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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신조](30) 성도의 견인(5) (4:12~13)

김형익 목사 / 교리강의 / 2018-09-02

말씀내용
30강 성도의 견인(5) (4:12~13항)

[4:12~13 본문의 내용]
12항 확신은 경건의 동기다
13항 확신은 나태함으로 이끌지 않는다

[확신이 흔들릴 때]
다윗,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삼상 27:1)
마귀의 맹공과 양심의 고소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벧전 1:9)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심

[(4:12-1) 알미니안의 견인 교리 반대 논리]
견인교리가 주는 확신은 거짓 안도감의 원인이며 경건과 선한 행실과 기타 경건의 훈련에 해가 되며 육적 영적 게으름의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의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르트신조의 답변) “하지만 견인의 확실함은 결코 참 신자를 교만하거나 육신의 안일함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겸손, 자녀로서의 경외감, 참된 경건, 모든 싸움 가운데 인내, 불붙는 기도, 굳건히 십자가를 지고 진리를 고백함, 견고히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함의 참된 원천이다.”
(견인교리를 오용하는 사람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죄악된 삶을 살기 쉽다. 이것은 견인교리의 오용이다!

[(4:12-2) 성도의 유익을 위해서 주어진 견인교리]
이 교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사람, 주님께 붙어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은혜로운 교리다.
이 교리는 성도에게 영적 안정감, 주님 안에서의 쉼과 안정을 준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사역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은 얼마나 복된가?
이 은혜의 교리를 깨달은 사람은 죄악된 삶을 살지 않는다. 이 교리는 참된 겸손,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 불붙는 기도의 참된 원인이 된다.
참된 겸손의 원천
견인교리는 나의 나됨은 오직 주님의 은혜라는 사실과 내가 끝까지 견인할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 때문임을 가르치기에, 신자를 겸손하게 한다.
그리스도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에 교만에 이끌리지 않는다. “내가 충분히 했나?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큼 충분히 열심히 했나?”하는 질문은 율법주의의 교만을 드러낼 뿐이며, 여기에 안식은 없다.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경외감과 선행의 원천
성도는 더 이상 구원을 얻기 위하거나 잃지 않기 위해서 선행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안전한 관계 속에서 감사함으로 선행을 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그리스도 없는 선행이 자기를 높이는 악행임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한다.
참된 경건의 삶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 교리와 구원의 확신(견인) 교리의 열매다(요일 3:3; 요 14:15).

[(4:12-3)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의 확신]
구약 시편의 표현들: “내가 깊은 곳에서”, “내 하나님”, “나의 구원”, 나의 반석”, “나의 피난처”, “나의 방패”, “나의 견고한 망대”....
신약: 빌 1:6,10; 고전 1:8; 살전 5:23~24; 살후 1:11; 벧전 5:10
성령님께서는 성도의 영과 더불어 그가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임을 증거하심으로 확신을 더하신다(롬 8:16~17).

[(4:13-1) 죄에 빠졌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찾은 바된 사람들의 경우]
(알미니안) “신자가 하나님의 호의로 다시 받아들여질 때, 이 호의는 신자를 방탕으로 이끈다.”
(도르트신조의 대답) 심각한 죄에 빠지고도 쉽게 하나님의 은혜에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쉽게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자신을 용서하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자신을 용서한 것일 수 있다. 죄에 대한 깊은 자각과 뉘우침으로 회개의 증거를 보일 때만이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바르게 말할 수 있다.

[(4:13-2) 왜 범죄한 후에 성도는 전보다 더 주의가 깊어지는가?]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자애로운 인자하심을 오용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로운 얼굴(이를 바라봄은 경건한 자에게는 생명보다 더 달며 이를 가리시면 사망보다 더 쓰다)을 자신에게 돌리시고 그 결과 더 큰 영혼의 아픔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벌이 아니라 징계를 받는데, 그 징계는 종종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숨기시는 것이다.
참된 종교(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로 이루어진다. 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의 얼굴을 숨기게 하시는데, 이것이 영적인 밤(어둠)이다. 그러나 이 조차,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뭔가를 느끼게 해주시는 방편이기에, 변장한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회개함으로 주님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게 된 성도는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생명보다 귀하고 천국보다 나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배나 조심하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성도의 성화의 주된 동기는 주님의 호의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참된 성도의 성향과 바램]
참된 성도는 자기 기만을 두려워한다(렘 17:9).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주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간다.
참된 성도는 자신의 죄로 애통해하고,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계시하신다(그 얼굴을 보이신다).
예수님과의 달콤한 교제를 맛볼 때, 참된 성도는 정직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위해 살기를 갈망한다.
참된 성도의 바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며, 이런 바램은 삶 속에서 매일 나타난다.

[적용점]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는 갈망을 아는가? 이것이 있는가?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시 25:14).” 이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성도가 아니다!!!
당신에게 불붙는 기도, 자녀로서의 경외감, 고난 중의 인내, 경건한 삶이 있는가? 이것이 당신의 삶이 그토록 어두운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보라. 오래도록 주님과의 만남을 가지지 않은 결과가 아닌지 생각해보라. 당신이 세상적이 되었고, 세상의 기준을 따르며, 성경읽기와 기도에 마땅한 열심을 내지 않았는지 돌아보라.
하나님의 자비로운 약속들을 기억하라(렘 3:22; 호 6:1).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라.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시 1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