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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신조](29) 성도의 견인(4) (4:9~11)

김형익 목사 / 교리강의 / 2018-08-26

말씀내용
29강 성도의 견인(4) (4:9~11항)

[4:9~11 본문의 내용]
9항 견인의 확신
10항 확신의 원천
11항 확신이 항상 느껴지지는 않음

[(4:9-1) 구원의 ‘충만한’ 확신은 가능한가]
(일화) 손양원목사님의 영화를 보면서...
거짓확신도 있다(마 7:21~23; 고전 13:1~3)
(로마 카톨릭)
소수의 성인이나 순교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확신 없이 살다 죽는다.
신자는 낙관하기 전에, 선행을 하고, 교회에 충성하며, 사제의 말을 신뢰해야 한다.
그럼에도 신자 대부분은 연옥에서 불로 정결함을 받은 후에야 천국에 갈 수 있다.
(종교개혁자--루터, 칼빈) 신자에게 확신은 필수다!
(청교도) 확신은 구원 얻는 믿음의 본질은 아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8.1~3) “신자들은 자신이 은혜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이생에서 확신할 수 있고, 하나님 영광의 소망 가운데 기뻐할 수 있다...이 절대적인 확신은 믿음의 본질에 속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참된 신자도 이 확신에 참여하기 전까지 오래 기다리고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별계시 없이도 평범한 수단을 적절히 사용하면 그것(확신)을 얻을 수 있다.”

(4:10)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견고한 위로와, 영원한 영광에 대한 틀림없는 보증을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이 세상에서 갖지 못한다면, 그들은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자일 것이다.”
(책) 토마스 브룩스, 『지상에서 누리는 천국』

[(4:9-2) 하나님의 보존과 성도의 견인]
하나님의 보존하심이 없다면 성도의 견인도 없다.
성도는 믿음으로 이 두 가지를 확신한다.
확신의 정도는 신자마다 다른데, 그것은 믿음의 분량에 따른다. 믿음이 강할수록 구원의 소망과 믿음의 확신도 강하다. 확신이 부족한 것은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다.
신자가 하나님의 약속들에 더 많이 호소하며 약속들을 더욱 붙잡는 법을 배울수록 구원에 대한 더 큰 확신을 받을 것이다.

[(4:10-1) 압도적 체험이 확신에 미치는 영향] “하지만 이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거스르거나 무관한 사사로운 계시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풍성하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는 믿음에서 생겨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성령의 역사는 참된 거룩한 변화를 일으키고 이것은 믿음과 확신을 더해줄 것이다(고후 3:18).
성령님께서는 성도의 영과 더불어 그가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임을 증거하심으로 확신을 더하신다(롬 8:16~17).

[(4:10-2)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확신과 마귀가 주는 거짓 확신 구별 방법]
“주님께서 특정 약속을 우리 마음에 적용하실 때 우리 영혼의 상태와 주변 상황이 어떠한가?”
공개적이거나 은밀한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이 어떤 말씀의 약속을 받고 구원의 소망으로 가득찬다면 그 경험의 출처는 의심할만하다. “성령님은 죄의 낙을 누리는 사람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시지 않는다!!!”
죄에서 건짐받으려는 갈망, 죄에 대한 진정한 애통함, 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을 때, 말씀의 약속으로 소망을 품게 된다면, 그것은 성령님이 주시는 확신일 것이다.

(4:10) “마지막으로 간절하고 거룩하게 선한 양심과 선한 일을 사모함에서 생겨난다.”
“그 경험의 즉각적인 효과와 열매는 무엇인가?”
삶이 변하지 않고 죄에 계속 머무르고, 하나님과의 동행을 갈망하지 않고 죄와 싸우려하지 않는다면, 주어진 확신은 가짜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약속으로 마음이 녹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일으켜지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고 예수님과 동행하려는 갈망을 준다면, 이 확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이 경험은 우리를 낮추는가, 자만하게 하는가?”
자만하여 다른 사람을 무시하게 하는 경험은 거짓된 확신일 수 있다.
성령의 열매를 맺히는(갈 5:22~23) 영적 경험은 주께서 주신 것이다.

[바울 사도가 주장하는 확신의 근거(딤후 1:12)]
삼층천 경험을 내세우지 않는다(고후 12:1~6).
사도의 확신의 세 가지 근거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 관계가 있다는 자각: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은 믿음과 회개(회심)로 주어진다.
그리스도께 자신을 돌보실 능력과 의지가 있음을 아는 지식: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노라.”

[(4:11-1) 의심의 문제] “한편 성경은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온갖 육신의 의심들과 맞서 싸워야하며 큰 유혹들 속에서 이 믿음의 충만한 확신과 견인의 확실함을 늘 느끼지는 못한다고 증거한다.”
참된 성도에게도 의심과 절망의 때가 있다(시 77:3,7~9).
의심에 대한 잘못된 관점
“의심은 죄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므로, 우리는 무조건 믿어야 한다.”
“의심은 좋은 것이고 신자는 의심할 필요가 있다.”

[(4:11-2) 바른 의심과 잘못된 의심의 구별]
자신의 정직함이나 동시에 의문을 제기할 때 그 의심은 죄악되지 않다.
믿음의 확신을 주장하지만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는 사람들은 자신과 자기 신앙의 진정성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때 의심하지 않는 것은 가장 나쁜 형태의 자기 기만이다.
그럼에도, 의심은 미화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는데, 은밀한 죄 가운데 있을 때 확신이 없고 의심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고, 죄악된 의심이다.
“하나님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그 약속들이 나를 위한 것인지 의심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면서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것은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토록 큰 죄인인 내게 그 큰 선하심과 큰 은혜와 많은 복이 주어졌다니 이것이 정녕 나를 위한 것인가?” 하는 태도는 은혜의 표지다(눅 1:34,38).

[(4:11-3) 회개해야 하는 의심]
인간의 마음은 부패하여 기만적이기에(렘 17:9) 우리가 가지는 대부분의 의심은 불신앙이며, 하나님을 향햔 적대감일 수 있다.
아삽은 의심과 의문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함을 회개했다(시 73:22).

[(4:10-4) 의심도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고전 10:13)]
‘피할 길’ =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으로 그들 안에 견인의 확실함을 새롭게 되살려 주신다.”

[적용점]
하나님께 ‘더 큰 믿음과 확신’을 구하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수단인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붙잡으라.
피상적 수준의 확신이라는 자기 기만에 머무르지 않도록 조심하라.
의심의 문제와 정직하고 치열하게 싸우되,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라.
죄 가운데 머무는 삶에서 벗어나 십자가로 달려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