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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예배 2016 -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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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예배 2016 -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호수아 14:6-15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6-12-31

말씀내용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수 14:6~15


이 본문은 많이 알려진 본문입니다. 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갈렙의 말은 노래로도 널리 알려졌고 선교와 관련해서 많이 인용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신년 첫 주일의 예배를 드리면서, 갈렙의 이 말이 한 해 동안 우리의 기도가 되고 경험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황
먼저 이 본문의 정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45년이라고 하고 갈렙이 85살이라고 말한 점에 비추어(10)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지 5년 이상 지난 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5절 마지막에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한 것을 보면,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정복전쟁을 수행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이 약 5~6년 정도 된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그 땅은 그저 밟고 차지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서 가나안 백성들을 몰아내고서야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기에 내내 전쟁을 벌였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평화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아있는 과업은 정말 점령하기 버거운 고지, 산지들 그리고 가나안의 거인 족속들 중에서도 강한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85세된 노인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옵니다. 그리고 45년 전 가데스에서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누가 이 일을 기억하겠습니까? 성인으로서 그 일을 경험한 사람은 단 두 사람 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열 두 사람의 정탐꾼들이 가나안에 갔다가 와서 그 땅을 악평할 때에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믿음으로 반응을 했었습니다. 그때 모세는 갈렙의 믿음을 보고 한 가지 약속을 했었던 모양입니다. 이 내용은 사실 민수기의 그 본문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갈렙이 그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그에게 주어졌던 약속임에는 분명합니다. 9절입니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85세가 된 갈렙은 45년 전의 약속을 기억하고 주장합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12).” 이런 내용으로 볼 때, 갈렙이 45년 전의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 날이 이루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이제 그 때가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여호수아는 갈렙을 축복하고 그 땅을 취하라고 말합니다.

갈렙?충성된 사람
갈렙이라는 인물, 그 사람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한 마디로 충성되다는 것입니다. 8~9절에서 자신의 말로 그는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다”고 말하고 모세도 그것을 인정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4절에서는 그가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의 특징은 충성됨, 온전함입니다.
갈렙이 요구한 곳은 산지였습니다. 이 헤브론 산지는 아낙 사람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볼 때(15) 그동안 5~6년의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서도 정복되지 않은 소위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갈렙은 지금까지 지켜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곳이 정말 어려운 곳인가? 어느 곳이 정말 무서운 도전이 있는 곳인가? 45년 전에 자기들을 삼킬 것이라고 악평했었던 그 땅, 그들 앞에 자신들은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던 그 거인들이 어디에 있는가?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12절 하반절에 기록된 갈렙의 말은, 45년 전 자기가 했던 그 말을 실제로 입증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 옛날 갈렙이 했던 말을 보지요. 민 14:8~9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갈렙의 충성됨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45년 전 젊었던 한 때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젊음이고 패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85세의 노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충성된 사람입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갈렙이 요구한 곳은 산지였습니다. 산지를 우리 식으로 정리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어려운 과업, 우리가 쉽게 정복할 수 없는 인생의 과제,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영역을 의미할 것입니다. 물론 선교적 의미로 이것을 해석하는 것은 합당합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그 산지가 아직도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미전도종족이거나 미전도지역일 수 있지만, 본문은 그런 선교적 의미로만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을 위협하고 움추러들게 하는 난제들도 산지입니다. 인생의 난제들은 다양하고 우리가 처한 형편과 상황에 따라서 각기 다를 것입니다.
저는 먼저 이런 관점에서 2017년 첫 날이자 첫 주일에 이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산지가 존재합니다. 산지가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하고, 무릎 꿇게 하는 산지는 본질상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그들이 믿음으로 넘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영적 산지 앞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갈렙에게 이 말씀이 정확히 적용됩니다. 갈렙은 지난 45년 동안 그 산지를 기다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산지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인정할만한 산지가 나타났습니다. 헤브론입니다. 그리고 갈렙은 그날의 약속을 기억하고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요구합니다.

우리의 산지들
2017년을 시작하면서 여러분이 직면한 산지는 무엇입니까? 2016년에 해결되지 못하고 남겨진 산지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직면한 그 산지가 여러분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재앙이라고 여겨지십니까, 아니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신대로 평안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라고 여기십니까? 절망입니까, 아니면 미래의 희망을 주는 것입니까?
만일, 그 산지가 여러분으로 2017년에 엎드리게 하고 무릎 꿇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필사적으로 구하게 하는 것이라면 분명히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변장한 은혜입니다.
성경에는 산지라는 도전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한 이야기를 보려고 합니다. 역대하 20장에 기록된 경건한 왕 여호사밧 때 남왕국 유다가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모압과 암몬 그리고 마온의 연합군이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여호사밧은 자신의 병력으로 상대할 수 없는 대군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간구합니다. 역대하 20:12이 그의 기도 가운데 아주 유명한 기도입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산지를 마주 했을 때 믿음의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가 여호사밧의 이 기도에 잘 나타납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갈렙이 보여준 태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12b).” 산지는 거인들이며, 크고 견고한 성입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난제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그들을 감당할 수 있고 정복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적들이 많았고 장벽이 높아보였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은 산지였습니다. 이때 선지자 스가랴가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산지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산지는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산지 앞에서 움츠러들고 한 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십시오. 신자는 그런 산지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혹시라도 산지를 영적인 면에서만 생각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이 모든 상황이 산지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산지는 곳곳에 있습니다. 어떤 인생은 정말 첩첩산중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연약합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이 산을 넘을 수 조차 없습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고백하듯이, 신자는 “싸이지 아니하며..낙심하지 아니하며..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자의 삶에서 나타나고 경험되는 바, 놀라운 신비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질그릇 뿐임을 알게 하시고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고후 4:7). 이게 다가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6:9~10을 봅시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산지를 점령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산지가 나를 점령하지 못하고,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평안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상태, 산지가 더 이상 나를 움츠러들게 하고 위축되게 만들지 못할 때, 산지는 점령된 것입니다.

믿음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종종 우리 삶에서 믿음과 막연한 기대가 섞여서 구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이 믿음일까요? 긍정적 사고와 믿음은 같은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믿음은 대상을 가지는 것이고, 특별히 내용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용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갈렙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십니까?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9).” 이것이 산지를 달라고 요구하는 갈렙의 전제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냥 “저기 저 산지를 달라”고 말하지 않고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직면하는 산지들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실까요?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에 대해서 무지하면 무지할수록 우리가 “산지를 달라”고 주장할 수 있는 우리의 근거와 믿음도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왜 여러분에게 지난 1년 5개월 동안 말씀, 말씀, 말씀을 강조해왔는지 아시겠습니까? 막연한 기대, 긍정적 사고로는 산지를 점령할 수 없습니다. 잠시 잠깐 되는 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45년 동안 그 약속을 붙잡고 살아왔다는 사실, 이것이 갈렙의 충성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충성되다(faithful)는 것은, 믿음이 충만하다는 말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믿음은 언제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신뢰이며, 그 약속의 내용을 믿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롬 10:11).” 또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은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그 땅에 전쟁이 그치니라.”
오늘 본문에서 가장 제 마음을 끄는 구절은 15절 하반절입니다.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산지가 점령되자, 전쟁이 그쳤습니다. 이 말씀은 가나안 족속이 다 쫓겨났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제는 전쟁을 치러야 할만큼 강력한 대적들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전쟁이 그친 상태를 뭐라고 하지요? 샬롬입니다. 세계사에는 로마제국의 힘이 강력해서 아무도 전쟁을 일으킬 수 없었던 상태, “로마의 평화(Pax Romana)”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평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샬롬입니다.

우리들의 샬롬!
2017년 여러분과 저의 삶에서 이런 샬롬이 경험되기를 저는 기대합니다. 여러분이 직면하고 있는 산지는 무엇입니까?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산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약속을 이미 주셨는지 성경을 면밀히 살피십시오. 그리고 갈렙이 했듯이 구하십시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금년 새해에) 내게 주소서.”라고 말입니다.
산지는 우리를 엎드리게 하고 무릎 꿇게 하고, 우리를 낮추시려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2017년이 그 산지를 주 앞에 구하며 엎드리는 해가 되기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인데,
이 일에 우리의 기도는 중요합니다. 그 기도는 믿음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빚어 가십니다.
사실, 눈 앞의 산지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산지가 없는 것입니다. 산지가 없는 인생이 교만과 영적 해이함으로 치닫지 않을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산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엎드리라고, 겸손하라고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장래의 은혜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 밝은 전망은 선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부터 나옵니다. 2017년이 여러분의 생애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엎드리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 인생에 산지도 많습니다. 지난 한 해, 저를 움츠러들게 하고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던 산지들이 있습니다. 2016년과 함께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2017년의 벽두에도 제 마음을 누르는 산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과 함께 2017년이 우리 인생의 산지를 넘는 해가 되기를,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경험하는 해가 되기를, 산지를 점령하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는 복된 선언을 듣고 평화를 누리는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