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SERMON
설교분류별모음

Home > 설교분류별모음 > 요한계시록 강해 2019 - (78).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성

요한계시록 강해 2019 - (78).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성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요한계시록 강해 2019 - (78).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성

요한계시록 21:15-21, 에스겔 45:2, 마태복음 13:45-46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21-07-04

말씀내용
요한계시록은 21:1-22:5까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이 완성된 교회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그 성의 모양과 규모 그리고 성이 만들어진 재료들을 볼텐데, 이들 모두가 문자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상징이라는 점을 또한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거룩한 성의 모양과 숫자, 그리고 각양 보석들은 모두 하나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드러내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상징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것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는 어떤 묘사도 무한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광채를 다 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1. 성과 성곽을 측량하다 (15-17; 11:1-2; 겔 45:2; 마 27:51; 히 4:16; 계 14:20)
먼저 15-17절은 성을 측량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11장에서 요한이 지팡이 같은 갈대로 성전을 측량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을 보았습니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요한계시록 11:1–2).”
이 말씀에서 성전을 측량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모든 환난과 고난에서 보호하시겠다는 의미이고,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는 것은 그 영역은 환난을 받도록 허용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자기 백성들이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시지만, 거짓 신자—명목상의 신자(성전 바깥 마당)는 보호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에스겔서에서도, 우리는 천상적 존재가 환상 속의 성전과 성전 담을 측량하는 것을 봅니다(겔 40-41). 여기서도 측량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유권을 주장하심으로써 보호하고 지키신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소유를 침범하거나 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측량한다는 말은 인친다는 말과 그 의미가 다르지 않습니다(7:3). 거룩한 성을 측량한다는 것은 단순히 성의 크기를 알기 위함만이 아니라, 이 성 곧 어린 양의 신부인 교회를 지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11장에서 요한이 지팡이 같은 갈대 자로 성전을 측량했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요한에게 말하던 천사, 즉 일곱 대접을 담은 천사(9절)가 ‘금 갈대 자’로 측량을 합니다. 당시에는 길이를 측정할 때 보통 대나무 같이 생긴 갈대 자를 이용했는데(11:1), 여기서 천사가 금 갈대 자로 측량한다는 것은 황금 길(21:21)과 정금으로 만든 성(21:18)을 측량하기에 적합해 보입니다. 대개 갈대 자 하나의 길이는 3.15m 정도였는데, 이 성전의 거대한 크기를 생각하면 측량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작은 것입니다. 천사는 성과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게 되지만, 본문에는 성문에 대한 측량 결과는 나오지 않고, 성과 성곽에 대한 측량 결과만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측량을 통해서 이 성 곧, 교회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소유된 성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영원히 보장되는 곳임을 보여주십니다.
16절은 먼저 성의 모양을 묘사합니다. 거룩한 성은 ‘네모 반듯한’ 성입니다. 길이와 너비가 같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 중에 보았던 성전 구역도 길이와 너비가 같았다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 중에서 성소에 속할 땅은 길이가 오백 척이요 너비가 오백 척이니 네모가 반듯하며 그 외에 사방 쉰 척으로 전원이 되게 하되(에스겔 45:2; 42:15-20).” 에스겔의 성전 구역이 길이와 너비가 각각 5백 척(=규빗=45cm)이라고 했으니, 그것은 225m입니다. 에스겔이 환상에서 본 성전 구역이나 요한이 본 거룩한 성이 정사각형이라는 것은 부족함이나 불균형 또는 부조화가 전혀 없이 완전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로써 본문은 거룩한 성이 부족함 없이 완성된 교회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요한이 본 성은 길이와 너비만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15절 하반절은 높이도 같다고 말합니다. 정육면체의 성이라는 말입니다. 정육면체는 정사각형 보다 더 온전하고 완전한 것을 의미하는데, 유대인들에게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지성소가 바로 정육면체였기 때문입니다. 성막의 경우 지성소는 세 면이 각각 10규빗(4.5m)였고, 솔로몬 성전에서는 규모가 커져서 세 면이 각각 20규빗(9m)인 공간이었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극히 거룩한 곳으로서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고도의 신학적, 영적 이상을 반영하는 장소였기에 정육면체로 지어졌습니다. 거룩한 성은 지성소가 그대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반영하듯이 정육면체였다는 사실은, 거룩한 성이 하나님께서 가득히 임재하시는 곳임을 암시합니다. 구약 시대에 대제사장만이 희생 제물의 피를 가지고 1년에 한 차례 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었던 곳이 지성소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레 16), 정육면체인 거룩한 성은 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거룩한 백성으로서 영원히 거하며 교제하는 특권을 누릴 것을 암시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지게 되었고(마 27:51) 이로써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언제든지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히 4:16)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요한이 본 거룩한 성의 모양에서 규모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그 한 면의 길이가 ’12,000 스다디온’이라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수치라는 사실입니다. ‘스다디온’이라는 단위는 14:20에서 이미 한 번 나왔습니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요한계시록 14:20).”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날 때, 심판을 받는 사람들의 피가 이스라엘 전체에 퍼질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었습니다. ‘1,600 스다디온’은 이스라엘의 남에서 북까지의 대략적 거리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운동경기장을 ‘스타디움(stadium)’이라고 부르는데, 스다디온이라는 단위가 바로 경기장을 가리키는 스타디움과 관계가 있습니다. 1 스다디온은 고대 로마 경기장의 달리기 직선 거리를 의미했습니다. 당시 달리기 직선 거리는 경기장 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는데, 헬라의 경기장은 180m, 아티카 경기장은 185m, 올림픽 경기장은 195m였습니다. 그러니까 대략 1 스다디온을 195m인 올림픽 경기장으로 계산해 보면, 12,000 스다디온은 무려 2,340km가 됩니다. 이 거리를 미대륙과 비교해보면,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자동차로 대륙횡단을 할 수 있는 최단거리가 약 5,000 km이므로, 미 대륙의 동서 횡단 거리의 절반 정도 되는 것입니다. 길이와 너비 뿐 아니라, 높이도 2,340km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지정한 항공기의 순항 고도는 상공 26,000ft(약 7,925m=약 8km)이고, 이 기준에 따라 우리나라 국내선은 5000-10,000ft (1.5-3km)로, 미주나 유럽을 오가는 국제선은 14,000-28,000ft(4-8.5km) 고도로 비행한다고 합니다.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였던 콩코드의 경우, 음속 돌파를 위해 순항 고도 61,000ft(18.3 km)까지 올라간 적이 있지만(참고로, 광주의 동서 길이가 20km 가 조금 넘습니다) 산소 부족으로 엄청난 연료를 소모했다고 합니다. 이 요인이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사라지게 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구의 대기권은 적도 지역의 경우, 지표면에서 약 17km까지 미친다고 합니다. 그 위에는 성층권이 있는데, 지표면에서 50km 높이까지 입니다. 그 위로는 중간권(지상 50-80km), 열권(지상 80-1000km), 외기권(2000-20000km) 등이 펼쳐집니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Jeffrey Bezos)가 창업한 우주 기업이 블루 오리진(Blue Origin)이 개발여, 오는 20일에 출발하는 유인우주왕복선 뉴 세퍼드(New Shepard)가 올라가려고 하는 높이가 우주 공간의 시작점이고 무중력을 경험할 수 있는 높이인 지상 100km라고 합니다.
제가 장황하게 높이에 대한 여러 설명을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거룩한 성의 높이를 느끼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의 높이는 길이와 너비와 같은 2,340km 입니다. 우주왕복선이 지상 100km밖에 못 올라가는데 말이지요. 2,340km는 지상 고도로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높이입니다.
그렇다면, 요한에게 보여주신 거룩한 성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12,000 스다디온이라고 한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요한계시록의 앞 부분에서 보았던 숫자들 처럼 이것도 상징입니다. 일단,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당시 독자들은 하나의 스타디움만 생각해도 어마어마하게 크다고 느꼈을 텐데, 그것이 줄지어 12,000개가 이어지는 길이라면 상상이 되었겠습니까? 하지만, 12,000 스다디온은 단지 크다는 의미만은 아니었습니다. 윌리엄 헨드릭슨의 말입니다. “12,000은 3(삼위일체)에 4(우주를 나타냄)를 곱한 것 위에 (완전수인) 10을 세 번 곱하여 완전한 것에다 완전한 것을 곱하고 그 위에 더욱 완전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숫자는 우주 안에서 운영하시는 삼위 하나님이 펼치시는 구원의 능력에 의한 결과의 완전성을 표현한 것이다. 완전하고 흠 없는 결과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하나님의 교회다.” 이 크기는 모든 시대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하나님의 구속 받은 백성의 총수, 즉 모든 구원받은 성도를 수용하기에 충분한 공간의 큰 성이라는 것입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성, 삼위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속의 결과가 얼마나 크고 무한하고 완전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12,000 (세제곱) 스다디온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12,000 스다디온은 삼위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과 임재를 표현합니다.
이어서 17절은 성곽을 측량한 내용입니다. 먼저 ‘성곽은 144 규빗이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곽의 높이인지, 두께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144규빗은 65m 정도인데, 65m는 높기는 하지만 2,340km 높이의 성에 비하면 턱없이, 이상할 정도로 낮은 성벽입니다. 데이비드 오니(David E. Aune)는 고대 도시에서 보통 성곽의 두께가 강조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144 규빗을 두께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가령, 고대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고대 바벨론의 성벽의 두께가 50 규빗이었다고 전합니다. 만일, 144 규빗을 두께로 이해한다면, 고대 제국 바벨론의 성벽보다 더 두터운 성벽인 셈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144라는 숫자는 상징입니다. 144는 12 x 12로 구약 성도를 대표하는 열두 지파와 신약 성도를 대표하는 열두 사도 모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고, 하나님의 구속을 받은 백성의 총수를 의미하는 144,000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7:4-9; 14:1,3).
17절 하반절은 조금 특이한 설명을 붙입니다.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을 측량하고 있는 천사가 사람의 측량 도구인 갈대 자 즉,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도량형을 사용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NLT가 “천사가 사용한 사람의 표준-척도를 따르면(according to the human standard used by the angel)”이라고 번역을 한 것은 좋은 번역인 것입니다.


2. 성의 재료 (18-21; 사 54:11-12; 계 18:12; 마 13:45-46)
이어서 18-21절은 성의 재료를 설명하는데, 먼저 성곽의 재료(18)와 성곽의 기초석의 재료(19-20) 그리고 열두 문과 성의 길의 재료를(21) 차례로 보여줍니다. 전체적으로 그 재료들은 각종 보석들인데, 이것은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약속하는 이사야 54:11-12의 말씀을 반영합니다.
18절입니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요한계시록 21:18).” 성곽은 가장 귀한 보석 가운데 하나인 벽옥으로 되었다고 말합니다. 벽옥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묘사하는 중요한 보석이었습니다(4:3; 21:11, 18, 19). 아마 요한계시록이 쓰여지던 1세기에, 벽옥은 오늘날의 다이아몬드에 비할 정도로 값비싼 보석이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벽옥으로 쌓였고’라는 말은 벽옥이 성곽의 재료라는 것인지, 무늬로 아로새겨 넣었다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18절은 이어서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고 묘사합니다. 21절에서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고 했는데 이 성의 길 처럼, 성 자체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맑은 유리 같이 투명한 정금’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요한이 본 성의 재료는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맑은 유리 같다’는 말은, 이 성의 값비싼 재료들이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그 가치를 반영하고 드러낸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랜트 오즈번의 말입니다. “성 자체의 영광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성은 단지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그 투명함을 통해 발산할 수 있을 뿐이다.”
19-20절은 성곽의 열두 기초석의 재료 목록을 소개합니다.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요한계시록 21:19–20).”
열두 기초석은 각각 열두 가지 보석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열두 보석의 목록은 다시 벽옥으로 시작합니다. 기초석에 사용된 열두 보석의 목록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지만, 구약 시대 대제사장의 흉패에 물린 열두 보석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합니다. 물론 기초석의 열두 보석의 이름이 대제사장의 흉패에 물린 열두 보석의 이름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8개가 일치하고 4개는 이름이 다르지만, 같은 보석이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고,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달리 번역될 가능성을 고려하면 4개의 보석의 이름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대제사장의 흉패에 물린 열두 보석에는 각각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이 보석들이 대제사장의 가슴에 붙여져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늘 하나님의 품에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의 기초석이 만들어진 보석들인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 보석 같은 존재입니다.
끝으로 21절은 열두 문과 성의 길의 재료를 보여줍니다.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벽의 동서남북으로 각 면마다 세 개씩 문이 있는데(13), 그 문들은 각각 하나의 진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벽의 두께가 65m이므로, 이 진주문들은 어마어마하게 큰 진주로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진주는 고대 세계에서 매우 귀하고 값비싼 보석이었습니다. 그래서 18:12은 바벨론의 사치품 목록에서 진주를 금, 은, 보석에 이어 바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은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진주 장사의 이야기를 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태복음 13:45–46).” 이것은 지중해 전역을 다니며 좋은 진주를 찾다가 그것을 찾으면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그 진주를 사는 진주 장사의 이야기로 당시 사람들에게 낯선 이야기일 수 없었습니다. 천국은 극히 값진 진주와 같아서 인생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사라는 가르침니다. 그런데 여기 거룩한 성에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거대한 진주로 만들어진 열두 문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더라’는 말로 거룩한 성의 재료에 대한 묘사가 마칩니다. 이 길은 성의 대로를 가리키는데, 성이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었듯이 길도 같은 정금이라고 묘사됩니다. 이것도 정금 자체의 영광이 아니라 유리 같이 맑은 정금이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한다는 의미와 깊이 연관됩니다.


3. 바벨론의 영광과 예루살렘의 영광 사이에서 (창 11:4)
우리는 21장에서 요한이 환상 가운데서 목격한 바,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들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한 가지 강조점이 있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11) 그 성의 모든 특징들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한다는 사실입니다. 거룩한 성은 그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동일함을 통해서 삼위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완성과 영광을 드러내고, 어마어마한 규모를 통해서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완전하심을 나타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교회의 영광은 부족함이 없이 완전합니다. 또한 각종 보석들로 만들어진 성과 성곽 그리고 열두 기초석과 열두 문들과 성의 길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구속하시고 깨끗하게 하신 교회, 하나님 아버지께서 신랑을 위해 단장하여 주신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아름다움은 교회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안으로부터 교회를 온전하게 하신 결과입니다. 거룩한 성의 재료인 각종 보석은 보석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드러냄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이 자기 힘과 능력으로 만들고 세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이 만드는 것은 다 인간 스스로의 영광을 높일 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창세기의 바벨탑이 그 증거입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세기 11:4)”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은 세상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욕망은 거룩한 성, 교회 안에서도, 교회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성은 거룩한 성이 아니라, 음녀요 큰 성 바벨론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룩한 성으로 제대로 지어져 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바르고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될 수 없음을 알기에, 우리 모두는 함께 겸비한 마음으로 주의 은혜를 간절히 구합시다. 어느 한 순간에라도 우리 자신의 잘남을 자랑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이 삼위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 위엄과 광채를 어둔 세상에 드러내고 반영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이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보석들입니다.
벧샬롬교회가 주님 오시는 날까지, 주님의 은혜와 도우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으로 인하여 바벨론의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고 주님을 맞이하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져 가기만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