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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설교 -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시편 27:8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4-12-14

말씀내용
1. 다윗의 상황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2~3, 11~12, 10).
여러분이 인생에서 정말 두렵고 고통스러워서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읽은 시편은 그런 문제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우리는 대적들, 원수들의 존재를 봅니다. 살면서 우리는 원수를 만납니다. ‘원수라고까지 할 수 있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대적을 만납니다. 이런 존재가 2~3절과 11~12절에 등장합니다.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2~3).” 마치 나를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그들은 나를 대합니다. 그들은 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포위한 군대처럼 느껴집니다. 또 11~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다윗은 원수와 대적들로부터 자기를 구해주시고 그들의 앞에서 자기를 평탄하게 인도해달라고 구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군대가 포위한 것처럼 그 상황을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다면 더 힘들겠지요. 이런 것을 보면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은 관계의 문제이고,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말이 공감이 됩니다. 본문은 또 하나의 인생의 고통을 다룹니다. 10절입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의미 있는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은 아마 인생에서 가장 치유하기 어려운 고통일 것입니다. 부모는 나를 버렸다고 하는 표현이, 다윗이 부모로부터 느꼈던 실제 경험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무엘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주기 위해서 이새에게 와서 아들들을 불러모으라고 했을 때 다윗이 제외되었던 상황을 볼 때 이것이 전혀 다윗과 무관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원하든 원치 않든 인생에서 이런 아픔을 겪습니다. 시편은 이런 삶의 경험들을 솔직하게 나열합니다. 또 성경은 이런 경험들이 그리스도인을 피해간다고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2. 폭풍 속에 평안을 누림(1,3)
하지만 본문은 이런 경험들 속에서 살아가는 신자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를 놀랍게 보여줍니다.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다윗은 이 상황 속에서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빛이고 구원이고 능력이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함으로써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의 전부라고 말합니다. 자기를 삼키려고 오는 원수들이 실족하여 넘어지는 것을 그는 이미 경험했으니 이제도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2). 그리고 3절에서 군대처럼 몰려와서 나를 포위하여 피할 길이 없게 해도 자기는 태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폭풍 속의 고요입니다. ‘태연하다’는 히브리 말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곧 이런 확신, 안전하다는 느낌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라는 말씀도 그것을 말해줍니다(시 119:165). 우리는 내가 이런 믿음의 실재를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삶의 현실을 벗어나기를 구하는 비현실적인 요구가 아니라, 바로 이런 믿음이 아닙니까?
3. 다윗이 구하고 바란 것
우리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신 것을 압니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자기를 위해서 장수나 물질 혹 원수 멸하기를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한 것을 기뻐하시면서 그가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기도 속에서 혹은 삶에서 우리가 무엇을 구하는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구하고 바란 것이 무엇인지를 두 가지로 보여줍니다.
A.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4)
첫째로 그가 구한 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4절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다윗이 평생 여호와의 집에 살기를 바란 것은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환난 날에도 하나님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켜주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자기를 숨겨주시는 하나님을 바랍니다. 다윗은 단지 현실의 어려움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과 가쁨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는 본래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친절, 은총, 선대하심을 의미합니다. 대적과 원수가 많고 자기의 처지가 피할 길 없어도 하나님의 선대하심만을 볼 수 있다면 자기는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B.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13; 벧전 2:2~3)
이제 13절을 보지요.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이것이 다윗이 믿은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하나님을 믿습니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선하심을 보게 될 줄 믿었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원수와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 그 속에서 태연했던 이유가 여기에 나타납니다. 그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이런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을 방해 받지 않고 더욱 보고 주목하고 그 안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습니다. 한 번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사람들은 이 마음을 가지게 되고 이 고백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2~3).”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친절하심, 선대하심, 그분의 선하심을 맛보아 안 적이 있기에 지금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여호와의 아름다움, 선대하심을 보고자 평생을 하나님의 집에 살고 싶어 합니다.
4. 권면: “여호와를 기다려라(14).”
이 시편은 설교적 도전으로 마무리됩니다. 14절입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많은 사람들이 다윗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갑니다. 고단하고 힘이 드는 삶입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잘 될 거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다윗은 성령의 영감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거야. 그것은 결국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 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눈 앞에 있는 대상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만들지. 모든 상황에서 태연할 수 있어. 네게 필요한 것은 상황의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믿음이야.” 그리고 14절에서 “그러므로 여호와를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신앙은 내가 바라는 어떤 상황의 해결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초점은 나도 아니고, 상황도, 문제도 아닙니다. 신앙의 초점은 오직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이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 것을 알기에 모든 상황에서 그는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5.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8).
이것이 시편 27편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하나 정말 주목할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8절입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8절이야말로 이 시편의 열쇠와 같은 구절로 보입니다. 다윗이 인생의 곤경과 상처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하게 안심할 수 있었지만, 그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7절에서 다윗은 자기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해주시기를 소리 내어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기도한 것은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8). 그래서 그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자 그는 대답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먼저 저를 이 곤경에서 구해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주님을 찾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7절에서 부르짖어 구한 것은 분명히 자기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기도는 자기를 이 곤고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것을 포함하겠지요. 그러나 앞서 다윗이 구한 것,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을 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8절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곤경과 환난 속에서 부르짖은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합니까? 다윗은 즉시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만인이 나를 대적해도,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않으시고 자기에게 노하지 않으신다면 다윗은 만족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9). 다윗은 이점에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것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위험과 두려움, 버림받음과 싫게 여김은 없어졌다가도 언제라도 다시 인생 중에 찾아올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변함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초막과 장막에 보호와 숨김을 받는 것이고, 변함 없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대하심은 결코 변덕스럽거나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변덕스러움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을 종종 시야에서 놓치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게 할 뿐입니다.
6. 고난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게 하는 도구다(호 5:15).
다윗이 구한 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지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종종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사용하십니다. 호세아 5장 15절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마치 사자가 먹이를 움키고 탈취한 후에 자기 굴로 돌아가듯이, 그렇게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거두신다는 말입니다. 언제까지입니까?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입니다.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지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이 자동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은 주의 말씀을 듣습니다. 고난 중에 부르짖은 기도에 대한 응답이 이것입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무엇을 구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곤경 속에서 우리가 구할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모세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넌 모세는 시내산에서 친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모세는 아마 그 많은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가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라고 느꼈을 지 모릅니다. 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뵙는 엄청난 은혜를 입은 모세가 직면해야 했던 상황은 백성들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 속에서 모세의 가슴은 찢어졌을 것입니다. 그날 삼천 명의 범죄한 동족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자기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구합니다.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 그가 구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고통은 이와 같이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너는 하나님이 필요해. 너 혼자서는 할 수 없어. 그러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
7.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영광과 기쁨
여러분, 오늘 우리가 어떤 환경 가운데 있든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내 얼굴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고난과 상처를 덜어달라고 구하는 대신, 이 고난과 상처를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달라고 구하십시오. 왜냐하면 이것이 언제나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향해서 가지고 계신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내 얼굴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응답은 “내가 너를 책임진다. 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내가 공급하마. 내가 너를 위해서 모든 것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내 얼굴을 구하라”는 말입니다. 이 명령은 또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견딜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마” 하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면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임재를 원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이 평생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선하심을 보는 것, 이것이 피조된 인간이 이 세상과 영원 속에서 얻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처해 있는 환경이 어떤 감당치 못할 것이든지 하나님께서는 이 자리로 우리를 데리고 가시는 것을 아십시오. 그리고 우리도 이렇게 말합시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