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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신조](25) 불가항력적 은혜(8) (3:17)

김형익 목사 / 교리강의 / 2018-06-24

말씀내용
25강 불가항력적 은혜(8) (3:17항)

[질문1] “거듭나기 위해서 죄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중생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다.
중생에서 사람은 자연적 출생에서와 같이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이 없다면, 그전에 죄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기다리는 것인가?--알미니안의 도전!

[질문2] “하나님은 죄인을 중생하게 하실 때 직접적으로 일하시는가, 방편을 사용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우리 육의 생명을 낳으시고 붙드시는 전능하신 일을 행하실 때 방편 없이 하지 아니하시고 방편을 사용하시며, 그분의 무한하신 지혜와 선하심을 따라 이 방편을 통해 그분의 권능을 행하시기로 뜻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앞에서 말한 우리를 중생하게 하시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행하실 때도 결코 복음의 사용을 제외하거나 무너뜨리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영적 생명의 탄생과 유지에서 모두 방편을 사용하시며 그 방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개혁주의 안에서의 이론(異論)--아브라함 카이퍼] “성령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 없이 일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의 이중 기능?개혁자와 청교도들의 입장]
(중생) 죄인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으로 부르는 기능--성령님께서 복음 설교를 죄인의 마음에 적용하실 때 일어난다(벧전 1:23; 약 1:18).
(성화) 죄인이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먹이시고 양분을 공급하여 기르신다(벧전 2:2; 요 17:17).

[하나님의 주권적 자유] 하나님께서 말씀 없이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예외적 경우들) 영아들, 정신 장애나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 혹은 이슬람권의 특수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설교를 듣지 않고 중생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다.
하나님은 방편에 구속되지 않으시지만, 우리는 방편에 매인다. 당신이 예외라고 생각할 근거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말씀이 가르쳐지는 곳에 성실히 참석하지 않으면 죄인이 구원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가정중생론] “택함 받은 모든 사람이 세례 예식 동안이나 이전에 일반적으로 태어날 무렵에 중생했다는 이론”
가정중생론은 거짓 구원의 확신을 줄 수 있기에 위험하다.
믿는 가정의 자녀들이 영아 때 중생했다고 믿을 때, 자녀들이 주님을 찾는 긴박성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가정중생론을 믿는 교회에서는 개인적 회심을 촉구하는 설교를 하기 어렵다.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으로 말씀 특별히 설교와 연결된 방식으로 일하신다.
루디아의 회심(행 16:14).
(은혜의 방편) 원칙적으로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곳, 성례를 집행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세우는 곳에서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이 선포하는 말을 죄인들의 마음과 삶에 적용하실 때, 목사의 말은 종종 연약함과 불완전함 가운데 전해져도 성령님께서 그분의 원수들인 죄인들의 마음에 쏘시는 화살이 된다. 때로는 한 단어, 한 문장으로도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신다.

그렇다면, “어떻게 중생합니까?” ?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은혜의 방편을 사용함으로써 중생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설교를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기를 약속하셨다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복을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합당하다.
이때 죄인은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태도가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그 방편 아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 편에서의 책임이다.
이렇게 기도하라.
(자신을 위하여) “오 주님, 오늘 예배에 저를 위한 말씀이 있게 하소서. 제가 헛되이 자리에 앉아 있게 마옵시고 말씀이 제 마음에 전해지게 하소서. 주님께서 참으로 제게 말씀하고 계심을 알게 하옵소서.”
(목사를 위하여) “주님, 설교자가 주중에 주님의 말씀을 준비하는 것을 도우시고 주일에 강단에서 그 말씀을 전할 때 설교자를 도우소서. 설교자가 능력있게 설교하고 주님께서 설교자에게 주신 임무에 충성할 수 있게 하소서.”

[목사 자신] “목사는 자신의 사역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주신(맡기신) 주님의 사역이다.
이 주님의 사역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을 알고(사 55:10~11) 복을 기대하라.
모든 주의 종들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야 하는 유혹을 직면했다. 그러나 이 모든 유혹을 물리치라.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는 목사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갈 1:6~10). 이 모든 유혹에서 지켜주시기를 구하라(마 6:13).

은혜의 방편을 더 기꺼이 사용하고 더 헌신하여 성경을 상고할수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실 것을 더욱 확신을 가지고 기대할 수 있다고 주님은 약속하셨다(잠 8:34).
낙심하지 말라.
(약속) 계속해서 주님을 찾고, 주님의 말씀을 읽고, 교회에서 그 말씀을 들으며 은혜의 방편들을 사용하라. 그러면 복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시간낭비가 아니다.
(경고) 교회에 나오지만 무관심한 마음으로 은혜의 방편에 참여하고, 기도나 아무 기대 없이 참여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받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하더라도 어차피 택함 받았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말은 마귀의 주장이다.
“오 주님, 이 은혜의 방편들을 주셨사오며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로 들었나이다. 오 주여, 이 은혜의 방편들로 제 마음에 복 주시옵소서. 오직 한 마디로 충분하오니 말씀하옵시소 그 말씀을 권능으로 제 영혼에 적용하여 주옵소서.”

[적용점] 거듭나기를 위하여 모든 은혜의 방편들을 사용하라. “권면을 통해 은혜를 주시고, 우리가 우리 의무를 더욱 기꺼이 행할수록 이 하나님의 은택이 더욱 분명히 우리 안에서 빛을 발하며”
설교와 가르침이 있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당신이(혹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참으로 거듭나기를 원한다면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당신은(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말씀이 설교되는 곳, 성경이 가르쳐지는 곳에 참석해야 하며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화살이 날아다니는 곳에 있으라. 얄팍한 이유로 교회에 있는 당신의 자리가 비게 하지 말라.
당신에게 필요한 경건 서적을 취하여 읽으라. ? 목사나 영적 지도자의 ‘처방’이 필요할 수 있다.
은혜의 방편을 사용하는 이 모든 일에 게으르다면, 평생 주의 집에 머무른다고 할지라도 복(중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성장을 위해서도 위의 은혜의 방편들을 적극적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사용해야 한다(벧전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