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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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의 은혜 (31) - 마지막: 기독교 희락주의와 장래의 은혜

김형익 목사 / 기타 강의 / 2008-11-07

말씀내용
1. 기독교 희락주의의 명제: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최고로 만족을 누릴 때, 우리 안에서 최고로 영광을 받으신다.
2. 기독교 희락주의
① 믿음의 본질이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 안에서 만족을 누리는 것이라면 우리가 믿어야 하는 우주적이고 성경적인 명령은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② 장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 희락주의다(시 63:3).
③ 죄에 대한 싸움도 하나님의 장래의 은혜에 대한 약속을 믿는 것으로만 이길 수 있다(시 16:11; 히 11:24~26).
④ 철저하고 자유로운 순종은 오로지 장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온다.
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넓이와 깊이는 우리가 삶 속에서 하나님을 얼마나 고귀하게 여기는지 측정할 수 있는 척도이다.
3. 두 가지 논점
① 자기 사랑
? 정의: 사적인 자아에 대한 관심, 자기 개인적 이익을 우선시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것.
? 악한 이유: 인간이 행복을 갈망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차원의 이익만을 가져오는 행복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 자기 사랑이 덕이 될 수 있는 경우: 자기 사랑이 모든 우주 만물의 선함을 끌어안을 수 있을 때, 즉 하나님을 받아들일 때.
? 인간이 자기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진리와 배치되지 않는다.
이웃사랑 명령은 인간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전제 위에 주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모든 약속과 경고, 부르심과 초청도 자기 사랑의 전제 위에 주어진다.
? 자기 사랑과 하나님 사랑은 적대적이거나 완전히 별개가 아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는 관계를 형성한다.
?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만족함을 주시는 기쁨의 원천이 하나님이시라는 진리가 발견될 때에 자기 사랑이 취하는 형태이다.
② 사심없는 사랑
? 에드워즈가 말한 하나님께 대한 사심없는 사랑이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향한 열망에 뿌리내린 사랑이다.
? 이것은 기쁨 추구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기쁨의 하나님 중심성,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의도에서 나온 말이다.
? 위선자들의 기쁨과 참 성도들의 기쁨의 차이: 위선자들의 기쁨의 제일 원천은 자아이지만, 성도들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
? 하나님을 향한 사심없는 사랑이란 말은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가 저주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심마저도 빼앗기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③ 결론: 사심없는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추구하는 만족의 중심이 되실 때에만 완전히 확립될 수 있고, 자기 사랑은 하나님을 최상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고 인식될 때에만 거부되어야 한다.
4.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찾고 찾지 않는 차이
① 정답은 중생의 신비에 있다.
② 18세기 계몽주의의 많은 이론들은 모든 미덕을 인간의 선천적인 힘과 능력으로 축소시켰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도 결국 인간의 자기 사랑에서 생겨난다고 말하였다.
③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추구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인지하고 거기 완전히 심취해야 하는데, 이것이 중생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④ J.Edwards,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에 속한 최상의 탁월함에 대해 영혼이 관심을 갖는 것이며, 하나님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태도이다...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성품의 탁월함에 이끌릴때, 그 영혼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중생한 자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첫번째 능력의 결과로 신적인 미각 또는 감각이 부여된다. 그리하여 하나님 성품의 탁월함이 지닌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pp.605~606)
⑤ 고로, 중생은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랑보다 먼저 일어난다.
⑥ 자기 사랑의 본성적 힘은 하나님을 향한 초자연적인 미각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⑦ 행복을 향한 자기 사랑의 문제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이다. 이 방향은 성령님에 의한 중생을 통해서 변화된다.
⑧ 중생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인하여 우리 마음에 혁신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는 갈망은 더욱 선명하게 그리스도인의 '만족스런' 의무로 드러난다.
⑨ 죄는 행복을 추구하되 영원토록 발견되지 못할 곳에서 그렇게 하는 것(렘 2:12)이며 옳은 방향이더라도 미온적이거나 냉담한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계 3:16)이다.
5.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과 영광을 받으시는 방식
6. 생각해보라
① 과거의 은혜를 많이 묵상하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라.
② 과거의 은혜를 토대로 당신의 지난 삶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었는지를 따져보고 생각해보라.
③ 현재의 삶은 어떤가? 비록 죽음의 계곡을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장래의 은혜를 바라보기 때문인가?
④ 장래의 삶에 대한 기대가 있는가? 그것은 당신의 미래가 주님의 전능하시고 선하신 손 안에 있기 때뭉네 오는 기대인가?
⑤ 당신의 마음은 세상으로 기울어지고 있는가, 하나님께로 기울어지고 있는가?
⑥ 당신은 정말 하나님을 향한 초자연적인 미각을 경험하였는가?
⑦ 당신은 장래의 은혜를 믿기 때문에 자유롭고 철저한 순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