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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17) - 나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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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17) - 나팔 소리

민수기 10:1-10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16-03-23

말씀내용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한 진군을 하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의 군사조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정비하기 위하여 은 나팔 두 개를 만들어 제사장들이 불게 하여 백성을 지휘하라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9장 하반부에서 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의 뜨고 멈춤을 통하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하심을 받아 행군을 하게 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더 보충적인 수단을 제공해 주십니다. 구름의 움직임을 눈으로 확인하는 사람뿐 아니라 천막 안에 있는 모든 백성까지도 귀로 들을 수 있는 나팔 신호를 더하여 주신 것입니다. 실제로 200만 명 정도 되었을 이 거대 민족의 이동을 지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차적인 지휘 수단을 더하여 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대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나팔은 약 45 cm 정도 길이로 곧은 파이프 모양인데 끝이 벌어져 있는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당시 고대 애굽의 군대에서도 이런 나팔을 사용했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1. 나팔 소리와 신호
나팔 소리와 신호는 대략 네 가지 정도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먼저 회막으로 모이라고 백성을 부를 때에는 두 나팔을 한꺼번에 길게 붑니다(3,7). 그러나 한 나팔만을 길게 불면 천부장과 같은 지휘관들만 회막 앞 모세에게로 모이게 됩니다(4). 두 번째로 행진을 위한 신호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짧은 음을 스타카토 형식으로 끊어서 크게 불면 동쪽에 진을 친 지파들이 행진을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도 같은 형식으로 불면 남쪽에 진을 친 부대가 그 다음은 서쪽, 마지막으로 북쪽 부대가 그 뒤를 따르게 됩니다(5,6). 세 번째는 전쟁을 위한 신호가 있습니다. 짧게 급히 그러나 크게 불면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출정하라는 신호가 됩니다(9). 마지막으로 절기 때를 알리기 위해서 불기도 했습니다. 절기와 매달 첫 날에는 나팔을 길게 불어서 온 백성이 경축하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신호로 삼았습니다(10).
그렇다면 이 나팔을 불어야 하는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 백성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제대로 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백성들이 나팔 소리를 분명하게 식별하여 행동을 취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음은 자명합니다. 이 본문은 오늘 광야 같은 세상에 살아가는 교회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2. 교회는 하나님의 군대다.
먼저 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본문이 보여주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군대라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출애굽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두 구절의 본문이 있습니다. 먼저 출애굽기 6:26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요.” 여기서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을 군대라고 묘사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도 이런 동일한 묘사를 합니다.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출 12:41).” 여기서도 ‘여호와의 군대’가 나왔다고 말씀합니다. 물론 이들은 전쟁을 연습하거나 훈련한 전문 군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건축 현장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을 가리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군대’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신약의 교회도 하나님의 군대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고 말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마치면서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할 필요를 강조하였습니다. 분명히 신자는 다 하나님 나라의 병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고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군대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가지는 중요한 정체성입니다.
3. 나팔 소리가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광야 이스라엘 백성을 지휘하기 위한 수단으로 은 나팔 두 개를 만들라고 지시하셨고 그 나팔 소리를 분별함으로써 그 백성들이 움직이게 하신 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합니다. 나팔 소리는 분명해야 합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나팔을 불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나팔 소리에 따라서 하나님의 군대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회막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전쟁에 출정하거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이 텐트를 걷고 행진을 시작하는 것은 군대가 전쟁을 하러 나가는 것과 같은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나팔 소리를 제대로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신약 교회에 인용하여 설명했습니다.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고전 14:8).”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하는 방언의 은사가 교회 전체에 유익이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한 말씀입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군대인 교회를 향해서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메시지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호하고, 모여서 하나님의 희락의 절기를 기념하라는 것인지,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이 발생하였으므로 나가서 싸우라는 것인지 식별할 수 없다면 하나님의 군대는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가 얼마나 정확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똑 같은 나팔 소리가 어떤 이에게는 모이라는 신호로, 어떤 이에게는 전쟁을 나가라는 신호로 들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대로 들을 수 있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객관적이고 예면 예이고 아니면 아니오 하는 분명한 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일사불란하게 소집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또 전쟁에 출정하여 싸움을 싸우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가 잃어버린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한 소리를 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두 하나같이 그 메시지를 알아들을 때, 하나님의 백성은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고 교회는 힘을 얻을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선포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가 움직이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반응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나팔 소리
이 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듣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나팔 소리를 들으십니다. 특별히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제사장들은 전쟁에 출정하도록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기 위해서 짧게 급히 그러나 크게 나팔을 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전쟁에 나갈만한 이스라엘 남자들은 전쟁 채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나팔 소리 효과가 있습니다. 본문 9절을 보지요.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이 나팔 소리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기억하여 그들의 대적들과 싸워 이기게 하는 나팔 소리입니다. 즉,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나팔 소리입니다. 일차적으로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 백성들의 기도를 의미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상황을 가르치는 말씀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나팔 소리가 반드시 기도만을 의미한다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개신교도들을 수 없이 죽이던 ‘피의 매리’ 여왕과 싸우되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담대하게 싸웠던 인물입니다. 스탠포드 리드(Stanford Reid)라는 역사가가 쓴 존 낙스의 전기의 제목은 『하나님의 나팔수 (Trumpeter of God)』입니다. 이 제목은 존 낙스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고 그 능력이 역사하는 것을 믿고 그 말씀을 가지고 싸운 사람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존 낙스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말씀의 나팔수로서, 종교개혁의 지도자로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의 무기를 가지고 싸웠고 주의 백성들을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존 낙스를 통해서 울려 퍼졌던 하나님의 말씀인 나팔 소리는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을 완수하게 됩니다. 이 나팔 소리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기 백성을 기억하고, 자기 백성을 대적들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역사를 이루시게 합니다. 이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들에 대한 조종의 나팔 소리인 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강단에서 온전하게 선포되는 것은 중요하고 또 중요한 일입니다. 그 말씀으로 교회는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무기는 재정의 능력도 아니고, 사람 수에 달린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것입니다.
5. 마지막 나팔소리가 울려날 때(살전 4:16)
성경은 또한 우리에게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려날 때가 있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51~52).” 그 마지막 나팔이 울려날 때는 바로 우리 주님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시는 때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구약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강림하심이 있을 때에는 나팔 소리가 울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보았습니다(출 20:18). 마지막 때에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홀연히 나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15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때의 나팔 소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강림하심은 실로 두려운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다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자기들에게 말씀하지 마시고 모세에게 말씀하시면 모세를 통해서 자기들은 듣겠노라고 말했습니다. 더구나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온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군대인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많이 부르는 찬송가 “내 평생에 가는 길”은 호레이쇼 스패포드라 이름하는 경건한 사업가가 쓴 시에 곡을 붙인 찬송입니다. 1871년의 시카고 대화재로 많은 재산을 잃고 그 전에는 질병으로 아들까지 잃었던 그는 아내와 네 딸들을 위로할 겸, 유럽 여행 계획을 세우고 배를 탔다가 출항 직전 급한 일로 며칠 후에 따라가겠노라고 하고 배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부인과 네 딸을 실은 그 배는 대서양 한 가운데서 다른 배와 충돌하여 가라앉고 말았고 거기서 오직 그의 부인만 살아남게 됩니다. 소식을 듣고 그 다음 배에 몸을 싣고 유럽으로 향하던 스패포드가 그 배에서 쓴 시가 바로 이 찬송시입니다. 그는 4절에서 이렇게 씁니다.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에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으리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이고 선언입니다. 마지막 나팔이 울려나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될 때에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인생에서 숱한 믿음의 싸움과 영적 전쟁이 그치지 않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나팔 소리를 듣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우리는 기쁨으로 영광 중에 오시는 주님을 반기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최고의 영광의 날이 될 것입니다.
6. 교훈과 적용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팔 소리는 행동을 요구하는 소리였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선포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명하게 우리에게 주어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 행동이 무엇인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가 그 말씀 아래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그 말씀을 듣고 즐기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아, 나팔 소리 한 번 아름답구나!”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나팔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행동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모여서 예배하라는 것인지, 하나님의 희락의 절기를 기념하고 즐기라는 것인지, 이제 세상을 향하여 나가라고 말씀하는 것인지, 앞에 있는 대적들을 향하여 전쟁을 수행하라는 것인지 분별해야 했고 행동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떻습니까? 매 주일, 그리고 수요일마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나팔 소리는 매일 새벽에도 울려 퍼집니다. 그 나팔 소리를 듣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이 말씀으로 돌아볼 것은, 교회가 과연 하나님의 군대로서의 특성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군대라는 사회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한대로,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여 살 수 없습니다. 병사는 군대의 질서 속에서 자기의 사사로움을 죽이고 그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가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우리 벧샬롬교회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병사로 인식하고 살아갑니까?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사사로운 것을 죽이고 주를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아닙니까?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나팔 소리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하나님의 교회로 우리가 세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것은 군대처럼 상명하복의 군기나 강제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은혜입니다. 그런 은혜로 주의 교회를 충만하게 채우시고 우리 각 사람을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