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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2019 - (74). 그날은 온다

요한계시록 20:11-15, 마태복음 25:31-32, 고린도후서 5:10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21-06-06

말씀내용
오늘 본문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언입니다. 전세계의 모든 기독교 신자는 사도신경을 통해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라고 고백함으로써, 재림하시는 주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성경이 명백하게 증거하는 최후 심판은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의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장로교회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33조 1항에서 최후의 심판을 탁월하게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세상을 심판할 한 날을 정해 놓으셨다. 성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 그날에는 타락한 천사들이 심판 받을 뿐 아니라, 또한 이 땅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 자신들의 생각, 말 그리고 행위를 직고하고, 그들이 선악 간에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1. 크고 흰 보좌 (11; 마 25:31-32; 사 51:6; 벧후 3:7,10)
마지막 심판의 예언은 요한이 환상 중에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았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최후 심판을 ‘백보좌 심판’이라고도 부릅니다. ‘크고 흰 보좌’라고 보좌 앞에 형용사가 사용된 것은 요한계시록에서 유일한 경우입니다. 아마 이것은 20:4에서 보았던 ‘보좌들’—죽은 성도들이 하늘에서 다스리는 보좌—과 구별하려는 의도이거나, 심판의 권세와 위엄을 드러내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흰 색은 주로 순결함과 거룩함을 상징했듯이, 여기서도 그 의미를 포함할 것입니다.
요한은 보좌와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았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는 이제 심판을 행하시는 분인데, 성부 하나님인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심판을 하시는 분이 성부 하나님이라는 말씀들이 있지만(마 6:4; 18:35; 롬 14:10), 성자 예수님께서 심판하신다고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7:22-23; 고후 5:10). 주님은 친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마태복음 25:31–32).”라고 말씀하셨고, 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셨다고도 하셨습니다(요 5:22). 그래서 조엘 비키는 ‘보좌에 앉으신 이’는 그리스도라고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사도신경도 심판하러 오시는 분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있고 있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성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함으로써 이 견해를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고려하여 정리하면, 성부의 위임을 받아 성자 하나님께서 심판의 보좌에 앉아 심판하신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고 하신 말씀도 생각하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역할 구분에 대한 지나친 논쟁은 유익하지도 않고 불필요할 것입니다.
요한이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을 보았을 때,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고 말합니다. 새 시대가 시작되기 위하여 현 시대는 끝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늘과 땅으로 표현된 피조 세계인 우주가 심판하시는 이의 권세 앞에서 도망한다는 말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임박한 도래를 준비하는 우주의 해체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21:1). 하지만 이것은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것이었습니다.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이사야 51:6).” 사도 베드로도 이것을 말씀했습니다(벧후 3:7,10).
2. 죽은 자의 부활 (12-13)
11절은 심판하시는 하나님, 의로우신 재판장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심판의 대상, 피고인석에 설 자들은 누구입니까? 12절은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들이 심판을 받을 피고들입니다. 13절을 보지요.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13).” 13절은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부활을 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바다 그리고 사망과 음부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준다고 합니다. 바다, 그리고 사망과 음부는 일차적으로 죽은 자들의 영역을 의미하고, 죽음을 통해 지배하는 악의 영향력을 상징합니다. 특히 바다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은 바다에서 실종하여 그 몸이 땅에 묻히지 못한 사람들도 부활과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과거에 화장을 반대하는 분들이 화장하면 부활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부활은 그것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몇 년 전에는 존 파이퍼 목사님이 화장은 성경적으로 죄에 대한 심판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피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취지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론 그 의미를 염두에 둘 수 있습니다마는, 성경이 화장을 명시적으로 금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여지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같이 작은 나라에서 죽은 이들이 차지하는 면적이 점점 커지는 현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화장이든 수목장이든 수장이든, 죽은 자들은 예외 없이 부활하여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재림하셔서 크고 흰 보좌에 앉아 심판을 행하실 때, 심판대 앞에 서게 될 피고는 아담과 하와로부터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입니다. 더글라스 켈리는 “이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인간의 모임이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 중 한 사람도 빠지지 않은 모임이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참고로,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인 것은 2013년 2월 10일 힌두교 축제인 쿰브 멜라(Kumbh Mela)로, 인도 알라하바드에 1억 2천만 명이 모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자들과는 비교 조차 불가능할 것입니다. 12절은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라고 표현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물론 주님 재림하실 때 살아있는 자들은 그대로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신자들도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신자들도 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인생을 결산하지 않을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3. 행위 심판과 두 종류의 책 (12-13; 마 16:27; 고후 5:10; 히 4:13; 계 21:27; 롬 3:10,23; 8:1; 사 38:17)
우리는 심판하시는 분과 심판 받을 대상을 살펴봤습니다. 이제 심판의 기준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준으로 심판하십니까? 그 기준은 12절과 13절 하반절에 각각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12b),” 그리고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13b)”라고 했습니다. 기준은 그들이 살아 생전에 행한 행위입니다. 여러분은 “신자들도 행위로 심판을 받습니까?”라고 질문하고 싶으십니까? 답은 ‘그렇다’입니다. 본문이 말씀하는 대로입니다.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태복음 16:27).”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린도후서 5:10).” 신자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12절에서 두 종류의 책을 만납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12).” 책들의 존재는 하나님의 심판이 자의적이거나 독단적이지 않고 완전히 공정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책들에 대한 말씀은 다니엘서의 인유인데(단 7:10; 12:1-2), 요한은 두 종류의 책을 봅니다. 먼저 보좌 앞에 펴져 있는 책들인데(복수) 이것은 각 사람의 행위들이 기록된 책들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책이(단수) 펴져 있는 것을 보지요. 그것은 생명책입니다. 먼저 행위를 기록한 책들을 생각해봅시다. 만일, 아담 이래 지구 상에 살았던 모든 인간, 각 사람의 행위들이 기록되어 있으려면 그 분량이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이 책들은 일종의 기소장인데, 하나님의 기소장이기에 판결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책들에는 저와 여러분의 평생의 행적도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생각, 동기와 의도까지도 낱낱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일들도 그날에는 다 드러나고야 말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브리서 4:13).” 잘못이 없을지라도 세상의 재판정에 피고로 선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모든 생각, 의도, 동기 그리고 행위를 기록한 책을 가지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두려워함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여기 책들은 문자적 의미라기 보다, 결코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자신의 기억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어거스틴의 말입니다. “이 책들은 신적 기억을 상징한다. 이 기억의 책은 모든 행위, 말, 생각 그리고 동기들을 오류 없이 기록하는 책이다. 무한하고 편재하시는 하나님은 역사의 모든 세부 사항을 완전하고 오류 없는 관찰로 지켜보셨다.”
신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정말 신자들도 행위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라면, 신자들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여기에 또 다른 책, 생명책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생명책은 고대 세계의 도시나 국가의 시민 명부와 같은 책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자들은 천국 시민이고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27은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천국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합니다. 신자들이라고 해도, 또 신자들이 얻은 구원의 믿음이 그들 안에 선한 행위들을 만들어낸다고 해도(엡 2:10), 어찌 그들이 범한 부끄러운 죄악들이 없겠습니까? 행위를 기록한 책들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지옥의 형벌을 면할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롬 3:10,23). 그래서 심판대 앞에 선 신자들도 먼저 자신들의 부끄러운 죄악들을 직면하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유죄 판결과 지옥 형벌로 이어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판결을 받기 직전, 잠시 천사장이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하자, 그가 지은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그리스도에게 부어졌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도다”라는 선언과 함께(롬 8:1) 모든 죄의 용서와 무죄가 선고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당신의 등 뒤로 던져버리실 것입니다(사 38:17). 그리고 심지어 믿음이 신자 안에서 만들어낸 선한 행위들에 대한 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생명책은 신자들이 최후의 심판에서 유죄 선고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성입니다.
4. 둘째 사망 (14-15; 고전 15:26)
하지만 생명책에서 이름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유죄 선고가 내려질 것입니다. 그 형벌은 둘째 사망입니다. 14-15절을 보지요.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14-15).”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두 번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처음 죽음은 우리가 보통 말하는 죽음으로,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사망이 있습니다. 첫째 죽음에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15절 말씀대로,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불못은 육체적인 고통을 포함하지만 본질상 영적 고통을 영원히 겪는 지옥을 상징합니다. 육체를 지니지 않은 사탄과 그의 사자들은 영적 고통만을 겪겠지만, 부활하여 육체를 다시 얻은 사람들은 영적 고통에 더하여 육체의 고통까지 영원토록 겪을 것입니다. 끝으로 사탄의 지배력을 상징하던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짐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은 마치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린도전서 15:26).”라고 한대로 입니다. 사망 곧 죽음은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 세계에 죄로 말미암아 들어온 저주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영광의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져오시기 위하여(계 21:1) 죽음의 저주를 음부와 함께 정죄의 자리에 던져 버리시는 것입니다.
5. 교훈과 적용 (계 13:8; 마 24:43-44; 살전 5:2; 요 6:37,44)
사랑하는 여러분, 그날은 반드시 옵니다. 그날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크고 흰 보좌에 앉아 인류 역사의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늘과 땅도 피하여 간 데가 없다고 할만큼 두려운 심판의 날입니다. 그날 우리는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심판하시는 주님 앞에 숨겨질 수 있는 존재나 개인, 숨겨질 수 있는 행위나 동기는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행위, 말, 생각 그리고 동기를 오류 없이 기록한 책을 가지고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만물이 그분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고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히 4:13). 세상 역사에서 구부러지고 뒤틀려진 정의가 완전히 바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의 심판에서 유죄를 면할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죄인이 살 길은 오직 하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의 이름을 주님은 생명책에 기록하십니다. 생명책의 원 이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계 13:8; 21:27).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의식인 세례를 생각해보십시오. 세례는 참된 신앙의 고백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 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세례를 받은 신자의 모든 죄는 다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되었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 모든 형벌과 저주가 주님에게 다 남김 없이 부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심판의 날에 신자들도 소환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참 구주시라면,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그 모든 죄악에도 불구하고 정죄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심판을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용서를 받은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주님을 믿는 사람, 그 믿음이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맺음으로 참된 믿음을 입증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을 진실하게 믿는자들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날을 맞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성경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것이라고 거듭 말씀합니다(마 24:43-44; 눅 12:39-40; 살전 5:2,4; 벧후 3:10; 계 3:3; 16:15). 주님의 재림과 심판의 날은 생각지 않은 날 불현듯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편안하게 앉아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니까 심판의 날이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여러분은 자신의 믿음이 참되지 않음을 말할 뿐입니다. 참 신자는 그날을 두려움으로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그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막연한 무서움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이 가져오는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신자는 또한 그날을 기다립니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드러난 나의 큰 죄악들이 용서받을 때,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날을 맞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날은 죽음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날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지금 당장 주님께 나아가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막 1:15). 여러분은 그 심판의 날에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고 여러분의 그 죄악들이 오직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이 흘리신 피로만 덮여질 수 있고 사해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 주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향한 주님의 자비로운 약속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37).”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한복음 6:44).”
이제 구주를 믿는 자들을 위해 주님이 차려주신 식탁으로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