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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4). 저녁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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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4). 저녁의 기도

시편 4:1-8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17-05-31

말씀내용
1. 상황: 잠 못 이루는 밤에
불면증은 괴로운 병입니다. 잠을 자지 못한다는 사실도 괴롭지만,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가 걱정, 불안, 두려움이라면 이것은 더 큰 괴로움입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이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에게만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약 3000여 년 전에 살았던 다윗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를 잠 못 들게 했던 것은 악한 사람들의 근거 없는 비방이었습니다. 왕이었던 다윗에게 이것은 정치적 중상모략이었을 것입니다. 2절이 그 상황을 묘사합니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이것은 다윗을 죽이려는 군대의 위협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오히려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는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했었습니다(3:6). 지금 이 상황은 물리적 위협 보다 더욱 다윗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이 이런 상황에 처할 때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우리도 때로 경험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와서 사람들이 여러분에 대해서 비난하고 있다고 전해줄 때, 혹은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근거 없는 악평이 여러분의 직장에서 도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여러분도 잠을 이루시기 힘들 것입니다. 그리고 궁리하겠지요. 억울하고 분한 감정부터 시작해서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수 많은 생각으로 우리는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꼬박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는 행동에 옮기게 될까요? 아니면 며칠 밤을 자지 못하고 그것을 곱씹기를 되풀이할까요? 일단 행동으로 옮긴다면 나를 동정해 줄 수 있는 사람, 내 편을 찾아서 전화를 하거나 만나서 하소연을 할 수 있고 혹은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한참 똑 같은 방식으로 비난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좀 더 심하면, 명예 훼손으로 고소를 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복수를 계획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편은 바로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떻게 신앙으로 반응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평안을 얻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잠들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시편을 전통적으로 <저녁의 기도(시편)>라고 불러왔습니다.

2. 중요한 일을 먼저 해라: 내 의의 하나님께 나아가라(1; 약 5:13a)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합니까? 이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자기 편이 되어줄 사람을 찾는 대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내 의의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이 말은 “나의 무고함을 아시는 하나님”(NLT), “나의 옳음을 증명하시는 하나님”(HCSB), “당신은 나로 하여금 의로운 일을 시작하게 하시고, 나를 지켜보시고, 이 일을 하도록 도와주시고, 심판자가 되시고, 내게 상을 주시는 분”(스펄전)이라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내 의의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여러분은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흔들림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자기의 하나님을 확실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내 의의 하나님’, 이 상황에서 나를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에서 나의 옳음을 입증해주실 분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다윗은 또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기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듯이 곤궁함을 겪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사방의 대적 혹은 압박을 뚫고 넓은 곳으로 자신을 인도해주셨던 은혜를 기억하는 말입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어떻게 다윗이 ‘내 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으며, 그 하나님께 자기의 원통함을 가지고 나아가면 응답해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단지 머리로만 배운 지식이 아닙니다. 그는 가슴으로, 삶으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평상시에 참으로 하나님을 알아왔던 지식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단지 성경에 달통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는 것은 특히 이런 곤궁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능력을 드러내는 법입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먼저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야고보서에서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라는 말씀을 그대로 행했습니다(약 5:13a).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여러분은 ‘내 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 하나님을 아십니까?

[사족] 본문의 상황과는 약간 벗어나지만, 한 가지 더 다루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과 잘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지금 본문은 전혀 근거 없는 비방을 하는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의 잘못을 인하여 비난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야 합니다.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만 우리는 우리의 죄성을 보게 되고, 우리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원수들을 대하는 방식(2~5)
다윗이 두번째로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 그는 자기를 비방하는 악한 자들에게 향합니다.

A. 너희는 성공할 수 없다!(3)
다윗이 원수들을 향하여 첫 번째로 말하는 요지는 “너희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절에서 다윗은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알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선택하신 자기 백성을 결코 대적들의 손에 맡기지 않으신다는 확신입니다. 이런 확신은 하나님께 먼저 나아감으로써 다시 얻어지는 확신입니다. 다윗은 내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 안에 있는 사람인 것을 알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대적들이 아무리 다윗을 비방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대적하는 일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기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대적들에게 이것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 성령님께서 이것을 너무나 확실하게 증거해주시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는 사람은 이런 은혜를 입습니다.

B. 범죄하지 마라!(4; 엡 4:26)
그래서 그가 대적들에게 하는 두 번째 말은 범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이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더 이상 나를 비난함으로써 하나님께 범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떨며’라는 단어는 ‘분노하며’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비록 너희가 나에 대해서 분노할지라도 하나님께 죄를 짓는 자리까지 가지는 말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분노하는 것과 죄를 짓는 것은 다릅니다. 내 속에서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과 내가 분노를 표출하고 폭발시킴으로써 죄를 짓는 것은 다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4:26에서 바로 이 말씀을 인용하여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길을 다윗은 제시합니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4b).” 밤새도록 분을 내고 그 일을 곱씹게 되면, 그 분노는 사라지는 대신 눈덩이처럼 부풀어올라서 증오가 자신을 삼켜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의 대적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 모여서 다윗을 비방하는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면, 그 비방은 겉잡을 수 없는 거짓과 과장으로 부풀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홀로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살피는 행위입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 자신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원리가 아닙니까? 누군가를 붙들고 하소연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얼마나 악하고 성경적으로 바르지 못한 태도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분이 일어날 때 범죄하지 않기 위해서 홀로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하되 사람들 앞에서는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C. 하나님을 신뢰하라!(5)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다윗이 대적들에게 하는 권면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5).” 다윗이 ‘의의 제사’라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심령과 의로운 행실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죄를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정녕 하나님께 나아가 용납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그릇되고 거짓된 행실을 그쳐야 합니다. 그리고 만물을 심판하실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그들이 공연히 다윗을 비난할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만일 다윗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잘못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자기를 근거 없이 비난하는 자들을 향해서 하는 말과 태도를 주의해서 보십시오. 그는 참으로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있습니다. 주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앞서 1절에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개역-‘나를 긍휼히 여기사’)라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다윗은 정말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지금 자기를 비방하는 대적들을 긍휼히 여김으로써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긍휼하지 않고 은혜롭지 못합니다. 마치 은혜를 받은 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는 반드시 여러분의 주변의 사람들과 대적들을 향해서도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는 어떻게 그것이 드러나고 있습니까?

4. 다시 하나님께, 오직 하나님께!(6~8)
다윗은 대적들을 향해서 권면을 한 후에,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옵니다.

A. 간구: 회의주의자들의 도전(6a)
여전히 그의 기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라는 말을 다윗은 듣습니다(6a). 그들은 회의주의자들일 것입니다. “과연 좋은 날이 올까, 과연 하나님께서 좋은 시절을 주실까”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간구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6b).” 하나님께서 그 얼굴 빛을 비추어주시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를 당신의 자녀들에게 현저하게 베풀어주시는 것이야말로 이런 회의주의자들의 말을 부끄럽게 할 수 있는 것임을 알기에,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B. 경험: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7; 합 3:17~18)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기도합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7).”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다윗은 이것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기쁨은 사람들이 곡식과 포두주가 풍성해서 기뻐하는 것과 비할 수 없는 기쁨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알고 누리는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입니다. 이것은 하박국 선지자가 경험했던 기쁨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이것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것을 구하게 마련입니다. 비록 지금은 자기를 비방하는 자들이 많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을 보내고 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그 기쁨을 다시 회복시켜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C. 고백: 오직 여호와!(8)
다윗이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은 그가 왜 자기를 편들어 줄 사람에게 가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왔는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8b).” 그는 자신의 안식과 평안은 문제가 터지지 않는 상황이나, 스트레스나 압박이 없는 환경 혹은 대적들이 자기를 비방하는 일이 없는 형편이 아니라, 자기를 안전하게 거하게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품, 하나님의 날개 그늘 밖에는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귀인이나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않습니다(시 146:3).

D. 잠의 신학(Theology of Sleep, 막 4:26~27; 시 127:1)
그래서 그는 비록 밤은 늦었지만, 평안히 누워 잠이 듭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다윗의 불안함, 억울함, 대적들을 향한 분노는 가라앉았습니다. 이제 그는 평안함으로 잠이 듭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 127:1).” 하나님께 대한 이런 신뢰가 없다면 결코 우리는 평안한 잠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할 것을 했다면, 이제 여러분이 자고 깨고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바라보십시오.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고나면 그가 자고 깨고 하는 중에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어 싹과 이삭과 충실한 곡식을 맺는 것처럼 말입니다(막 4:26~27). 일을 성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이것을 믿는 자가 평안히 잠들 수 있는 것입니다.

5. 적용과 교훈: 우리의 평안과 안식이 깨어질 때
우리에게도 잠 못 이루는 밤이 있습니다. 우리의 평안과 안식이 깨어질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다윗이 만났던 것과 비슷한 상황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A. 하나님께 나아가라
여러분이 그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대적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자기가 아는 ‘내 의의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몰라 줘도, 내 친구들이 다 오해하고 배신해도, 능하고 의로우시며 만국을 심판하실 하나님이 나를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분만이 여러분의 옳음을 참되게 변호하고 입증하시는 분이십니다. 한 두 사람의 친구가 여러분을 이해해주고 공감을 표시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의 옳음을 입증해주십니다. 만인 앞에서 신자를 변호하시는 분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신자는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 나아갈 때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 그리스도를 힘입어 나아갑니다(고전 1:30).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B. 할 수 있다면, 담대함과 온유함으로 행악자들을 권고하라.
그리고 우리는 담대함과 온유함으로 행악자들을 권고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런 방식으로 행악하는 것은 그들이 그들의 의의 하나님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마치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신 기쁨을 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는 자가 누리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판에 박힌 소리도, 무의미하고 공허한 이론도 아닙니다. 다윗은 그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맛보고 누려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의 자리로 너희도 나아오라고 힘있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누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C. 하나님의 품 안에서 잠드는 행복
여러분은 여러분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긍휼함을 가지고 권면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을 안전하게 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그분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제 잠자리에 드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잠을 주실 것입니다(시 127:2). 많은 염려와 걱정 그리고 때로는 두려움과 압박으로 인하여 또는 다윗처럼 근거 없는 비난으로 고통스러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우리 연약한 인생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편안한 안식과 잠을 주시기 위하여 이 말씀을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을 잠 못 이루게 하는 그 모든 방해거리들로부터 자유하여 매일 저녁 믿음 안에서 잠 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