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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2019 - (70). 마지막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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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2019 - (70). 마지막 전쟁

요한계시록 19:17-21, 에스겔 39:17-20, 에베소서 6:10-18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21-05-09

말씀내용
요한계시록 19장은 어린양의 혼인잔치 환상에 이어 백마를 탄 정복자로 이 세상에 강림하시는 주님의 재림 환상을 차례로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전쟁 환상이 묘사됩니다. 이 마지막 전쟁에서 많은 사람들은 3차 세계대전이나 핵전쟁 같은 것을 떠올리겠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살펴본 원리를 따를 때, 이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이 전쟁 묘사이니까, 실제로 재림하시는 주님과 주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세력들 간에 한판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세대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가 종말의 때에 공중의 어느 지점에서 강림하신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이 때 죽은 모든 신자들이 부활하여 살아 남은 자들과 함께 공중으로 휴거하여 공중에 강림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이후 7년동안 공중에서 어린양의 잔치가 열립니다(19:6-10). 휴거 된 자들이 거기서 기쁨을 나누는 동안 세상에서는 대환난이 시작되고 적그리스도 통치 시대가 열립니다. 이때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오고, 대환난이 이스라엘과 나라들 사이에 일어나는 아마겟돈 전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마겟돈 전쟁에서 공중에 계시던 그리스도는 지상에 재림하여 원수들을 멸하고 예루살렘에 보좌를 세워 천년 동안 왕노릇하시게 됩니다. 이런 세대주의 전천년설의 설명은, 솔깃하게 만드는 면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정말 역사의 마지막 때에 있게 될 일들을 이처럼 디테일하게 알려주는 책인가? 세대주의는 본문을 문자적으로 풀려고 하는 것 뿐 아니라, 요한계시록으로부터 임의적으로 종말의 시간표를 만들어낸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그런 시간표를 제시하기 위해서 주신 계시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본문을 읽고 이해합니다. 이제 20장에서 우리는 요한계시록 해석의 쟁점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천년왕국에 대한 본문을 보게 될텐데, 거기서 이 주제를 조금 더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1. 마지막 전쟁의 배경 (계 16:12-14,16; 12:7-12; 창 3:15)
C.S.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의 마지막 권의 제목을 ‘마지막 전투(The Last Battle)’라고 붙였는데, 요한계시록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본문이 묘사하는 마지막 전쟁에 대한 말씀은 이미 여섯째 대접 심판에서 자세히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요한계시록 16:12-14,16).” 이 본문은 마지막 전투가 준비되는 상황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이 마지막 전투가 어떻게 끝나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16장에서만 이 마지막 전쟁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 전쟁의 성격은 13장에서 바다와 땅에서 올라온 두 짐승을 통하여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고 박해함으로써 짐승을 경배하고 우상을 섬기게 하며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일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마지막 전쟁은 그런 전쟁의 연장선에 있는 것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12장으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하늘에서 일어난 전쟁에 대해서 듣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전쟁’이라고 말했습니다(12:7-12). 우리가 13장에서 본 두 짐승과의 전쟁은, 그 전쟁에서 패하여 하늘에서 쫓겨난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고 두 짐승과 함께 일으키는 전쟁입니다.
우리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메시지(계 2-3)에서 교회들이 얼마나 이 전쟁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인내로써 자신들의 믿음을 지켜냈는지를 보았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싸워 이기라는 격려를 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전쟁이 언제 시작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뒤에 하나님께서 뱀에게 하신 말씀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세기 3:15).” 전쟁은 그 때 시작되었습니다. 이점에서 결혼이라는 주제와 함께,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보여주는 게 오늘 본문이고, 성경 전체의 이야기는 바로 이 전쟁의 대서사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두 짐승의 멸망과 심판을 보여준다면, 20:7-10은 옛 뱀이고 사탄, 요한계시록에서 붉은 용으로 등장한 마귀가 심판을 받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오랜 전쟁이 완전히 막을 내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마지막 책으로서 이런 큰 그림을 성도들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싸우는 싸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 인내로써 신앙을 지켜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2. 섬뜩한 초대장 (17-18; 18:1; 13:1,11; 겔 39:17-20; 계 6:15; 13:16)
이제 본문 17-18절을 봅니다.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요한계시록 19:17–18).”
‘또 내가 보니’라는 말은, 그 초점을 다시 오실 그리스도로부터 이제 그리스도를 대적하기 위해 소집된 군대에게로 초점을 전환합니다. 음녀 바벨론의 멸망을 선언하는 천사의 모습을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졌더라”고 한 것처럼(18:1), ‘태양 안에 서서…큰 음성으로’ 외치는 이 천사도 승리의 전령에 적합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천사는 바벨론과 연합하여 속임과 박해를 주도한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멸망을 선언합니다. 여기 짐승은 13:1에서 바다에서 나온 짐승으로 교회를 대적하는 세속 정치 권력을 가리키고, 거짓 선지자는 13:11에서 땅에서 올라온 짐승인데, 사람들을 미혹하여 적그리스도의 능력을 경배하게 하는 거짓 종교의 성격 때문에 계속 거짓 선지자라고 불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루는 마지막 전쟁은 이 두 존재에 대한 심판 선언입니다.
태양 안에 서서 외치는 천사가 누구에게 외칩니까?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행하여’ 외칩니다. 그 내용은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잔치’에 오라는 일종의 초대장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섬뜩하기 그지 없습니다. 식육조들에게 와서 사람의 시체 고기를 먹으라는 것이지요. 천사는 이것을 ‘하나님의 큰 잔치’라고 부릅니다. 앞에서 본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대한 패러디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의 혼주는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지금 천사가 언급하는 잔치도 역시 하나님이 베푸시는 잔치입니다. 같은 잔치가 두 가지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종말에 성도들은 큰 잔치에 참여하여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겠지만, 죄인들은 큰 잔치의 먹을 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은(악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라고 하신대로 입니다(마 25:46).
이 섬뜩한 초대장의 끔찍한 내용은 구약 에스겔서의 인유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 인자야 너는 각종 새와 들의 각종 짐승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모여 오라 내가 너희를 위한 잔치 곧 이스라엘 산 위에 예비한 큰 잔치로 너희는 사방에서 모여 살을 먹으며 피를 마실지어다 너희가 용사의 살을 먹으며 세상 왕들의 피를 마시기를 바산의 살진 짐승 곧 숫양이나 어린 양이나 염소나 수송아지를 먹듯 할지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잔치의 기름을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그 피를 취하도록 마시되 내 상에서 말과 기병과 용사와 모든 군사를 배부르게 먹일지니라 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에스겔 39:17–20).”
고대 세계에서 매장되지 못하고 새와 짐승의 먹이가 되는 것보다 욕되고 수치스러운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의 승자들이 패배한 군사의 시신들을 매장하지 않고 버려두어 새들과 짐승들이 그 시체를 먹게 하는 것은 고대 전쟁의 관습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천사는 식육조를 초대함으로써, 짐승과 거짓 선지자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모든 자에게 장차 임할 멸망을 비유적이지만 확실하게 선언합니다.
18절은 새들에게 제공될 메뉴를 보여줍니다.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입니다. 앞에서도 이런 표현들이 등장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요한계시록 6:15; 13:16).”
이 심판이 사회 각 계층을 포함하는 보편적 성격의 심판임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왕들, 장군들, 장사들(힘센자들), 말들과 탄 자들은 모두 정치-군사적인 계층들입니다. 그리고 자유인, 종들, 작은 자, 큰 자, 모든 자는 그야말로 그외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제외될 수 있는 특권층은 없습니다.


3. 급작스러운 패망 (19-21; 16:14; 19:19; 20:8; 17:13-14)
요한은 19절에서 다시 환상을 봅니다. ‘또 내가 보매’라고 19절이 시작합니다. 바로 앞에서 천사의 초대장을 통해서 곧 벌어지게 될 마지막 전투의 서곡을 본 요한은 이제 마지막 전쟁의 환상을 봅니다.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요한계시록 19:19).”
드디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짐승이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아마겟돈으로 불러모아 전열을 갖추고 전쟁을 벌입니다. 여기 ‘짐승’만 등장하고 거짓 선지자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짐승이 정치적 세력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짐승을 추종하는 땅의 임금들과 군대들이 모입니다. 그들이 ‘(백마를) 탄 자’ 그리스도와 그의 군대를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 마지막 전쟁을 언급하는 묘사들은 하나의 특징을 가지는데 정관사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16:14과 19:19에서 ‘그 전쟁’이라고 했고 20:8에서 ‘그 싸움’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어린양을 대적하는 짐승의 최후 전쟁을 가리킵니다. 최후의 전쟁이 여러 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앞에서 잠깐 보았듯이, 16:13-16에서 악의 삼위일체인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최후의 전쟁을 위해 온 천하의 왕들을 아마겟돈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모인 자들은 한 뜻을 가지고 자신들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바쳐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게 됩니다(17:13-14a). 하지만 그 결과는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이기시고,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그들을 이긴다는 것입니다(17:14b). 지금 요한은 환상 중에 그 마지막 전투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든 전쟁의 준비가 마쳐졌는데 그리고 대적들이 백마를 타신 주님을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래서 우리는 엄청난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있는데 막상 전쟁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요한계시록 19:20–21).”
바로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전쟁이 벌어지자마자, 어쩌면 전쟁을 벌이려고 하는 즈음에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잡힙니다. 그리고 21절은 짐승의 부름을 받아 아마겟돈에 모인 군대가 순식간에 전멸되고 천사의 초대장을 받은 모든 새들이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는 말씀으로 허무하게(?) 마칩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은 무모한 시도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15절에서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라고 한 것처럼, 21절에서 ‘말 탄 자의 입에서 나오는 검에’ 모두가 죽고 맙니다. 검이 주님의 입에서 나올 때, 전쟁은 순식간에 끝나고 맙니다. 여기서 ‘검’은 비유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20절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잡혔다고 말합니다. ‘잡히고..잡혔으니’라는 말은 신적 수동태로서 그리스도께 잡혔다는 뜻입니다. ‘잡혔다’는 단어는 마치 오렌지를 힘으로 눌러 즙을 짜내듯이 ‘엄청난 힘으로 단단히 붙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그리스도께 붙잡혔으니 풀려날 길은 없습니다. 여기에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는 거짓 선지자에 대한 죄목이 명시됩니다. 그리고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집니다.’ 요한계시록은 영벌에 처한다는 것을 유황불 못으로 표현합니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제일 먼저 유황불 못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마귀가 던져지고(20:10), ‘사망과 음부’(20:14) 그리고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룩되지 못한 자’들이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산 채로’ 유황불 못에 던져집니다. 본문은 어떤 학자들의 주장처럼, 영혼이 결국 멸절한다는 영혼멸절설을 승인하지 않습니다. ‘산 채로’라는 말은 악인들이 의식을 가진 채 영구히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것을 시사합니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요한계시록 14:11).”고 말씀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 말씀은 역사가 끝날 때,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집단적 역할을 따라 활동하는 모든 자가 이런 무서운 형벌을 받을 것을 보여줍니다.
‘유황불 붙는 못’이라는 개념은 요한계시록에서 19-21장에서만 등장하는 영벌의 개념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지옥이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게헨나’와 같은 개념인데, 게헨나는 1번을 제외하면 모두 11번 예수님에 의해서 공관복음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라는 의미로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입니다. 구약 유다 역사에서 아하스와 므낫세가 아들들을 몰렉 신에게 태워서 바친 곳이 예루살렘 남부 비탈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또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였습니다(대하 28:3; 33:6). 자식을 태워 바치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진노하신 패역한 짓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게헨나는 쓰레기 소각장으로 쓰레기를 태우는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었기에, 유대 묵시 문학에서는 이곳을 지옥의 상징으로 묘사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최후 형벌의 장소요, 영원한 고통의 장소로서 지옥을 의미하실 때, 게헨나라는 말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유황불 붙는 못’은 바로 이 게헨나, 지옥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20:10에서 ‘불과 유황 못,’ 20:14,15에서 ‘불못,’ 21:8에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4. 교훈과 적용 (엡 6:10-18; 벧전 5:8; 계 2:11; 20:14; 22:20)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은 21세기를 사는 신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너희가 전쟁 중에 살아가는 신자들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자 시작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여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결정적 승리를 성취한 전쟁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보았듯이,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이미 승리가 결정된 이 전쟁을 종결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온 힘을 다하여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미혹함으로 주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전쟁 중에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싶으십니까? 그런 결심을 하면 잘 되던가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삶을 잘 살다가도 순식간에 무너지지 않던가요? 바울 사도가 말씀한 대로, 우리는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어둠의 세력과의 영적 전쟁을 치르는 중입니다(엡 6:10-17). 현재 진행되는 전쟁을 인식하지 못하면, 한 순간도 교회를 향한 공격을 쉬지 않는 원수로부터 큰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는 많은 사람을 미혹하여 짐승을 추종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자리에 서게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 사람들 자신을 미워하거나 그들 자신을 대적하는 것을 넘어서서, 어둠의 세력을 대항하여 싸울 수 있습니까? 바울 사도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영적 전쟁을 싸울 것을 권면하며 이렇게 말을 맺고 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에베소서 6:18).” 이 구절을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 성경>에서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계속되는 이 전쟁에서 기도는 필수입니다. 열심히, 오래 기도하십시오. 형제자매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서로 기운을 북돋아 주어, 아무도 뒤처지거나 낙오하는 사람이 없게 하십시오.”
너무나 바쁘고 분주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은 이 전쟁에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 기도의 역할을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 전쟁터에서 예리하게 준비되어 있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잘 사용하고 계십니까? 한시도, 한 순간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전쟁 중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 말씀을 들으십시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은밀히 행하는 음란함을 조심하십시오. 돈이 주는 위안과 돈을 사랑하는 마음에 붙잡히지 않도록 경계하십시오. 나태함과 게으름에 시간을 허비하고 마음을 맡기는 마귀의 함정을 조심하십시오. 사람이 주는 위로와 만족의 우상을 물리치십시오.
재림하실 때 주님은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순식간에 이 길고 긴 전쟁을 끝내실 것입니다. 이 승리의 결말을 알기에, 우리는 싸울 힘을 얻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계 2:11). 둘째 사망은 불못에 던져지는 것입니다(계 20:14). 그러므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이 싸움을 감당하십시오.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 언정, 인내로써 믿음을 지키고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자가 되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 22:20).” 그날이 멀지 않습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