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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신조](9) 제한 속죄(1) (2:1~2)

김형익 목사 / 교리강의 / 2018-01-07

말씀내용
9강 제한 속죄(1) (2:1~2항)

속죄 교리에 대한 두 가지 입장
[알미니안] 제한 없는 보편 속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유기자들을 포함)을 위해서 죽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어떤 사람의 구원도 보증하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를 거부할 수 있다.
[개혁주의] 제한 속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택한 백성을 위해서 죽으셨다. 속죄는 오직 택자들의 죄에 대한 값을 지불하신 것이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으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헛되이 죽으셨고 존귀한 보혈을 낭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혁주의의 제한 속죄]
속죄가 제한되었다는 것은 그 가치와 능력에서가 아니라 계획(하나님의 의도)과 성취에서 제한되었다는 의미다.
속죄의 성취는 오직 택자들에게만 제한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는 확정적 속죄(definite atonement) 또는 특정적 속죄(particular redemption)라고 부르기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특정한 수의 사람들을 위해 구원을 자신의 공로로 얻으셨을 뿐 아니라 그 특정수가 반드시 실제로 구원을 받는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그리스도를 선택한다”는 개념은 없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신자들의 마음에 믿음을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으로 이해한다.

[1항-속죄의 필요] 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셔야 했는가?
“하나님은 지극히 자비로우실 뿐 아니라 지극히 공의로우시다.”(알미니안은 하나님의 사랑을 높이고 공의는 간과, 축소한다).
“그분의 무한하신 위엄에 거슬러 범한 우리의 죄들”--죄의 무게와 크기를 결정하는 요소
하나님의 공의는 만족되어야만 한다.
죄인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정죄, 영원히 받을 형벌을 피할 수 없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으나 어떤 이들은 여전히 지옥으로 간다면, 하나님께서 죗값을 그리스도에게 한 번 물으시고 멸망하는 사람들에게 두 번 물으시는 것이 되므로, 공의로운 것이 될 수 없다.

[알미니안의 왜곡된 논리]
아담 타락 후에,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자세를 바꾸셔서,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시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만을 요구하신다.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선택하기로 자유의지를 발휘하는 것만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의 원죄를 제거해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으시는 유일한 죄는 복음에 대한 거부다.
사람의 불신앙이 영원한 멸망의 원인이며, 사람이 아담 안에서 범죄한 원죄는 멸망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알미니안의 왜곡된 논리에 대한 개혁주의의 반론]
불신은 죄중의 죄이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인을 정죄하시는 유일한 죄는 아니다.
사람은 원죄와 자범죄로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다.

[죄의 심각성]
죄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항하는 공연한 반항과 반역이다.
모든 죄는 크든 작든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에 대한 책임도 물으실 것이다(마 12:36).

[구원받는 죄인의 자기 인식]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진노에 놓여 있으며 율법의 저주에 놓여있는 자로 자신을 머리와 가슴으로 인식하는가?

[하나님의 진노와 인간의 분노]
인간의 분노에는 언제나 죄가 작동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의 결과이므로 순수하고 선하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만족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형벌을 면하는 길]
눈물의 회개는 속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살인자가 자신의 범죄를 눈물로 뉘우친다는 사실이 법의 형벌을 면하게 할 수 없듯이!
범죄는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
인간은 스스로 속죄를 이룰 수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배상과 속죄) 제물을 제공하셨다.

[2항-속죄의 원천] 하나님께서 친히 속죄의 원천과 샘과 근원이시다.
(아더 핑크) “오직 하나님만이 속죄의 근원이시다. 하나님의 뜻이 결정적인 요소였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속죄를 하기로 뜻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속죄가 샘솟는 동기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속죄의 유발자며, 하나님의 영광이 속죄의 목적이다.”
“죄인을 향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태도를 돌려놓은 것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었다?” →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속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였다(요 3:16; 요일 4:9~10; 롬 8:32, 29~30).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기에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적용점]
“속죄가 당신 편에서 불가능한 것임을 볼수록 그리스도의 사역이 영광스러워지고 그 십자가 뒤에 서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영광스러워진다.”
“우리가 택하신 백성에 속해 있는지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로 도망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로 도망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선택의 열매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자들,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한 다른 모든 길을 부인하고 예수님께서 자기를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신다.”
호라티우스 보나르(Horatius Bonar, 1808~1889)의 찬송시

내가 살지 않은 삶 위에
내가 죽지 않은 죽음 위에
다른 이의 삶, 다른 이의 죽음 위에
내 모든 영원을 의지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