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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10) - 재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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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10) - 재앙1

출애굽기 7:8-25 / 김형익 목사 / 기타 설교 / 2010-01-22

말씀내용
1. 재앙을 이해하는 관점: 영적 전쟁(출 12:12; 엡 6:12)
이제 본문은 본격적으로 광야교회의 탄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설명하는 대목에 이르게 되었다. 광야교회의 탄생은 엄청난 전쟁을 치루고서야 이루어졌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는 말이다. ‘밖으로’를 의미하는 ek 와 ‘불러내다’는 의미의 kaleo 의 합성어로, ‘밖으로 불러내다’는 의미다. 교회는 애굽에서 밖으로 불러낸 존재다. 그런데 이 불러내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다. 전쟁이 없이 교회는 없고, 전쟁이 없이 구원도 없다. 이제부터 보게 되는 열 가지 재앙에 대한 기사는 단지 총칼을 들지 않았을 뿐, 하나님과 바로(또는 바로의 신)와의 전쟁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고 말씀하셨다(출 12:12). 이 전쟁은 광야 교회의 탄생에 필수과정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살펴볼 재앙 기사는 전적으로 영적 전쟁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의 말미에서 준 영적 전쟁에 대한 경고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엡 6:10~20). 혈과 육이 아니라 악의 영들 곧 마귀의 궤계를 대적해야 하는 싸움이다. 그러니 신자는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싸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강해야 하고, 주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힘입어야 싸울 수 있다. 오늘날의 교회에 이 영역처럼 약화된 영역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마귀의 존재도 믿는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어찌 그가 영적인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2. 승리의 열쇠: 말씀에 대한 순종(7:10)
이 기사에서 계속 비추어주는 승리의 열쇠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있다. 모세는 그를 낙심시키는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결국은 ‘하나님의 명하신대로 행하여’ 아론과 함께 바로 앞에 다시 섰다. 결국은 하나님이 모세를 이기셨다. 여기에 승리의 열쇠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길만큼 고집이 세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을 꺽고 이기실 때 승리가 이미 확보되는 것이다. 우리의 영적 싸움의 중요한 원리를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에녹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세를 앞선 모든 신앙의 인물들이 살면서 얻은 승리는 다 하나님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삶이고,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의합지 않고서야 어찌 동행”하겠는가(암 3:3)?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행하려는 삶의 의지와 소원이 없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3. 재앙의 서곡: 지팡이를 뱀으로 만든 이적(7:8~13)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되는 첫번째 이야기는 지팡이를 뱀으로 만든 이적이다. 이것은 아마도 이적을 보이라는 바로의 요청에 의해서 이루어졌을 것이다(9). 이것은 재앙이 아니라, 재앙의 서곡이었다. 우리의 질문은 왜 뱀을 만든 이적을 바로에게 보였는가 하는 것이다. 바로의 면전에서 지팡이를 던져서 뱀이 되게 한 것은 바로의 주권과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의 행위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전 포고이다. 바로의 왕관에 주조된 코브라의 머리가 바로의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거짓 권위와 거짓 힘에 대하여 참되시고 전능하신 주권자로서 바로의 왕권을 제압하실 것이다. 애굽 사람들은 또한 뱀을 그들의 신의 하나로 섬기고 있었다. 이 이적 사건은 바로 자신과 애굽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그것이 그리 신뢰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강조한다. 하나님은 영적 전쟁에서 비껴가시지 않으신다. 단지 자기 백성들의 마음을 배려하여 비껴가도록 인도하실 때는 있다(출 13:17). 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비껴가시거나 돌아가시지 않으신다. 특별히 전쟁을 할 때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분명한 방식으로 선전 포고를 하셨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교회가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도들은 한결같이 마귀를 대적하라고 가르쳤다(약 4:7; 벧전 5:9). 마귀를 피해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사단의 존재와 능력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이거나 과소평가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마귀가 어떤 방식으로 행하는지를 보여준다. 아론의 지팡이가 뱀이 되었을 때, 바로는 자기의 박사와 박수를 불러 그들도 술법으로 그 일을 하게 했다(7:11~12). 그들도 했다! 그들도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되었다. 물론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모든 지팡이를 삼켜버렸지만, 그들도 이적을 행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또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했을 때, 애굽의 술객들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라(22).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편지에서 “악한 자가 임할 때는 사단의 역사를 따라서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썼다(살후 2:9). 오늘날 교회는 사단의 능력을 너무나 과소평가함으로써 너무나 많은 곳에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승리를 잃어버리고 있다.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일에서 인간의 관점이 충만하다. 그러니까, 영적인 관점, 영적 전쟁의 관점에서는 도무지 볼 줄을 모른다. 그러니까, 인간적인 대응과 인간적인 지혜만이 가득하다. 교회가 영적인 기관이며,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기도하기 보다는 회의를 많이 하게 되고, 영적인 사람들보다는 지각있는 똑똑한 사람들이 주관을 하게 된다. 그런 방식으로 마귀가 교회를 삼키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말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동산에서부터 사단의 존재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심판까지 그 사단의 존재가 얼마나 교회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출애굽기도 예외가 아니다.

4. 첫 번째 재앙: 나일강이 피로 변하다(7:14~25)
이제 우리는 첫 번째 재앙을 보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나일강을 피로 변케 하셨다. 앞으로 보게 될 모든 재앙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게 하려는 목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깊이 새겨야 한다. 왜 하나님께서 먼저 애굽의 젖줄이요, 생명줄인 나일강과 모든 식수의 근원을 피로 만드시는 일을 하셨는가? 애굽 사람들의 나일강과 관련한 오시리스(Osiris) 신을 섬기고 있었고 바로는 오시리스의 화신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또 그들은 나일강에 있는 생명의 신인 누(Nu)도 섬겼으며, 나일강의 주기적 범람을 상징하는 신으로 하피(Hapi)도 섬겼는데 나일강의 범람은 퇴적을 땅에 쌓아 기름진 땅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하피는 농작의 신으로도 여겨졌다. 그러므로 이 재앙은 바로 그들이 섬기는 강의 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아니 반복적으로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이 헛된 신들이며, 그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고 신뢰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애굽 사람들의 생명 줄을 끊으신 것이다. 이 재앙은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25). 이쯤 되면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는 아론의 지팡이가 술사들의 지팡이들을 삼켰을 때, 마음이 강퍅해서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다(13). 첫 재앙이 임했지만 역시 바로의 마음은 강퍅해서 듣지 않았다(22). 그렇다면 애굽 백성들은 어떤가? 당장 먹을 물이 없어서 고생을 하면서도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왔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명줄이 끊어졌을 때, 자기들의 신이 실패하고 무너지게 되었을 때, 자기들 스스로의 자원을 의지한다는 사실이다. “애굽 사람들은 하수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하숫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더라(24).” 이렇게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성경은 보여준다.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심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심판이 이루어지지만, 성경이 인상적으로 증거하는 바는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계 16:3~7, 9). 그러니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기적인가!

5. 하나님의 경고와 교훈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경고와 위로를 준다.

A.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지 말라.
만일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지 말라는 경고다. 이제 해방되어 광야교회를 이루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다르게 반응을 하게 될 것인가? 그들처럼 많은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그들은 열 가지 재앙을 보았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으며 그리로 건넜다. 그들은 매일 만나를 먹었고, 매일 밤낮으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하나님의 임재를 눈으로 똑똑히 보고 살았다. 그들은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마셨고 경험했다. 마음이 강퍅해진 것이 비단 바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광야 교회에 속한 백성들 가운데서도 바로 이 강퍅함의 문제로 인하여, 홍해를 건넜음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보여주신 능력이 있는가?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이 있는가? 그것을 멸시하지 말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기회로 삼으라. 히브리서 기자는 신약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히 3:7~8).”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여러분의 가슴 속에 은혜로 들려지지 않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심령의 상태인지를 기억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 바로의 마음의 강퍅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거절하는 모든 자들을 향한 경고다. 불신의 진정한 문제는 지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이것은 심장이 이식되어야만 하는 심각한 문제다. 은혜에 의해서 부드럽게 된 새로운 심장으로 말이다.

B. 재앙이 축복이 될 수 있다. 자기 자원을 의지하지 말라.
본문이 주는 경고가 있다면 위로도 있다. 그것은 재앙이 축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언제인가? 언제 재앙이 축복이 될 수 있는가? 축복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만들어준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결코 재앙이 아니다. 그러나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마음을 강퍅하게 한다면 그것은 물론 재앙으로 끝날 뿐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재앙이라고 느껴지는 상황이 있는가? 그것이 당신에게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우게 하는가? 이전에 내가 누리던 축복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고 살았는가? 이제 그것들이 거두어질 때, 인생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게 되는가,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애굽 사람들처럼 자기 자원을 총동원하고 의지하여 살아가지 말라.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거두어가신다고 느낄 때, 항복하라.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그것은 결코 재앙이 아니라 변장한 축복이며 은혜일 뿐이다.

C. 그리고 영적 싸움을 싸우라.
무엇보다 대적을 인식하라. 당신이 아무리 신앙 생활을 애쓰려고 해도 당신의 경건을 무너뜨리고, 당신의 속에 죄와 온갖 유혹을 집어넣은 존재인 사단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라. 그리고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해서 당신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해져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 삶은 당신의 삶의 패배를 보장해줄 것이다. 기도하고 깨어있으라는 주님의 권고는 우리 모두에게 사활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위해서 싸우기 시작했다면 그 다음에는 교회, 주님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마귀는 한시도 쉬지 않고 교회를 허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틈이 생긴다면 마귀는 그 틈을 헤집고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교회를 허물게 된다. 당신 자신이 그 틈이 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교회 안에서 진리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기도하라. 교회에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하라. 교회에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하라. 마귀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당신 자신의 경건을 위한 싸움을 싸우고, 교회를 세워가도록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라. 그리고 싸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