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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신조](8) 선택과 유기(7) (1:17)

김형익 목사 / 교리강의 / 2017-12-31

말씀내용
8강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7) (1:17항)

17항이 다루는 주제: 유아기에 죽은 신자들의 자녀
[17항] 본래 도르트 총회 위원회의 초안에 없었는데, 부록으로 첨가
(알미니안의 주장) 유아들이 주님을 믿을 수 없고, 하나님께서 유아들 안에 어떤 믿음도 예지하실 수 없으므로, 유아기에 죽은 (신자의) 자녀들의 선택을 말할 수 없다. 또 유아들이 복음을 거부할 수도 없으므로 유기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원죄만으로 정죄를 받지는 않고, 유아들은 대략(?) 무죄하므로 모든 유아는 구원을 받은 것이다!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원죄 교리를 믿지 않는다).
도르트 총회는 ‘언약의 자녀들’만을 다루기로 했다.

[개혁주의 안의 다양한 이견들]
모든 유아가 무죄하기 때문은 아니지만, 언약의 자녀들 뿐 아니라 모든 유아가 구원받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 벤자민 워필드, 찰스 핫지, 찰스 스펄전, 존 길..
(존 길 John Gill, 『신학의 체계』) “비록 유아기에 죽은 자녀들의 선택이 우리에게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고 계시되지 않았지만 아무도 선택받지 못했다기 보다 모두 선택되었다고 합리적으로 추측할 수 있으며 사랑의 판단을 따른다면 오히려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도르트 총회의 주저와 결론]
[주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는?
[결론] 오직 “신자의 자녀’(언약의 자녀)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0장 3항] “영아기에 죽은 택함 받은 영아들은 성령님을 통해 중생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 성령님께서는 당신이 기뻐하시는 때와 장소와 방법을 따라 역사하신다.” → 언약 밖에 있는 자녀의 상태와 영원한 운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성경의 침묵과 언급] 성경은 불신자의 자녀들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서 침묵하지만, 신자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언급한다.

[성경의 가르침-언약의 자녀와 불신자의 자녀의 차이]
성경은 믿는 부모에 대해 너희와 너희 자녀들에게 약속을 주셨다고 말씀한다(행 2:39).
은혜 언약 아래서 태어난 자녀들은 깨끗하고 언약 밖의 자녀들은 그렇지 못하다(고전 7:14).
→ 남편이나 아내, 부모 중 한 사람만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거룩하게 여겨진다.
→실제적으로가 아니라, 언약적 의미에서 거룩하다(구별되었다)는 의미

[한 걸음 더]
신자의 자녀도 죄 가운데 잉태하고 태어났기에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그러나 신자의 자녀들은 언약의 자녀들이고 복음의 약속과 인침이 있는 존재다.
모태에서부터 거듭난 사람: 예레미야(렘 1:5), 세례 요한(눅 1:15,41,44)
(사 44:3) ‘후손’ = 싹 → ‘소자들, 유아들에게’
유아기에 죽은 ‘경건한’ 부모의 자녀는 믿음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믿음의 씨가 심겨져있다. 그러므로 경건한 부모는 유아기에 죽은 자녀들의 선택과 구원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경건한’ 부모 =(≠) 믿는 부모
단순히 신앙고백만 하는 부모가 아니다.
자녀들의 영원한 복락에 마음을 쓰는 부모, 자녀들을 위해 부르짖는 부모, 경건한 부모는 자녀들이 구원받았고 그리스도의 보혈 아래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전혀 안식하지 못한다. 경건한 부모는 자녀의 구원을 가볍게 말하지 않고, 자신들의 구원에 대해서도 확신하기를 원하는 진지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자녀의 구원이 부모의 경건에 달린 것은 아니다! 자녀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부모의 경건이나 불경건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반론] 많은 언약의 자녀가 성장하여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께 등을 돌린다. 이건 뭔가? 우리 자녀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으면 구원받았다고 믿어야 하는가?
17항은 장성해서 성인이 된 자녀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가정중생교리] 성장한 자녀들이 스스로 중생하지 않은 증거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그들을 중생자로 여겨야 한다. 자녀들이 믿고 회개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자녀들을 택함 받은 자로 믿어야 한다.
도르트신조는 가정중생론을 거부하지만, 이 오류에 반대하려다가 17항이 긍정하는 위로를 상실해서는 안 된다.
토머스 맨턴의 위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자유를 어떤 가족도 자신들의 공로로 제한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우리는 믿는 부모의 모든 자녀에 대해 선한 소망을 가질 더 많은 이유가 있다고만 일반적으로 말할 뿐이다. 선택의 은혜는 언약의 통로를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흐르므로 그런 소망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적용점]
교회의 책임
오늘날 교회는 성인과 유아 모두의 ‘거듭남’과 ‘회심’에 관심을 쏟지 않는다. 그래서 ‘경건한’ 부모, ‘경건한’ 어른을 보기 쉽지 않다.
“부모에 대해 가장 진지할 때 자녀들에 대해서 가장 너그러울 수 있다.”는 명제를 적용하기 어렵다.
(토머스 맨턴)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는 최선의 길입니다... 당신의 불쌍한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워서 당신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도록 하십시오.”
부모의 책임
자녀 신앙의 책임은 교회가 아니라 부모가 진다(신 6:4~9).
(토머스 맨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혼을 방치한 것 뿐 아니라 자녀들을 방치한 것에 대해서도 당신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자녀들에게 임하도록 문을 열지 않은 것에 대해 당신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소년, 소녀, 청년들 자신의 책임
영아/유아 시절 부모님이 그 영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었다.
자라서 분별하는 나이가 되었다면, 믿음과 회개의 증거들이 기대된다. 부모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소년, 소녀들, 청년들이 교회 안에 자라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우리에게는 사람의 좋은 소리가 아니라,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의 위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