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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4) - 계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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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4) - 계수하라

민수기 1:1-46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15-11-18

말씀내용
민수기 1:1이 지시하는 때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지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입니다. 이스라엘은 거의 1년을 시내산 광야에서 보냈고 이제 성막이 완성된 지 딱 한 달이 지났을 때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출발하기에 앞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명령은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당일에 순종되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둘째 달 첫째 날에 온 회중을 모으니 그들이 각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인 남자의 이름을 자기 계통별로 신고하매.” 시내산 광야에 머무는 1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상당한 정도의 조직을 갖추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것은 지파별로 이루어졌습니다. 본문에는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크게는 지파별로, 그리고 더 작은 단위의 가족 단위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조직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표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본문에서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1. 왜 계수를 명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왜 계수 즉 인구조사를 명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면 인구조사와 관련해서 성경은 애매한 메시지를 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명했을 때 그 일로 인하여 3일간 전국에 전염병이 돌아 7만 명이 죽는 참사가 일어나게 된 일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구조사는 위험한 일이다 하는 인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인구조사를 명하십니다. 민수기에는 두 번이나 하나님께서 인구조사를 명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명령에 순종하여 두 번의 인구조사를 행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일단 우리가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인구조사를 명하신 의도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A.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고자 하심(창 15:5)
민수기는 사실상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놀랍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를 전체적으로 지니고 있는 책입니다.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진 인구조사는 민수기의 전체 메시지와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주제를 보여주는 역할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홀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갈 때, 그에게 피붙이라고는 조카 롯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땅만이 아니라 자손 그것도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2:2). 조카 롯 때문에 그 지역의 왕들의 전쟁에 본의 아니게 개입하게 된 아브라함이 크게 두려워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여전히 자기 자식 하나 얻지 못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한 번, 큰 민족을 이룰 자손에 대한 약속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창세기 15:4~5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결국 아브라함은 나이 100세가 될 때에 아들 이삭을 얻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하갈을 통해서 얻은 아들 이스마엘과 후처 그두라 사이에 얻게 된 6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이것은 고대 근동의 관습으로 볼 때, ‘큰 민족’을 이룰 부유한 남자가 낳은 아들의 수로서는 아주 적은 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훗날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이주할 때에 그들의 숫자는 70명에 불과했습니다(출 1:5). 그런데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명하신 인구조사를 통해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이 어느 새 이루어져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 다음으로는 이 약속의 책을 읽는 모든 시대의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이 바로 민수기에 나오는 인구조사를 명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근본적인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들어가게 될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그들에게 그들 소유의 땅으로 주심으로써 명실공히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성취하심을 보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이것은 민수기의 중요 주제입니다. 그리고 그 신실하심은 자신의 살아 생전에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가르쳐줍니다. 이 말은 평생을 주 앞에 간구와 소원을 올렸으나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부르심을 받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것인지 모릅니다.
B. 광야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함(2,3; 출 12:41 참조): 계수되는 것은 조직되기 위한 준비
하지만 인구조사 명령에는 보다 실제적인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이제 광야에서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치러야 할 많은 정복 전쟁을 준비하려는 목적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은 지파별로,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조직이 되어 있었지만, 계수된 적은 없었습니다. 대략적으로 출애굽기 12:37에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라고 언급된 것이 전부입니다. 이 구절에도 인구조사의 목적이 얼핏 드러나지만, 오늘 본문 2절과 3절에서 더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이 인구조사의 특징은 모든 사람의 숫자를 다 계수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2절에 보면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라고 나와있고 3절에는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라고 계수할 사람을 한정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인구조사는 전쟁을 대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구조사를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나라는 5년에 한 번씩 인구조사를 하는데 얼마 전 저희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인구조사는 모든 나라마다 다 있습니다. 국가의 인구조사는 기본적으로 얼마만큼의 세수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가와 관련이 있고 또 국가가 얼마만큼의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가와 얼마만큼의 복지를 필요로 하는가 등을 파악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군사적 자원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인구조사 역시 이런 목적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지난 설교에서도 말했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훈련된 군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대다수 남자들은 다 건설현장에서 혹사를 강요당한 노예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광야에서와 약속의 땅에서 많은 전쟁을 치를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미리 아시고 그들을 준비시키십니다.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이 싸워야 하는 그들의 전쟁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인구조사는 그들이 유사시에 군인들을 소집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을 것은 당연합니다.
2. 다윗의 계수에는 무엇이 문제였는가(삼하 24)?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질문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다윗의 계수에는 무엇이 문제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잠깐만 이 문제를 집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민수기에 나오는 모세의 인구조사 명령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명령하신 것이라면, 사무엘하 24장과 역대상 21장에 나오는 다윗의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의도는 있었으나 다윗의 의식 속에서는 다윗 자신이 시작하고 실행한 일이었습니다. 다윗의 경우는 좀 복잡합니다. 사무엘하 24:1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여기서 주도권을 하나님께서 가지신 것을 된 것은 다윗의 의식 아래서는 인식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요압에게 인구조사를 명했을 때 요압은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라고 다윗의 의도를 간파하고 말했습니다(삼상 24:3). 즉 다윗의 의도는 자기 힘, 자기 세력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인구조사를 한 후에 자신이 큰 죄를 지은 것을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삼상 24:10). 그런데 우리는 역대상 21:1의 설명도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여기서는 사탄의 개입을 언급합니다. 다윗의 자만심 혹 자기증명의 욕구는 직접적으로는 사탄의 충동으로 인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하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 죄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시지만, 사탄은 다윗의 죄성을 부추긴 책임이 있고, 다윗 자신은 한 사람의 인격으로서 자신의 일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다윗의 인구조사는 모세의 인구조사와는 그 차원과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믿음과 순종의 행위였다면 다윗은 인구조사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자기증명욕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3. 당신은 계수되었는가?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계수할 것을 명하셨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하나의 구분을 만들어냅니다. 계수된 사람들과 계수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물론 계수된 자는 반드시 이십 세 이상의 남자만을 의미한다기 보다 넓은 의미에서 그들에게 속한 부녀자들 모두를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때 계수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한국사람이 아니면 한국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계수된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즉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얼마 전 한국에 들어와서 주민등록증을 다시 만들었는데, 미국 영주권자라는 이유로 주민등록증 제목 아래에 괄호로 (재외국민)이라고 쓰여진 것을 받았는데 불쾌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좀 이상했습니다. 완전한 한국의 시민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나 미국에 살 때에는 또한 그 나라의 시민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외국인이라는 인식이 늘 있었습니다. 일주일 전 아내와 저는 서울에 있는 미국 영사관에 가서 미국영주권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주민센터에 가서 신고하고 새로운 주민등록증을 받았습니다. 임시증이기는 하지만, (재외국민)이라는 글자가 사라진 주민등록증이었습니다. 아, 이제는 진짜 완전한 한국시민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은근히 기뻤습니다. 이것이 적절한 예화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수에는 (재외국민)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면 시민이고 아니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의 계수하심에 들지 못했다면 그것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의미하기에 비교할 수 없이 무서운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계수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군대에 속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매우 명확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계수는 온 세상의 모든 인류를 둘로 나누는 사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계수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군대에 속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이 문제를 생각할 때 그는 자신이 충성을 다해야 할 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뿐 아니라 그 충성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20)라는 표현은 그들이 단지 큰 이스라엘 민족에 소속된 존재일 뿐 아니라 그 민족을 구성하는 지파, 그리고 지파를 구성하는 작은 단위의 가족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런 작은 단위의 가족에 속하지 않은 채, 전체에 계수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계수된 사람은 누구든지 예외없이(진짜 예외가 없습니다!) 작은 단위의 가족에 속하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계수된 사람의 책임이라면, 그에게는 또한 특권들도 있습니다. 그 가장 중요한 특권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 그들이 땅을 분배 받을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이 땅을 살면서 그들에게 보장된(계수되었기 때문에) 하늘의 유업을 바라보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자격을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4. 충성스러운 군인!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계수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들은 군인으로 계수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계수된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 민족 공동체에 대하여 가져야 하는 태도가 충성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것입니다. 이 충성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오도록 인도하실 만큼 신실하셨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과, 또 앞으로 이 구원을 완성하여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키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신뢰하고 소망하는데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장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은혜가 충성을 만들어냅니다. 이 은혜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에 속하도록 계수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수된 자는 충성으로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적용적인 관점에서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군사로 계수된 사람입니까? 우리는 보통 이것을 좀 더 쉽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벧샬롬교회의 교인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과거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장래에 은혜를 베푸실 하나님께 대한 신뢰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인 신자이고 교인의 성경적 정의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께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하여도 충성스러우십니까? 교회 안의 형제와 자매들은 영적 전쟁에서 함께 싸워야 하는 동지요, 전우들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교회는 사실상 계수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가?
주님께서는 70제자가 전도하라 나갔다 돌아와서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하고 기뻐하면서 자랑할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 무슨 의미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계수된 자들을 기록하십니다. 계수된 자들이 기록된 자들입니다. 이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여러분의 존재가 하나님의 백성의 명부에 기록되었다는 것 보다 더 위대한 사건은 없습니다. 이것은 죽어봐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디서 확인하는지 아십니까? 지상의 교회에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분명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앙을 표명하고 세례를 받아 교인이 된다는 것, 교인의 명부에 기록될 때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계수되었으며, 하나님의 명부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신앙으로 이렇게 함으로써 교인이 될 때 그것은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어떤 영광스러운 조직의 일원이 되는 것과 비교할 수 조차 없는 영광스러운 사건인 것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오늘날 교회의 명부는 더럽혀졌습니다. 교회는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따라 정확하게 계수했던 것과 달리, 자신들의 생각과 뜻대로 적당히 계수하여 적당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회원이 된다는 것, 교인이 된다는 것은 적당히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회복해야 하는 것은 교인이 된다는 것의 영광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알기에 이것을 적당히 자기 생각대로 변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벧샬롬교회가 이와 같은 은혜를 풍성하게 알고 경험하고 순종하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