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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설교 - 나는 죽고 예수가 사는 감격

갈라디아서 2:20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1-04-24

말씀내용
1. 뿌리깊은 오해 그리고 신자의 딜레마
신자들에게는 뿌리깊이 박힌 그리고 너무나 만연한 오해가 있다. 그들은 이 오해 때문에 늘 좌절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패배주의 내지는 냉소주의에 빠지고 만다. 이것이 오래도록 신앙생활을 해본 사람들이 지닌 문제이다.

A. 신자의 쳇바퀴: 결심/헌신?좌절/죄책감?재결심/재헌신?좌절/죄책감
우리의 결단과 각오와 헌신과 행동으로 날마다 이 고백을 외쳐야 한다. 매일 결심하지만 매일 실패한다. 그리고 다시 헌신한다. 여기서 신자의 내면에 일어나고 형성되는 좌절과 낙심 그리고 죄책감과 패배주의는 매우 심각하다. 과연 신자의 삶은 이런 것일까?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이고 복음의 능력인가? 그렇다면 이것이 도를 닦는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무엇인가? 그 이상은 없는 것인가?

B. 오르지 못할 고지: “이제 내 안에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
또 하나의 오해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고백을 사도 바울 정도 되는 신앙의 성숙을 이룬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고백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것은 도무지 나 같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은 오르지 못할 고지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늘 내 안에 사는 것은 죽지 않은 ‘나’가 아닌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교정
성경은 위와 같은 신자의 뿌리깊은 오해는 교정되어야 하는 것이며 바른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우리의 율법적 사고방식, 우리의 본성이 요구하는 방식일 뿐이다.

A. 모든 신자는 믿을 때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롬 6:3~7).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특별히 성화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개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이것은 사실상 기독교 가르침 가운데 가장 신비한 사건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리스도와 연합된다는 개념이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는 신자 안에 거하게 된다.
[롬 6:3-롬 6:7]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신자는 먼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가 죽으실 때 그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장사 지낸 바 될 때 신자 자신도 장사 지내어졌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부활하실 때 신자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다. 물론 우리는 그 때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는 그 때 다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죽었고, 장사 지내졌을 때 함께 장사 지내졌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모든 신자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현재의 그리스도인의 상태를 이렇게 놀랍게 묘사했다.
[엡 2:2-엡 2:6]
(2)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모든 신자의 존재는 지금 하나님 보실 때, 그리스도 부활하실 때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연합의 관계) 하늘에 앉혀져 있다. 이것은 정말 믿어지기 힘든 놀라운 선언이 아닌가? 이런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언제 일어나는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일어난다. 그 믿음을 공적으로 고백하고 선언하는 것이 바로 세례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을 고백하고 인정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참으로 믿고(거듭나고)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는 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 존재인 것이다.

B. 신자의 삶은 부활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신자, 어느 특정 계층의 신자가 아니라 모든 신자의 삶은 이제 부활하신 예수의 생명을 사는 것이다. 더 이상 옛 사람의 존재는 없다. 옛 김형익, 죄인, 죄의 노예 김형익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죽었다. 허나 지금 사는 것은 예전의 김형익이 아니라 그리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오셔서 사시는 것이다. 그것은 부활 예수의 생명이다. 이 부활 예수 생명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나의 죽음이 일어났고 나의 죽음 자체가 죽은 것을 알 때 가능하다. 전자가 없이 후자도 없다.

3. 구원의 완성과 복음의 객관성: “당신은 언제 구원받았는가?”
이런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완전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당신은 언제 구원받았는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질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 구원받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제 구원받았는지 물어보는 것은 구원파가 아닙니까?”라고 질문하실 분도 계실지 모른다. 그러나 이 질문은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틀린 질문이 아니다. 신자가 구원받은 것을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2000년 전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을 바로 그 순간이다. 주님께서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신 바로 그 때이다. 신자의 구원은 2000년 전 십자가에 그리스도께서 못박혀 죽으신 날 일어났다. “내가 구원받은 시점은 2000년 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였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죄인의 구원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완전하게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관점을 보여준다. 복음의 객관성이다. 물론 우리 하나 하나는 다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을 받지만, 그것은 이미 일어난 구원 사건을 성령님께서 신자 개개인에게 적용하여 주시는 일이다. 사실 십자가에 주님이 죽으실 때 일어난 일은 창조 이래로 최고의 사건, 가장 엄청난 사건이다. 그 때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 가운데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모든 백성의 구원 사건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이다!!! 할렐루야!!! 복음의 사건은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거기서 그 순간에 완성되었다. 그것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로 부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써 그 구원 사건이 완전하게 조금의 문제도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증해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바로 이것, 모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4. 모든 신자의 고백: “이제 내 안에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
그렇다면 이제 다시 사도의 고백, 선언을 보자. 이것은 누구의 고백인가?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백인가? 이것은 모든 거듭난 구원받은 신자의 고백이다. 신자들은 사도 바울과 함께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직 내 안에 사는 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고백은 더 이상 성숙한 신자나 매일 승리의 삶을 사는 신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가 자신들에게 거저 주어진 그리고 완전하게 완성된 구원의 복음을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고백인 것이다.

5. 십자가에서 무엇이 일어났는가?
그러면 과연 십자가에 그리스도께서 달려 죽으실 때, 일어난 일이 무엇인가? 성경은 거기서 죽은 것은 그리스도지만, 우리의 옛 사람도 거기서 죽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는 새 사람,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에, 그전의 모습, 그전의 정체성, 그전의 죄인인 김형익을 믿은 후에는 옛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그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이다. 이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라고 말할 때 신자는 자신의 죽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옛 사람, 죄인, 죄의 노예 김형익은 없다. 그는 죽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A. 자기 의(self-righteousness)의 죽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의가 죽었다는 말이다. 우리의 죄의 본성에 가장 깊은 핵심은 바로 자기 의이다. “내가 죽었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죄와 마귀가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김형익은 없다는 말이다. 죄짐이 다 벗겨졌다. 나에 대한 죄의 형벌이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 완전하게 집행되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만든 나의 죄의 가장 무섭고 깊은 핵심은 자기 의다.

B. 자기 의가 그리스도를 죽게 했다.
자기 의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서 인간의 조롱 속에서 죽으시게 한 그 죄는 바로 나의 자기 의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기 의의 존재는 쓰레기, 그리스도의 원수인 것을 아는 사람이다. 인간의 자기 의가 그리스도의 원수인 것을 알기에 이제 신자는 자기 의를 자신의 원수로 삼고 살아가는 자이다.

6. 부활
A.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결과, 모든 신자의 영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연합이 되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지만 다시 사셨고 우리 신자들 안에 신자의 영과 영적 연합 속에서 살아계신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오늘 이 유명한 본문 속에서 고백한 것이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B. 예수 그리스도의 ID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
주님은 잡히시기 전날 저녁 제자들과 식사하시던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15:4-요 15:7]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것이 신자의 삶이다. 우리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것이 구원받은 신자의 신분이다. 그의 주소는 “그리스도 안”이다. 그래서 우리는 담대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ID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인생을 마치고 천국문에 섰을 때, 대제사장 스가랴 앞에서 서서 그를 고소하고 정죄하던 마귀가 우리를 정죄하려고 기다릴 것이다. 그 때 마귀가 “너는 무슨 자격으로 그 더러운 옷을 입고 이 영화로운 천국문에 들어가려고 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이것이다. “나는 나의 더러운 자기 의의 누더기를 가지고 천국문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피로 씻어진 정결한 옷을 입고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바로 그 모습,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보시기 때문이다. 마치 죄를 한 번도 지은 적 조차 없는, 아니 죄를 알지도 못하는 자인 것처럼 우리를 보시는 것이다. 이것이 어디서 일어났는가? 바로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일어난 일이다.

7. 영적 연합에서 일어난 일
이제 말씀을 마치기 전에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인가를 정리해 보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모든 것들을 다 당신 자신에게로 가져가셨다. 죄와 죄책들, 그리고 모든 벌거벗은 수치와 온갖 음란하고 더러운 것들을 그리스도께서 다 가져가셔서 자신이 뒤집어쓰셨다. 그리고 반대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영예롭게 하는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거저 주셨다. 그리스도께 속한 가장 거룩하고 아름답고 정결하고 영화로운 모든 것들이 다 우리의 것이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 우리가 믿을 때, 십자가에서 이미 완성되고 일어난 그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리스도께 속한 가장 거룩하고 아름답고 정결하고 영화로운 모든 것들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고전 1:30-고전 1:30]
(30)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이 구절을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지혜이십니다. 그분 덕택으로 우리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고, 해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신자의 지혜, 의로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시고 사시면서 우리의 지혜, 의로움, 거룩함, 구속함이 되셨다.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무엇이 부족한가? 나의 어리석음, 나의 죄, 나의 반역과 불순종을 다 가져가시고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의는 여기서 다 죽었다. 자랑한다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랑할 뿐이다. 아니, 더 나아가서 사도 바울은 말한다.
[고전 2:2-고전 2:2]
(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 복음,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말한다. 이 복음이 너무나 영광스러워서, 그는 복음 외에는 말할 것이 없다. 이게 그가 알고 말하고 살고 싶은 전부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바울 사도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니,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일어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확증해주신 그 복음이다.

8. 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이런 사람들, 이런 구원을 받은 사람들, 이렇게 하나님께서 생명을 버려 사랑하시고 찾아오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어떻게 이 큰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삶이 이전과 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A. 복음이 주는 기쁨: 바울 사도의 기쁨, 그리스도께서 주마 약속하신 기쁨(요 16:22,24), 성경이 말하는 신자의 기쁨
바울 사도는 그런 사람들의 삶의 기쁨을 말한다. 그것은 복음이 주는 기쁨이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숫한 고생을 하면서도 그로 기뻐하며 찬송하게 만들었던 복음이 주는 기쁨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주마 약속해주신 기쁨이다.
[요 16:22, 요 16:24]
(22)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기쁨,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다. 성경이 전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신자의 기쁨이다. 이것이 바로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받은 사람들의 기쁨이다. 그들은 이 기쁨을 지닌 자들이다.

오늘 말씀은 실패할 수 없는 구원을 말해준다. 우리의 능력, 우리의 승리, 우리의 노력이 우리의 구원을 결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신자의 구원은 이미 2000 년 전에 십자가에서 일어났고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고 사는 것은 예수의 승리 안에서 사는 것이다. 때로 나는 매일 지고, 매일 넘어진다. 그러나 그 나는 죽었다. 그 나는 없다. 내 안에 사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다. 그분은 “모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신” 분이시다(골 2:15). 그러므로 신자의 삶은 열심히 자기 힘과 의지로 노력해서 승리를 쟁취하는 삶이 아니다. 신자의 삶은 날마다 자기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이다. 우리는 복음으로 산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롬 1:16).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 노력으로 인한 결심과 헌신 그리고 실패와 좌절과 재헌신의 패배주의적 사이클에서 사는 율법주의 기독교로 부름을 받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광의 복음으로 부르셨다! 신자는 이 복음의 기쁨으로 사는 자다.


B.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바울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했다. 신자는 이미 죽은 자다. 신분 상으로 그렇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신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성화에서 우리는 여전히 남아서 활동하는 죄의 잔재와 싸우며 살아간다.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죄인 우리들의 ‘자기 의’와 우리는 매일 싸우며 살아간다. 주님께서는 자기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부활 예수의 생명을 사는 자들이 어떻게 자기 의가 살아가지고야 예수 생명을 살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 자들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가 죽은 자들이다. 무엇을 자랑하고, 무슨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가겠는가? 나의 자기 의는 쓰레기에 불과하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원수인데 말이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주님께서 아버지께 드린 기도를 묵상해보라.
[요 17:21-요 17:21]
(21)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아멘!

“주님, 그 고난과 죽으심으로 이루신 그 기쁨을 오늘 우리에게 부어주시옵소서! 오늘 우리가 그 기쁨을 소유하고 기뻐하며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허비하지 않게 하옵소서! 부활로 우리의 구원을 확증하여 주심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임을 알고 살게 하시고 이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