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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설교 - 선택과 유기 - 해석자의 집에서 (2) (다시보는 천로역정 -6)

히브리서 6:4-6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18-10-31

말씀내용
여섯번째 장면: 쇠창살의 감방에 갇힌 사나이—유기(abortion)

1. 장면 묘사: 쇠창살이 달린 감방 안에 있는 슬픈 사나이는 전에는 모두가 인정해 주는 훌륭한 신자요, 박식한 사람이었고,틀림 없이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믿었던(눅 8:13) 사람이었으나 깨어있지 못하고 세상 정욕에 끌려 성령을 거스름으로 성령이 떠나시고 마귀가 들어와 결국 회개할 수도 없게 된 사람이다.

2. ‘그 남자’의 설명
A.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린 이유: “자신의 정욕을 위해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았다(히6:6). 그리스도의 인격과(눅 19:14) 그의 의로우심을 경멸했다. 그분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생각하였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였다(히 6:4~6;10:28~29).”
B. 이런 비참함에 이르게 된 이유: “이 세상의 정욕과 쾌락과 헛된 부귀영화 때문이었다. 이런 것들을 향유하면 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얻을 것이라고 믿었다.”
C. 회개할 수 없는 이유:“하나님께서는 이제 저의 회개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시며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다시 믿을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3. 이 장면에 나타난 유기의 교리
A. 이 사나이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버리신’(유기) 사람을 보여준다. 해석가들은 이 인물이 존 번연 당시에 알려진 어떤 배교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B. 이 사나이가 경험하는 절망: 고전적인 종교적 의미에서 절망이란 극악한 죄인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버림받았다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을 깨달을 때 발생하는 결과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더 이상 어떤 구원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신다. 물론 은혜가 여전히 제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은혜의 소망 밖에 있다고 믿는 더 약한 형태의 절망도 있다. 이런 절망은 하나님이 죄인으로부터 돌아서시는 결과가 아니라, 죄인 자신의 고집스러운 불신앙에 기인한 산물이다.
C. 이 사나이는 일시적 절망이 아닌 영원한 절망을 상징하는 인물이고, 이것을 철창으로 번연은 묘사했다.

4. 예정의 교리와 선택(택하심)과 유기(남겨두심)의 교리

A. 선택교리는 예정론의 부분집합이다.예정론은 발생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미리 정하셨음을 가리키며, 선택교리는 특별히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결정을 가리킨다.

B. 선택
i.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을 구원하기로 택하셨다.(택자는 자비의 대상)
ii. 선택은 하나님께서 피조물로부터 어떤 공적을 보시기 이전에 당신의 주권적이고 선하신 뜻에 의해 구원받을 사람을 미리 택하신 하나님의 행위다(웨인 그루뎀).
iii. 선택은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계획)으로 그 뜻에 의해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자신들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원래의 흠 없는 상태에서 타락해 죄와 멸망에 빠진 모든 인류 가운데서 그분의 주권적인 선하신 기쁘심을 따라 순전히 그분의 은혜에서 본성상 다른 이들보다 나을 것이 없고 좋은 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으며 다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한 비참에 다같이 빠져있었던 확정된 특정한 사람들을, 영원 전에 택하신 자들의 중보자와 머리 그리고 구원의 기초로 임명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택하셨다.(코르넬리스 프롱크)

C. 유기
i. 하나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주권적으로 이행하시는데 어떤 이들을 지나치셨다. 유기자는 지나치심을 받아 자신을 스스로 던져 넣은 비참에 남겨진 자다.
ii. 유기란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슬픔 중에 어떤 사람은 구원하지 않기로 결정하시고 그들의 죄로 인해 그들을 심판하기로 하심으로써 자신의 공의를 나타내고자 하신 주권적인 결정이다(웨인 그루뎀).

D. 성경구절들

i. 예정과 선택을 가르치는 구절들
-행 13:48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롬 8:28~30 미리 정하셨으니
-롬 9:11~13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롬 11:7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엡 1:4~6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사

ii. 유기를 가르치는 구절들
-유 4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롬 9:17~23 멸하시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
-롬 11:7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벧전 2:8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E. 성경이 선택의 교리를 말하는 목적
i. 위로(롬 8:28; 시 57:2)
ii. 감사와 찬양(엡 1:12; 살후 2:13)
iii. 복음전파의 격려(딤후 2:10; 행 18:10)

F. 정리
i. 하나님의 강압에 의해 구원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버림받는 사람도 없다.
ii. 하나님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일에 적극성을 보이시는 것과(빌 2:13) 똑같은 방식으로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일에 적극성을 보이지는 않으신다(시 81:12; 롬 1:24).

1. 유기의 경우,
하나님께서 죄인이 자기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시면 되지만, 선택받은 자들을 구원하시려면 아버지의 독생자의 죽음을 포함해서 삼위 하나님께서 가장 큰 일들을 하셔야 한다.

2. 선택의 원인은 하나님께 있지만 유기의 원인은 죄인들에게 있다. 선택의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인 반면, 유기의 근거는 하나님의 공의다. 이점에서 이중예정이라는 말은 선택과 유기를 마치 같은 종류로 이해하기 때문에 옳은 표현이 아니다.

3. 무엇이 공정한지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우리 각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기준선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원한 죽음이다. 구원은 선물이지 상급이 아니다.

iii. 하나님은 예지된 믿음과 순종을 근거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예지예정). 만일 하나님이 베푸시는 중생의 은혜와 무관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하나님은 구원의 믿음을 주겠다는 자신의 사전 결정과 무관하게 누군가가 믿으리라는 것을 결코 미리 아셨을 수 없다.
1. 무조건적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는 선택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실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어떤 조건에 의존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G. 난해 구절:

히 6:4~6(히 10:28~30; 눅 8:13)—PhilipHughes 와 RCSproul 의 해석
i. 하나님 백성의 언약 상의 특권을 누리다가 고의적으로 그것을 버린 사람들은 신앙을 되찾기가 그 누구보다도 어렵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서 그 땅이 좋다는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돌아오긴 했지만 결국 불신앙 때문에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 히브리 정탐꾼들처럼 새 언약의 축복을 알게 된 사람들도 영적인 의미에서 그 마음이 애굽으로 되돌아가 성도들의 영원한 안식을 상실할 수가 있는 것이다.

ii. ‘비췸을 얻다’:
이것은 복음의 진리 안에 나타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듣고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함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특별히 ‘비췸을 얻다’는 말은 2 세기중반, 로마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회심과 세례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여기서 비췸을 얻는다는 것(enlightement)은 단번에 발생한 어떤 것으로, 이를테면 반복적으로 되풀이할 수 없는 세례와 같은 것을 가리킨다. 복음의 빛이 이 사람들의 암흑 속으로 파고들었다. 복음을 저버리는 것은 그 빛을 거역하는 죄, 즉 바로 그 죄의 본성이 치유될 수 없는 그런 죄다.

iii. ‘하늘의 은사를 맛보다’:
비췸을 받는 것이 세례를 시사하듯, 하늘의 은사를 맛보는 것은 성찬을 시사한다. 본문이 가리키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고 성찬을 받았음에 분명하다. 두 성례전을 다 경험한 사람들이 그런 가운데서도 배교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하늘의 은사를 맛본다”는 말은 성찬에서 더 나아가, ‘비췸을 얻다’와 함께 사용되는 넓은 의미에서 명백한 회심을 가리킬 수 있겠지만, 본문의 결론에 의하면 회심의 명백한 증거는 있었으나 참된 회심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iv.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성령’앞에 헬라어 정관사가 없는 것 때문에 성령님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나 작용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개연성은 열어둘 수 있으나 불확실하다.정관사의 유무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실질적인 의미에서 성령에 참여한 사람이 배교죄를 범할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되겠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식으로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할 수 있다는 데에 의심을 갖지 않는다(10:29). 기자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고 성찬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안수도 경험한 사람들이다. 한 예는 마술사 시몬인데, 그는 복음을 들었을 때 믿고 세례를 받아 자기를 전도한 빌립을 전심으로 따라다닌 사람이다(행 8:9~24). 베드로는 그에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다”고 선언했다.

v.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마술사 시몬은 빌립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깨달았고 복음 전파에 따른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랐다. 이런 ‘능력’은 앞으로 올 시대가 이미 현 시대에 침투했다는 “표적들”이었다(마 12:28). 그러나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할 것이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할 날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마 7:22 이하). 성경에는 연약한 신자를 격려하고 아끼는 말씀도 있지만,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준엄한 경고의 말씀도 많다. 믿을 만한 신앙고백은 순수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기 백성을 알고 계시는 분은 주님뿐이시다.

vi. 4~5 절에 묘사되는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할 수 있다. 이 경고는 과도하게 축소되거나 과장되기도 하였다. 세례를 받은 후에 범한 죄는 회개할 수 없다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본문의 경고는 실질적 위험, 곧 “믿지 아니하는 악심이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는” 결과가 될 수 있는 한, 존재하는 위험(3:12)에 대한 실질적 경고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 율법이 그랬듯이 부지중의 죄와 고의적인 죄를 구별한다. 그리고 본문에서 기자는 고의적인 죄는 바로 고의적인 배교임을 명백하게 보여 준다. 이런 죄를 범하는 사람은 돌이켜 회개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버림으로써 그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리스도의 주장을 고의적으로 거부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공공연하게 욕보이는 자들이다. 그리스도께서 획득해 놓으신 구원을 거부하는 자들은 어디에서도 얻는 것이 없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을 모두 용서하겠다고 친히 약속하셨지만 동시에, 성경 말씀과 경험은 사람이 다시 회개할 수 없는 심령 상태와 생활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다 같이 시사한다.

5. 교훈

A. “우리는 선택과 예정이라는 위대한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먼저 반드시 회개와 믿음이라는 중등 학교를 거쳐야 한다.”(존 라일)
B. 그러나 쇠창살의 감방에 갇힌 사나이는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혜에 대하여 스스로가 스스로를 막고 있다. 이것이 버림받은 사람의 특징이다. 스스로 구원의 모든 기회를 막는 것이다.
C.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살다가 고의적으로 신앙을 포기하거나 내려놓는 자는 다시 돌이켜 회개할 기회가 없다는 이 말씀을 마땅한 두려움으로 받아야 한다.
D. 늘 깨어 근신하라(살전 5:6).
E. [스펄전의 은혜로운 권면]
“저는 ‘내가 택자가 아니면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게 하고 근심하게 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그분들은, ‘오, 목사님 저는 제가 예수님을 신뢰하고 제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며, 예수님의 보혈을 신뢰한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제가 택함 받은 자가 아니면 어떻게 하지요?’라고 묻습니다....불쌍한 피조물이여, 이렇게 말하는 당신은 복음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뢰를 예수님께 두는 사람들,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유일한 소망인 사람들은 택함 받은 자입니다. 믿도록 예정된 선택이기에, 당신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다면, 비록 그것이 약한 믿음이든, 떨리는 믿음이든, 항상 흔들리는 믿음이든, 그 믿음의 대상이 그리스도시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직 택하신 자들에게만 주시는 선물을 당신이 받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