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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1).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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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1).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

사무엘상 15:35 ~ 16:1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0-08-15

말씀내용
1. 누군가의 마음에 든다는 것: “그 놈 참 마음에 들어.”
누군가의 마음에 든다는 것은 참 흐뭇하고 기분 좋은 일입니다. 제가 결혼을 하려고 처음 장인, 장모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뵈었는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주님을 믿지 않으시던 장인 어른께서 제가 목사가 될 것을 아시고도 “그 놈 참 마음에 들어”하셨다고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무난히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지요. 나와 관계된 어느 누구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내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고 괴로움이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그분이 하나님이실 때에야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윗이라는 인물에 대한 성경의 한줄 평가는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사울, 다윗의 전임 왕이었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하나님이 그를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사(삼상 15:11),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삼상 15:23)”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든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평가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들게 살았다고 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다윗의 이야기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이해하기 위한 기본 토대라고 유진 피터슨은 말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구약 성경의 인물 강해를 좋아하는데 그것들은 대개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시작과 끝이 있고 플롯이 있고 등장인물 그리고 갈등과 해결 등을 통해서 복음의 진리를 삶에 와닿게 설명해 줍니다. 다윗의 이야기도 우리에게 사랑, 진리, 죄, 구원, 속죄, 거룩, 주권에 대한 것들을 감동적으로 가르쳐줍니다. 다윗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놓칠 수 없는 교훈은 온전하고 충만한 삶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을 때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다윗은 보여줍니다.

그의 삶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삶의 정상과 바닥을 두루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손에 들렸던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십시오. 목자의 지팡이, 용사의 검, 시인의 하프, 통치자의 홀…이것들이야말로 그의 인생의 다양한 역정을 보여주는 상징들이 아닙니까? 그는 양치는 목자였고, 죽음의 자리를 오가며 피해야 하는 도망자였으며, 사회적으로 비천하고 마음 상하고 원통한 자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과 함께 하였는가 하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의 영광을 드러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자식에게 배신을 당하고 왕위를 뺏기고 생명의 위협도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가정 안에서의 비참한 일들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최고의 왕이었습니다. 그가 이런 삶의 모든 환경을 오가면서 기록한 그의 기도와 시들은 시편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비참한 지경에서 또는 왕의 자리에서 쓴 모든 기도문들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의 삶은 그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남긴 체험과 증언들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의 생애는 전체가 하나님과의 대면이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삶의 이런 다양한 경험은 솔로몬과 그를 차별화시켜주는 요소입니다. 솔로몬은 처음부터 궁전에서 태어난 왕자였고, 죽을 때에도 그는 궁전 안의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과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다윗과 동질감을 느끼거나 느끼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름만 봐도, David은 너무 많은데, Solomon이라는 이름은 참 드문 것이 그 사실을 보여줍니다.

2. 사람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다윗: 왕따 소년, 실패한 아버지, 실패한 남편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냉철하게 평가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 주목을 끌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였습니다. 그의 자리가 어느 정도 였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왔을 때 나타났습니다. 사무엘은 당대에 전설적인 선지자였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새가 사는 베들레헴에 가서 이새와 그 아들들을 제사에 오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대단한 인물이 자기와 특별히 자기 아들들을 청했다면 당연히 모든 아들들을 다 불러서 와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결정적인 순간,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에 다윗은 그의 아버지에 의해서 제외되었습니다. 그 시간에 그는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사건을 주목해봅시다. 다윗의 형들은 군대에 나가서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그때 블레셋의 거인 장수인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하고 모욕하고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전쟁의 시간에도 다윗은 그저 형들의 도시락 심부름을 하는 아이에 불과했습니다. 다윗은 그의 아버지가 볼 때, 주목할 만한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후에 이런 고백을 시편에 남겼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종종 사람은 역사의 무대에서 자신만 처지게 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혹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가 너무 처져버린 것은 아닌가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론 사람들에 의해서 내가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그를 보고 계셨고 그를 찾아내셨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눈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역사의 무대의 뒤편에 숨겨진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은 보고 계시며, 그를 평가하고 계시고, 찾아내실 자를 찾아내시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처진다고 생각할 때에도 초조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신다는 믿음 때문에 우리는 초조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윗을 보셨습니다.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초조해서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자기가 임의로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이미 사무엘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삼상 13:14).” 이미 하나님은 다윗을 당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보고 계셨고 마음에 결정하셨다고 하십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는 실패한 아버지였습니다. 자식들 사이에서 강간이 일어났고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끝내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를 배신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에게 밀려나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남편으로서 다윗은 어떻습니까? 물론 아내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은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은 그가 얼마나 불성실한 남편이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아무리 당시 왕의 권력과 문화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죄였지만, 아내에게도 옳지 않은 일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는 또한 실패한 남편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다윗을 볼 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역사의 무대에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 다윗
우리가 다윗의 역사적 등장을 보게 되는 것은 바로 오늘 읽은 본문에서 시작됩니다.

A. 사무엘의 고통과 슬픔(삼상 15:35) 그리고 다윗의 등장(삼상 16:1)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울의 불순종을 보시고 그를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고, 사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고 알리셨습니다(삼상 15:26). 그리고 사무엘은 사울과 갈라선 후,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보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의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참 사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기름부어 세운 이스라엘의 첫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거절하셨습니다. 참 놀랍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가 큰 장신이었고 아마도 외모가 출중했던 것 같습니다. 왕과 같은 카리스마와 매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그에 관한 성경의 기록들이 보여줍니다. 그가 결정적으로 저지른 두 번의 불순종의 사건은 다 공교롭게도 예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블레셋과의 믹마스 전투에서, 그리고 아말렉과의 시내산 지역 전투에서 만족할만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블레셋과 싸울 때 사울은 군인들을 단결시키고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말렉과 전투를 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다 남기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할 것을 명하셨지만, 그는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두었고 좋은 짐승들을 남겼습니다. 이유는 짐승들을 하나님께서 제사드리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사울이 이렇게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두 경우 모두 그는 사람들을 하나님 보다 더 의식했고 우선시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일로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것을 얼굴을 대면하여 전해야 했던 사무엘의 가슴은 참 찢어지는 아픔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무엘에게 알게 하셨을 때 사무엘은 근심하여 밤새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삼상 15:11). 그리고 아말렉과의 전투 후, 사무엘은 다시 그리고 최후로 하나님의 버리심을 전하고 그와 갈라섰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위하여 슬퍼했다고 했습니다(삼상 15:35). 하루 밤이 아니라, 오래도록 사무엘은 기력을 찾지 못할 만큼 이 일로 슬퍼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리고 새 사명을 주십니다.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아들을 내가 이미 선택했으니 그에게 가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 새 사명으로 인해서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 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사무엘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제사드리러 왔다고 하라고 방법을 지시하십니다. 이렇게 다윗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택하신 것이라면 다윗은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B. ‘하나님의 마음에 든 다윗’(삼상 13:14):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방향으로 기우는 사람
사무엘은 다윗을 가리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라고 말했습니다(삼상 13:14).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이란 말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이 좋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든다는 것을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 제가 읽어본 생각 가운데 가장 통찰력있는 성경적 해석으로 보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상황에 따라서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순종과 깊이 연관이 됩니다. 성경은 마음과 행동이 따로 간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잠 20:11).”

C.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마음(중심)이다(삼상 16:7): 사회적, 세상적, 인간적 기준은 무용하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마음입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 아들들을 보았을 때, 제일 먼저 장자 엘리압을 보고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실 자가 이 사람이구나’ 했지만, 그는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이 보았던 기준은 용모와 신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평가 기준은 용모와 신장입니다. 용모와 신장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다 알듯이, 인간이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모든 장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 더 성공했다, 더 돈을 많이 벌었다, 더 유명하다 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세상적, 인간적 기준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 곧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마음에 든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보신 것은 다윗의 마음이지, 외적 조건들이 아니었습니다.

D. 가난한 마음(마 5:3):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마음,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마음.
그러나 단지 이런 수준에서 성경은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을 기억하시지요? 주님은 제일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제일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 마음은 가난한 마음입니다. 이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데 그 동기는 다양합니다. 성공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필요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가난한 마음은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에 있는 수많은 그의 기도와 고백을 통해서 가난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을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무수하게 많은 그의 고백들, 기도들은 다윗의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목자이시기에 아무 부족함이 없다고 너무나 만족스럽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한 분이면 족했습니다. 그것을 아는 마음이 바로 가난한 마음입니다. 부유한 마음은 하나님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좋지만, 없어도 그다지 문제 될 것 없다는 태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종교가 있으면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겠나 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서 이런 가난한 마음을 발견하셨습니다. 아무리 다윗이 숨겨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아셨고 그의 마음을 보셨고 그를 찾아내셨습니다.

우리 마음도 언제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동자 앞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숨겨진 마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서 무엇을 보고 계실까요? 믿음으로 순결해진 마음입니까? 하나님을 가장 크게 사랑하는 마음입니까? 아니면 심히 부패한 마음이요, 거짓과 위선과 미움과 용서하지 못하고 자만하는 마음을 보고 계시겠습니까? 여러분, 아무도 여러분의 마음을 정확하게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들어하시는 마음은 가난한 마음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입니다.

4. 인간 최고의 갈망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다.
인간이 가진 최고의 갈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인본주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생리적 욕구, 안정에의 욕구, 애정 욕구, 자아 실현의 욕구와 같은 것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인간 최고의 갈망과 욕구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갈망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커서 성, 권력, 안정, 자아에 대한 모든 욕구를 다 합한 것보다 더 큰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얻게 된 결과 중 하나는 이 욕구가 왜곡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은 하나님을 향한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이 욕구를 채우려고 합니다. 여러분,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욕구를 끊임없이 분출하고 살았습니다. 그의 시로, 노래로, 그리고 기도로 쉬임없이 모든 상황 속에서 그는 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쏟아냈습니다.

5. 다윗,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온전하고 충만한 삶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삶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다윗이 보여주는 그림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그는 비록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었지만,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먼저 철저하게 낮아짐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주님 자신이 성육신을 하시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써 부활과 영화로운 승천을 하신 것과 같이 말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온전하고 충만한 삶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가난한 마음이 하나님을 온전히 갈망하고 필요로 하는 마음이라면, 그의 삶은 그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삶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의 온전하고 충만한 삶은 더러운 범죄로 말미암아 부족하고 흠이 있고 깨어진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완벽하게 그 온전하고 충만한 삶을 보여주신 분이 계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온전하고 충만한 삶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한껏 표출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삶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을 향해서 이런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너무나 드는,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아들이셨습니다.

6. 문제는 마음이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외적 조건들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살아갑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형은 너무나 사울의 모습에 가깝지 않습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형 인간은 다윗이라기 보다는 사울입니다. 남들 보다는 머리 하나가 더 큰 그의 신장, 카리스마와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서 그 마음을 잘 맞추어줄 수 있는 지도자, 인간의 관점에서 그는 괜찮은 지도자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버리셨고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을 하나 찾으셨습니다. 그 사람, 다윗에게서 하나님이 보신 것은 마음이었습니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어느 자리에 계시든지, 사람의 관점에서 얼마나 성공을 거두셨는지 혹은 그렇지 못하시든지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아무리 위대한 성공을 거두셨다고 할지라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보시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시면 우리의 인생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지금 사람의 관점에서 내놓을 것이 없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 마음을 보시고 “진짜, 내 마음에 드는구나”라고 하시면 그보다 더 성공한 인생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일관된 관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그 마음을 구하십시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