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SERMON
설교분류별모음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추천설교 - 심판 - 요한계시록 강해 2019 - (36). 여섯째 인 - 심판의 날

요한계시록 6:12-17, 베드로후서 3:10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20-06-07

말씀내용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세 개의 심판 시리즈 중 첫번째, 일곱 인의 심판을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 여섯 번째 인 심판을 살펴볼 것입니다. 모든 성경이 그렇지만,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맥락을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펴보아야 하는 맥락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본문의 문맥적 정황이고 또 한 가지는 성경이 쓰여지던 당시의 정황적 맥락입니다. 강해설교는 이 두 가지 맥락을 반드시 다루어 주기 때문에, 회중이 스스로 성경을 이해하는 실력을 길러줄 뿐 아니라, 설교자 자신의 의도를 최소화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 본문을 통하여 회중에게 말씀하시게 한다는 점에서 유익합니다.


1. 본문의 맥락(계 6:11)
우리가 이미 살펴본 처음 네 인의 심판은 각각 네 말과 말 탄 자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패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이 보여주는 정복과 전쟁, 기근과 전염병은 주님의 승천부터 재림까지 교회의 전 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심판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심판에서 교회는 상당한 박해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다섯 번째 인의 심판에서는 무대가 땅에서 하늘로 옮겨지게 되고 하늘의 제단 아래에서 순교자들의 영혼이 하나님께 자신의 핏값을 신원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은 교회의 역사에서 진행되는 네 인의 심판을 통하여 순교하게 된 모든 성도들의 영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요한계시록 6:11).”고 그들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이렇게 다섯 번째 인의 심판이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여섯 번째 인의 심판을 보게 되는데, 여섯 번째 인의 심판은 바로 앞 6:11의 하나님의 응답이 성취되는 내용입니다. 즉, 여섯 번째 인의 심판은 다섯 번째 인의 심판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향한 심판이 성도의 기도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시고, 이점에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수가 차기까지”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여섯 번째 인의 심판은 그 수가 찼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교회에 대한 세상의 박해가 하나님이 정하신 선에 다다랐고, 이제 그 박해하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향한 어린 양의 진노가 결정적으로 부어지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최후의 심판은 여섯 번째 인을 떼면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상징적인가, 문자적인가?
여기서 본문의 해석과 관련해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오늘 본문(특별히 12-14절)의 묘사들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요한계시록을 과거주의로 해석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말씀은 구약시대에서도 유사한 표현들을 민족이나 국가의 멸망과 관련하여 사용하였듯이,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멸망 사건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렇게 해석하려면, 요한계시록의 저작 연대가 1세기 말이 아니라 네로 시대 쯤으로 소급해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면, 이 본문은 우주 곧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최종적 해체 즉 최후 심판에 일어날 일들을 묘사한 것으로 보게 됩니다. 우리가 계속 살펴보겠지만, 요한계시록의 전체 구조를 살펴볼 때, 이 해석은 지지를 얻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에서 요한계시록을 강해할 것인데, 여러분은 이 말씀이 참으로 그러한가 다른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살피면서 깨닫는 은혜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3. 우주적 규모의 심판이 시작되다 (12-14; 사 34:4; 욜 2:31; 훔 1:5; 겔 32:7; 사 13:10; 마 24:29; 벧후 3:10; 신 4:19; 계 16:20)
12-14절의 내용은 우주적 질서가 붕괴되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단지 사람들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 질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에 미치는 대격변을 포함합니다. 구약성경에 익숙한 성도들에게, 여기 나오는 표현들은 그리 생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무엇입니까? 먼저, 큰 지진이 나고,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처럼 검어지고, 달은 피 같이 변합니다.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익지도 않은 열매들이 떨어지듯이 다 땅으로 떨어집니다. 하늘은 두루마리 말리듯 말려서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각 산과 섬들이 제 자리에서 옮겨집니다. 이것은 여섯 번째 인이 떼어지자, 우주적 혼돈과 함께 시작되는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보여줍니다.
이것들은 사실 전형적인 구약의 표현들입니다. 그 대표적 구절이 이사야 34:4입니다.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이사야 34:4).” 비슷한 표현입니다. 이외에도 유사한 표현들을 몇 군데 더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요엘 2:31).”
나훔 선지자의 니느웨 멸망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나훔 1:5).”
에스겔 선지자는 애굽의 심판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에스겔 32:7).”
바벨론 멸망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이사야 13:10).”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한 이런 표현들은 구약성경에 많이 등장했지만, 주님께서도 감람산 강화에서 심판의 날을 이렇게 예고하셨습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태복음 24:29).”
이뿐 아니라, 사도 베드로도 성령의 영감으로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베드로후서 3:10).”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 일어나는 현상은 지진이었습니다(출 19:18; 사 2:19; 학 2:6). 해가 검어져서 상복 같이 된다는 말은 그날에 사람들이 겪게 될 굴욕과 애통함의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달이 피 같이 된다는 것은 심판의 혹독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는 것은 로버트 마운스에 의하면, “고대세계에서 별들의 떨어짐은 마지막이 왔다는 싸인 외에 다른 의미가 아닙니다.” 구약 성경에서 천체는 이스라엘이나 이방 민족이 숭배하는 거짓 신들을 표상하기도 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신명기 4:19).”
그리고 하늘이 두루마리 처럼 말려서 떠나가고 산과 섬들은 제 자리에서 옮겨집니다. 하늘이 떠나가는 그림이 상상이 되십니까? 그리고 요한계시록 16:20에서는 섬과 산악들이 제거되어 없어진다고 말씀합니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요한계시록 16:20).”
과학자들이 연구하던 자연 세계, 우주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붕괴되고 사라질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온 세상은 코로나19 바이러스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여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권력은 무용지물입니다. 바이러스 하나로 온 세상이 이렇게 대혼란을 겪고 있다면, 그 심판의 날에 우주적 규모의 심판 앞에서는 어떠하겠습니까? 이것은 어린 양께서 여섯 번째 인을 떼실 때 일어나게 될 심판의 날의 현상입니다.


4. 심판을 받는 자들의 반응 (15-17; 6:8; 창 3:8)
여섯 번째 인이 떼어지고 이 현상이 임하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이 임합니다. 이것이 어쩌면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지옥의 묵시록]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론 브란도가 역할을 한 커츠(Kurtz)대령이 죽어가면서 외마디 신음으로 두 번 말합니다. “The horror, the horror.” 전쟁터의 공포를 잊어버리기 위해서 미쳐버리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아무리 멀쩡하게 살아가던 사람들도 도피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면 더 이상 멀쩡할 수 없습니다. 교양도, 지식도, 신분도, 재산도 여기서는 어떤 차이도 가져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위가 아무 의미가 없게 될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요한계시록 6:15).” 여기 여섯 범주의 인간이 나옵니다. 임금들, 왕족들, 장군들, 부자들, 강한 자들, 그리고 모든 종과 자유인(둘을 별도로 보면 일곱 범주)입니다. 적어도 앞의 다섯 범주는 세상에서 아쉬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안전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심판의 날에는 이런 구분이 무색해집니다. 만일 구분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 충성을 바쳤는가, 짐승에게 충성을 바쳤는가의 구분만 있을 뿐입니다.
이들은 다 짐승의 표를 받았고 짐승을 경배하는데 일생을 바친 사람들입니다(계 13:15-16). 짐승은 사탄과 그 추종 세력 혹은 사탄이 장악한 세상 권세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박해했습니다(계 19:18-19). 이들은 우상숭배자들입니다. 그래서 15절이 ‘땅의 임금들과’라고 시작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순교한 영혼들은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라고 기도했습니다(6:8). ‘땅에 거하는 자들’이 심판의 대상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상숭배자들이고 짐승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땅 위에서 단지 순례자일 뿐이지만 땅에 거하는 자들은, 이 세상의 물질적 부, 불의, 거짓 종교, 도덕적 오염과 함께, 이 세상에 본향을 두고 있습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이런 것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았습니다.”(그레고리 비일, 요한계시록 주석(복있는사람), p.241)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갑자기 임하게 될 때,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의 관계입니다. 교회를 다녔느냐가 아닙니다. 벧샬롬교회의 교인이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했고 그리스도께 충성을 바쳤는가가 결정합니다. 이점에서 지금 여러분은 안전합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먼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려는 헛된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요한계시록 6:15–16).”
이들은 숨겨지길 원합니다. 어떻게든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실 이들은 살기 위해서 숨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얼굴과 어린 양의 진노에서 벗어나 죽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두렵고 비참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서 차라리 죽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전쟁터의 지옥 같은 공포가 사람을 미치게 했다면, 최후 심판에서의 공포는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얼굴을 두려워 피하는 일의 원형은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아담의 태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창 3:8).” 기쁨의 근원이었던 하나님의 얼굴은 가장 두려운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죄인들이 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굴과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라도 자신들 위에 떨어져서 자신들을 숨겨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따라갔던 사람들, 그리스도께 충성을 바쳤던 사람들에게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얼굴은 큰 기쁨과 영광과 감격이 될 것입니다. 평생에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얼굴을 뵙기만을 원했던 사랑하는 하나님의 얼굴을 뵐 때, 성도들의 심령은 기쁨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성 베르나르는 이렇게 찬송시를 쓰지 않았습니까?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찬송가 85장).
하지만, 땅에 거하는 자들은 공포에 압도당하여 하나님의 얼굴에서 죽음과 심판과 진노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요한계시록 6:17).” 이렇게 성경은 우리에게 마지막 심판이 시작될 때 일어날 일들을 조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5. 교훈과 적용(고전 7:31; 시 2:12)
하나님의 심판의 시계는 지금도 돌아가고 있습니다. 역사의 시계 바늘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향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대로 이 심판의 날, 어린양의 진노의 날은 여러분이 생각지 않은 때에 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떤 종말론적 이단들이 했던 것처럼, 재산을 다 팔고 산으로 올라가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것을 자유롭게 누리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일상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린도전서 7:31).”고 했습니다. 이것을 알고 살아야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우상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대단한 성취를 이루고 기념비적인 업적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 날에 그것들은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가를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그리스도께 충성을 드리는 삶입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적당히 혹은 대충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 길은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아니면, 그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심판의 날, 어린양의 진노의 날에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아래 놓이게 되는 사람들은 ‘땅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땅의 임금들’과 그 이하 하나님을 대적한 모든 우상숭배자들입니다. 그레고리 비일의 말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정치적 우상이든 경제적 우상이든 사회적 우상이든, 피조물에게 있는 어떤 것에 전적으로 헌신한다. 땅에서 순례자로 살아가며 그들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대조적으로, 경건하지 않은 땅에 거하는 불경건한 자들은 현재의 세상 질서에 안주하며, 지상에 있는 안전을 의뢰하고 눈에 보이고 덧없는 것 너머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이른바 시선이 땅에 고착된 사람들이다.”(그레고리 비일, NIGTC 요한계시록 (새물결플러스), p. 670).
오랜 세월, 주일이면 예배당에 나와 주일예배에 참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은 우리가 그날 주님 앞에 서려면 그 이상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짐승 말고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삶을 사십시오. 이 자리에는 복음을 들었지만 아직 믿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 앞에서 두려워해야 합니다. 속히 구원의 은혜 주시기를 구하셔야 합니다. 그날이 갑자기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980년 5월, 미국 워싱턴 주에 있는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폭발한다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경찰들은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인근 5마일 거리의 호숫가에 살던 해리 트루먼이라는 인물은 대피를 거부했고, 심지어 TV와 라디오에까지 출연하여 화산 경보와 대피령을 비웃었습니다. 결국 5월 18일 오전 8시 31분 화산은 폭발했고 150평방마일이 초토화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리 트루먼의 시신은 확인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늘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 날에도 그럴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께 입을 맞추고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다고 성경을 말씀합니다(시 2: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리스도와 화평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고 말씀드리십시오. 심판의 날은 옵니다. 그날을 준비하고 사십시오. 이것이 지혜로운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