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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신조](14) 전적 부패(1) (3:1)

김형익 목사 / 교리강의 / 2018-03-11

말씀내용
14강 전적 부패(1) (3:1항)

[셋째 교리와 넷째 교리의 관계--왜 두 교리가 3장 안에 함께 다루어졌는가?]
[질문] “사람은 완전히 타락해서 구원받을 수도 없고 구원받으려고 하지도 않는가 아니면 사람의 의지는 자유롭기에 자신에게 제안된 은혜를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도 결정할 수 있는가?” 사람은 얼마나 부패(타락)했으며 얼마나 은혜를 필요로 하는가?
[알미니안의 주장에 대한 반론] “전적으로 부패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필요로 하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
[비판] 전적으로 부패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필요로 하는 존재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은혜를 받아들이거나 저항할 힘을 가지는가?
[타락의 범주와 은혜의 필요성] 사람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겠지만, 부분적으로 타락했다면 필요한 것은 단지 적당히 도우시는 은혜다.
셋째 교리?인간 부패--와 넷째 교리?회심이 일어나는 방식--는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타락전 사람의 본질적 특성]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의 총명은 창조주와 영적인 일들에 대한 참되고 건전한 지식으로, 그의 마음과 뜻은 정직으로, 그의 모든 심정은 순수로 단장해 주셨다. 전인이 거룩하였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아담은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소유했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섬겼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다.
타락전 인간의 본질적 특성은 거룩함이었다.

[타락전 사람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알미니안의 반박] 선함, 거룩함, 의로움과 같은 영적 은사들과 선한 자질들과 덕성들은 사람이 처음 지음 받았을 때 사람의 의지에 속했던 것일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이 타락으로 사람에게서 분리되었을 수 없다.
기준?타락전 인간을 낮은 위치에 있던 것으로 볼수록 타락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은 가벼워질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사람이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고 도덕적인 것을 아는 능력
하나님의 모양?거룩함, 완전함, 의로움과 관련된 것으로, 인간이 처음부터 가진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노력과 순종의 대가로 받을 것이었다.
거룩함은 인간의 의지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에 속하지 않는다. ? 거룩함이 원래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가 아니었으므로, 타락한 인간에게는 잃어버릴 거룩함도 없었다.
“아담은 무흠한 아이 같은 존재로 더 성숙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사람은 지식을 증가시키고 거룩함과 의를 얻을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지, 이런 것들을 창조 시에 부여받은 것이 아니었다. 아담은 의로운 상태로 창조되지 않았고 단지 무흠한 상태--선과 악의 중간상태, 중립상태--로 창조되었다.”
타락으로 사람의 총명이 다소 어두워졌어도 적절한 가르침을 받으면 고쳐질 수 있으며, 타락으로 선을 행할 능력은 상실했지만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상실한 것은 아니다.
타락한 사람은 은혜는 필요하지만, 스스로의 회복에 기여할 수 있으며 구원에의 의지도 있고 자신에게 제안된 은혜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능력이 있다.

[알미니안의 반박에 대한 반론--도르트 신조의 입장]
하나님의 형상은 지식과 의와 거룩이며(엡 4:24; 골 3:10) 타락으로 인간은 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거듭나서 은혜로 예수님을 믿을 때 이것들이 다시 회복되었다.
(참된 지식) 아담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만물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졌다는 말은 아니다. 아담의 참된 지식은 의로운 상태에서 증가할 수 있는 지식이었다(창 2:19~20a).
(참된 의)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기뻐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으며 창조주를 섬겼다. 이것은 아담이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예비하신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담은 변할 수 있었고 받은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선악과 금령의 의미).
아담이 선을 선택한다면 본래의 거룩함을 확증하고 그것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천국의 신자들의 상태다.
아담이 옳은 것을 선택하는 것은 본성을 따르는 행위였기에 어렵지 않았다. 반면, 죄를 짓는 것은 본성을 거슬러 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담의 범죄는 자신의 본성을 거스른,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었다. 아담은 범죄할 때,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타락 후, 사람은 창조 때 받은 것을 다 상실한 정반대의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대신 눈이 멀어서 영적 실재를 파악할 수 없고
영적 통찰 대신 끔찍한 어둠에 처해져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며,
인생의 목적과 방향 대신 삶이 공허하고 판단이 악해졌고,
의지는 죄와 부패의 종이 되었다.?마르틴 루터의 『노예의지론』
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뜻에는 악함과 패역함과 완고함을, 자신의 심정에는 더러움을 스스로 가져왔다.”
타락한 인간의 의지는 자유롭지 않지만 뜻하는 것은 자유다.
자유?누고도 죄를 범하도록 강요 받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 본성에 조화되는 것을 선택하고 의지는 그 선택을 취한다.
자연인은 언제나 죄로 돌아간다.
타락후 인간은 성경이 우리에 대해 말하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그 말씀이 참이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도 않으며 성경이 말하는 것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긍정적 견해를 가진다.

[적용점]
성경이 가르치는 전적 부패의 교리대로, 자신이 눈먼 자요, 어둠에 처했으며, 공허하고 판단이 악한 존재임을 고백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라.
우리가 그런 자리에서 구원받았음을 확인하고 받은 바 주님의 은혜를 기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