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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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 2018 - (30). 예정교리 - 영원한 선택(2)

로마서 9:19-23 / 김형익 목사 / 교리강의 / 2019-09-29

말씀내용
1. [선택과 유기의 원인과 근거] 아직 존재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그렇게 구별하는 토대가 무엇인가?
A. “하나님의 은혜는 선택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들 을 만든다” (3.22.8)
B. 일부를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하신 하나님의 작정은 순전히 그분의 기쁜 뜻에 달려 있다. “이 작정의 내재적 원인은 그분 안에 있다.”
C. 선택의 창시자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함께 당신 자신에게도 선택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신다. (3.22.7)
D. 선택의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고, 직접적인 목표는 신자의 성화다. 바울은 우리가 거룩하고 흠 없는 삶을 영위하게 하려고 선택 되었다고 가르친다. (3.23.12).
E. 유기의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공의와 의로움을 드러내실 때 영광 받으신다. “하나님의 영광을 언급할 때는 그분의 의로 움도 생각하자”고 칼빈은 말한다 (3.23.8) .


예정교리에 대한 부당한 반론과 비난에 대한 반박(3.23)
2. [유기는 선택에 필수적으로 수반됨](3.23.1-3)
A. [선택은 인정하나 유기는 인정할 수 없다] “선택이 소수에게만 베풀어지고 그 외의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들은 우연이나 혹은 자기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논리는 지극히 모순된 것일 수밖에 없다. (마 15:13).”
B. [반론—선택교리가 하나님을 폭군으로 만든다.] 하나님의 뜻 이전에 다른 원인이 있어서 그것에 하나님의 뜻이 매인다면, 그분은 하나님 이실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은 어떤 결함도 없을 뿐 아니라 완전함을 가늠하는 최고 척도다. 유기는 폭군적 잔인함이 아니라 공의를 실현하는 가장 정당한 길이 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작정하셨다면(롬 9:20-21) 그분이 왜 이런 뜻을 품었는지 묻는 일은 우리 본분이 아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3.23.5).

3.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탐구/비난 대상이 아니다](3.23.4-7)
A. 믿음이 있는 무지가 무분별한 지식 보다 낫다. (롬 11:33).
B. [반론—선택이 사람의 책임을 제거한다] 하나님의 예지는 오직 하나님의 작정에 기인하므로, 모든 일이 하나님의 결정과 명령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가 정한 바에 따라 넘어지지만 그 자신의 잘못으로 넘어진다.”(3.23.8)
C. (스펄전) “하나님이 예정하시되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두 가지 사실을 뚜렷이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두 명제는 일관되지 않고 서로 모순된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성경 한 곳에서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다고 배운다면, 그것은 옳다. 그리고 성경 다른 곳에서 사람이 자신의 모든 행동에 책임이 있다고 배운다면, 그것도 옳다. 그런데 이 두 진리가 늘 서로 모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나의 어리석음일 뿐이다. 나는 이 둘이 이 땅의 어떤 모루 위에서도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고 믿지 않지만, 영원한 세계 안에서는 확실히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둘은 거의 평행하는 두 선(線) 이고, 인간의 마음이 아무리 멀리까지 추적해도 수렴하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분명히 수렴하며, 모든 진리의 원천인 하나님의 보좌에 가까운 곳, 그 영원한 세계 어딘가에서는 만날 것이다.” (‘A Defence of Calvinism’, The Early Years: The Autobiography of C. H. Spurgeon )
D. 어거스틴, “우리는 우리가 지극히 올바르게 믿는 바를 지극히 건전하게 고백한다. 즉, 만물의 주 되신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극히 선하게 창조 하셨고(참조. 창 1:31) 또한 선에서 악한 것들이 생겨날 것을 미리 아셨고, 또한 악한 것들이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시기 보다는 그 악한 것들을 통해 서 선을 이루시는 것이 그의 지극히 전능하신 선하심에 합당하다는 것을 아셨으므로... , 우선 자유 의지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시고, 그 다음으로 그의 은혜의 축복과 그의 공의의 심판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실 수 있도록 그렇게 천사들과 사람들의 삶을 정하셨다는 사실이다.” (3.23.7)

4. [아담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허용](3.23.8-11)
A. 악인의 멸망은 하나님이 허용하시기 때문이지, 그렇게 뜻하시기 때문이 아닌가?
B. [반론—하나님이 사람들을 편파적으로 대하신다]
i. 하나님은 인종, 재산, 외모로 차별하지 않으시고(행 10:34; 갈 2:6; 3:28; 고전 1:26) 오직 자신의 기쁘신 뜻으로 자비에 근거하여 선택하신다.
ii. (어거스틴) “첫 사람 안에서 모든 인류가 정죄 아래 빠졌으므로... 그 중에 영광을 받기로 예비된 그릇들은 그들 자신의 의로 된 그릇들이 아니 요 ... 하나님의 긍휼로 된 그릇들이며, 천히 쓰기 위해 예비된 다른 그릇들 (참조. 롬 9:21)은 탐구의 대상이 아니고 심판의 대상들인 것이다.” (3.23.11)

5. [예정 교리는 해가 아니라 유익이다](3.23.12-14)
A. [반론—선택의 교리가 올바른 삶을 향한 열심을 무너뜨린다]
i. 선택만 받으면 구원 받기 때문에 선행을 그만 두는 것과 선택에 따른 목표로 선을 추구하는데 몰두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3.23.12)
ii. “선택의 목표가 거룩한 삶에 있다면 (엡 1:4), 우리는 선택을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구실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목표를 향하여 우리 마음에 열심이 생겨나고 마음이 그리로 가다듬어져야 마땅한 것이다.”
B. [반론—선택 교리가 모든 권고들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i. 귀 있는 자는 듣는다. 어째서 이 사람들은 들을 귀가 있고 저 사람들은 그런 귀가 없는가?”
ii. 값없는 선택을 거리낌 없이 전한 바울에게는 그렇지 않았고, 어거스틴, 칼빈 자신에게도 그렇지 않았다.
C. [어거스틴의 권면](3.23.14) 현재의 영적 상태로 그의 선택과 유기를 판단 하지 말라. 선택의 목표가 거룩한 삶에 있다면, 우리는 선택을 그냥 아무것 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구실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목표를 향하여 우리 마음에 열심이 생겨나고 마음이 그리로 가다듬어져야 마땅한 것이다.”


선택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확증되고, 악인은 정해진 공의로운 멸망을 자초함(3.24)
6. [선택과 부르심](3.24.1-5)
A. [부르심은 선택에 근거한 은혜로운 역사](3.24.1-2)
i. “하나님께서는 그의 부르심을 통해서 선택을 드러내실 때—그렇게 하시
지 않으면 선택은 하나님 자신에게 감추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아무런 구별이 없이 행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가리켜서 그의 “인증”(認證:attestation)이라 부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롬 8:29-30).”(3.24.1)
ii. 내적 부르심은 속일 수 없는 구원의 보증이다(요일 3:24).
B. [믿음은 선택의 결과이지 선택의 조건이 아님] 선택은 믿음에 의존하지 않으며, 선택의 타당성이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C. [선택의 확신] 선택의 효력이 우리 믿음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선택의 확신 은 믿음 이후의 증표들을 붙잡아야 한다. 신자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손길에 서 받는 은혜들은 그 은밀한 양자됨의 사실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그리스 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았다면, 우리 자신에게서 우리의 선택에 대한 확신 을 찾아서는 안 되며, 심지어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찾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영원 전부터 그의 것이 되게 하시려고 뜻하신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이도록 하셨고 그리스도의 지체들로 인정되는 모든 자들을 그의 자녀로 붙드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와의 교제 가운데 있으면 우리가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참조. 계 21:27) 분명하고도 확고한 증거를 갖게 되는 것이다.”(3.24.5)

7. [택자들은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안전함](2.24.6-11)
A. 그리스도께서는 미래의 처지를 근심하는 택자들에게 견인을 약속하신다 (요 6:37,39; 10:27-29). 그리스도께서는 택자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신다(눅 22:32).
B. 신자는 복음의 말씀에서 선택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 한다(3.24.7).
C.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확신하는 것을 금하지 않고 다만 터무니없는 육체에 대한 자랑(교만, 건방짐, 멸시, 우월감)을 금할 뿐이다.
D. 일반적 부르심이 모든 자에게 주어진다면, 특별한 부르심—외적으로 선포 된 말씀을 성령의 내적 조명을 통해 그 마음속에 거하게 하시는 것—이 택자들에게 주어진다(마 20:1-14).
E. 멸망의 자식만 버림 받음: 가룟 유다에 대한 주님의 말씀(요 17:12; 6:70;13:18)은 택자들을 두렵게 하려는 의도로 하신 말씀이 아니다. 택자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던 자들이 내쫓김을 당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들도 있다. (겔 13:9; 시 69:28; 계 3:5) 하지만 택자들의 이름은 이미 처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었다. (빌 4:3).
F. 될 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부르심을 받기 전 택자에게서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선택의 씨앗을 찾아볼 수 없다.

8. [유기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2.24.12-17)
A.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 정해진 결과에 이르도록 때로는 그들에게 그의 말씀을 들을 능력을 빼앗기도 하시고, 또 어떤 경우는 그 말씀을 선포하심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시고 감각을 마비시키기도 하신다."
B.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인가(행 13:48)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롬 9:21-22)인가에 따라서 그렇게 행하신다. 루디아의 마음을 열여 말 씀을 듣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행 16:14). 반대로, 말씀을 들려주시지만, 그로 말미암아 더 귀머거리가 되게 하기도 하신다(사 6:9-10: 마 13:14-15; 막 4:12; 눅 8:10; 요 12:40; 행 28:26-27; 롬 11:8).
C.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질 때에 버림받은 자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의 마음의 악의와 부패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옳은 생각이다. (삼상 2:25; 고전 1:23-24).”(2.24.14)
D. 에스겔 33:11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회개하자마자 그들을 사하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믿게 하고자 하며, 또한 악인들의 경우 하나님의 그 크신 자비와 선하심에 응답하지 않을 때에는 그로 인하여 그들의 범과가 두 배로 가중된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느끼게 하고자 하는 의도로 주어진 것이다.”
E.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참조) → 임금과 통치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한(딤전 2:1-2) 바울은 이 어리석어 보이는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딤 전 2:3-4). “다만 하나님께서는 어느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이라 해서 그들 에게 구원에 이르는 길을 닫아두신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의 긍휼하심을 부어주셔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계층이 하나도 없도록 하셨다는 것이다.”(참 고, 딤후 2:25; 렘 31:18-19; 출 33:19).
F. 구원의 약속들이 보편적으로 주어졌다고 할지라도 그 약속들은 유기자들을 예정하신 사실과 모순이 없다.

9. [선택교리의용도] “칼빈은 예정에 관한 논의를...겸손,소망,감사,담대함,송영의 관점에서 구성한다.” (Matthew Myer Boulton, Life in God, 147)
A. 선택 교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를 낮춘다.
i. 예정에 관한 지식은 순종하는 자들이 자신의 믿음을 ‘그들 자신의 것’인 양 여겨 교만해지지 않도록 막아주고 그들로 ‘주님을 자랑하도록’ 이끌어준다. (3.23.13).
ii. “우리가 주제넘게 하나님 앞에 무엇이든 가져가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고 우리자신을 내세우게 된다. 따라서 은혜가 마땅히 지녀야 할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더는 지니지 못하게 만든다.” (에베소서 주석, 1:7-10)
iii. “우리는 그분 가까이 있다.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예상하고 스스로 그분께 나아왔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르시기 위해 스스로 낮아지셔서 지옥까지 그분의 손길을 뻗치셨기 때문이다.”(시편 주석, 65:4)
B. 선택 교리는 확신을 품도록 격려한다.
i. “예정을 올바로 이해하면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확신을 품을 수 있다” (3.24.9).
ii. “정결한 삶을 선택의 예증과 증거로 간주하는 것은 옳다.” (베드로후서 주석 1:10). 하지만 우리의 선행은 매우 작고 불안정해서 우리의 확신이 온전히 선행에만 의존할 수 없다. “행위에 주목할 때, 믿음은 비틀거리게 된다” (3.11.11).
iii “누구든지 자신의 구원에 조약돌 하나라도 기여해야만 한다면, 그는 자신의 조약돌이 충분히 크지 않을까 봐 평생 두려워하며 살아갈 것이다” (셀더하위스, John Calvin: A Pilgrim’ s Life, 190) .
iv.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확신 시키고 싶으실 때는 우리를......영원한 선택으로 돌아가게 하신다.”(엡 1:3-4 설교)
v. 자신의 선택 여부를 아는 것은, 단지 자신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통해 경험적으로 알 수 있고, 선택 교리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믿음이다. 선택 교리 안에서 믿음이 보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 뿐이다.
C. 선택 교리는 경외하고 경배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어거스틴, "당신은 그 이유를 찾는가? 나는 그 심오함에 떨고 있다. 당신 은 따지고 있는가?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당신은 논쟁하는가? 나는 그냥 믿겠다. 나는 그 깊은 곳을 보지만 밑바닥에 닿지는 못한다. 바울은 경이로움을 발견했기 때문에 안식할 수 있었다.” (3.23.5)


교훈과 적용
10. 선택의 교리 앞에서 겸비해지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라.
11. 선택의 교리를 묵상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무조건적이며 무한한 은혜—하나님의 영광의 크기 앞에서 자신의 무가치함을 보는 것—를 누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