으로 양육하라』개혁된실천사, p.16). 그래서 벧샬롬교회는 모든 부모 세대들에게 영의 양식을 풍족하게 제공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깊이와 진정성을 가지는 부모가 되어, 자녀들에게 최고의 영적 교사가 되도록 교회는 도울 것입니다. 가정예배를 독려하고 유용한 자료들도 제공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 두 가지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게”하는 것입니다(7). 탐욕을 따라 사는 세상에서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백성으로 그 말씀을 순종하여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함입니다(8). 이것은 자녀들에게 “네 할아버지 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셈이니 슬픈 말입니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인 나처럼 살지 말거라”라고 말할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살배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엄마 아빠가 일을 하는 분주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물론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인지는 여러분 스스로가 자문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영국 사회는 2차 대전을 기점으로 엄청난 속도의 세속화를 경험했습니다. 그 이유를 강성환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계 1-2차 대전 이후에 붕괴된 도시들을 재건하느라 아버지들이 바쁘고 분주했습니다. 그리고 도시가 발전하고 잘살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물질주의, 풍요주의에 빠졌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아버지들이 바쁘고 분주하면서, 자녀를 제자 삼지 않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습니다.”(강성환, 길미란, 『복음에 견고한 자녀양육』세움북스).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는 아닌지, 우리 가정에서 우리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닌지 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부모들이여, 여러분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일에서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마십시오. 이것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살리는 길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영적 성장을 위한 양식을 끊임없이 풍성하게 공급하겠습니다.


6. 교훈과 적용 (시 90:16)
오늘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부모 세대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자녀 세대도 언젠가 부모 세대가 될 것이기에, 이것은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독신의 삶을 살고 있거나 결혼했지만 자녀를 두지 않은 분들에게도 유의미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나의 가정이고, 다음 세대에게 여러분 모두는 동일한 책임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의 모든 성인은 기혼, 미혼 여부와 상관 없이 영적 부모의 책임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보게 해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소명은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전하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질문을 다시 여러분에게 던집니다. 여러분이 자녀 세대에게 정말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멋진 커리어를 가진 성공적인 인생입니까? 아니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즐거워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까? 결국, 이 질문의 대답 여하에 부모로서 여러분의 성패가 결정됩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여기에 다음 세대인 자녀들의 행복과 인생의 성패도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후일 여러분의 자녀들이 장성하여 “제 부모님은 제 믿음의 영웅들이셨습니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말씀과 기도로 저희를 양육하기 위해서 온갖 희생을 감내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 보여주신 분들이셨습니다. 저희를 낳으신 부모님은 저희의 영적 부모도 되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삶을 사신 것이라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영적 자녀들이 이렇게 말하게 하십시오. “내게는 영적 부모가 되어 주신 분이 계십니다. 저는 집사님(선생님) 덕분에 복음을 알았고 복음을 보았습니다. 오늘 저의 존재는 하나님께서 그 분을 통해서 제 안에 역사하신 일 덕분입니다.”라고 말입니다.
말씀을 마치기 전에 정말 중요한 권면을 드립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어떤 상태에 이르렀든지, 지금 여러분의 자녀들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절대 낙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실패한 부모가 아닙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여정을 마친 사람이 아니라 여정 가운데 있는 사람임을 있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은 자녀를 통해 여러분을 함께 만들어가고 계시다는 사실도 결코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시간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딜지라도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또 권면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독신이거나 부부이거나 혹은 자녀가 있거나 없거나,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여러분이 자족함으로 감사함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도리어 여러분에게 애통할 자녀가 있음으로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애통할 자녀들을 찾기 위해 둘러보며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인생에서, 그리고 다음 세대의 영혼들에게서 깊고 풍성하게 나타나는 날을 기대하며 은혜의 주님을 바라봅시다.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인내함으로 기다립시다. 그러면서, 부모인 여러분 자신이 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져 가는 은혜를 입기 위하여 열심을 내시고 은혜를 구합시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위해 애통하는 부모의 눈물을 결코 모른 체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모세의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시편 9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