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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하는 세례

로마서 6:3-4, 갈라디아서 3:27-28, 마태복음 3:17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22-05-29

말씀내용
‘중생과 세례가 사라졌다!’ 이 말은 물론 과장된 표현이지만 오늘날 교회에서 거듭남과 그 거듭남에 근거하여 세례를 베푸는 일은 드문 일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니라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애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우리 시대의 교회의 약화를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지표 중 하나입니다. 저는 오늘 그 이유를 분석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오늘 세례식을 행하는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주의 말씀을 통해 세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 (마 28:19; 롬 6:3-4)
기본적으로 죄 씻음을 의미하는 세례 의식은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일이기에(마 28:19), 성찬과 함께 기독교의 두 가지 성례를 구성합니다. 특별히 로마서 6장의 전반부는 세례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성경 본문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가르치는 세례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세례는 죄인이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믿어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이 된 것을 공적으로 증거하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받았다고도 표현합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서 죽었고, 그의 부활 안에서 부활한 사람이라는 것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례로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을 보실 때, 그리스도를 보시듯이 형언할 수 없는 사랑으로 바라보시고 그 사랑을 아낌 없이 베푸십니다. 이점에서 세례는 늘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의심하는 연약한 우리로 하여금 그 사랑을 확신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인이며 표입니다. 그래서 존 칼빈은 “넘어질 때마다 우리는 세례 받은 기억을 되살려서 우리 마음을 강하게 하여 언제나 죄 사함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하며(4.15.2)…길을 벗어날 때마다 우리가 받은 세례를 기억해야 한다(4.15.3).”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마르틴 루터의 일화도 유명합니다. 그는 마귀에게 공격을 당할 때마다 “나는 세례를 받은 사람이다!”라고 소리쳤다는 것이지요. 세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언약의 인이요, 그리스도와 연합한 표입니다.


2. 새 이름과 새 정체성 (마 3:17; 4:3,6; 롬 6:6,14)
세례는 또한 새 이름과 새 정체성을 얻는 예식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물론, 주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시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례 때에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이름을 받으시고 그 정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도 비슷합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새 이름과 새 정체성이 공개적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목사나 교회가 선언하는 게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명하신 주님 안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가 새 이름과 새 정체성을 얻게 되면, 마귀는 그때부터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 공격은 일평생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우리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실 때, 마귀는 우리를 향하여 갖은 비난을 쏟아냅니다. 못난 놈, 중독자, 죄인, 패배자, 아무 쓸모도 없는 놈, 심지어 쓰레기라고 부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시며 ‘내 사랑하는 자녀’라고 부르며 안아 주시며 오직 주님 안에서 만족하게 하시지만, 마귀는 부를 추구하라고, 권력을 추구하라고, 예뻐지라고, 명성을 얻으라고, 경건해지라고,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라고, 명예로워지라고, 의로운 사람이 되라고 그악스럽게 우리를 다그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마 3:13-17),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며 반복해서 던진 말이 “네가 만일 하나님이 아들이어든(마 4:3,6)”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주님은 돌로 떡을 만드시거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심으로써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할 필요가 전혀 없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직전에 하나님께서 친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마 3:17).
우리도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믿음으로 주를 고백함으로 세례를 받은 신자들은 이런 마귀의 공격 앞에서 우리 자신의 의로움이나 행위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를 믿는 우리는 비참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결격 사유에도 불구하고 오직 믿음으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고, 그것을 세례로서 공개적으로 인치셨고 선언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통해 새 이름과 새 정체성을 받고 신자로 살아가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제 이런 마귀의 모든 공격에 대하여 거부와 저항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죄에게 종 노릇하였지만(롬 6:6)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죄는 더 이상 세례 받은 신자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그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롬 6:14). 알렉산더 슈메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시작할 때 첫번째로 해야 할 행동은 거부와 도전”이라고 말합니다. 세례를 받는 그리스도인은 악의 세력, 즉 악을 향한 모든 충동, 유혹, 죄, 실패, 헛된 욕구들을 포함한 모든 것들 앞에서 벌거벗었을지라도 당당히 말할 수 있고 또 말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분의 자녀다. 나는 내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너의 모든 말을 부정한다.” 일부 정교회에는 예비 신자가 물에 들어가기 전에 악마의 얼굴에 침을 뱉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마귀를 거부하고 대적하는 삶이 시작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것을 더욱 자주 할 필요가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하는 세례 (갈 3:27-28)
갈라디아서에서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했습니다(갈 3:27). 초기 교회는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흰 옷을 입혀주는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신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식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은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연합한 모든 신자들이 이제는 그들을 구분하는 모든 사회적 장벽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일종의 유니폼(uniform)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학생들이 교복을 입던 시절에, 교복이 가지는 장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교복은 같은 학교 학생들의 동질성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들 사이에 있는 사회적 차이를 가려주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신자들은 그리스도로 옷 입음으로써, 그들 사이를 가르는 사회적 장벽들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경험하고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어서 이렇게 썼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이것이 교회입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도 연합한 것입니다. 이것은 취사선택할 사안이 아닙니다. 레이첼 헬드 에반스는 이것을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얻으며 교회라는 거대하고 아름답지만 문제 투성이인 가족의 일원이 된다...예수님은 변변찮고 실수 투성이인 사람들을 통해 당신을 알리는 특이한 습관을 갖고 계신다.” [웨스트민스터대요리문답]이 165문에서 말하듯이, “세례 받은 사람들은 보이는 교회에 엄숙하게 받아들여지고, 전적으로 그리고 오직 주님의 것이 되기로 약속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4. 언약: 사랑으로의 헌신 (요 13:34-35)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데 반드시 세례도 받아야 합니까? 물론 우리는 세례 의식을 통해 구원받지 않습니다. 이 질문은 “둘이 사랑해서 같이 살면 되는데 결혼식은 왜 합니까?” 라는 질문과 비슷해 보입니다. 결혼식이 일종의 언약이듯이, 세례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세례식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예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토록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언약을 맺는 의식입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고 너는 내 것이라”는 언약입니다. 그러나 이 언약은 앞에서 보았듯이, 세례로써 하나님의 것이 된 모든 성도들과의 언약으로 확장됩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연결된 형제와 자매들을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기로 헌신하는 언약입니다.
세례를 받는 사람은 세례에 앞서 서약을 하게 되는데, 그 서약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저는 교회의 관할과 치리에 복종하고 교회의 덕과 화평을 이루는 일에 힘쓰며 교인된 의무와 권리를 바르게 행사하기로 서약합니다.” ‘교회의 덕과 화평을 이루는 일’과, ‘교인된 의무와 권리’는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을 따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요 13:34-35).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사랑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세례는 그저 “나 구원받았다!”는 게 아닙니다. 세례는 “이제 나는 교회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성찬 예식을 통해 교회의 지체로 부름 받은 모두가 한 몸이고 한 가족임을 증거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5. 교훈과 적용 (요 15:18; 롬 8:33-34)
오늘 이 말씀은 지금 세례를 받는 사람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깊이 되새겨야 할 말씀이 아닙니까? 세례를 받은 사람은 마귀의 공격의 타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요 15:18).”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은 평생 이 싸움을 감당해야 합니다. 싸움의 본질은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고?”라는 마귀의 공격에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은밀한 죄와 허물, 결핍과 부족을 알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일 수 없는 이유들을 들이댐으로써 끊임 없이 공격합니다. 성령님의 은혜로 거듭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이때 마귀에게 대답할 말이 무엇입니까?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34).” 이것이 우리의 대답입니다.
세례를 받은 신자는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일평생 그 은혜를 의지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구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사회적 업적이나 성취, 학위나 재물로 자기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로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와 자매들을 사랑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렇게 교회는 세례 받은 죄인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저는 레이첼 헬드 에반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얻으며 교회라는 거대하고 아름답지만 문제 투성이인 가족의 일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