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SERMON
설교분류별모음

Home > 설교분류별모음 > 시편강해 - (89A). 하나님의 인자하심

시편강해 - (89A). 하나님의 인자하심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시편강해 - (89A). 하나님의 인자하심

시편 89:1-18, 히브리서 6:17-19, 이사야 6:2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21-11-03

말씀내용
시편의 제3권(73-89편)을 지배하는 주제는 신앙의 위기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에 비추어 자신의 현실과 국가의 현실을 봅니다. 그리고 흔들리는 신앙 속에서 하나님께 질문하며 나아갑니다. 특별히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게 함락당하고 나라가 멸망한 뒤에, 바벨론으로 붙잡혀간 백성들의 포로 생활은 그 절정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 경험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생에서 경험하였고 경험하는 것이기에, 성령께서는 이런 기도들을 시편에 기록하고 모아 주신 것입니다.
지독한 슬픔 속에서 탄식하고 고통스러울 때 신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곤경 속에 던져졌을 때, 어떻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시편 제3권에서 이런 기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마는, 오늘 제3권의 마지막 시편인 89편에서 그 결론을 보게 됩니다. 89편은 시편 전체에서 119편(165절)과 78편(72절)에 이어 세번째로 긴 시편입니다. 또 89편은 일반적인 시편과는 다른 패턴을 보여줍니다. 많은 시편이 불평으로 시작해서 찬송으로 마치는 반면, 89편은 찬송으로 시작해서 불평으로 마칩니다. 시편에서 가장 우울하고 어두운 시편인 88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떤 응답도 없는 가운데서 계속 하나님께 나아가 절규하는 기도를 보았지만, 89편은 기도가 찬송으로 시작해서 불평으로 마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멋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는 모든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는 주변의 사람들이나 자신하고만 씨름하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 그 사람이 성도입니다.


1. 기도의 정황 그리고 구조
먼저 이 시편이 쓰여진 정황을 살펴보겠습니다. 89편 전체를 읽어보면 시인은 매우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하나님께 실망스러운 상황에서 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트렘퍼 롱맨 3세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에게 아버지가 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언약을 어기셨다”라고 이 상황을 설명합니다. 베스 터너는 앞에서 찬송의 대상이 되었던 하나님이 뒤에서는 고발의 대상이 된다고 말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시편이 쓰여진 정황을 특정하기 쉽지 않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대략 두 세 가지 정황을 추측할 수 있는데, 첫째는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직전의 상황들입니다. 특히 44-45절은 하나님께서 왕위를 땅에 엎으시고 젊은 날들을 짧게 하셨다고 말하는데, 왕위에 오른 지 삼개월만에 폐위되고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호야긴의 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왕하 24:8-12). 두번째는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시대로 훨씬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89편의 기자로 소개되는 에스라인 에단이 솔로몬 시대의 현자와 동일인물이었다는 가정에서(옹상 4:31), 솔로몬 이후 르호보암 때 열 지파가 떨어져나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되었을 때,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의 쇠잔함을 보고 쓴 시일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89편이 쓰여졌다고 볼 수 있는 가능한 정황은 바벨론 포로기입니다. 나라가 망한 것을 한탄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언약의 약속을 저버리실 수 있으신가 탄원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모두 개연성이 있습니다. 다만 이런 정황들을 통해서 우리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쇠망해가고 흔들리는 상황, 즉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신 것처럼 보이는 정황에서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향한 애잔한 마음으로 드린 기도라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다윗의 언약 안에서 하나님이 약속을 맺으셨는데 왜 다윗 왕조가 붕괴되었는가 하는 것이 89편에 깔려있는 질문이고 고민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의 배경은 사무엘하 7장에 있는 다윗 언약의 내용입니다. 시인은 줄곧 다윗 언약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다윗이 자신은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으므로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네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지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울에게서 왕위를 빼앗으신 것처럼 빼앗지 않으시고 영원히 그 왕위를 견고하게 세워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시인은 다윗 언약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그 약속이 지금 어디 있느냐고 항변합니다.
이 긴 시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먼저 1-18절은 찬송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기억하고 그 내용을 인하여 하나님께 찬송을 돌립니다. 이어지는 19-37절에서 시인은 다윗의 언약을 검토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윗을 자신의 기름 부은 자로 택하여 세우셨는지, 언약 안에서 그에게 어떤 약속을 하셨는지를 돌아봅니다. 특히 이 부분은 사무엘하 7:4-17의 확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38-51절은 이 다윗 왕조에 내린 거대한 불행을 슬퍼하는 내용입니다. 52절은 89편과 제3권 전체를 마무리하는 축도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첫번째 부분인 1-18절을 상고하겠습니다.


2. 찬송 (1-4; 38-39; 히 6:17-19)
먼저 1-4절을 보면, 여기서 우리는 시인이 고민하고 질문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지금 찬송으로 자신의 기도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절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시편 89:1).”
시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은 종종 짝을 지어 나오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것은 이사일의적으로 ‘성실하신 사랑’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전체의 내용을 아는 우리는 1절의 찬송을 통해서 시인이 왕조의 회복을 기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깊은 어둠 속에서 시인이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을 향한 절규를 예배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점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일하실 때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하실 때나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며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불변하는 계획을 따라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찬양과 경배는 중요합니다. 기도를 가르치는 형식 가운데 ACTS(Adoration, Confession, Thanksgiving, Supplication)는 경배와 찬양으로 기도를 시작하라고 가르칩니다.
2절에서도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성품을 ‘세우시고 견고히 하신다’고 말합니다. 세운다는 동사는 사무엘하 7장의 다윗 언약에서 가장 중요한 동사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세우겠다고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삼하 7:5,7,13,27). 시인은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께 약속을 지키시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찬양과 경배 속에서 그렇게 합니다.
3-4절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시편 89:3–4).” 다시 ‘세운다’는 단어를 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실 때 하셨던 말씀을 상기합니다. 다윗을 ‘내가 택한 자’ 그리고 ‘내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종이라는 칭호는 아무나에게 주어지는 칭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깊이 헌신된 믿음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도우시는 것을 보장받는 것이었기에 하나의 특권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또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는 말씀에서 자손과 왕위는 다윗 왕조를 가리킵니다. 시인이 이 기도를 드리는 그 시간에는 거의 혹은 완전히 무너져버린 그 왕위 말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이 유지되는 것은 다윗과 그 후손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38-39절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노하사 물리치셔서 버리셨으며 주의 종의 언약을 미워하사 그의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셨으며(시편 89:38–39).”
시인은 자신이 처한 역사적 현실과 하나님의 약속 사이에서 고통스러워 하며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고통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맹세는 사람들이 뭔가를 보장하기 위해서 하는 행위가 아닙니까?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그것도 인간을 향하여 맹세를 하실 이유가 있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맹세를 하시는 것입니까? 히브리서 6:17-19은 이렇게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히브리서 6:17–19).”
하나님의 변하지 아니하는 뜻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찾는 자들에게 큰 안위를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과 믿음 사이에서 흔들릴 때, 성도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맹세로 주신 약속들인 것입니다.


3. 하늘의 찬송 (5-8; 사 6:2)
시인의 시야는 하늘과 땅을 아우릅니다. 그의 시야는 그저 한 곳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시인은 5-8절에서 하나님은 하늘에서 찬송 받으시기 합당하시다고 말합니다. 이 배경은 천상의 어전 회의입니다. 하늘이 찬양한다는 말은 하늘의 영적 존재들인 천사들의 찬송을 가리키고, ‘거룩한 자들의 모임’은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 있는 천사들의 모임을 가리킵니다. 찬송은 인간에게만 속한 일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늘의 천사들에게도 합당한 행위이고 요한계시록은 하늘의 천사들이 어떻게 쉬지 않고 하나님께 찬송과 경배를 드리는지를 보여줍니다.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라고 할 때 ‘기이한 일’은 다윗 언약을 가리킬 것입니다. 다윗 언약은 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은혜요, 어떤 조건 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신 자비이기 때문입니다. 6절과 8절은 수사학적 질문들입니다. “무릇 구름 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시편 89:6,8).”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직후 홍해를 건넌 뒤에 부른 노래와 그 내용이 흡사합니다(출 15:11). ‘구름 위에서’와 ‘신들 중에서’라는 말은 천상의 어떤 초자연적 존재도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7절에서 시인은 다시 ‘거룩한 자의 모임’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이 매우 무서워하고 더욱 두려워하는 대상입니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소명을 받을 때 보았던 환상에서 거룩하신 하나님 곁에 서 있던 스랍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이사야 6:2).”
스랍들이 날개로 얼굴과 발을 가린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단지 무서움의 대상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별되는 속성인 거룩함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속성은 찬송만이 아니라 두려움까지도 불러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4. 땅의 찬송 (9-14; 창 18:19; 딛 2:14)
9절부터 시인이 묘사하는 장면은 하늘에서 땅으로 향합니다. 세상 즉 이 땅은 하나님의 절대적 다스림이 진행되는 곳입니다. 9-10절은 하나님께서 바다를 다스리심을 보여줍니다.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 주께서 라합을 죽임 당한 자 같이 깨뜨리시고 주의 원수를 주의 능력의 팔로 흩으셨나이다(시편 89:9–10).”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다를 다스리신다는 일반적 이야기를 넘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하나님께서 갈라놓으신 홍해를 걸어서 건넌 일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라합은 전설 속의 바다 괴물이지만, 시편에서는 종종 애굽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기에 본문이 홍해 도하 사건을 가리킨다고 보기에 적절합니다. ‘바다의 파도’라고 할 때, 파도는 문자적으로는 교만함을 뜻합니다. 파도는 바닷물이 한계를 넘어 솟아오르는 것이기에 교만이라고 표현된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 분수를 넘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애굽도 그렇게 교만해졌을 때,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부서져서 전장에서 죽은 시체처럼 남겨지게 된 것입니다.
11-12절입니다.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남북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다볼과 헤르몬이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나이다(시편 89:11–12).”
이 말씀은 창조 때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으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남북’은 남과 북을 포함하는 모든 것, 전 우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인은 이 넓은 우주의 공간에서 두 산, 다볼과 헤르몬 산을 주목합니다. 다볼 산은 이스라엘 하부 갈릴리 바다의 남서쪽에 있는 산이고 헤르몬 산은 이스라엘 최북단의 해발 2800m에 달하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시인은 두 산을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말하는데서 나아가 이 산들이 주의 이름으로 즐거워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의인화는 산들과 산들 사이에 있는 땅의 모든 것이 창조주의 축복 아래서 누리는 풍요로운 은혜를 묘사합니다.
13-14절입니다.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이 들리우셨나이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시편 89:13–14).”
이런 놀라운 행적 뒤에는 하나님의 능력의 속성이 있습니다. 13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능력을 주목합니다. ‘주의 팔, 주의 손, 주의 오른손’이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키는 표현들입니다. 하나님은 원하시는 대로 세상의 모든 것을 움직이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대로 행하는 폭군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성품인 ‘의와 공의’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원칙을 보여줍니다. ‘의와 공의’는 종종 함께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의는 쩨데크(צֶ֫דֶק) 혹은 쩨다카라고 읽는 히브리말이고 영어로는 의/공의(righteousness)라고 번역됩니다. 공의는 미쉬파트(מִשְׁפָּט)라는 히브리말이고 영어로는 심판(judgement) 혹은 정의(justice)라고 번역됩니다. 이 두 단어는 매우 중요한 개념들을 함의하고 있는데, 우리 말 성경에서는 의, 공의, 정의 등으로 혼용적으로 번역이 되어서 그 개념들을 바르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편 72편 강해에서 설명을 드렸습니다마는, 중요한 개념이니 다시 한 번 설명하겠습니다. 이 두 단어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으로도 언급되었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세기 18:19).” 여기서는 ‘의와 공도’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언약 관계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려면 언약이 함축하고 있는 삶, 언약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전제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신실하게 행하고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 이웃을 이롭게 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공의 혹은 공도라고 번역된 미쉬파트의 뜻입니다. 정의로운 삶이고 사법적 정의를 나타내는 삶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적 맥락에서 의로운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에서 사법적 정의도 잘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회는 억울한 사람이 줄어들고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고 인애를 베푸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의 기초가 의와 공의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 백성을 명하여 ‘의와 공도’(창 18:19)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디도서 2:14에서 잘 설명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디도서 2:14).” 이런 말씀을 바르게 이해했더라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지금과 같이 비난을 당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라는 말에서 ‘주 앞에’는 주의 얼굴, 주의 임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든지, 어디로 행하시든지 하나님의 인자함과 진실함 곧 그 신실한 사랑은 언제나 그 분 앞에 행하는 것입니다. 시인이 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까?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는 그것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5. 참된 신자들의 찬송 (15-18)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첫번째 단락의 마지막 부분인 15-18절은 참된 신자의 찬송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15절입니다.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시편 89:15).”
참된 신자는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입니다. 즐겁게 소리치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백성의 찬송입니다. 그들은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은혜라는 거룩한 영향력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16절은 이들이 종일 주의 이름 때문에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주의 이름’은 이제까지 시인이 말했던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완전하심을 함축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왕위를 견고하게 세우심으로써, 이들을 존귀하게 하시고 높이십니다. 17절에서, 주님은 ‘그들의 힘의 영광’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뿔이 주의 은총으로 높아지오리니’라고 고백합니다. 뿔은 힘과 왕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당신이 기름부어 세운 왕을 높이실 것입니다. 18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우리의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라는 말로 표현하고, ‘우리의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속하였다’는 말로써 지금 무너진 다윗의 왕위를 세워달라고 간곡히 탄원합니다.


6. 교훈과 적용
우리는 89편의 첫 부분인 1-18절만을 살펴보았습니다. 전체 내용을 알지 못하고 이 부분을 대한다면 그저 단순한 찬양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인에게 그리고 그의 나라에 뭔가 좋은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것과 정반대였습니다. 이때 성도가 할 일은 하나님을 떠나 등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도리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고, 특별히 시인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예배함 가운데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기억하고 스스로 상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 중요한 일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지만, 사실 기도보다 중요한 일은 없으며,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ACTS의 순서를 따라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기도는 하나님께 찬송과 경배를 드림으로 시작합니까? 모든 상황에서 찬송과 경배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 언약적 사랑을 붙잡는 것입니다. 시인이 하고 있는 것 처럼 말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인자하심, 헤세드를 붙잡고 있었기에 그는 지금 찬송과 경배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기도할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번째로, 신자는 모든 상황에서 낙심하되 절망하도록 낙심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약속과 자신이 처한 현실이 부딪히는 상황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때 그가 찬송으로 기도를 시작하는 것은, 그가 낙심은 하고 있지만 절망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결국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으신 일은 제자들에게 절망을 의미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확증하여 세우셨습니다. 다윗 언약은 이렇게 메시아로 오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하신 당신의 인자하심, 헤세드를 입증하셨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별의 별 일을 다 만납니다. 그러나 기억합시다. 참된 성도는 낙심하되 절망하기까지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 그가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끊어질 수 없는 사랑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