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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단어별 설교모음 - 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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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 2018 - (4). 삼위 하나님을 예배 함

출애굽기 20:3-5 / 김형익 목사 / 교리강의 / 2018-11-25

말씀내용
1. [왜 삼위일체 교리/개념이 필요한가]
역사상 많은 이단이 삼위일체 교리와 관련하여 출몰하였다. 삼위일체(trinity)라는 용어가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성경이 계시하는 삼위로 계시는 한 하나님은 이 용어로 잘 대변된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는 예배를 타락시키고 신앙을 무너뜨리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모든 사람들의 신앙이 성부, 성자, 성령이 한 하나님이시나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성령 또한 성자가 아니며 그들 각자는 서로가 어떤 특성에 의해서 구별된다고 하는 이 한 점에 일치하게 된다면 이 용어들은 잊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1.13.5).”
예배에 관하여(1.11~12)
2. [하나님의 뜻: 일/이계명이 가르치는 것(출 20:3~5)] 하나님을 가시적 형태로 만드는 것은 다 불신앙적 우상숭배다. 구름, 연기, 화염 같은 신적 임재의 표상들도 형상화하면 안 된다(신 4:11).
➔ 일/이 계명은 예배에 대한 계명인데, 알지 못하는 미지의 하나님을 어떻게 합당하게 예배할 수 있는가(행 17:23)? 결국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최고의 지식이며 이 지식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3. [교회의 타락] 실용주의의 함정 ➔ 이 실용주의는 결국 감각에 호소하는 유용성일 뿐, 믿음에는 해악이 되는 것이다.
A. [로마 카톨릭의 형상화에 대한 변명]
i. 형상은 무식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그레고리우스1세, 590~604).
➔”만일 교회가 가르침의 의무를 다했다면 형상이라는책을 필요로 하는 무식자는 없었을 것이다(1.11.7).” 교리가 순수하고 건전했던 처음 500년 동안 교회는 모든 형상을 거절했다 (1.11.13).
ii. 형상을 경배하지 않고 치료약과 같이 사용하면 된다.
B. [니케아회의(787년)] 유치한 성경해석에 근거하여(창 1:27) 교회당 안에 형상을 설치할 것과 형상물을 예배할 것을 결정하였다.
4. [인간의 성향]
A. [인간 본성] “인간의 본성은 우상을 만들어내는 영원한 공장이다(1.11.8).”
➔ 인간은 본성상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고 감각적인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통제 가능한 하나님’이다.
B. [우상숭배] “인간은 하나님을 형상화한 후에 거기 하나님을 결부시키고, 결국 그것을 예배하게 된다. 이것이 우상숭배다(1.10.9).”
C. [우상숭배의 유용성] “기도하는 사람과 제물 드리는 사람의 주의를 끌게 되고 그것이 비록 감각과 생명은 없다 하더라도 생명 있는 지체와 감각 있는 것과 흡사해져 유약한 마음을 감동시키게 되고 마침내는 그것들이 살아서 호흡하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1.10.13).”
➔가시적 형상에 의존하게 되면 더 이상 말씀을 상고하지 않게 되고 믿음이 성장할 수 없다.
5. [예술의 기능과 한계] 어떤 것을 형상화하는 예술은 하나님의 선물로 정당하게 사용될 수 있다. 역사적인 것이나 사건을 형상화하는 것은 교육상 유익하나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것은 성경이 금하고 있다. ➔가령 성경을 그림으로 그려서 가르치는 것은 유익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상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하여(1.13)
6. [하나님의 본질은 무한하고 영적이다](1.13.1)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이나 육 적 상상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함의 대상이시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셔서 마치 옹알이하듯이 우리에게 맞추어 말씀하신다(accommodation).
➔그러므로 삼위일체와 같은 개념도 성령님의 조명을 구하고 알려는 수고를 하되, 머리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건방진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잊지 말라. 하나님의 경외와 예배의 대상이시다.
7. [삼위일체의 긍정적 효용]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다 불합리한 것이지만, 생각과 말의 확실한 규범을 성경에서 찾고, 성경에 순응시키는 한에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1.13.3).
➔ 인간의 이성에 의존하는 개념이 아니라, 오직 성경에 의존하는 한에서 삼위일체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는 매우 중요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된다.
8. [삼위일체의 부정적 효용] 교회는 거짓 교사들을 가려내기 위해서 삼위일체와 같은 표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1.13.4).
➔ 교회 역사 속에서 아리우스나사 벨리우스와 같은 이단들이 언제나 있어 왔고 이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통해서 그 이단성이 드러났다. 하나님에 대한 모호하고 불명확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하여 교리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신학은 체험이나 인간 이성의 산물이 될 것이고, 우상을 만들어내는 인간 본성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9. [삼위일체와 ‘위(位)’] 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의 완전한 신성을 단언함과 동시에 삼신론 혹은 다신론을 피하려고 극도로 주의를 기울였다.
A. ‘세 분(인격), 한 하나님(본질)’ = 한 본질(essence)안에 세 실재/본체(subsistence)로 계심: “나는 즉시 삼위의 광채에 둘러싸이지 않고는 단일성을 상상할 수 없다. 또한 곧바로 단일성을 상기하지 않고는 삼위를 분별할 수도 없다.”(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1.13.17).
B. 세 인격은 시간상 전후가 없고, 지위상 고하가 없다.
10.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신성
A. [그리스도의 신성] 요 1:1~2; 빌 2:6; 구약시대에 천사로 현현(삿 6~7;13).
B. [성령님의 신성] 창 1:2; 고전 3:16
11. 적용
A.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라.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하나님이 없는 공허하고 무가치한 하나님이라는 이름만이 우리 머릿속을 떠다닐 것이다(1.13.2,6).
➔ 가시적인 형상들이 오늘날에는 표적이나 기사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눈에 보이는 현상에 의존하게 되는한, 그 사람은 점점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에 의존하는 신앙에서 멀어지게 되고 결국 신앙은 자랄 수 없게 될 것이다.
B. 경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 외에는 어떠한 곳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는 것 외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않을 것, 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지 않을 것은 어떠한 것도 말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써야 한다(1.1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