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SERMON
설교분류별모음

Home > 설교분류별모음 > 다시 보는 천로역정 (7) - 십자가에서 짐을 벗다

다시 보는 천로역정 (7) - 십자가에서 짐을 벗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다시 보는 천로역정 (7) - 십자가에서 짐을 벗다

골로새서 1:20, 스가랴 3:1-5, 이사야 55:1-3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18-11-07

말씀내용
존 뉴턴(John Newton, 1725~1807), “요크셔에서 돌아오자마자 화요일 저녁 모임에서 천로역정을 강해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순례자와 함께 7개월을 여행했지만 아직도 아름다움의 궁전을 출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3주일 내에 겸손의 골짜기를 향하여 떠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은 정말 문제의 본질로 가득 차 있어서 한 번에 한 페이지 또는 심지어 반 페이지조차 나가지 못할 때도 있다. 이 공부가 우리에게 엄청난 복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적어도 나는 번연의 지식과 판단과 경험을 통해서 번연이 아니었으면 결코 얻지 못했을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심원한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1. 장면과 내용: 해석자의 집을 떠난 크리스천은 길 양 옆에 구원이라 이름하는 울타리가 쳐있는 언덕 길을 따라 힘겹기는 하지만 쉬지 않고 계속 뛰어서 올라가 한 언덕받이에서 십자가와 그 옆에 입을 벌린 채 열려 있는 무덤을 발견한다. 크리스천이 십자가로 오르는 순간, 짐이 벗겨져 무덤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가 보이지 않게 되었고 크리스천은 눈물을 흘리며 십자가를 바라보는데, 광채를 발하는 세 사람이 나타나 죄사함을 선언하고, 새 옷을 입혀주고, 이마에 표를 주며 봉인한 두루마리 하나를 주었다.

2.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존 번연 자신의 경험에서 (p. 82):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골 1:20). 나는 하나님의 공의와 나의 죄된 영혼이 이 보배로운 피로 서로 포옹을 하고 입맞추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 날은 내게 참으로 유쾌한 날이었습니다. 나는 이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 이 경험이 번연으로 하여금 <6장 십자가에서 짐을 벗다>를 쓰게 했을 것이다.

3. 십자가에서 얻은 구원 곧 죄사함과 의롭다함에 대한 설명
담대(Great-heart)가 크리스티아나에게 설명해 준 내용(2부 4장): “그가 바로 좁은 문에서 당신들을 영접하신 그분(선의 Good-will)이십니다. 그는 이중적인 방식으로 구원을 성취하셨는데, 첫번째로는 당신들을 덮어주기 위해 의를 행하신 것이요, 두번째는 당신들을 씻기시기 위해 피를 흘려주신 것입니다.”
A.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active obedience)
B.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passive obedience)

4. (좁은 문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두 언약 아래 있다. 사람이 어떻게 은혜 언약 아래로 들어오게 되는가? 죄인이 행위 언약에 관해서 완전히 죽을 때 가능해진다. “오 죄인이 죽을 때, 참으로 옷 벗김 당하고 수치를 당하신 예수님 앞에 완전히 엎드러질 때, 죄인의 영혼과 그리스도는 얼마나 잘 어울리는 관계를 맺는가! 여기 발가벗은 죄인에게 의로우신 그리스도가 계시다. 가련한 죄인에게 풍성하신 예수님이 계시며 연약한 죄인에게는 강한 예수님이 계시다. 눈먼 죄인이 예수님을 보고, 무지하고 부주의한 죄인은 지혜롭고 사려 깊으신 예수님을 만난다.”
A. 행위 언약에 관해서 완전히 죽을 때: 자기의 힘으로는 결코 절대로 죄의 짐을 벗을 수 없다는 것을 완전하게 인정하는 것, 자신 안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선이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인정하는 것
B. 그래서 이것은 자존심, 자존감이 최초로 죽는 경험이고, 최초의 자기 부인이다. 이것이 없이 교인이 된 사람들은 결코 참된 자기 부인에 이를 수 없는데, 이런 현상이 오늘날 교회에 만연한 현상을 설명해 준다.

5. 광채를 발하는 세 사람이 크리스천에게 준 것
A. 죄사함의 선언: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
B. 칭의(그리스도의 전가된 의): 누더기 옷을 벗기고 깨끗한 옷을 입혀주다(슥 3:3~5). 탕자의 비유에서도 이것이 강조되는 바, 옷은 신분의 변화를 보여준다.
C. 보증과 확신(말씀): 이마에 표를 주며 봉인된 두루마리 한 개를 주다(겔 9:4,6). ➔ ‘봉인된 두루마리’는 길을 가면서 읽어야 할 말씀이자, 구원의 표로 천국문에서 제시될 것이다. “길을 가면서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을 읽고 천국문에 이르렀을 때 그것을 제시하라.”

6. [중요한 질문]
왜 번연은 크리스찬으로 하여금 낙심의 늪을 만나고 좁은 문을 지나는 한참의 여정을 지나서야 십자가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짐을 벗게 하였는가?
왜 전도자는 크리스찬에게 처음부터 십자가로 가라고 말하지 않고, 좁은 문을 제시하고 멀리 빛나는 광채를 바라보면서 가라고 했는가?

A. [하나의 해석] 이미 좁은 문으로 들어왔을 때 크리스천은 중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면, 십자가에 이르러 죄사함을 받게 되는 이 유쾌한 감격의 사건은 그의 회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령님께서 중생하게 하신 은혜는 크리스천이 십자가를 개인적으로 대면하게 되었을 때, 그가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거기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서 이루신 일을 깨닫게 되었을 때, 깊은 감격과 은혜의 체험으로 자신의 죄짐이 다 벗겨져 다시는 보이지 않는 무덤 속으로 떨어져버리게 된 것을 확인하였다. 이것은 존 번연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코 잊어버릴 수 있는 은혜가 아니다.  이것은 자기 의식 속에서의 회심의 체험이다.

B. 스펄전의 따뜻한 비판(1858년 설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에서):
i. 한 늙은 어부의 부인이 하는 말, “존 번연의 이야기 속에서 복음 전도자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 목사랍니다. 왜냐하면 ‘저 불빛을 똑바로 바라보며 좁은 문으로 달려가시오’라고 말했으니까요. 총각, 그곳으로 달려가면 안 돼요.! 복음 전도자는 ‘저 십자가가 보이나요? 당장 거기로 달려가요’라고 말했어야 해요. 하지만 대신 그는 불쌍한 순례자를 먼저 좁은 문과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들 쪽으로 보냈지요. 그 바람에 결국 그는 구렁텅이(낙심의 늪)에 빠져 죽을 뻔 했어요.”
ii. 이 여인도 역시, 낙심의 늪을 만나기는 했지만, “짐을 지고 가는 것보다 벗고 가니까 훨씬 쉬웠어요”라고 말한다.
iii. 존 번연은, 크리스찬으로 하여금 짐을 너무 늦게 벗게 했다! ➔ 이것이 ‘대부분이 이런다’는 뜻이라면 옳지만,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미라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
C. 크리스찬의 십자가 경험에 반영되는 존 번연의 회심 체험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회심 체험의 표준(standard)이 될 수 있는가?
i. 오늘날 회심에 있어서 율법의 기능에 대한 무지와 간과에 대해서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ii. 존 번연의 체험이 회심 체험의 표준이 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 18세기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경험한 매로우 논쟁(the Marrow Controversy, 1718)이 바로 이 문제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D. [또 하나의 질문] 번연은 크리스찬이 십자가에서 짐을 벗은 사건에서, ‘회심’을 말하려고 한 것인가, 아니면 ‘확신’을 의도한 것인가? ➔ 번연은 확신 보다 회심을 의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i. “죄의 자각으로 이끄는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죄를 자각하는 것이든 버리는 것이든 그것이 복음을 제시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근거가 되신다. 그리스도는 조건 없이 제시되어야 한다.”(사 55:1~3).
ii. 우리가 빠질 수 있는 위험은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우리의 내면을 바라보는 위험이다—죄를 얼마나 자각해야 혹은 얼마나 슬퍼해야 혹은 죄에서 얼마나 돌아서야 다음 단계—십자가에서 짐을 벗음—로 나아갈 수 있는가?

7. 교훈과 적용
A. 십자가의 경험이 있는가?
B. 당신은 자신의 회심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
i. 죄의 자각
ii. 죄짐을 벗음(죄사함의 은혜)—
“그는 기쁨에 넘쳐 머릿속의 샘물이 터지면서 눈물이 흘러내려와 두 뺨을 촉촉히 적시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십자가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서 있었다.”
“크리스천은 기쁨에 못이겨 서너 번 껑충껑충 뛰고 나서 노래를 부르며 길을 떠났다.”
C.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십자가를 바라보라. 우리 마음의 준비 상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구속의 효력과 은혜를 의지하고 바라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