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SERMON
설교분류별모음

Home > 설교분류별모음 > 출애굽기 강해 (3) - 광야교회의 탄생 - 광야에서 부르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강해 (3) - 광야교회의 탄생 - 광야에서 부르시는 하나님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출애굽기 강해 (3) - 광야교회의 탄생 - 광야에서 부르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3:1-9 / 김형익 목사 / 기타 설교 / 2009-11-13

말씀내용
1. 잃어버린 40년?
출애굽기의 구조를 보면 1장과 2장은 모세의 80세까지의 삶을 보여주고 있고, 3~40장은 1년의 한 부분을 보여준다. 2장 후반부(2:16~25)는 적어도 40년의 세월이 흘러갔음을 보여준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본문의 유명한 장면은 모세의 나이 80세가 되었을 때였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자의 삶을 사는 동안 모세의 내면에서 얼마나 많은 싸움이 있었을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 것인가? 모세의 지난 40년은 400년 보다도 더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모세는 결코 하나님 밖에는 대답을 줄 수 없는 수많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 정말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신가?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이신가? 아니,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고 내 인생을 하나님은 보고 계시는가?

2.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진 40년을 또 견디고 살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괴로움이 깊어지자 드디어 기도하기 시작했다(2:23). 그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하나님께서 고통 소리를 들으셨다(2:24).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들의 기도에 대해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보여주는 동사들을 주목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들으셨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보셨고, 주목하셨다. 이것은 3장에서도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마씀하실 때 반복된다.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학대도 보았으니”라고 말씀하신다(3:7,9).

3. 하나님의 엉뚱한 응답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결과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들의 고통을 아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하셨는가? 아무 것도 하신 것이 없으시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장과는 너무나 멀리 동떨어진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 구원자 모세를 준비시키고 계셨고, 그를 부르고 계셨다. 너무나 엉뚱한 응답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기도를 시작할 때 이미 응답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아무 응답도 주시지 않는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을 종종 경험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서처럼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있는 시내 반도의 호렙산에서 한 사람을 부르심으로써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고 계셨다.

다니엘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고레스 왕 3년에, 다니엘이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고 기도를 시작했다(단 10:1 이하). 그는 3주 동안이나 금식을 하면서 기도했다. 21일이 지나서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보내신 천사를 보게 되는데, 그의 말이 이렇다.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다”고 한다(12). 그런데, “바사국 군이 이십 일일 동안 막아서 이제야 왔노라고 말한다”(13). 시간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시내 광야 호렙산에서 모세를 만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가? 내가 구하고 원하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주셨을 때뿐인가?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뭐라고 말할 수 있는가?

4. 떨기나무 불꽃이 응답이다.
이것은 모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로 부르셔서 주신 말씀은 “내가 보고, 듣고, 알고, 보았다”는 것이다(3:7,9).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왜냐하면 적어도 지난 40년 동안 모세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질문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응답은 특별한 방식으로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그 응답은 바로 떨기나무 불꽃 그 자체였다. 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임재를 떨기나무 불꽃으로 현현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시에 불붙는 나무들은 너무나 뜨겁게 내려쬐이는 태양빛 때문에 자연발화 현상으로 일어나기도 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자체가 이상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모세의 주목을 끈 것은 나무가 불붙었다는 것이 아니라, 불이 붙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무가 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3). 그래서 모세는 그 놀라운 광경을 보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 간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습으로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는가? 모세의 삶 속에서 이 광경, 하나님을 만났던 이 자리는 너무나 특별했기 때문에 모세는 유언을 할 때에 이것을 언급했다. “땅의 보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로 인하여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신 33:16).

떨기나무는 고통과 고난을 상징한다. 불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떨기나무는 소멸되지 않고 있었다. 즉, 모세가 오래도록 가지고 있던 질문,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나를 돌아보고 계시는 것인가? 나의 고통을 아시기는 아시는가?”에 대하여 떨기나무 불꽃으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심으로써 대답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고통과 고난의 현장 속에 모세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이 그와 함께 계셨다. 떨기나무에 붙은 불과 같이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와 함께 했다. 너의 고통스러운 광야의 40년의 세월 동안에 너와 함께 했었다”고 말이다. 모세에게 만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400년의 고통 속에 함께 계셨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내가 보았고, 들었고, 알고(느끼고), 보았다(알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5. 잃어버린 40년이 결코 아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이 40년은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다. 광야로 인도하여 40년을 보내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우리의 시간표는 다르다. 우리가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는 대개 준비가 된 때가 아니다.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낄 때가 종종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준비가 된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과정으로 모세를 인도해오셨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모세의 신앙은 관념적 신앙이 아니라, 향후 40년의 그 놀라운 생애를 감당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신앙으로 형성된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도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학교공부를 통해서 얻어지는 류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만들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살아있는 신앙은 신학교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간적인 면에서 고립을 경험하고 고독과 싸워가며, 결코 짧지 않은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런 시간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심으로써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하신다.

6. 예상치 못한 숨겨진 섭리의 고삐
여기서 우리는 칼빈이 말한 그대로 예상치 못했던 하나님의 숨겨진 섭리의 고삐를 만나게 되어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살아가는 삶을 배우게 된다. 광야에서, 고립의 긴 터널을 통해서 말이다. 모세는 40년을 지내왔던 그대로 호렙산에 올랐던 이 날을 시작했을 것이다. 어찌 그가 하나님을 만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실 것이라고 예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날은 모세에게 있어서는 지난 40년의 일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시작한 하루였을지라도, 하나님이 그의 삶에 찾아오심으로써 그의 삶 전체를 완전히 바꾼 하루가 되었다. 모세는 이제 자신이 이끄는대로 행하는 구원자가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만들어진다. 모세는 물론, 아무도 이런 날을 예상치 못했다. 모세의 남은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오늘 일어난 이 사건이다. 그는 하나님의 고삐에 매였다.

7. 우리를 광야로 데려가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러셨던 것 처럼, 우리의 인생도 종종 광야로 데려가신다. 하나님은 종종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우리가 가려고 하는 길을 막으시는 하나님이시다(호 2:6). 그리고 우리를 잘 꾀어서 광야로 데리고 가신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를 부드럽게 말로 타이르신다(호 2:14). 왜 그렇게 하셔야만 하는가? 그러기 전에는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세는 40년 전만 해도 자기 자신의 계획과 주도면밀함을 가지고 이스라엘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조용히 엎드리고 하나님의 계획에 귀를 기울일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 바빴다.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릴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인생을 자기가 주도해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지난 40년의 광야 생활은 모세를 정말 한가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어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우스운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삶이었을 것이다. 그의 생각을 가득히 주도하며 채우고 있던 모든 생각들, 계획들이 하나씩 둘씩 다 빠져나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데 40년이 걸린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얼마나 질긴 존재인가?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계획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가장 의미있는 방식으로 모세에게 나타나시고 모세를 부르셨다.

질문은 누구나 한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문제는 질문을 한다는 것만은 아니다. 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이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광야의 고통 가운데로 데리고 가시는가? 덜 사랑하시기 때문인가? 우리의 사정을 알지 못하시기 때문에 가만히 계시는 것인가?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도무지 응답을 주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기에 좌절하고 있는가? 여전히 당신 자신의 생각으로 당신의 마음이 가득 차 있다면 아직도 당신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인도하신 광야의 끝자락에 온 것이 아님을 알라. 당신이 지금 처해있는 형편과 처지 속에서 하나님의 교훈,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 찾아오시는 은혜를 구하라. 떨기나무 불꽃은 우리에게도 놀라운 은혜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과 고통 그리고 눈물 속에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받으라.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인생의 이야기는 이제 제대로 시작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