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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81).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시편 81:1-16, 신명기 4:1, 시편 19:7-8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21-06-02

말씀내용
1. 하나님을 향하여 냉담한 사람들에게
시편 81편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냉담해진 신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따뜻한 초청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 마음의 냉담함은 겉으로는 예배에서 가장 잘 표현됩니다. 억지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기에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고, 마음을 담아 찬송하지도 않으며 말씀은 귓전을 스쳐 지나갈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향한 냉담함이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과 태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이 하기 싫은 숙제 처럼 여겨지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낼 수 없으며, 하루 이틀 밀리면서 말씀에서 멀어져 가게 됩니다. 말씀을 읽어도 그 말씀이 마음 깊이 새겨져 머물지 않고 그냥 지나가고 맙니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의 명절인 초막절에 불려졌던 노래로 추정됩니다. 3절에서 “초하루와 보름과 우리의 명절에 나팔을 불지어다(시편 81:3).”라고 하는데, 초하루는 이스라엘의 나팔절인 7월 1일을, 보름은 7월 15일에 시작하여 8일간 계속되는 초막절을 가리킬 것입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의 은혜를 기억하며 40년 동안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보호하심을 기적적으로 경험한 조상들의 광야생활을 기념하며 8일 동안 초막을 치고 거하며 일종의 신앙수련회를 가지는 명절이었습니다. 초막절은 추수를 다 마치고 곡식을 거두어 창고에 저장하는 절기였기에 수장절이라고 불렸고 가장 풍성한 잔치였습니다. 추수에 대한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충만한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와 도우시는 은혜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이렇게 기쁨이 충만해야하는 절기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닫혀버린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힘든 시간들이 되었겠습니까? 시편 81편은 이런 맥락에서 특별히 이런 상황에 있는 언약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2. 표제어와 구조
이 시편에는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라는 표제어가 있습니다. ‘깃딧’이라는 말은 시편 8, 81, 84편에만 사용되고 있는데 이 의미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드 사람들이 만들어 사용한 악기의 일종으로, 가드 사람 오벧에돔과 연관 짓습니다. 둘째로 소산님에둣(시60,80)과 같이 특정한 노래의 양식이나 음률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입니다. 세째로는 히브리어로 술틀을 의미하는 단어 ‘가트’와 연결된 것으로 보아, 포도주 수확을 상징하는 축제의 기쁨을 암시한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설명이 이 시편의 내용과도 잘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1-5절 상반절은 출애굽의 위대한 구원을 기념하라고 주신 축제에서 주님을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기쁘게 예배하라는 하나님의 부름입니다. 둘째로 5절 하반절-16절은 출애굽 사건들을 설명하면서 어떻게 다시 그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두번째 부분은 기억하라는 말씀과(6-10) 회개하라는 말씀(11-16)입니다. 그래서 데렉 키드너는 시편 81편을 이렇게 세 단락으로 나눕니다: 1-5절은 Rejoice (기뻐하라), 6-10절은 Remember (기억하라), 11-16절은 Repent (회개하라). 이런 구분을 염두에 두고 이제 본문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3. 기쁨으로 예배하라 (1-5a)
먼저 1-5절인데, 이 내용은 기쁨으로 예배하라는 초청입니다. 1절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시편 81:1).” 여기서 ‘기쁘게 노래하며’와 ‘즐거이 소리칠지어다’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예배 태도를 보여줍니다. 할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기쁨을 표현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이 보여주는 예배의 정서적 특징은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하나님은 기뻐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큰 기쁨으로 기념하는 것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2절입니다.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시편 81:2).” 기쁨과 즐거움에 더하여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말씀입니다. ‘시를 읊으며’에서 시는 운율이 있는 가락, 노래, 찬송을 의미하고, ‘읊으며’는 ‘제공하라, 주라, 더하라’는 의미입니다. 예배에서 기쁨과 즐거움은 이런 찬송과 시로 표현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소고와 수금과 비파도 더하라고 말씀합니다. 소고는 성소로 행진할 때 쓰던 탬버린 같은 타악기이고, 수금과 비파는 현악기입니다.
3절에서는 나팔을 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나팔은 히브리어로 ‘쇼파르(שׁוֹפָר)’인데, 제사장들이 부는 양각 나팔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악기를 더한다는 뜻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어 백성을 불러 모으라는 뜻입니다. 축제는 이 나팔을 붊으로써 시작됩니다. 초하루인 나팔절이 특히 그랬고, 보름에 시작하는 초막절도 그랬습니다.
이렇게 1-3절은 하나님을 기쁨으로, 악기로, 쇼파르로 예배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카일 델리치는 1절은 백성들에게, 2절은 성전 악기를 사용해야 하는 레위인들에게, 3절은 쇼파르를 부는 제사장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예배의 자리로 초청하신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이유는 4-5절에서 분명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로다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아가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시편 81:4-5).”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양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절기를 율례와 규례와 증거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율례와 규례와 증거라는 단어들은 하나님께서 예배를 위하여 이 절기들을 확고하게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백성들의 편에서 취사선택하거나 변경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찬양과 예배의 의무를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수행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3대 절기인 유월절과 칠칠절(맥추절)과 초막절에, 모든 이스라엘의 남성들은 예루살렘으로 와서 하나님께 예배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임의로 만들어낸 절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누리고 살아가도록 배려하신 영적 장치였습니다. 이 3대 절기에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가 예루살렘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의 존재 의미와 정체성과 삶의 동력이 모두 이 절기들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함에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약 성도들에게 주어진 절기는, 오직 하나, 주일입니다. 주일은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이 지키는 절기요 명절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례와 규례와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임으로써,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별됩니다. 예배의 초점은 기쁨입니다. 모든 예배자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그 기쁨을 표현해야 합니다. 사실, 구약 시대의 예배는 철저하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인도를 받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수동적 참여자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백성들을 향해 기쁨과 즐거움으로 예배하라고 말씀합니다. 칼빈은 시편 주석에서 이렇게 씁니다. “백성들은 성막에서 귀 먹고 멍청하게 서 있어서는 안되었다. 그들은 자신들 안의 믿음의 일치를 소중히 여겼고 자신들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요컨대,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거룩한 언약에 신실하게 머물러야 했다.”(John Calvin, Calvin’s Commentaries, 23 vols. (1848; repr., Grand Rapids: Baker, 2009), 5:311)
이렇게 하나님과 그 백성이 만나 영적 교제가 이루어지는 언약적 모임인 예배는, 능동적인 찬송과 신앙의 외적 표현들과 함께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생기가 넘쳐야 마땅합니다. 1절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두 가지로 묘사합니다.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은 능력으로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 늘 그들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은 족장 시대부터 지금까지 백성의 삶에 개입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백성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주의 말씀을 듣는 것과 예배 (5b-16; 신 4:1; 5:1; 6:4)
5절 하반절부터 16절까지는 영적 냉담함이 외적으로는 예배에서 나타나지만, 내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5절의 화자가 시인 자신이라면, 6절부터는 화자가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5절 하반절에서 자기가 들은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시던 천둥 소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거나, 찬양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 말씀은 먼저 하나님의 구원을 상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6-7절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시편 81:6–7).” 6절은 애굽에서의 종살이와 노역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은혜를, 7절은 시내산과 광야에서 베푸신 은혜를 말씀합니다.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은 아마 시내산에서 절대적 주권을 선포하신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데렉 키드너). 하나님은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고 바다를 건너 시내산으로 인도하셨을 뿐 아니라 가는 길에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시며 그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셨습니다. 결국 출애굽과 광야에서의 시험은 율법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백성을 준비시키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8절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들으라는 명령이 처음 나옵니다.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시편 81:8).” 듣는다는 단어는 8절에 두 번, 11절, 13절에 반복되는데, 그 의미는 귀로 듣는 것을 넘어, 사랑으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따르는 것입니다(13). 그래서 칼빈은 “참된 예배는 순종으로 시작한다고 8절은 가르친다.”고 말합니다. 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여기서는 율법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순종(들음)을 바라고 율법을 자기 백성에게 주셨습니다. 신명기의 세 구절을 보지요.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신명기 4:1).”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신명기 5:1).”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명기 6:4).”
하지만, 이스라엘은 율법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일에서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이것은 들음에서 실패한 것이고 예배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A. 우상 숭배 (8-10; 빌 4:19)
그 첫번째를 9절에서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시편 81:9).” 십계명의 첫 계명입니다. 여기서 ‘다른’과 ‘이방’은 이방신을 수식하는 동의어입니다. 시인은 이 계명을 말함으로써 처음 이스라엘 백성이 십계명을 받았던 역사를 회상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한 죄의 전형은 우상 숭배였습니다. 언제나 모든 시대에 그랬습니다.
우상숭배는 결국 하나님 대신 다른 존재와 대상을 예배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아무 기쁨도 즐거움도 없는 형식과 습관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형식화된 예배는 우상 숭배의 결과입니다. 10절 하반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시는데, 이것이 만나를 채워 주신다는 뜻이라면, 우리가 삶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 가령 의식주의 문제는 물론 부와 인기와 용납과 세상적 권력 등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들일 뿐입니다. 하나님만이 축복의 유일한 근원이시기에 하나님만을 예배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동일한 주의 약속을 전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립보서 4:19).” 우상을 섬기지 않을 이유가 여기에 충분합니다.
B. 마음의 문제 (11-12; 시 19:7-8; 119:13,43,50,60,72,111,165; 눅 15:11-32)
하나님은 냉담한 백성을 향해 불붙는 마음으로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시편 81:11).”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원인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순종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종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듣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결국 마음과 의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 냉담한 사람들이 관계를 회복하는 팁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매튜 헨리는, “사람들이 경건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경건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반역적 의지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표출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마음—는 우리의 영적 상태에 대한 시금석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냉담한 마음을 버리고 회복하려면, 먼저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이런 말씀의 은혜를 고백하는 자리로 가야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편 19:7–8).”
여러분은 이렇게 고백합니까?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시편 119:14).”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시편 119:43).”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편 119:50).”
“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편 119:60).”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시편 119:72).”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시편 119:111).”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편 119:165).”
주의 말씀에 대한 이런 고백들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일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고통스러운 해결책을 주십니다. 그것은 마음을 완악한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시편 81:12).” J.J. 스튜어트 페로운은 “이것은 가장 엄중하고 무서운 하나님의 형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버려 두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집스러움과 함께 하시지 않으시고 그들을 자기들의 꾀 대로 살도록 방임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백성들이 굳어진 마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제어하심 없이 제멋대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인지를 맛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탕자의 비유로 알려진 주님의 말씀에서 이 의미를 보게 됩니다(눅 15:11-32). 아버지는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하는 둘째 아들이 원하는 대로 유산을 나눠주고 그가 떠나도록 내버려둡니다. 결국 인생의 비참한 맛을 제대로 맛본 뒤에야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기로 결정합니다. 아버지는 그를 맞아주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 내용이 13-16절입니다.
C. 회복 (13-16)
13절에서 주님은 다시 백성을 부르십니다.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시편 81:13).”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를 따르는 것이고 그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조상들의 슬픈 역사는 반복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자비로운 약속을 주십니다. “그리하면 내가 속히 그들의 원수를 누르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대적들을 치리니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는 그에게 복종하는 체할지라도 그들의 시대는 영원히 계속되리라 또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하셨도다(시편 81:14–16).”
그들의 원수를 친히 다루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5절에서 ‘그들의 시대는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체 할지라도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어서 그들이 완전하게 굴복하는 시간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땅을 축복하셔서 지속적인 양식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5. 교훈과 적용
시편 81편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의 마음은 냉담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노래하며 소리치십니까? 우리의 예배는 우리의 영적 상태,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또 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그 말씀의 은혜를 맛보며 사십니까? 만일, 우리 마음이 이 모든 면에서 냉담함을 드러내고 있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냉담함 가운데 버려 두시고 우리 마음대로 행하는 자리까지 가지 마십시오. 이런 냉담함은 언제나 우리의 우상 숭배와 관련이 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를 예배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마음이 냉담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냉담함의 문제는 단순히 회복의 은혜를 구하기 전에, 회개해야할 문제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다시 1절로 갑니다.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시편 81:1).” 우리는 우리 능력 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즐거이 소리쳐 예배하도록 부름받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우리에게 주일이라는 절기—명절을 주셨습니다. 제임스 메이스의 말입니다. “절기는 단순한 축제도 아니고, 단지 음악과 예배도 아니다. 절기는 이스라엘이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청종하는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이다…절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도를 상고하고 그들의 행위를 돌아보며 주께서 “내 백성이 들어 순종하기를” 호소하시는 그 음성을 듣는 시간이다.”
이런 은혜가 매주일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경험되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을 사는 동안 다시 우리 마음이 냉담해질지라도 주일마다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주께서 우리에게 주일을 주셨습니다. 이 절기—명절을 여러분의 신앙여정에서 중요하게 여기시고 그 은택과 유익을 충만히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