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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9) - 사람을 준비시키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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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9) - 사람을 준비시키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6:14 ~ 7:7 / 김형익 목사 / 기타 설교 / 2010-01-15

말씀내용
이스라엘 백성들의 차가운 반응과 바로의 거절을 경험한 모세는 낙심 가운데서 그의 고질적인 문제 속으로 다시 빠져들어갔다.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일이 암초에 부딪힐 때마다 버릇처럼 나오는 모세의 말이다. “다른 사람을 보내소서”하는 말이다. 그리고나서 갑자기 족보가 등장한다. 족보가 등장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게다가 전체의 흐름으로 볼 때 이 족보는 마치 흐름을 깨는 것 같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야기는 6:13에서 7:8로 바로 넘어간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 족보를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어떤 의도인가?

1. 족보는 본문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족보를 둘러싸고 있는 괄호본문(6:10~13; 28~30).
첫째로 족보는 본문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기록된 부분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어떤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는가?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족보는 6:14~27까지이다. 이 족보를 마치 괄호처럼 둘러싸고 있는 유사한 본문은 6:10~12과 28~30이다. 내용은 “나는 입이 둔하다”는 모세의 불평, 자신 없음의 고백이다. 이 반복은 두 번의 사건이라기 보다는 족보를 둘러싸려는 의도로 두 번 기록된 동일한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 족보를 둘러싼 것은 모세의 불평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본문을 살펴보자.

2. 족보의 특징과 의도
A. 전체 12지파 어른들의 족보가 아니다.
제일 먼저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이 족보가 결코 12지파의 어른들에 대한 족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처음에 야곱의 장자 르우벤 그리고 시므온의 자손들을 썼고 3남인 레위를 순서대로 쓰고 있는데, 4남인 유다가 기록되어야 할텐데, 족보는 레위의 자손에서 그친다. 나머지는 소실된 것인가? 아니다. 이것은 단지 레위에 이르는 순서, 그리고 레위의 자손의 족보를 드러내고자 함이다.

B. 그 중심은 모세가 아니고 아론이다.
레위 지파 중에서도 그 중심은 아론이라는 인물에게 있다는 것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 족보의 중심선을 보면, 레위?고핫?아므람?아론?엘르아살?비느하스 로 이어진다. 그 중심은 모세가 아니고 아론이다. 26절에서 ‘여호와의 명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라고 할 때에도 아론이 모세보다 앞에 있는 것이 그것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이 족보를 주시는 것은 아론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C. 아론은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세우신 합당한 모세의 파트너이고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대제사장이다.
즉, 모세의 입이 둔한 자라는 상습적인 불만의 내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세운 모세의 조력자인 아론은 너무나 합당하고 준비된 사역자라는 것을 성경은 보여주기를 원한다. 아론은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세우신 합당한 모세의 파트너이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첫 대제사장으로 합당한 자이며, 그의 자손이 제사장이 되도록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것을 강조한다. 모세의 고질적인 불만에 대해서 하나님은 ‘무조건 가’라고 말씀하시기 보다는 합당한 사람인 아론을 붙여주심으로써 격려하시고 그 일을 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비록 후에 아론이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아론은 끝까지 하나님의 집에 충성했다.

D.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다룬다.
아론이 이 족보의 중심일 뿐 아니라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강조한다. 그 중심은 제사장으로서 해방되어 국가를 형성하게 될 이스라엘의 예배를 담당하게 될 레위 지파이다. 레위 지파가 없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 국가는 상상할 수도 없다. 그들이 전체를 대신하여 제사를 담당하기 위해서 구별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은 배워야 했다. 우리는 이제 곧 레위 지파의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보게 될 것이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고 그 일로 인하여 모세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고 했는데 이 때 나아온 사람들이 모두 레위 자손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출 32:26). 그들은 모세의 명을 받아서 금송아지를 섬긴 주역들을 칼로 도륙하는데 그날 3000명이 죽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레위 지파, 분명하게 하나님 편이냐, 인간의 편이냐 할 때 하나님 편에 섰던 이 사람들의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 모두에게 축복이 되었다.

E. 비느하스(족보의 마지막)의 열심
그 한 사람이 바로 이 족보의 마지막에 나오는 비느하스이다. 비느하스의 어머니의 아버지인 부디엘은 분명히 아프리카 흑인이었을 것이다(25). 비느하스란 이름은 에디오피아 사람 혹은 흑인이라는 의미다. 비느하스의 아버지 엘르아살은 애굽에서 그곳의 흑인과 결혼했던 것이다! 나중에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 여인들과의 음행에 빠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 남자들을 죽이도록 모세에게 명하셨고 백성들은 그 일로 인하여 회막문에서 울고 있었다(민 25). 그때 모세와 온 백성이 보는 가운데 한 남자가 미디안 여자 하나를 데리고 보란듯이 장막으로 들어가서 음행을 했다. 그때 비느하스가 분연히 일어나 창을 들고 그 장막에 들어가 음행을 하는 남자와 여자를 뚫어 죽였다. 하나님은 이 사건으로 인해 비느하스를 칭찬하셨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라(민 25:11~13).”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에 자신을 드렸다. 그는 죄가 무섭게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로 뚫고 들어오는 것을 막아낸 인물이다. 비느하스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도 대제사장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수 2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그 열심이 이 족보의 마지막에 비느하스라는 인물을 넣음으로써 마무리하게 한다.

3. 그러나 역시 인간의 족보다.
그러나 이 족보가 부여주고자 하는 레위 지파 아론의 중심을 이해하더라도, 이 족보가 결국은 인간의 족보에 불과하다는 것을 동시에 보지 않을 수는 없다. 아론은 전반적으로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지만, 금송아지 숭배 사건에 주역을 담당하게 되는 수치스러운 실패를 경험하였다. 그의 두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만들어 분향함으로써 성막에서 하나님의 불을 받아서 죽었다(레 10).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대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서 가르쳐주셨다. 아론의 자손이 아니지만, 레위 지파로서 아론과 모세의 사촌인 고라를 보라. 그는 출애굽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당을 짓고 사람들?족장 250명?을 선동하여 모세와 아론의 리더십에 대해서 반기를 들었던 인물이다(민 16). 그는 모세와 아론을 가리켜 교만하다고 지적하였다. 결국 하나님은 땅을 벌려 그들을 산채로 다 삼키게 함으로써 그들을 다루셨다. 고라 역시 이 족보가 결국은 인간의 족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4. 출애굽의 준비완료
결국 하나님께서 이 족보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이 족보는 인간의 족보다. 깨어지기 쉽고 온전하지도 못한 인간들의 족보다. 모세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서 느끼고 있듯이 부족하고 기준 미달의 사람들의 족보다. 그러나 이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은 아론이라는 인물을 모세에게 붙여주시는 것이 너무나도 합당하고 정확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족보를 마치면서 두 가지를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A. 바로에게 신이 된 모세
첫째는 모세가 바로에게 신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7:1). 영어 NIV에서는 “I have made you like God to Pharaoh”라고 했지만, 히브리어 원문은 “I have made you God to Pharaoh”라고 되어 있다. 개역성경의 번역이 더 정확하다.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에게 하나님이 되게 하셨다. 다시 말하면 입이 둔하다고 말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를 통해서 말하고 행동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바로는 스스로에게 신적 권위를 부여한 왕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종교적 신념은 바로는 신들이 육화된 것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셈이다. “바로는 신이 아니다. 노예된 이스라엘의 목자와 주권자는 나 여호와 하나님이다. 이제 내가 네게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주겠다. 너는 짐승들, 피조물들을 명할 수 있고(재앙들을 일으키는 권위를 일컫는다) 심지어 죽음과 생명 까지도 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하나님처럼 말이다.”라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변하였고, 하나님은 그 안에서 그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셨다. 이것이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의 의미이다.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모세는 더 이상 바로 앞에 서서 떨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바로에게 모세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줄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B. 모세의 선지자가 된 아론
하나님은 아론은 모세의 대언자가 되리라고 하셨다. 대언자는 선지자와 같은 말이다. 선지자가 선지자를 두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바로에게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에, 모세도 선지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선지자를 붙여주심으로써 모세를 바로 앞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붙여주신 선지자 아론은 합당하고 적합한 인물이다. 그것을 지금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은 보여주셨다.

C. 과정을 어렵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
여기서 우리는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왜 이 출애굽의 과정을 어려운 과정으로 끌고 가시는지를 엿볼 수 있는 하나님의 의도를 읽는다. 바로의 마음의 강퍅케 됨, 하나님께서 표징과 이적을 행하심, 하나님께서 손을 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심 등은 다 한 가지 목적과 의도를 지향하고 있다.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7:5).” 하나님께서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한 번에 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애굽 사람들에게 알게 하고자 하신다. 이것뿐 아니다. 하나님은 이 과정 속에서 모세와 아론도,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고 깨닫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이 왜 이렇게 잘 풀리지 않느냐는 질문이 일어날 때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엎드려야 한다.

5. 하나님은 일을 하시기 전에 사람을 준비시키신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사람을 준비시키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려고 하셨다면, 단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일만이 필요한 모든 것이었다면, 왜 40년 전에 모세를 통해서 하시지 않으셨는가? 아니 꼭 사람이 필요한가? 기적과 능력으로 애굽을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해방시키실 수 없으신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철저하게 교훈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 하나님은 일을 하시기 위해서 사람을 준비시키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희생시켜서 일하시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신다. 그를 설득하시고 그를 단련시키시고 그로 합당한 자격을 갖추기까지 기다리신다. 종종 우리에게는 이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느끼기가 쉽지만, 하나님은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를 기다리시고 훈련시키신다. 그리고 아론을 모세에게 붙여주시듯이, 마가를 준비시키셔서 베드로에게 붙여주시듯이, 디모데와 디도를 바울에게 붙여주시듯이, 우리에게 가장 합당한 사람을 준비시키셔서 붙여주신다. 시간이 지연된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게 응답된다고 해서 사람의 계산과 방식으로 돌아서지 말라.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방면에서 훈련시키기를 원하시는가 하는 시각을 가지라. 그리고 그 시간에 하나님께 어디선가 또 한 사람을 준비시키고 계시는가를 생각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배우라. 이런 토대 위에서 이제 생각해보라. 당신 자신은 얼마나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하게 준비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모세가 나이 40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나이 80에 이제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있는가? 그렇다면 전보다는 훨씬 더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단련하시고 사명을 감당하기에 합당하도록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자리에 이르지 못했다면 아직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인생에 맡기신 일을 감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런 의미는 알지 못한 채, 그저 내 일이 잘 되도록 하나님께 간구하고 살아가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맡기신 일을 찾아가고 있는가? 찾았는가? 당신 자신이 당신의 인생의 모든 것인가? 당신의 가족이 당신 인생의 주인인가? 아니면 정말 당신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살고자 하고, 그 일을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 중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라. 이것이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 모두의 인생에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