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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설교 - 기도 -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았다고 느낄 때 (시편강해 13편)

시편 13:1-6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17-08-16

말씀내용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았다고 느낄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다윗의 고백에서 우리는 영적인 사람 다윗이 그런 느낌 속에 빠져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승리하는 그리스도인’, 혹은 ‘그리스도인의 풍성한 삶’과 같은 주제들에 익숙해 있는 우리는 이런 느낌을 가질 때 더 심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승리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깊은 침체를 경험하는 성도들은 자신이 어쩌면 구원받지 못한 유기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승리주의적 망령은 자칫 신앙 생활을 뜬 구름 잡는 초현실주의로 오도하고 현실의 경험들을 설명해 주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게 됩니다. 성도에게는 늘 은혜롭고 승리하는 삶만 있는게 아닙니다. 성도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이런 비참한 느낌 속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는 초현실주의나 신비주의가 아닙니다. 신자의 삶은 이 땅에 두 발을 디디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사는 현실입니다. 사실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겪는 어떤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았다고 느끼는 고통일 것입니다. 이런 절망적 느낌, 깊은 영적 침체의 원인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윗의 기도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그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임스 보이스가 다윗의 영적 침체의 원인들을 너무나 잘 분석해놓았기에 저는 그분의 설명을 좀 더 정리해서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1. 다윗이 영적 침체에 빠진 원인들(1~2)
우리는 이 시에서 다윗 자신이 왜 이런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A. 고통이 길어질 때
첫째는, 고통이 길어지는 것이 그 원인입니다. 13편은 애가의 특징인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표현이 가장 많이 반복된 시편입니다. 1~2절에만 4번 반복됩니다. 12편에서 다윗은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거짓과 아첨과 자랑하는 자들뿐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깊은 외로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외로움이 깊어지고 오래 지속되면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라고 말할 만큼 하나님께 버림받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의 고통 때문에 이렇게까지 느끼지는 않습니다. 고난의 시간이 길어질 때,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성도는 이런 느낌에 빠질 수 있습니다. 다윗이 여기서 네 번이나 말하는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표현은 단지 며칠이 아니라, 어쩌면 해를 넘기고 수 년이 지나도록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자기에게서 얼굴을 숨기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이 세상에서 이런 느낌 속에 빠져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B. 오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지 못할 때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에 빠지는 두 번째 원인은 그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향한 은혜를 거두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은혜를 전처럼 가슴으로 뜨겁게 그리고 눈물겹게 경험하지 못한 채 시간을 많이 보낸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런 시간들을 보낼 때가 있지 않습니까? 예배를 드려도, 기도를 해도, 성경을 읽어도 은혜를 경험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은혜의 경험이 기억 속에서 아련합니다. 그리고 외롭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부부관계나 자식들과의 관계가 꼬이고, 직장에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전과 같은 성과가 나지 않습니다. 더 많이 노력하고 힘을 쏟는데도 기대했던 결과들이 나오지 않아서 마음이 상하는데 그런 일이 너무나 많이 반복됩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영원히 나를 잊으신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다윗이 고백하듯이 말입니다.

C. 감정과 감정이 몰아가는 절망적 생각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는 느낌이 드는 세 번째 원인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치는 감정과 그 감정이 몰아가는 절망적인 생각입니다. 다윗은 2절에서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온 종일 이런 절망적 생각과 번민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기질적으로 쉽게 우울한 느낌으로 빠져들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런 상태에 들어가게 될 때, 자기가 느끼는 느낌이나 상태가 사실 보다 훨씬 더 나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기질 뿐 아니라, 육신적으로 지치거나 정신적인 긴장이나 피로가 쌓여도 우리 영혼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사람이 병들거나 몸이 아파도 영혼이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을 하루 종일 돌보아야 하는 엄마들 가운데도 이런 영적인 침체가 올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다 지치기 때문이고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확 자라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 산에서 엄청난 영적 전투를 멋진 승리로 장식하고 나서 갑자기 깊은 침체에 빠졌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합과 이세벨이라는 원수가 여전히 굴복하지 않고, 도리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나섰기 때문일까요? 물론 지치지 않고 달려드는 대적들도 우리를 침체로 인도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자신의 모든 영적, 육적 에너지를 다 소진했기 때문에 이런 침체가 왔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연약한 존재입니다. 어떤 이들은 힘에 지나게 주의 일을 하면서, 자신이 왜 영적으로 더 가라앉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때론 우리가 엘리야처럼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다 소진하도록 쏟아부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D. 원수 마귀의 존재
네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았다는 절망적인 느낌에 빠지게 하는 원인은 원수 마귀에게 있습니다. 다윗의 인생에 그를 대적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습니다. 사울 왕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아들들이 그랬고, 심지어 부하 장군 요압도 자기 뜻과 욕심을 뒤에서 다 이루는 인물이었습니다. 다윗은 2절 하반절에서 말합니다.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다윗은 그들이 자기를 이기는 것이 정말 두려웠고 그렇게 되는 상황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4절도 다윗의 두려움을 잘 보여줍니다.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여기서 ‘내가 흔들릴 때에’라는 표현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매우 부정적인 표현입니다. 우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는 마귀가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우리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있는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연약함과 위에서 언급한 상황들 그리고 우리를 영적 침체로 몰아가는 요인들을 알고, 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마귀가 우리의 기질이나 육체적인 상태까지도 자기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기도가 반환점이다(3~4).
다윗이 이런 상황에서 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그는 자기 마음을 알아줄만한 사람을 찾아 그에게 자기 마음을 토로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보통 잘 하는 방식이 아닌가요? 그는 하나님께 말합니다. 자기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절망과 두려움을 하나님께 토로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다윗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두려움과 고통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기도하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느냐고 반문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는 귀가 열려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갈 때에 눈이 흐려지고 다른 모든 기능들이 다 떨어질 때에도, 귀의 청각은 마지막까지 기능을 한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렇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 다윗이 경험했던 것과 같은 상황에 있으시다면, 여러분이 하셔야 할 것은 솔직하게 그리고 일회성으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입니다. 다윗은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라고 구합니다(3). 나를 영원히 잊으신 것이 아니라면 나를 생각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얼굴을 더 이상 숨기지 마시고 내게 응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온갖 근심과 번민으로 자기 눈이 어두워졌다고 말할 만큼 힘든 다윗은 눈을 밝혀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 기도가 신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기도는 탄식과 절망에서 믿음과 기쁨으로 가는 반환점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5~6절에서 봅니다.

3. 탄식과 절망에서 믿음과 기쁨으로
다윗은 5절에서 이렇게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기도는 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기도는 듣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무언가를 하나님께 말씀을 드려야 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자녀들의 귀는 하나님을 향하여 가장 크게 열립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경험하셨습니까? 기도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음성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다윗은 이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5절의 내용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해서 들려주신 말씀에 대한 다윗의 반응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사랑을, 그 헤세드, 그 언약의 사랑을 믿고 의지합니다. 그러니 제 마음은 주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제 찬송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라는 표현은 한글 개역에서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나를 관대하게 너그럽게 선하게 대해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인식에 다시 도달하게 될 때, 사람은 비로소 깊은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고, 그 사랑을 신뢰하게 되고 그 믿음의 결과로 기뻐하기 시작합니다. 다윗이 이 짧은 기도에서 탄식과 절망에서 믿음과 기쁨으로 옮겨가는 것은 조울증세가 아닙니다. 이것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힘이 없는 것은 우리가 말하려고만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게 될 때, 그 말씀은 언제나 우리 영혼을 살아나게 합니다. 내가 실컷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부으니까 시원하다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입만 여는 것이 아니라, 귀를 열고 듣는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탄식과 절망에서 우리를 믿음과 기쁨 그리고 찬송으로 옮겨주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4. 기도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이 시편에서 무슨 교훈을 얻습니까?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명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여도 기도하기를 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은혜로운 응답을 하시기까지 기도를 쉬지 마십시오. 이 시편의 시작과 끝을 보면서 위로를 받으십시오. 이 시편은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로 시작했으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로 끝을 맺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믿음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우리는 터널 끝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헤세드를 믿는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모든 상황을 감당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후대하신다(은덕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 언약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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