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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89B). 하나님의 신실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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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89B). 하나님의 신실하심

시편 89:19-37, 사무엘하 7:14-15, 잠언 3:11-12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21-11-17

말씀내용
우리는 시편 제3권의 마지막 시편인 89편을 두번째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미 우리는 89편의 분위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는 개인적이기 보다는 공동체적인(구약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적 재난 상황이고, 현재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교회의 영적 재난 상황일 것입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시인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현실이 하나님의 약속과 다르게 전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하나님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는 시인이 가진 핵심 질문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다윗 언약 안에서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는데 왜 다윗 왕조는 붕괴되었는가?” 우리의 관점에서 이 질문을 이렇게 고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우리에게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라는 제목 아래서 1-18절을 살펴보았는데, 이 부분은 시인이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시인은 절박하게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아서라기 보다, 믿음을 붙잡아 달라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제목으로 89편의 두번째 부분인 19-37절을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는 것
이미 앞에서도 시인이 다윗 언약의 내용을 언급한 것이 있지만, 특히 이 두번째 부분을 지배하고 관통하는 개념은 다윗 언약입니다. 여기서 시인이 다윗 언약을 길게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이 사실을 상기시켜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신실하게 성취해 주시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약속에 정초하여 기도한다는 사실을 볼 수 있고, 이것은 모든 성도의 기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를 마치면서 부르는 찬송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의 2절 후반부와 이어지는 3절의 가사가 이렇습니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보네
내 맘속에 믿음 잃지 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순간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했던 일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해보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으며 그 약속을 새겨보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기대하고 신뢰하는 것입니까? 바로 신실하심입니다. 지금 시인이 하고 있는 것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2. 다윗에게 신실하셨던 하나님(19-25; 삼상 16; 삼하 7; 삼하 8:2,6,14; 롬 8:37)
제일 먼저 시인은 하나님께서 다윗 자신에게 신실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찾아 택하셨고 그를 보호하고 높이실 것을 약속하셨고 신실하게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19-25절에서 시인이 이것을 말하고 있는데, 먼저 19-20절을 보지요. “그 때에 주께서 환상 중에 주의 성도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능력 있는 용사에게는 돕는 힘을 더하며 백성 중에서 택함 받은 자를 높였으되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시편 89:19–20).” 하나님께서 다윗을 찾아내어 거룩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신 일을 말합니다. ‘거룩함 기름을 부었다’는 말은 멀리 메시야이신 주님을 암시하는데, ‘주의 성도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주의 성도들은 주의 거룩한 자들이라는 말로, 아마 사무엘과 나단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일을 사무엘에게 알리셨고(삼상 16), 나단 선지자에게는 다윗 언약의 내용을 알리셨기 때문입니다(삼하 7).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주도권을 강조합니다. 이 모든 일을 행한 것은 사무엘도, 나단 선지자도, 다윗 자신도 아닙니다. 다윗은 스스로 왕이 된 자가 아닙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실행하셨고 이루셨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능력 있는 용사에게는 돕는 힘을 더하며 백성 중에서 택함 받은 자를 높였으되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당신 자신을 강조하시는지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도 하에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일입니다. 누가 왕이 되겠다고 한 것이 아니고, 왕국을 세워달라고 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이루어 달라고 하는 시인의 간구가 절절한 것입니다.
21절입니다. “내 손이 그와 함께 하여 견고하게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로다(시편 89:21).” 사실 21절부터 25절 전체가 하나님의 약속을 세세히 확인하는 내용들입니다.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긴 일부터 블레셋과의 모든 전투에서 싸워 이긴 일, 그리고 가는 곳마다 전쟁에서 승리했던 것은(삼하 8:6,14) 전적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손’과 ‘팔’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은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모든 원수들과 그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셨습니다. 22-23절입니다. “원수가 그에게서 강탈하지 못하며 악한 자가 그를 곤고하게 못하리로다 내가 그의 앞에서 그 대적들을 박멸하며 그를 미워하는 자들을 치려니와(시편 89:22–23).” 역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원수가 그에게서 강탈하지 못하며’라는 말은 다윗이 어느 나라에게도 조공을 바치게 되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많은 나라가 다윗에게 조공을 바쳤지만(삼하 8:2,6), 다윗은 어느 나라에게도 조공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편에 계시기에 대적들은 멸망하고 다윗을 미워하는 자들은 무너질 것입니다. 사실, 이런 말씀을 바울 사도가 로마서 8:37에서 적용한 방식을 보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7).” 다윗 왕의 인생에서 보는 승승장구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1세기 로마 교회의 성도들은 매일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과 주변의 세력들이 가진 물리적 위협과 박해가 성도들을 이길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성도들이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노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나타나는 방식을 우리가 규정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제 24-25절입니다.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그와 함께 하리니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의 뿔이 높아지리로다 내가 또 그의 손을 바다 위에 놓으며 오른손을 강들 위에 놓으리니(시편 89:24–25).”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성실함과 인자함 덕택에, 다윗의 왕국과 그 힘—뿔—은 높아지고 왕국의 경계는 바다와 강들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었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이 찾아내어 세우신 다윗 자신에게 언제나 신실하셨습니다.


3. 다윗 언약에 신실하셨던 하나님 (26-29; 삼하 7:14)
두번째로 26-29절에서 다윗 언약과 관련하여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다윗 언약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사무엘하 7:14이 앞으로의 내용에서 중요한데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사무엘하 7:14).”
특별히 이 구절의 상반절과 비교하면서 26절을 읽어보지요.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시편 89:26).” 하나님은 다윗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를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해질 것이라는 언약적 표현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구원의 바위’라고 부릅니다. 바위는 힘과 영속성을 상징하는데, 이미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나의 구원의 바위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관계는 특별하고 고유하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다윗에게 믿음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또한 27절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장자로 삼을 것을 약속하셨다고 하는데 다윗이 다윗 왕가의 첫번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인 다윗은 세상의 왕들에게는 지존자가 될 것입니다.
28-29절입니다. “그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원히 지키고 그와 맺은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시편 89:28–29).” 제임스 보이스는 89편에서 ‘영원히’란 단어가 많이 사용된 것을 주목했습니다(1,2,4,28,29,36,37,46). 사무엘하 7장의 다윗 언약 본문에서도 ‘영원히’라는 단어가 7번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사실상, 하나님의 이 약속이 단지 다윗과 그의 왕손들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야,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고, 다시 예수님의 재림에서 완성되어 영원히 지속될 것을 암시합니다. 다윗 언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나 확고하고,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관한 것입니다.


4. 징계에서도 신실하셨던 하나님(30-37; 삼하 7:14-15; 히 12:6)
세번째로 본문에서 시인이 말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자기 백성을 징계하심에서 드러납니다. 30-37절입니다. 드디어 이 대목에서 시인은 자신과 나라가 처한 위기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그리고 시인은 이미 다윗 언약 안에 언급되어 있던 징계에 대한 말씀을 상기합니다. 다시 사무엘하 7:14입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사무엘하 7:14).” 시인은 이 하반절을 주목하면서, 30-37절을 쓰고 있습니다.
먼저 30-31절입니다. “만일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하지 아니하며 내 율례를 깨뜨리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시편 89:30–31).” ‘내 법을 버리며’라는 말은 배교를 가리키고, ‘율례를 깨뜨리며’는 하나님의 율례를 평범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는 뜻입니다. 30-31절은 심각한 반역이 일어났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의 자손 왕들은 하나님의 법을 버렸고 율례를 깨뜨렸고 우상숭배로 기울어졌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한 반응이 32절입니다.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시편 89:32).”
‘회초리’와 ‘채찍’은 하나님의 징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하나님께서 버리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에 충실하고 신실하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겉으로는 고난이고 고통이겠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사무엘하 7:14을 읽어봅시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사무엘하 7:14).”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다윗과 그 자손이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은 신실하심 안에서 징계를 통해 나타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히브리서 12:6).”
시인은 33-34절에서 좀 더 부연합니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시편 89:33–34).” 놀랍지 않습니까? 징계를 하겠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사무엘하 7:15).”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자손이 범하는 죄악들과 그 결과들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약속을 삼키도록 허락하지 않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의 자손 왕들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에 참여하지 못하고 누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언약이 깨어졌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언약에 포함된 약속은 미래에 곧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확실하게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될 것을 보장합니다. 마치 도장을 찍듯이, 시인은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언약에 대해서 인을 치심을 35절에서 표현합니다.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 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말을 하지 아니할 것이라(시편 89:35).”
마지막으로 36-37절입니다. “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인 달 같이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 하셨도다(시편 89:36–37).” 시인은 해와 달이 언제나 있듯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은 언제나 분명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5. 교훈과 적용 (시 55:22; 잠 3:11-12; 히 6:19)
오늘 우리는 시편 89편의 두번째 본문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주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주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몇 가지 교훈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기도에 관한 교훈입니다. 기도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정초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현실에서 눈에 보이는 상황들에 기초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지금 내가 바라는 대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고 있다고 합시다. 이때 우리는 기뻐하며 감사할 것입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그 반대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때부터 우리가 할 것은 불평과 원망이겠습니까? 어떻게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의 합당한 반응이겠습니까? 시인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에서, 눈 앞의 현실에 근거하여 기도하기 보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정초하여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편 55:22).”라고 약속하십니다. 의인 곧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정초하여 기도한다면, 결코 요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에릭 알렉산더는 “하나님이 기도의 용사를 만드실 때 먼저 그를 성경의 학생이 되게 하심으로써 그 일을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말씀의 사람이 되십시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이 내게 왜 이렇게 하시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징계를 달게 받으며 감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잠언의 권면입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언 3:11–12).” 이렇게 징계를 받는 주의 자녀들은 징계 속에서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그리고 신실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신실함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실하신 하나님은 든든한 바위가 되신다는 사실을 인하여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더 핑크의 말입니다. “불성실은 이 악한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죄 중 하나입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남자의 말은 드물지만 더 이상 그의 보증이 아닙니다. 사회에서는 부부 간의 불륜이 도처에 만연해 있습니다.… 교회의 영역에서는 진리를 전파하기로 엄숙하게 성약을 맺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진리를 공격하고 부인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독자나 작가도 이 두려운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눈을 이 파멸의 장면 위로 들어올려, 항상 신실하시고 모든 일에 신실하신 분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상쾌하고 축복받은 일인지요?”
믿을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 아닙니까? 과연 우리가 누구의 약속을 믿을 수 있습니까? 심지어 결혼의 서약도 너무나 쉽게 파기되는 세상이 아닙니까?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바위가 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고 모든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대어 우리는 모든 상황 가운데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히브리서 6:19).”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합니다. 다윗에게 신실하셨던 하나님, 다윗의 언약에도 신실하셨고 징계하심에서도 신실하심을 보여주신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여 보이셨습니다. 다윗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불순종한 다윗의 자손 왕들을 향한 징계를 홀로 다 받아 채찍에 맞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ㅂ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사 높이셨고 하늘 보좌에 앉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다윗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아직 남아있을지라도, 우리 생애를 넘어 사랑하는 구주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완전하게 성취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품은 소망은 결코 부끄럽게 되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하여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올려 드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