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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신조](19) 불가항력적 은혜(2) (3:9)

김형익 목사 / 교리강의 / 2018-04-22

말씀내용
19강 불가항력적 은혜(2) (3:9항)

질문: 하나님께서 진실하게 부르시는데(3:8) 사람들의 반응은 왜 차이가 나는가?(3:9~10)--도르트신조의 논리 참조.
[선택과 유기]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 안에서 사람에게도 책임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잘못은 그 자신에게 있다.
[제한 속죄]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에는 모든 죄인을 전부 구원할 넘치는 충분함이 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을 얻기 위해 나아오는 자들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그리스도께 피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멸망할 것이다. 제한속죄(교리)는 죄인이 구원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지 않는다.

[복음과 그리스도의 결함이 아니다]
(복음) 복음의 부르심을 받는 사람은 똑같은 부르심은 받는다. 비록 택함받은 자만 내적 부르심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외적 부르심과 내적 부르심의 내용은 동일하게 구원의 풍성하고 충만한 제안이고 이 제안은 모든 사람에게 전해진다.
(그리스도) 복음 설교(외적 부르심)과 내적 부르심 모두에서 그리스도가 선포되는데, 그리스도는 죄인이 구원을 얻기 위해 나아올 때 거절하지 않으시고 조건 없이 자비를 베푸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복음의 부르심은 모든 죄인에게 그리스도께 나아올 자격과 보증을 준다.
(자격과 보증) 자격과 보증은 자신 안에서 은혜의 표징을 발견하는 죄인들에게 국한되는게 아니다. “설교자는 죄인이란 단어에 아무 것도 더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값없고, 제한 없고, 한계 없는 방식으로 복음의 초청을 확장해야한다.”
(위험) “회개하는 죄인, 통회 자복하는 죄인들만 그리스도께 나오십시오”라고 설교하는 것은 주관적인 기분과 느낌에 의존하게 함으로써 복음의 객관적 근거와 보증을 제거한다.
[균형] 모든 죄인을 부르시는 것은 선택을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요 6:37)
[하나님의 나타난 뜻을 생각하라(겔 33:11; 신 29:29)?‘악인’=모든 악인

[구원의 확실성 확인] 죄인은 자신이 그리스도께 나아감으로써, 십자가로 도망함으로써 자신이 구원받은 자요, 택함 받은 자임을 안다. 여기에는 성부와 성령 하나님의 신비한 이끄심이 있었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받아들였기에 자신의 구원을 말씀에 따라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요 8:24).

[회심하지 않은 자들 안에 있는 차이(마 13)]
(길가) 마음이 아닌 지식으로만 말씀을 받음. 쟁기질(=율법의 사역)이 되어있지 않으므로 복음의 씨가 심겨질 수 없음.
(돌밭) 일시적 감동을 받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음.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만 감동이 있고, 환난이나 박해가 오면 떨어져나감.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의 요구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피상적 수준에 머뭄. 뿌리내리지 못함.
(가시떨기) 이생의 염려와 세상 즐거움이 씨를 질식시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함.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죽음과 심판과 영원을 생각하지만, 이생의 염려와 짐을 주님께 맡기지 못함.
이들은 다 회심하지 않은 청자들이다. 문제는 씨에 있지 않고 믿고 회개하지 않는 청자들의 마음에 있다.

[아더 핑크, 『하나님의 주권』 ]
(왕상 14:4) 선지자 아히야의 자연적 무능력
(창 37:4) 요셉의 형들의 도덕적 무능력?요셉을 미워했기 때문에 인사를 하기 싫었다.
(벧후 2:14) 음심 가득한 거짓 선지자들?죄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죄에 대한 강한 열망 때문이다.
(롬 8:8)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들의 도덕적 무능력
(마 12:34) 그리스도의 원수이며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바리새인들의 도덕적 무능력
(요 5:40) 죄를 사랑해서 예수님께 나아오기를 원치 않은 유대인들의 도덕적 무능력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만 있는게 아니라 교회 안에도 많다. 죄인은 죄를 원하기 때문에 범죄한다. 하나님의 방법은 육신과 육신의 생각에는 굴욕감을 안겨주며 완전한 결단을 요구하는데, 육신의 생각은 이것을 미워한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자연적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는 본성상 하나님의 원수다. 도덕적 능력이 없고, 선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든 죄인을 부르신다. “내 아들을 믿으라. 내 아들에게 도망하라. 내 아들의 의를 붙잡으라. 내 아들의 옷자락을 붙잡아라.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나의 자비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죄가 너무 깊고도 넘치는 제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사 1:18) “주홍같은 죄가 눈 같이, 진홍 같은 죄가 양털 같이 되리라."

[불신의 죄]
불신의 죄는 신자들에게도 있다.
불신의 죄는 신자들에게서 참된 위로를 빼앗는다.
불신의 죄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완전히 변화되기 전까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믿음과 회개의 은혜를 구하라(막 9:24).

[적용점]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이 내 안에서 모든 장애요소들을 이기고 열매를 맺도록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은혜 받기를 추구하라. 믿음과 회개의 은혜를 구하라.
나와 형제/이웃과의 관계에서:
주변에 은혜 받지 못하는 형제들, 불신의 죄로 힘겨워하는 형제들이 보이는가?
그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격려, 기도? 그것을 하라.
나 자신에 대한 나의 태도에서:
자신의 감정, 느낌, 태도에서 구원의 안전함을 확인하는데서 떠나라.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구원의 안전함을 확인하고 그 은혜를 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