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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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설교 - 말씀 - 요한계시록 강해 2019 - (13).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서

요한계시록 2:2-3, 갈라디아서 1:6-10, 요한이서 7,10-11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9-10-27

말씀내용
오늘은 종교개혁 502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의 젊은 교수, 33세의 마르틴 루터(1483-1546)가 비텐베르크 교회당의 정문에 신학 논쟁을 야기할 목적으로 붙여놓은 95개 신학 논제가 도화선이 되어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일대 사건,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마르틴 루터라는 사람 안에 이런 거대한 역사 변혁의 사건을 일으킬 것이라는 의도가 전혀 없이 시작되고 진행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마르틴 루터의 신학논제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루터 자신 조차 감당할 수 없는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한 마디로, 잃어버린 복음을 회복한 사건입니다. 중세 교회의 타락과 보편적 우상 숭배 속에 거의 장사 지낸 바 되었던 오래된 복음을 부활시킨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는 에베소교회에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502년 전의 종교개혁을 생각해보면서, 오늘 우리 시대에 주님께서 성도와 교회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듣고자 합니다.


1. 진리에 사로잡힌 ‘한’ 사람들
종교개혁이라는 교회사의 대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놀라움은 이것이 세계사를 변혁시킨 하나의 운동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운동(movement)라고 할 때, 그것은 일단의 사람들이 함께 변혁을 도모하여 무언가를 조직하고 그 조직의 힘을 빌어 사람들은 동원하여 일으키는 것을 의도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종교개혁은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무언가를 조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신학자요 신학 교수였고, 설교자였으며 탁월한 저술가였습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를 강의하는 교수였습니다. 그러던 중, 복음을 깨닫게 됩니다. 당시 그의 경험에 대한 고백을 인용하겠습니다.
“바울의 로마서를 이해하려고 몹시 애쓰는 나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하나님의 의’였다. 그것은 이 의라는 말을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분이요 따라서 불의한 사람들을 공정하게 처벌하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나의 상황으로 말하면 수도사로서는 털끝만치도 흠잡을 데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마음이 괴로운 죄인이었기에 도무지 나의 공로를 가지고는 그분을 누그러뜨릴 자신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공정하고 성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증오하고 그분에게 투덜대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는 바울을 붙잡고 늘어지면서, 그의 말에 무슨 뜻이 담겨있을까 계속 생각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곰곰이 생각하던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의’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때 나는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은혜와 순수한 자비를 발휘하신 나머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죄 없는 것으로 여기시는 그 의라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새로 태어나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이른 기분이었다. 성경 전체가 새로운 의미를 지녔으며, 전에는 ‘하나님의 의’ 때문에 내 속은 증오로 차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하게 되었고 더 큰 사랑을 불러일으켰다. 바울 서신의 이 대목이 나에게는 하늘로 통하는 하나의 문이었다……”

그는 자신을 사로잡은 복음의 진리를 부지런히 설교했고 가르쳤으며 글과 책으로 써서 발표하였습니다. 그의 설교와 글들은 자신이 의도하지도 않았던 바, 당대 교황청을 흔들었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제후들을 당혹스럽게 하였고, 급기야 루터는 1521년, 37세의 루터는, 보름스(Worms)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제후들이 모인 의회에서 자신의 신학과 신앙을 변론해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사실 이것은 변론의 기회가 아니었고, 루터가 문제가 된 자신의 신학을 철회할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받는 자리였고, 대답 여하에 따라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자리였습니다. 루터의 전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아마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멋진 장면 중 하나로 기억할 사건이 이곳에서 발견됩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칼 5세와 제후들 앞에 선 루터는 자기가 쓴 책들과 주장들을 철회하겠느냐는 질문 앞에서 오랜 변론 뒤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철회할 수도 없으며 철회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서슬 퍼런 황제의 권위 앞에서 자신의 목숨이 걸린 순간에, 루터는 자기가 깨달은 복음의 진리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루터의 대답은 루터에게 파문과 죽음을 의미할 뿐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이로써 루터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외에는 누구로부터도 정당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그는 황제 앞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한 사람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전개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이 마르틴 루터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한 사람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면, 그 전개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의해서 진행되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자신의 신학 논제를 붙이던 1517년 어간에, 스위스 아인지델른에서는 울리히 즈빙글리(1484-1531)라는 한 사제가 복음의 진리를 깨달았고, 그 진리를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가 가르치던 그 권위있는 가르침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을 거침없이 설교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마르틴 루터와 울리히 즈빙글리는 미리 모여서 종교개혁운동을 도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 두 사람의 종교개혁자 보다는 좀 늦은 시기에, 프랑스에서 존 칼빈(1509-1564)도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20세의 젊은 법학도 칼빈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회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편주석에서 칼빈은 이렇게 자신의 회심 사건을 고백합니다. 인용입니다.
"그래서 나는 철학 공부를 그만두고 법률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신실하게 그 일을 행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숨겨진 섭리의 고삐로 내 인생의 길을 결국 다른 방향으로 굽게 하셨다. 처음에 내가 천주교의 미신들에 너무도 완고하게 빠져있어서 그렇게 깊은 수렁에서 나를 끌어내기가 더 더욱 쉽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내 나이에 비해 매우 고집스러웠던 나의 영혼을 예기치 못한 회심을 통해 배우는 자의 자세를 갖도록 정복하셨다. 이런 식으로 나는 참된 경건의 어떤 맛을 본 뒤에, 더 무관심했던 다른 과목들을 전적으로 내버려 둔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러한 공부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그리고 일년이 채 못 되어 더 순수한 교리를 갈망하던 모든 사람들이 여전히 초보자였던 나에게 배우기 위해 나를 자주 찾아왔다."
이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에 사로잡혀 결국 7년 후인 27세 때에는 『기독교 강요』라는 불후의 고전 초판을 출판하게 되고(1536), 이 책은 종교개혁의 신학적 기틀을 잡는데 상상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칼빈이 평생 했던 일 역시 설교와 저술이었습니다.
이들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독일의 스트라스부르크에는 마르틴 부처(1491-1551), 존 칼빈을 종교개혁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던 불어권 스위스 지역의 종교개혁가 기욤 파렐(1489-1565), 이탈리아의 피터 마터 버미글리(1499-1562), 제네바의 테오도르 베자(1519-1605),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1513-1572), 잉글랜드의 토머스 크랜머(1489-1556) 등 이름을 다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이 종교개혁의 거대한 물결에 합류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섭리로 16세기 어간에 유럽의 이곳 저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놀라운 역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 하셨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혔던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왜 ‘한 사람’을 강조하여 말하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그만큼 고독한 투쟁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대세를 따라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옳다고 인정해주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깨달은 복음의 진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고 글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목숨을 내어 주어야 할지라도 말입니다.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자 토머스 크랜머는 강력한 카톨릭 교도였던 메리 1세의 탄압 속에서 온갖 강요와 회유를 당하여 한 번은 개신교 신앙을 철회한다고 서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그것을 다시 철회하고 순교를 하게 되는데, 배교를 서명한 자신의 오른 손을 화형대의 불 속에 먼저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토머스 크랜머가 화형대에서 남긴 말입니다.
“내 마음으로 생각했던 진리에 모순되게 내 손으로 썼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거부합니다. 사실상 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겁쟁이처럼 서명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쇠퇴해지면서 내가 직접 썼거나 서명했던 목록들이 있습니다. 그 내용들은 모두 진실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내 마음과 모순되게 서명하였기 때문에 내 손이 제일 먼저 벌을 받아야할 것입니다. 내가 불에 탈 때, 내 손이 제일 먼저 불탈 것입니다. 나는 로마 교황을 거부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적이며, 적그리스도이며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자입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혔던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2. 진리에 사로잡힌 교회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에베소교회에 대한 주님의 칭찬을 듣습니다. 비록 에베소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책망을 들었지만, 그리고 그 일은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부인할 만큼 큰 일이었지만, 주님은 분명하게 에베소교회를 또한 칭찬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1세기 사도들이 살아있던 시대의 초대교회를 어지럽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거짓 교사들의 다른 복음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오늘날과 같이 제도적 신학교를 통해서 목사를 배출하는 상황이 아니었고, 그와 함께 담임목사들이 하나의 지역 교회를 돌보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대부분의 교회는 순회하는 교사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순회교사들은 유명한 사도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와서 자신들을 신원을 증명했고 말씀을 가르쳤으며 그 기간 동안 교회의 영접과 환대를 받곤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거짓 교사들이 돌아다니는 일들이 많았고, 많은 경우, 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유대주의적이고 율법주의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에 복음을 전해서 교회가 세워졌지만, 사도가 떠난 뒤에 거짓 교사들이 다른 복음을 전했고 갈라디아 교회는 그로 인해 무너질만한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를 썼는데, 그는 이렇게 무서운 말들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6-10).”

바울 사도가 이렇게 ‘저주’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강한 논조로 말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강 하나님의 말씀을 업으로 삼아서 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말씀의 교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거짓 복음과의 싸움은 비단 갈라디아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또 그 거짓 복음은 단지 유대주의 혹은 율법주의 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1세기 말로 가면서, 점점 더 다양한 이단적 가르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교회들은 언제나 이 진리의 싸움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요한이서에서 이런 말씀을 대할 때, 초대교회가 직면하고 있던 이런 류의 싸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요이 7, 10-11).”

일곱 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메시지에서도 우리가 보듯이, 버가모 교회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들어와 있었고,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도 있었습니다(계 2:14-15). 또 두아디라 교회는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했다고 주님께서 책망하셨습니다(계 2:20). 1세기 말의 모든 교회가 이런 상황에 놓여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교회가 다 진리의 싸움을 잘 감당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수고와 인내를 알아주십니다. 그들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고 특별히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됨을 드러내는 일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시험하여 본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요한이서에서 말씀한 것처럼, 집에 들이지도 않고 인사도 하지 않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인사하는 것으로도 악한 일에 참여한다고 말할 만큼, 진리의 문제는 심각한 문제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에베소 교회는 그 일을 정말 신실하게 잘 해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 사도가 2차 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한 바 있고(행 18:19) 3차 전도여행 때 다시 3년의 세월을 머물면서 목양을 해서 세운 교회였습니다(행 19; 20:31). 바울 사도는 자신이 떠난 뒤에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어 말씀을 가르치게도 하였으니(딤 1:3) 에베소 교회는 진리의 가르침에 있어서 특별한 은혜를 누렸던 교회였습니다. 이런 혜택 때문인지, 에베소 교회는 이단과 거짓 복음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한 동기는 3절에서 말씀한대로, “내(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행한 일이었습니다. 또 에베소 교회는 버가모 교회와 달리(계2:15), 예수님께서 미워하시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했습니다(계 2:7). 니골라 당은 율법폐기론을 주장하면서, 극단적 자유방임의 성향을 드러내는, 1세기의 구원파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에베소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칭찬, 그리고 그들의 진리를 위한 싸움은 종종 그들이 받은 책망 때문에 그 빛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중요한 것은 사랑이지 진리가 아니다” 하는 식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문에서 주님이 주시는 칭찬과 책망을 오해하는 처사입니다. 책망은 책망 대로, 그러나 칭찬은 칭찬 대로 듣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종교개혁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이해했다면, 종교개혁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그들이,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내가 할 일을 진리를 주장하여 싸움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면, 종교개혁도, 오래된 복음의 재발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사로잡은 복음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이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감당해 주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이 복된 복음의 진리를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에베소교회가 한 일 가운데 잘 한 일이라고 주님께서 칭찬하신 그 일을 우리는 이어서 계승해야 합니다. 진리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복음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은 그 성격상, 제대로 깨달은 사람 안에 참된 회심의 열매를 맺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을 붙들고 이끌어가는 힘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맛보았고 제대로 깨달았다면 그 말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이 시작된 1517년으로부터 502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교회는 오래 전 그들의 인생을 흔들어 놓았던 그 복음의 진리가 다시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번영 신학에 기초한 거짓 복음, 율법주의에 뿌리내린 다른 복음이 난무하고, 유치한 신비주의에 근거한 사이비적 가르침들이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고상한 윤리 설교라는 왜곡된 복음이 많은 교회의 강단을 채우고 있습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차치하더라도 교회 안의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못하는 영적 기근의 시대를 우리는 지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한 가운데서 오늘 종교개혁 502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에, 우리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을 듣습니다. 이 칭찬은 우리가 복음의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교회가 되라는 주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벧샬롬교회가 주님의 교회라면, 그리고 주님의 교회라고 자처하는 모든 교회는 주님의 이 명령을 받아야 합니다.
저에게 이 말씀은 이렇게 다가옵니다. “그냥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목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말씀은 어떻게 들리십니까? 그냥 장로가 아니라, “주의 이름을 위하여 진리의 싸움을 피하지 않을만한 진리에 사로잡힌 장로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냥 집사와 권사가 아니라, “복음의 진리에 사로잡힌, 하나님의 말씀이 그 핏속에 흐르는 집사와 권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냥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그 진리에 생명을 거는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벧샬롬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주의 명령입니다. 신천지 출입금지가 해답이 아니라, 어떤 이단이 가만히 들어온다고 할지라도 단 한 사람의 성도도 흔들 수 없는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거짓된 교훈, 다른 복음이 들어올 수 없는, 진리에 견고하게 서서 진리의 싸움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단지 벧샬롬교회의 강단에서 바른 복음이 선포되고 가르쳐지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벧샬롬교회의 교인인 여러분 모두가 그 바른 복음의 진리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주님을 사랑하며, 그 진리의 말씀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 그리고 교회에 육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벧샬롬교회에 위임받은 목사로서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이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 앞에 여러분의 자아가 깨지고 무너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구하십시오. 여러분의 입이 아닌, 여러분의 변화된 삶으로, 복음의 진리의 참됨과 그 구원하며 변화시키는 능력을 증명하십시오. 매일 온 교회가 맥체인성경캘린더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애독하고, 묵상하는 일에서 쳐지지 마십시오. 시편 기자처럼,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시 119:14)”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533년 50세의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해마다 성경을 2번씩 읽어왔다. 성경을 크고 강한 나무, 성경 안에 기록된 말씀들을 작은 가지들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 가지들에 무엇이 달려 있는지, 그리고 그 가지들이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열망에 불타올라 모든 가지들을 두드렸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신학자나 목사, 교회사의 어떤 위인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벧샬롬교회는 21세기 초반 고고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교회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사용하셔서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래된 복음, 사도들이 전한 바른 복음이 한국교회의 강단, 강단에 회복되는 일에 우리 교회를 사용해주시길 겸비한 심령으로 간구합시다.

종교개혁만 아니라, 2000년의 교회 역사 전체는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한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교회들을 통한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저는 언젠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여러분과 교회의 역사를 공부하게 되기를 갈망합니다. 그 역사 속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 그런 교회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얼마나 복된 은혜를 그 시대에 부어주셨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역사 속의 그런 사건을 부흥 또는 영적 각성이라고 부릅니다. 부흥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당신의 교회에 찾아오셔서 교회로 하여금 잃어버린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감각을 급격히 회복하게 하시는 사건입니다. 교회역사에서 잠자는 교회, 무능력한 교회를 깨우시고 회복시키신 것은 언제나 부흥 곧 하나님의 주권적인 찾아오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흥을 통하여 당신의 나라를 가장 놀랍게 확장시키셨던 것을 우리는 교회의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언제나 진정한 선교의 능력은 부흥과 함께, 부흥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점화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부흥입니다. 벧샬롬교회에 부흥이 필요하고, 우리의 신학교들에 부흥이 필요하고, 한국교회 전체에 부흥이 필요합니다.


3. 부흥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교회와 성도의 삶을 회복하는 것,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건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 우리를 향한 주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성도가 되고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해야하겠습니까? 제가 오랫동안 사랑해온 인용문을 여러분과 나누면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19세기 미국의 목사였던 윌리암 스프레이그의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겸손해지며 자신의 무능함을 깊이 느끼는 곳마다, 또한 단순한 도구들로 사용될 마음을 가지게 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고 부요한 복락이 부어졌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신적 감화의 필요성을 조금 밖에는 느끼지 못하고 자신감을 갖고 일하는 곳에서는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부지런히 수고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노력한 것이 허사로 돌아가고 그들이 수고한 자취에 아무 것도 없는 비참함을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가장 연약하다고 느끼는 순간과 여러분의 하는 일이 너무 큰 것 같아 보일 때, 여러분의 가는 곳에 가장 무서운 장애물들이 가로막고 있을 때 여러분의 마음이 소망의 다른 모든 원천에게서 떨어져나간 것 같을 때, 그러한 때에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교리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수고하는 수고를 멈추지 마십시오. 그러면서 기뻐하십시오.” <참된 영적 부흥> p.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