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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신조](28) 성도의 견인(3) (4:6~8)

김형익 목사 / 교리강의 / 2018-07-15

말씀내용
28강 성도의 견인(3) (4:6~8항)

[4:6~8 본문의 내용]
6항 하나님께서 그분의 택하신 자들을 잃어버리도록 허락지 않으심
7항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택하신 자들을 다시 회개로 새롭게 하심
8항 삼위 하나님의 은혜가 보존하심

[소돔과 고모라에서의 구원--롯의 아내의 문제]
구원받은 사람은 네 사람인가, 세 사람인가?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거의 구원받았으나 잃어버린 바 된 사람의 전형
롯의 아내는 아브라함을 따라 남편과 함께 갈대아를 떠났고, 남편과 같은 식탁에서 먹었고 같은 침대에서 잤다.그녀는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잘 알고 있었고 언약의 특권들을 누렸지만 멸망받았다.
롯은 많은 죄를 지었으나 은혜로 겨우 구원 받았다(벧후 2:8; 벧전 4:18).

[질문?구원받은 것에 가깝지만 결국 멸망할 수 있다면, 과연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경건하게 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죄악된 삶을 살게 하는 핑계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들이 롯의 아내처럼 끝날까 두려워하지만, 위선자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신자 안에는 여전히 자신이 거의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들이 많이 남아있다.
하나님의 참된 자녀의 가장 큰 근심은 자기가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이다(렘 17:9).
이런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성도의 견인 교리로 위로하고 확신을 주신다!

[견인교리와 선택교리의 불가분리성]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사람들은 멸망할 수 없다.
하나님은 불변하시고,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이 불변하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결코 택함받은 자들을 영원히 떠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다윗은 성령을 거두어가실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시 51:11)

[하나님의 불변하심과 작정의 불변성]
하나님은 믿음, 중생, 회심, 모든 은혜를 거두시거나 번복하지 않으신다.
다윗이나 베드로의 범죄는 하나님을 놀라시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지와 티끌임을 아신다(시 103:4).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의 확실성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택자는 사망에 이르는 죄(성령모독죄)를 범하지 않는다(요일 5:16; 막 3:29)]
주님은 자기 백성이 그 죄 범함을 허락지 않으신다.
이 말은 택자가 이 죄를 범할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성령모독죄는 한때 진리를 알고 그리스도를 고백했다가 진리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욕되게 하며 복음을 조롱하는 죄다.
성령님을 모독하는 죄를 지은 것은 아닐까 염려한다는 것은 그가 성령 모독죄를 범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6:4~6의 경고와 두려움]
본문이 말하는 자들은 일시적 신앙에 머물렀던 자들이다.
롯의 처(창 19:26; 눅 17:32)
흙이 얇은 돌밭(마 13:5,20~21)
본문은 유대인-기독교인 중 핍박으로 인해 유대교로 돌아감으로써 복음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버린 자들에 대한 경고이다.
그들은 세례를 받았고 성찬에 참여했으며 성령의 은사도 받았던 자들이다.

[성도가 견인(인내)하는 이유/근거] “왜냐하면 이러한 실족 가운데서도 먼저 하나님께서 그분의 썩지 아니할 씨가 사라지거나 완전히 떨어지지 않도록 보존하시기 때문이다.(4:7)”
성도의 영혼에 한 번 심겨진 중생의 씨는 사라지지 않는다.
성도는 결국 회개로 인도함을 받는다. 회개와 믿음은 능동적인 것이지만 성도는 그 공을 취할 수 없다. “그들이 믿음과 은혜에서 완전히 떨어지거나, 실족 가운데 계속 남아 결국에 멸망하지는 않는 것은, 그들 자신의 공로나 힘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자비에서 나온다.”(4:8)

[자비와 은혜 그리고 긍휼?죄인이 구원받는 유일한 근거]
자비는 죄인들의 비참한 상태의 관점에서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호의.
은혜는 받을 가치가 없다는 관점에서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호의
긍휼은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관점에서 그 형벌을 주시지 않는 하나님의 호의

[알미니안의 비난에 대한 칼빈주의의 입장과 삶]
“이 교리는 성화의 길에 열심을 내지 않을 핑계로 이것을 말한다. 주님께서 돕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호소하지만 그것은 게으름에 대한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칼빈주의자들은 성화에 열심을 내었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공을 돌리지 않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따른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칼빈주의자는 자신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자신들의 힘의 원천으로 삼는다.

[천로역정?성도의 길]
성도는 굉장한 분투의 길을 지나 구원을 받는다. 성도는 이점에서 늘 의심과 절망, 유혹 등의 위험에 처해있다.
성도는 자신들이 속이는 사람들임을 알지만, 하나님을 의심하지는 않으며 그 약속, 그 말씀들을 의심하지 않는다.
신뢰를 하나님께 두는 사람은 자신이 견인할 것을 확신할 수 있다(습 3:12).

[적용점] 견인교리의 위로는 언제 어떻게 주어지는가?
견인교리의 위로는 말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주어지는 위로가 아니다. 이 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방식으로 주어진다.
신자는 자신의 악함을 맛보고서야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다.
성도는 죄의 쓴 맛을 본 후에야 주님의 자비와 은혜를 맛본다.
그리고 성도는 죄의 끔찍함을 보고 죄를 미워하고 죄에서 도망하는 법을 배운 후에야 성도의 견인이 주는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