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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신조](12) 제한 속죄(4) (2:6~7)

김형익 목사 / 교리강의 / 2018-02-25

말씀내용
12강 제한 속죄(4) (2:6~7항)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신비]
불신의 불신자 자신의 책임이다.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다.

[(2:6-1) 전도/설교에 대한 반응이 갈리는 이유] 왜 어떤 사람들은 복음전도/설교에 반응하여 믿어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들은 거부함으로 멸망을 받는가? 그리스도께서 택함 받은 자만을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인가?
(알미니안) 그렇다! 믿지 않은 사람의 책임이 아니다!
(도르트신조 2:6) “하지만 복음으로 부르심 받은 사람들 중 많은 이가 회개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 믿지 않음 가운데 멸망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드리신 희생제사에 흠이 있거나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며,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책임이다.”
이삭의 변명은 예수 그리스도께도 유효한가?(창 27:37~38)
주님의 약속(요 6:37)은 불신의 책임이 주님께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주님의 책망(요 5:40)은 불신의 책임이 불신자 자신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불신자의 양심은 불신의 책임이 자기 잘못이라고 말해준다.
주님은 죄인을 구원하실 능력과 의지가 있으시며 죄인을 찾으시고 사랑하시는 구주시다.

[(2:6-2)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보는 것이 중요함]
유대인,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요 5:39~40)
자기 기만을 조심하라(시 28:15).
예수님을 믿을 때, 따르는 희생을 아는가?(마 16:24~25) 자기 의를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가?

[(2:6-3) 불신의 가능한 변명들]
“저는 제 죄에 대한 확신을 느끼고 싶고 제가 잃어버린 죄인이라는 것을 더 알고 싶어요.” →
죄에 대한 확신을 원하는 이유가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것이 필요하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들은 거미처럼 자기 배에서 회개를 뽑아내려고 한다.” 회개가 의로움인가?
“저는 단순히 믿을수는 없어요. 신자라는 사람들이 가짜가 너무 많아요.”
어떤 논리도 하나님 앞에 나의 의로 주장될 수 없다.
나의 의로운 판단이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께 갈 수 없어요. 나는 할 수 없어요.”
이 말은 “원하지 않는다,”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다.
가라앉는 배에서 로프에 매달린 소년의 이야기(호라티우스 보나르): “밧줄을 못 놓겠어요.” → “내가 뛰어내리면 빠져죽을테니 밧줄을 안 놓을거예요.”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성령님께서 그 안에 이미 역사하고 계신 증거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께 나올 의지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붙잡고 있는 것, 당신이 주장하는 이유는 ‘자기 의’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Take me as I am)”(찬송가 214)

[주님의 초청을 듣고 믿으라]
(마 11:28)
(요 6:37)
(계 22:17)

[(2:7) 어떤 사람들이 믿는 이유--믿음의 근거] “하지만 참되게 믿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와 멸망에서 해방되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이 은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를 어느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으신다.”
신자는 믿음의 근거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임을 안다.
이 은혜는 영원 전에 시작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알미니안의) 오류 논박 6번] “어떤 사람들은 죄사함과 영생을 받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받지 못한다. 이는 그들이 자유의지를 사용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지(이 자유의지가 차별 없이 제안된 은혜를 자신에게 적용한다) 그들 안에 자비의 특별한 은사가 강력하게 작용해서 그들이 다른 이들과 달리 이 은혜를 자신의 소유로 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은혜/능력을 주신다.
모든 것은 우리가 그 능력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에 달려 있다.

[적용점]
“감히 ~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말라. 이렇게 말하라. “감히 더는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감히 더는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정직한 심령이 되기를 구하라(시 51:6,10; 139:23~24)
내가 주장하고 고집하고 있는 ‘자기 의’는 무엇일까? “주여, 저 자신, 자기 노력, 자기 의에서 저를 건져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의를 제가 의지하도록 저를 도우소서.”
“우리는 멸망받기에 합당하오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