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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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시대/뉴스 읽기(음향 사고로 인해 음성/영상 일부를 삭제하였습니다.)

김형익 목사 / 기타 강의 / 2023-07-16

말씀내용
“시대/뉴스를 읽지 말고 영원한 것들을 읽어라.”(헨리 데이비드 소로)
“어떤 이들에게는 뉴스가 바로 그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그들의 정체성은 살아가는 장소나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읽는 신문이나 시청하는 뉴스 프로그램(유튜브)에서 발견된다.”

1. 읽고 볼 것이 너무 많은 시대
A. 1844년 전신(telegraph)의 발명과 2005년 유튜브의 발명 + 인공지능과 번역의 미래—“전신이 빚어낸 정보세계로 인해 온 세계가 뉴스를 위한 배경으로 전락하자 사람들은 일말의 통제감마저 상실해 버렸다. 세상만사가 모든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제 역사상 최초로, 질문과 무관하게 답하고 때로는 응답할 권리조차 허용하지 않는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전신의 주된 능력은 정보의 운송량이지 정보를 수집하고 설명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었다.”(닐 포스트먼, 『죽도록 즐기기』)
B. “우리 시대의 보통 사람은 볼 것이 너무 많다는 것 때문에 볼 수 있는 능력을 잃는다.”

2. 무엇이 문제인가?
A. 뉴스의 우상화: 뉴스가 삶의 의미와 가치를 판단하는 지평이 되면, 뉴스는 우리 삶에서 지나치게 중요해지고 심지어 아침기도를 대체할 수도 있다!
i. 잡다한 뉴스에 집착하는 모습은 창조주의 지속적 사역에 대한 부주의-심지어 불신-를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 속의 덧없는 드라마와 추문들이 우리를 형성한다면 우리 시대의 진짜 사안과 관심사에 의미있고 구속적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된다.
ii. 이것이 내 재정 형편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이 구경거리가 재미있을까, 문화적, 정치적 전투에서 우리 편이 이기고 있는가를 묻는 태도
iii. 이 사건들의 어느 부분에 하나님의 손이 있을까를 묻지 않는 태도
B. 부주의의 질병: 신앙은 하나님을 주목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주목할 때 우리는 주목하는 대상을 닮아간다. 어떤 것에 깊이 주목하면서 변화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고후 3:18).
i. “주목하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다.”(시몬 베유)
C. 지적/정신적 소화 불량(정크 푸드와 같은 정크 뉴스):
i. 편파적 논평, 낚시성 기사, TV 뉴스보도, SNS 피드들은 쉽게 소비되지만 더부룩함을 남긴다. 이웃의 필요에 주목하고 싶다면 사려 깊은 저널리즘, 긴 형태의 에세이, 책이라는 좀 더 충실한 식단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메시지를 단 한 줄이라도 읽어야 할 책임이 나에게는 없다.” (소로)
ii.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고요, 긴 산책, 또는 손으로 조용히 하는 설거지일지도 모른다. 넷플릭스는 길르앗의 향유가 아니다.
D. 이웃 사랑에 실패: 하루의 하찮은 정보에 습관적으로 주목하면 우리 지성과 정신은 소화불량에 걸리며 집단 사고에 취약해지고, 정서 반응은 변형되고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웃에 주목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i. 뉴스가 공동체를 형성하고 분열을 가속화한다. “공유된 관심이 공동체(우정)를 형성한다.”(C.S.루이스)

3. 뉴스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조상, 헤겔(Friedrich Hegel, 1770-1831) “아침 신문을 읽는 것은 현실주의자의 아침 기도이다.”
A. 헤겔의 철학이 설득력을 발휘한 이유는 이후 수십년 간 기술과 과학의 발달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B. 헤겔의 진보 개념은 세속적 기독교라고 규정될 수 있고, 정치적 좌파와 우파에 속한 사람이 헤겔적 전제를 공유한다.
C. 역사를 보는 이 관점은 필연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었고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는 시간적 집중을 더 강화시켰다.

4. 뉴스 전성 시대—뉴스는 삶의 배경을 구성하는 한 측면이 아니라 메인 드라마다.
A. 뉴스 독자는 진보의 서사에 참여한다는 의식과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진짜 삶과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B. ‘역사의 포물선’에 근거하여 뉴스를 읽을 때, 뉴스가 다루는 사건들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고, 선인과 악인을 나누게 되고, 역사의 잘못된 편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매도된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 구호
C. 역사의 포물선은 로마의 독수리나 자유 민주주의를 향해 기울지 않는다. 오히려 이 모든 사건들은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신 말씀 안에서 상대화된다.

5. 사라져가는 공동체와 뉴스의 역할 그리고 미디어의 힘
A. 소비하는 뉴스 브랜드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특성이 될 수 있다. 사회의 다양한 공동체의 정체성—가족, 장소, 민족, 종교 전통—이 약화될 때, 미디어가 형성하는 세속적, 장소 초월적, 시장 주도적 공동체에 포섭되기 쉽고, 미디어가 형성하는 공동체는 친밀하고 지속성있는 공동체의 대체물이 될 수 있다. 여기서 개개인은 ‘원자화된 개인들의 무리’이고, ‘디지털 무리’(한병철)이다.
B. 공동체의 결속이 약화되면서, 더 먼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대리적 참여는 늘어났다. *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선을 베풀수는 없기에 제비뽑기한 것처럼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다른 조건에 의해서든 우리와 가까이 하게 된 사람들을 특별히 마음에 두어야 한다.”(아우구스티누스)
C. 디지털 기술은 많은 사람을 연결하고 동원하는 힘이 있지만 그것이 형성하는 공동체는 취약하고 무너지기 쉽다. *사이버, 메타버스, 디지털 교회?
D. 가짜 뉴스에 대한 팩트 체크는 무력하다. “소속감이 사실 보다 강하다.”

6. 뉴스의 긍정적 의미와 그리스도인의 태도
A. 선지자는 시간 밖에서 오는 말씀을 시간 속에서 선포하는 사람이기에,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사이의 고통스러운 긴장 가운데서 살아갔다.
B. 선지자의 어려운 과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영원한 말씀의 빛에 비추어 당대의 뉴스에 대응하도록 촉구하는 것이었다.

7. 뉴스를 대하는 위험한 태도
A. 탈진실적 자세를 피하라—악당을 찾아내야 한다는 고집,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분명한 경계선을 긋고 싶은 욕구
B. 자신의 구원에만 개인주의적으로 관심을 갖는 태도를 피하라. 그런 태도는 부도덕한 사람과 집단들이 부당한 권력을 쥐고 흔들 기회를 활짝 열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시대의 사건들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신실하게 순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8. 뉴스에 대한 올바른 주목은 두 가지 움직임을 가져온다.
A. 현세적 일들(뉴스)에 대한 거룩한 초연함
i. 하나님의 말씀에는 신실하되 승리에는 초연한 순교자의 자세
ii. 그리스도인은 당대의 하찮은 일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고 영원한 진리에 전념해야 한다.
B. 책임있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헌신

[교훈과 적용]
9. 종말론적 지평에서 뉴스를 읽는 그리스도인의 태도
A. 우리는 어떤 역사적 포물선 안에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대신, 오늘의 뉴스에서 하나님의 손을 찾으면서 하나님이 그분의 지속적 구속 사역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어떻게 부르시는지 분별하는 법을 찾을 수 있다.
B. 뉴스의 의미는 그것이 영원한 드라마와 갖는 수직적 관계에서 찾아야 하고, 뉴스의 가치는 그 사건이 시간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아니라, 그 사건이 하나님의 카이로스 드라마에 참여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C. 그리스도가 모든 현실 속에서 은혜를 베푸시고 늘 함께 하시며 그분 안에서 역사가 변화될 것을 믿는 태도는 시대의 비극적 절정들을 약화시킨다.
D.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우리의 매일과 매주를 구성하면 그것은 우리가 그분의 이야기를 지향하게 하고 하루의 뉴스를 그분의 삶과 사역의 구속적 패턴에 맞추도록 준비시킨다.

10. 공동체가 되는 것
A.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건강하지 않은 역동 바깥에 뿌리를 둔 구체적 공동체에 의해 빚어지는 일이다. 우리의 공동체가 하나님에 대한 공통의 관심을 중심으로 형성되지 않으면 다른 대상들이 나타나 우리의 관심과 충성을 놓고 경쟁을 벌일 것이다.
B. 팀 켈러, “깨어 있는 복음주의자들은 MSNBC와 진보적 트위터의 영향을 훨씬 많이 받는다.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은 폭스뉴스와 그 안의 특정 영상들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하루에 여덟 시간에서 열 시간 동안 그런 것들 안에서 살고 있다. 교회에는 일주일에 한 번 간다.” ➔뉴스 소비자인 우리는 교회 교인 보다 같은 뉴스를 듣는 이들에게 더 큰 동지애를 느낄 수 있다.
C. 교회가 진정한 공동체로 형성될 때, 교회는 그들이 속한 시대에 더욱 제대로 반응하고 더 깊이 참여하고 헌신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