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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4). 행복은 깨어져도 깨어지지 않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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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4). 행복은 깨어져도 깨어지지 않는 마음

사무엘상 18:17~19:17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0-09-05

말씀내용
1. 좋은 일이 좋은 결과만 가져오지는 않는다.
얼른 보면,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얻은 결과는 한 순간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고, 사울 왕의 신임을 얻어 군대 장관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성경의 내용을 읽어본다면, 이야기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사는 일차원적으로만 전개되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물론 다윗은 이 승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여인들의 칭송을 받았고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는 여인들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과 유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16). 이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이 승리로 그의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한 사람을 얻었습니다. 그가 요나단입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가지고 왕 앞으로 나올 때 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요나단은 마치 자기 생명처럼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어쩌면 왕권을 놓고 원수가 되어서 서로를 죽이는 자리에 서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얻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선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없도록 만든 일이 따라왔는데 그것은 다윗을 향한 왕 사울의 미움, 사울의 증오였습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여인들은 노래하면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하였는데, 이것은 사울의 마음을 불쾌하게 했고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이 질투와 증오는 앞으로 적어도 10년 이상 다윗의 인생을 곤고하게 만들게 됩니다. 때로는 그 자체로 좋은 일이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그 명석한 두뇌로도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이 복잡한 관계들을 제대로 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복잡한 과정을 주도하시면서 그 속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십니다.

2. 사울의 살의와 살인 음모가 실패하다.
사울의 마음 속에 허용된 질투심과 증오는 사단이 그의 안에서 일하기 너무나 좋은 환경이 된다는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사울이 그런 더러운 마음의 포로가 된 이튿날 악신이 사울에게 임했고 다윗은 여느 때처럼 수금을 연주했습니다. 사울은 아마도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손에 들고 있던 창을 다윗을 향해서 던졌습니다. 두 번을 던졌습니다. 다윗은 두 번을 피했고 이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사울이 악신이 들려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다들 이해하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모든 잘못을 악신의 탓으로 돌리면서 간과하는 것은 바로 사울의 마음 속에 있는 더러운 마음이었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이런 실수를 저지릅니다. 마귀를 탓하면서, 우리 자신이 허용하고 살아가는 질투와 증오와 용서하지 않는 마음에 대한 자기 자신의 책임은 무시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사울의 마음 속에서 다윗이라는 존재, 그것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지혜롭게 행하는 다윗의 존재는 계속해서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유발시켰습니다. 본문에는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했다는 표현이 세 차례나 나오고 있습니다(12, 15, 29). 그런데도 사울은 다윗을 천부장으로 삼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것은 음모였습니다. 사울은 이미 악신이 임할 때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 질투와 증오라는 마귀의 생각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성경은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성경은 가르쳐줍니다. 사울이 다윗을 천부장으로 삼은 것은 전쟁터에 내보내서 다윗을 블레셋의 손에 죽게 하려는 음모였습니다. 사울이 자기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주겠노라고 제안하는 것과 이후의 이야기가 그것을 입증합니다. 다윗은 왕의 사위가 될만한 부를 가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왕의 사위가 되는 조건으로 다윗에게 용맹스럽게 여호와의 싸움을 나가 싸우라고 격려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 손이 아닌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를 죽이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예상과는 달리, 다윗은 전쟁터에서 승승장구하고 죽지 않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다윗에게 주겠노라고 약속한 시기에 보란 듯이 그 딸 메랍을 다른 사람 아드리엘이란 사람의 아내로 주고 맙니다. 사실 나중에 보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이상하게 억지로 맺어진 이 메랍의 가정도 결국은 비극적인 결말을 보게 됩니다. 문제는 사울이 어떻게 가만히 있는 한 젊은이에게 이런 좌절과 모욕을 안겨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울에게 또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자기의 다른 딸 미갈이 젊은 용사 다윗에게 반해서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많은 처녀들이 다윗을 연모했듯이, 미갈도 가까이서 다윗을 보면서 다윗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증오와 살의로 충만한 사울에게 이것은 결코 자기 딸의 순수한 사랑으로 보여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저 자기 뜻을 이룰 수 있는 악행의 기회일 뿐이었습니다. 사울에게 있어서 다윗을 향한 미갈의 사랑은 다윗을 죽일 미끼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딸의 사랑을 이용하게 됩니다. 실패한 음모를 다시 한 번 실행합니다. 이번에는 미갈과 결혼하는 조건을 더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블레셋 군인의 양피 100개를 가지고 와서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장사라 한들, 블레셋 군인 100명과 겨루어 싸우는 동안에 죽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다윗은 요구한 100개에 100개를 더해서 가지고 와 결국 미갈을 차지하게 됩니다. 비록 장인인 사울 왕은 악했지만, 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했고 또 그들이 결혼한 것에 대해서야 우리가 무슨 불순한 판단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아버지가 하라고 해서 결혼을 해야 했을지도 모르는 메랍의 경우와는 다른 순수한 사랑이었고, 아마 미갈의 짝사랑만이 아니라 다윗 자신도 원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들이 원했던 결혼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울의 살인 음모는 이렇게 다시 실패하게 됩니다.

3. 깨어진 결혼 생활, 깨어진 행복
이렇게 결혼에 골인하게 되지만, 다윗의 결혼생활은 어떤 독자가 보더라도 깨어질 것이 뻔한, 결코 지키기 어려운 행복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결혼식 날 신부의 아버지인 사울 왕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이제는 사위가 되어버린 원수 다윗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결혼식 이후에도 왕의 자기 사위를 향한 증오와 적대감, 그리고 살인음모는 질풍노도와 같아서 아무도 잠재울 수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사울은 아들 요나단과 모든 신하들 앞에서 다윗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그를 죽이라고 명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던 요나단에게 아버지의 이 말은 얼마나 견디기 힘든 자기 살을 도려내는 것과 같은 말이 되었겠습니까? 요나단은 일단 다윗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다윗을 숨게 하고, 기회를 봐서 아버지 사울에게 자기 목숨을 걸고 다윗을 변호하여 말을 합니다. 다윗의 피를 흘리는 것은 무고한 피를 흘림이라고 말하자, 사울은 놀랍게도 아들의 말에 설득이 되고 다윗은 다시 사울 왕 앞에서 예전처럼 섬길 기회를 얻게 됩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은 계속 되었고 다윗은 계속해서 전투마다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어느 날, 다시 사울에게 악신이 임했고 다윗은 수금을 타는데, 사울은 다시 단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사단은 질투와 증오의 포로가 된 이 사람을 그냥 놔두지를 않고 제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 밤에 사울을 피하여 일단 집으로 도피했습니다. 사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군사들을 보내어 다윗의 집을 지키고 있다가 아침에 그를 죽일 것을 명했습니다. 아마 이런 궁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는 비밀이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아내인 미갈이 상황을 알게 되고 다윗을 창으로 내려 도피하게 합니다. 그리고 미갈은 우상을 자리에 눕혀놓고 염소털을 씌워 다윗이 누워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사울이 보낸 군인들에게는 다윗이 아파서 누워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결국 사실을 알게 된 사울은 자기를 속인 미갈에게 분노합니다. 사울은 결혼한 자기 딸에게 남편이 아닌 자신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가정에서 이런 부모들로 인하여 젊은이들의 결혼 생활의 행복이 방해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다윗과 미갈의 결혼생활 아니 신혼생활의 단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 원수를 죽이려는 생각에 혈안이 된, 미쳐버린 아버지에게 자기 딸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가정 생활의 행복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속에서 두 젊은 부부는 그들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가정의 행복을 완전하게 유린당하고 만 것입니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성경처럼 결혼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신 24:5). 이것이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자상한 배려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면 이것은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왜냐하면 결혼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분주하기 그지없는 두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여전히 분주한 자기 삶을 살아가면서 그들이 꿈꾸었던 결혼 생활의 행복 따위는 아예 초장에 묻어버리고 살아가는 현대의 모습들을 보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과는 완전히 반대로 행한 것이 아닙니까? 그는 결혼을 미끼로, 수단으로 이용하였고 결혼을 조건으로 남편될 사람을 사지에 몰아 죽일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딸이 생과부가 되더라도 말입니다. 젊은 다윗의 결혼 생활의 행복은 이렇게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4. 한 가지 아이러니?다윗도 사울이 될 수 있다.
먼 후일, 왕이 된 후에 다윗은 자기의 너무나도 충성스러운 용사요, 장수인 우리아를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바로 그 똑 같은 방식으로 살해했다는 사실을 볼 때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지 자기 죄악을 은폐하기 위해서, 사울보다 더 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다윗입니다. 사울과 다윗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둘은 모두 인간의 죄된 본성을 드러내는 인간들이 아닙니까! 다윗도 언제든지 사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은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실패했는데, 다윗은 성공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까? 사울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처럼 들으시면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5. 마음을 지킨다는 것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여러분,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다윗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의 좌절, 눈물, 비애에 공감이 되십니까? 다윗은 지금 모든 것을 잃어버린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직장, 직위, 모든 백성들의 인기와 칭송,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의 생이별로 깨어져버린 결혼 생활의 행복…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공공의 적, 도망자입니다. 이런 다윗을 통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지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가 죽고 사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이 세상에서의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영원이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멀쩡한 직장, 확보된 연봉, 높은 직위, 사람들의 인기와 찬송과 같은 것에 달려 있지 않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이고, 마음을 지키느냐의 문제입니다. 마음을 지킨다는 것이 어떤 뜻입니까? 다윗도 얼마든지 이런 깨어진 행복을 근거로 사울을 증오하면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고, 얼마든지 자기 인생을 원치도 않았던 방식으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한을 가지고 살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고, 얼마든지 그런 마음을 가슴 속에 품고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윗은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마음을 지킨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우리 인생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윗이나, 사울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기회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사울처럼, 혹은 다윗처럼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우리 역시 우리를 삼키려고 마귀가 또는 사람들이 쳐놓은 유혹의 어두운 미로를 지나게 됩니다. 마귀는 우리의 결혼과 사랑과 가정과 행복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다윗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도 때로는 사랑과 결혼, 그리고 가정의 행복과 같은 것들이 깨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깨어짐들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런 깨어짐 속에서, 우리가 바라고 구하는 행복이 깨어지는 일이 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이 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는가? 그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가정이 우리의 격렬한 영적 전쟁에서 우리를 쉬게 해주는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고 바라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 바로 그 가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가정이 우리의 안식처가 되기 보다는 우리의 전쟁터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현실 속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젊은 다윗의 사랑과 결혼은 우리가 본 것처럼 하루 아침에, 신혼의 단 꿈이 피어보기도 전에 다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당신도 나 같은 경험을 해봐. 그러면 별 수 없을 거야. 내 마음이 이렇게 망가진 것은 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아니요. 다윗은 그 속에서 마음을 지키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아니, 저는 요즘에 다윗의 삶을 묵상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사실 다윗의 마음을 지킨 것은 다윗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으로 하여금 마음을 지키도록 은혜를 주셨고 그를 지켜주셨습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전적인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우리 인생에 이런 아픔이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았다고 생각이 된다면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받아 누릴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이런 아픔이 우리 인생 가운데 있었거나 혹은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이 속에서도 풍성하게 넘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행복은 깨어졌어도 우리의 마음만은 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하게 넘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도, 어떤 깨어짐도 여러분의 마음 마저 깨뜨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6. 피난처는 그리스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행복이 무참하게 깨어져버린 다윗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지켰습니다. 그의 마음 마저 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거의 깨어질 뻔 했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지켜주셨습니다.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신의 행복의 조건을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 환상을 버리십시오. 내가 내 힘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행복이 가정이라는 환상을 버리십시오. 가정은 도리어 우리에게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내 마음대로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곳입니다. 가정에 대한 자신만만함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런 인생의 과정 속에서 다윗을 어떻게 훈련시켜 가시는지를 보십시오. 다윗은 결국 나의 피난처는 가정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의 참된 안식은 가정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시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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