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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2019 - (73). 곡과 마곡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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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2019 - (73). 곡과 마곡의 전쟁

요한계시록 20:7-10, 에스겔 38-39, 데살로니가후서 2:1-12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21-05-30

말씀내용
우리는 지난 두 주에 걸쳐 천년왕국이라는 주제를 상고했고, 오늘은 ‘곡과 마곡의 전쟁’이라는 주제를 살피려고 합니다. 본문은 천 년 동안 결박 당하여 무저갱에 갇혀 있던 사탄이 주님의 재림 직전에 잠깐 놓여서, 다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여 전쟁을 벌일 것을 말씀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탄의 시도는 결국 자신의 패망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전쟁’이라는 주제로 19:17-21을 상고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또 하나의 전쟁, 곡과 마곡의 전쟁을 말씀합니다. 이 전쟁은 19장이 묘사한 전쟁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이것을 조금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중에 널리 퍼져 있는 그릇된 종말론이 말하는 ‘곡과 마곡’에 대해서 많이 듣습니다. 우리 시대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곡과 마곡의 정체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이단들이 잘못된 종말론을 중심으로 접근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성경이 가르치는 종말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는 것은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결코 사소한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주제는 중요합니다.


1. 에스겔과 요한계시록 (겔 38-39; 36:26; 38:2)
먼저 곡과 마곡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에스겔 38-39장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의 2차 침략이 있던 주전 597년(예루살렘 멸망 10년 전), 여호야긴 왕과 귀족들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그 이방 땅에서 5년이 되었을 때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1-33장에서 악한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나서, 34-37장에서는 복음을 전합니다. 당신의 백성을 회복시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새언약의 내용으로 전해집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에스겔 36:26).”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약속은 37장에서 마른 뼈들이 살아나 큰 군대를 이루는 환상으로 확증됩니다. 그리고 38-39장에서 에스겔은 회복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원수로부터 세계적 규모의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는 원수는 곡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고, 그가 다스리는 곳이 마곡입니다. “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곧 곡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여(에스겔 38:2).” 오늘 본문 8절에서 ‘곡과 마곡’이라는 말은 에스겔의 이 본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전쟁이 마치면,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환상 속의 성전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소망으로 에스겔의 메시지는 마치게 됩니다(40-48장). 에스겔의 환상 속의 성전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주어질 영원한 영광을 보여줍니다.
가만히 보면, 요한계시록 20-21장은 특별히 에스겔 선지자의 메시지와 비슷한 흐름 속에 있다는 알 수 있습니다. 천년왕국의 기간에 온 세상에 전파되는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되면(20:4-6), 사탄은 잠시 풀려나서 다시 만국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향해 최후의 공격을 시도할 것입니다(20:7-10). 그리고 이 싸움이 마치면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것을 21장이 보여줍니다.


2. 곡과 마곡의 정체 (겔 38:2; 39:2; 창 10:2)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향한 원수의 공격을 주도하는 세력은, 배후의 사탄을 제외하면 ‘곡과 마곡’입니다. 우리는 곡과 마곡의 정체를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곡과 마곡’을 자신들이 살아가는 시대에 존재하던 어떤 정치적 세력으로 해석하려는 유혹을 받아왔습니다. 로마제국이 게르만족의 위협과 공격 앞에서 쇠퇴해가던 4세기 말, 밀라노의 주교였던 교부 암브로스는 ‘곡’을 로마제국의 영토를 압박하던 고트 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7세기 유럽에서는 성지 예루살렘을 위협하는 무슬림의 세력이 곡과 마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잘못된 해석은 12-13세기(1095년-1291년)에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라는 역사의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13세기의 유럽은 몽골의 징기스칸에 의해 위협을 받게 되었고 자연히 이들은 징기스칸이 곡과 마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유럽의 기독교 사회는 자신들을 위협하거나 대적하는 정치적 세력을 곡과 마곡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을 보여왔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시대를 지나면서는, 교황이나 터키를 곡과 마곡으로 여기기도 했고, 현대로 오면서 러시아나 중국을 그 세력으로 간주하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러시아를 마곡이라고 여기는 해석은 19세기 크림 전쟁(1853-1856)이 한창일 때, 영국인들에 의해서 시작되고 발전되었는데, 이 해석은 현대 스터디 바이블의 원조이고, 세대주의의 전도사 역할을 했던 『스코필드 스터디바이블(1911)』에 의해 널리 보급되면서 100년 이상 건재하는 해석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랜트 제프리(Grant R. Jeffrey, 1948-2012)는 “러시아가 성경이 예언하는 곡과 마곡이다”라고 그의 책에서 주장하면서, 러시아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아랍 국가들과 연대하여 이스라엘을 침공할 것이라고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 이런 모든 해석들에서 우리는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하는데, 그들은 곡과 마곡이 교회를 공격하는 것을 하나의 물리적 전쟁으로 이해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들이 지나치게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를 반영하는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38-39장에서 곡과 마곡은 이렇게 소개됩니다. “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곧 곡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여(에스겔 38:2).” 곡은 로스와 메섹과 두발 지역에 세워진 마곡 왕국의 통치자입니다. 세대주의자들 중에는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로스는 러시아, 메섹은 모스크바, 두발은 토볼스크(Tobolsk—러시아의 한 도시)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신빙성이 없는 해석입니다.
아마도 마곡이라는 지명은 노아의 손자이고 야벳의 아들인 마곡과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창 10:2). 그리고 이 지명들은 에스겔 39:2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북방에 위치한 지역을 가리킵니다. “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북쪽 끝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에스겔 39:2).” 사실, 에스겔서의 요점은 매우 먼 곳에서 용사들이 온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38-39장은 유대인들의 종말 의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20세기 SF소설들이 화성인이나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소재로 삼는 것처럼, 유대인들에게는 ‘곡과 마곡’의 침공이 그런 종말적 위협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마곡의 왕 곡은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공격하는 주도적 세력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8절에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라고 하는 것을 보면, ‘곡과 마곡’을 구분하지 않고(왕과 나라/지역 이름) 사용할 뿐 아니라, ‘땅의 사방 백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곡과 마곡’은 더 이상 하나의 지명이나 인명이 아니라, 이스라엘, 즉 마지막 때에 마지막 전쟁을 위하여 모인,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세계 만국의 세력을 총칭하는 상징적 이름이 된 것입니다. 벤 위더링턴은 이렇게 말합니다. “곡과 마곡은 지구 모든 곳에 있는 나라들에 있는 악의 세력의 상징이다. 이 악은 모든 방향에서 온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최소한 ‘곡과 마곡’을 러시아(혹은 구쏘련) 혹은 중국이라는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요한계시록의 의도를 벗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3. 이 전쟁은 물리적 전쟁이 아니다. (계 16:12-16; 19:17-21; 겔 38:16,22; 39:6; 계 12:11)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다룰 주제는 최후의 전쟁의 성격에 대한 것입니다. 교회사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곡과 마곡의 공격과 교회가 그들과 싸우는 이 최후의 전쟁을 물리적 전쟁으로 이해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사실, 물리적 전쟁일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참 성도인 교회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대적하는 세력과의 싸움인데, 만일 이 전쟁이 핵과 미사일을 동반하는 물리적 전쟁이라면, 이 세상에서 그런 물리적 방식으로 신자와 불신자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근거를 가지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곡과 마곡이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이 전쟁은 물리적 전쟁이 아닌, 영적 성격을 가지는 전쟁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상징들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가령, C.S.루이스가 쓴 『나니아 연대기』나 J.R.R.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같은 환타지 소설을 읽을 때,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읽는 방식도 비슷합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 이 전쟁의 성격을 짚어봅시다.
7절은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천 년의 기간이 찼고,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습니다. 3절에서 “그 후에는 반드시 놓이리라”고 말씀한 대로, 사탄이 옥에서 풀려납니다. 그런데 7절은 무저갱 대신, ‘옥’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사탄이 만국을 미혹하는 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감금되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사탄은 옥에서 놓이지만, 3절의 말씀대로, 잠깐 놓임을 받습니다.
사탄이 옥에서 나와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는 다시 만국을 미혹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전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요한계시록 20:8).” 사탄은 전쟁을 벌이기 위해 땅의 사방 백성을 미혹하여 모으는데 그들이 ‘곡과 마곡’입니다. 그리고 9절에서 말씀하듯이,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 곧 교회를 포위하고 전쟁을 벌입니다. 이것을 요한계시록 16:12-16에서는 아마겟돈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고 묘사했습니다. 물론 아마겟돈도 상징적 지명입니다.
이 최후의 전쟁은 적어도 요한계시록에서 세 차례 각각 다른 관점에서 반복되어 묘사되었습니다. 전천년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16:14-16은 일곱째 대접이 부어지기 전에 벌어지는 아마겟돈 전쟁을, 19:17-21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벌어지는 큰 전쟁을, 끝으로 20:7-10은 천년왕국 후에 벌어지는 진짜 최후의 전쟁을 말함으로써, 요한계시록이 종말에 연속적으로 일어날 세 번의 전쟁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16장에서는 범죄한 인류의 심판과 파멸이라는 관점에서(16:12-16), 19장에서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멸망이라는 관점에서(19:17-21),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그들의 수괴인 사탄의 패망이라는 관점에서 하나의 최후의 전쟁을 세 관점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들 각각에서 ‘전쟁’을 말할 때, 단어 앞에 정관사를 붙여 ‘그 전쟁’이라고 썼습니다(16:14; 19:19; 20:8).
윌리엄 헨드릭슨의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동일한 전쟁을 본다…그것은 교회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최후의 공격이다.” 또 리처드 필립스의 말입니다. “역사는 교회를 대적하는 세상의 큰 전쟁으로 끝난다. 복음이 온 열방에게 전파된 후에, 회개의 시기가 지나가고 끝이 올 것이다.” 물리적 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땅의 사방 백성’은 러시아나 중국일 수 없습니다.
본문은 사탄의 미혹을 받아 모인 땅의 사방 백성의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고 말씀합니다(8). 이것은 그들의 세력이 거대하고 수가 많아서 일견 그들이 성도들을 이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에스겔 38:16에서는 곡의 세력을 ‘구름이 땅을 덮음 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릅니다(9a).’ 그들은 거의 교회를 삼켜버릴 기세입니다. 그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게’ 됩니다(9b). 19:19-20에서 보았듯이,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전쟁을 벌이려 하지만, 허무하게도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라고 한대로, 전쟁은 벌어지기도 전에 끝이 나고 맙니다. 20장도 동일한 것을 보여줍니다. 전쟁이 아예 벌어지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림으로써 전쟁은 터지기 전에 끝이 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내가 또 전염병과 피로 그를 심판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무리와 그와 함께 있는 많은 백성에게 비를 내리듯 하리라(에스겔 38:22).” “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주하는 자에게 내리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에스겔 39:6).”
10절은 천 년 후에 잠깐 풀려난 사탄이 일으키려고 한 전쟁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요한계시록 20:10).” 사탄 곧 마귀가 이제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집니다. 불과 유황 못은 이미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던져진 바로 그 곳(19:20), 영원한 고통을 밤낮 없이 당하게 될 지옥을 상징합니다. 이로써 악의 거짓 삼위일체인 사탄과 두 짐승이 다 불못에 던져집니다.
정작 사탄이 일으킨 곡과 마곡이 하나님의 교회를 포위하여 싸우려고 하지만, 교회 자신은 싸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회가 이 전쟁을 싸우는 방식은 요한계시록 12:11에서 말씀한 대로,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며 이 증거에 자신들의 삶을 온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요한계시록 12:11).”
이렇게 17장에서 시작된 마지막 심판이라는 주제는 사탄이 불못에 던져지는 것으로 종결됩니다. 17-18장은 음녀 바벨론의 심판을, 19장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심판을, 그리고 20장은 사탄 자신의 심판을 보여준 것입니다.


4. 신약 다른 본문들의 증거 (마 24:24; 살후 2:3,6-8)
주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마지막 날들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태복음 24:24).” 택하신 자들도 미혹한다는 것은, 사탄이 천 년이 지난 후에 잠시 나와서 하는 일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마귀가 옥에서 나오게 되면 이런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교훈하였습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데살로니가후서 2:3).” 이 말씀도 사탄이 풀려날 때의 일들을 말씀합니다. 6-7절도 봅시다.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데살로니가후서 2:6–7).” 사탄이 옥에서 풀려나는 때는 바울 사도가 말씀하는 바, ‘막는 것’과 ‘막는 자’가 옮겨질 때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최후의 공격이 시도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이렇게 씁니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데살로니가후서 2:8).” 마지막 전쟁을 묘사하는 요한계시록의 본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신약 성경의 가르침은, 일관되게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기록한 것을 동일하게 증거합니다.


5. 교훈과 적용 (살후 2:9-12; 마 24:24; 벧전 2:11; 살후 2:2)
오늘 본문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시고 말씀하십니까? 첫째로, 사탄이 옥에서 잠깐 놓임을 받아 다시 만국을 미혹하여 교회를 대적한다는 것은 우리를 경성하게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복음이 땅끝까지 거의 이른 시대입니다. 이 복음의 시대, 천 년이 마치면, 사탄이 잠깐 놓임을 받아 만국을 미혹하고 교회를 대적할 것입니다. 사탄의 주요 무기는 강력한 박해 뿐 아니라 미혹함으로써 불신을 조장하는 속임수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더욱 진리로 자신을 무장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말세의 때를 이렇게 살라고 경고했습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데살로니가후서 2:9–12).”
사람이 망하는 것은 교회를 다니지 않아서가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지 않아서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2:10). 주님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히라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 24:24). 마귀의 주요 무기가 미혹하는 것이라면, 교회가 주로 해야할 일은 진리로 무장하고 복음의 진리를 땅끝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말입니다. 저는 30여년 전 이슬람권에서 사역을 할 때, 무슬림들이 코란을 공부하는 것을 성전(지하드)으로 여기는 것을 봤습니다. 전투하듯이 코란을 낭송하고 배우고 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진리로 무장하기 위해서 충분히 수고하고 있습니까? 이 마지막 때에는 돈이나 학위, 여러분이 세상에서 이룬 성취가 여러분을 지켜주지 않습니다. 진리로 무장하고, 복음의 진리를 온 세상에 전파하는 일에 우리의 수고를 다하라고 성령님께서는 이 본문을 통해 저와 여러분에게 권고하십니다.
둘째로, 본문 10절은 교회를 ‘성도들의 진, 사랑하시는 성’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진’이라는 말은 출애굽 당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던 방식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진’이라는 표현은 교회가 약속의 땅을 향하여 순례하는 백성임을 암시합니다. 성경은 교회와 성도는 세상에서 거류민과 나그네라고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베드로전서 2:11).”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수많은 대적을 만났음에도 파괴되거나 멸망 당하지 않았듯이, 교회는 그럴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잠시 놓여 무슨 짓을 하든 두려워 마십시오.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데살로니가후서 2:2).”
그러나 또한 교회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성’입니다. 우리는 곧 21장에서 그 사랑하시는 성의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이 사랑하여 당신의 피로 사신 백성이고,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진리를 붙잡을 때,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도 패배주의나 값싼 승리주의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영구히 지속되는 성을 세우거나 가지지 않습니다. 그 성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이고, 주님이 단장해 주시는 성입니다. 우리는 지나가는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날에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릴 그 영광을 생각하며, 오늘 여러분의 옆에 있는 성도들을 대하고 바라보십시오. 그레고리 비일의 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막 안에 있는 하나님의 참 이스라엘이고 장래에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