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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샬롬 교회 단편설교 - 경건한 집사와 권사를 택하여 세우십시오

디모데전서 3:8-13, 사도행전 6:1-6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9-08-25

말씀내용
오늘 우리는 예배를 마치고 공동의회를 열어 집사와 권사 선출을 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교회에 이 직분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본문은 교회의 집사직분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말씀하는 유일한 신약성경의 본문입니다. 본문의 앞 부분인 1-7절은 장로직분에 대한 언급입니다. 여기서 감독은 장로직분과 같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언급했듯이, 우리가 직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경험이 성경적 가르침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1. 집사의 자격(행 21:8; 딤전 5:17)
먼저 집사가 어떤 직분이며, 어떤 자격을 요구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직분자 선출을 앞두고 여러분에게 지난 한 주간, 디모데전서 3:8-13을 읽고 묵상하면서 누가 이 직분을 받아 섬기기에 합당한가를 찾아보시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렇게 하셨습니까? 본문은 집사직분에 대한 주님의 기준을 보여줍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는 직분자들을 세워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장로와 집사라는 항존직에 선출되어 섬기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성경에 드러난 주님의 뜻을 밝히 알아야 주님의 뜻을 따라 교회를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면, 교회를 바르게 섬길 수 없습니다. 직분자가 감당하는 일은 주님을 대신하여 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대신하여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가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이며, 주님을 대신하여 양떼들을 다스리고 돌보는 자들이 장로이고, 주님을 대신하여 교회의 양떼들 가운데 핍절하고 어려운 성도들이 없는지 살펴 그들을 살피고 돕는 역할을 하는 자가 집사입니다.
이와 같이, 목사와 장로와 집사는 자기 뜻을 펼치는 직분이 아닙니다. 직분에는 철저한 자기 부인이 요구됩니다. 정상적으로 목사, 장로, 집사가 주의 뜻을 구하고 그것을 최우선에 두게 될 때, 교회는 화평하게 되지만, 그들이 자기 뜻을 구하게 된다면 분쟁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주님을 대신하여 행하므로, 모든 영광도 주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높이거나, 직분이나 직분 행함이 자기의가 될 수 없습니다. 집사는 헬라어로 ‘디아코노스’입니다. 하인이나 종, 일꾼 또는 섬기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복음서에도 많이 등장하지만, 교회의 직분으로 명시적으로 쓰인 것은 오늘 본문에서입니다.
한 마디로 집사라는 직분은 섬기는 직분입니다. 보통 우리가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성경본문에서 집사로 언급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도 집사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일곱 사람을 택하라고 나옵니다. 우리의 오해를 굳혀주는 구절이 하나 있는데, 사도행전 21:8입니다.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여기 ‘집사’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원문에는 집사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냥 ‘일곱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곱 일군 혹은 사역자는 초대교회의 직분으로서의 집사 기능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암시하는 중요한 본문입니다. 비로소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는 직분과 식탁봉사 즉 구제의 직분이 나뉘어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사도들이 모든 일을 처리해야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면서 필요가 커졌고 그러다가 히브리파 과부와 헬라파 과부들 사이에 구제를 받는 일에서 갈등이 불거지게 되었고, 이 사건은 이 일을 위하여 섬길 사람들을 세우게 한 것입니다. 후에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교회가 설립되면서, 이것이 장로와 집사의 직분으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에 젼념하며 목양하는 사도들의 직무가 장로들에게 주어졌고, 이것은 다시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들의 말씀 사역과 다스리는 장로의 목양 사역이 분리되게 되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디모데전서 5:17과 같은 구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딤전 5:17).”그리고 집사직분은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사람이 하던 일을 주로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소위 구제와 행정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집사의 직무는 주로, 구제와 행정 또는 재정의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집사직분의 직무입니다.
그래서 교단 헌법은 집사를 이렇게 규정합니다:

제 1 조 집사직(職): 집사직은 목사와 장로직과 구별되는 직분이니 무흠한 남교인으로 그 지교회 교인들의 택함을 받고 목사에게 안수(按手)임직을 받는 교회 항존(恒存)직이다.
제 2 조 집사의 자격: 집사는 선한 명예와 진실한 믿음과 지혜와 분별력이 있어 존숭(尊崇)을 받고 행위가 복음에 합당하며, 그 생활이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만한 자 중에서 선택한다. 봉사적 의무는 일반 신자의 마땅히 행할 본분(本分)인즉 집사 된 자는 더욱 그러하다(딤전 3:8-13).
제 3 조 집사의 직무: 집사의 직무는 목사 장로와 합력(合力)하여 빈핍 곤궁한 자를 권고하며 환자와 갇힌 자와 과부와 고아와 모든 환난당한 자를 위문하되 당회 감독 아래서 행하며 교회에서 수금한 구제비와 일반 재정을 수납 지출(收納支出) 한다(행 6:1-3).

이 내용은 오늘 본문 말씀의 기준을 따라 기술한 것입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집사 직분의 자격이 무엇입니까? 사실, 2-7절에서 전술한 장로직분의 자격에 대한 말씀과 집사 직분에 대한 말씀을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장로는 가르치기를 잘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딤전 3:2; 딛 1:9). 장로직분의 본질이 말씀 사역임을 보여줍니다.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만이 아니라, 모든 장로는 자기 경험이나 연륜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그것을 기준 삼아 성도들을 교훈하고 목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때로는 책망할 수 있으려면(딛 1:9), 그만한 권위가 요구되기에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게 언급됩니다(딤전 3:2; 딛 1:6-7).
그렇다면 집사직분의 자격은 어떤 특징을 가집니까? 장로직분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집사직분에만 언급되는 자격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선, 일구이언하지 않음(딤전 3:8), 정숙하고 모함하지 않고 모든 일에 충성됨(딤전 3:11)과 같은 자질들입니다. 집사직분은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섬기는 직분이기에, 말을 옮기거나 일구이언하거나 모함을 하게 된다면 사탄의 도구가 되어 교회를 허물고 말 것입니다. ‘정숙하다’는 말은 존경받을 만 하며 경건하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장로와 집사직분에 해당하는 자격들이 묘사하는 모든 것은 경건함입니다. 본문 11절에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어떤 실력자, 사람에게 충성하는게 아니라,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 충성되다는 것입니다. 헬라어로‘충성되다(피스토스)’는 믿음(피스티스)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영어로 ‘faithful’이 ‘믿음이 충만한, 믿음직한’이라는 의미인 것과 같습니다. 충성된 자란 믿음에서 나오는 행동과 태도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가 집사직분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언급해야할 특징적 자격은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딤전 3:9). 자주 말씀드리지만,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양심이 불량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사실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양심은 믿음이 담기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양심이 아니면 참된 믿음을 담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삶과 행실이 믿음을 반영한다는 뜻이고, 곧 삶으로서의 경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믿음의 비밀’과 관련하여 오해가 많습니다. 이 말은 무슨 신비 체험을 가졌는가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비밀’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는 거의 복음의 진리를 가리킵니다(딤전 3:16; 롬 16:25-26; 고전 4:1; 엡 1:9; 3:3-9 등). 복음의 진리를 가진 자인가, 그 영광스러운 진리를 깨달았고, 그 진리를 사랑하는 자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단하게라도 한 가지 오해를 짚고 가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집사는 장로가 되기 위한 단계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중세교회(지금도 여전한)가 보여주었던 계급조직이 아닙니다. 은사와 직분이 다를 뿐, 누가 누구보다 높거나 하지 않습니다. 장로직분과 집사직분의 일이 다른 것입니다. 집사직분에 합당한 분이 장로직분에는 합당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도 가능합니다. 때로는 집사가 장로로 피택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필요에 따라서 교인들이 판단하여 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도 가능한데 이것은 강등이 아니고 교회의 필요에 따라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집사직분에 대한 주님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집사를 선출하기 위해 투표하실 때, 주님의 뜻을 잘 살피고 주님이 기뻐하실 결정을 한 뒤 투표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2. 권사직분의 성경적 근거
오늘 우리는 집사만 선출하지 않고 권사도 선출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권사라는 직분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권사를 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 교단 헌법이 권사를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교회 헌법 [4권 정치편, 3장 교회 직원, 3조 교회의 임시직원 3항 권사] 에서 권사의 직무와 권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권사는 당회의 지도 아래 교인을 방문하되 병환자와 환난을 당하는 자와 특히 믿음이 연약한 교인들을 돌보아 권면하는 자로 제직회 회원이 된다.”권사의 직무는 교인들 특히 병환을 가진 교인들이나 환난을 당한 교인들, 또 믿음이 연약한 교인들의 형편과 상황을 돌보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교회 헌법은 권사직무를 집사직무와 유사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직분이 성경에 명시되지 않았기에, 교회 헌법은 “권사는 안수 없는 종신 직원”으로서 임시직이라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임시직’이라는 항존직과 대별되는 개념으로 사용된 말입니다. 임시직에는 전도사, 전도인, 권사, 서리집사가 있습니다.
권사직분의 역사적 유래를 보면, 본래 미국 감리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권사(exhorter)는 ‘권면하는 사람’으로 공식적으로 임명을 받은 직분으로 로마서 12:8에 ‘위로하는 자’에 근거한 직분이었습니다. 그러나 1939년 미국 남북 감리교회가 연합할 때, 권사직분은 없어졌습니다. 한국에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 감리교회는 초기에 권사를 견습 또는 전도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초기 평양 지역의 장로교회에서는, 심방과 개인전도, 성경공부와 교회봉사 등 전도부인의 역할을 감당하는 여교역자들을 권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교회 헌법에 여교역자를 전도사로 명시하면서, 교회봉사를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지도력도 있는 여자 (서리)집사 중에서 여교역자를 대신하여 봉사하도록 당회가 임명하는 임시직을 권사라 칭했습니다. 이후 1954년 39회 총회에서 여자 장로를 허락하지 않는 대신, 권사 제도를 신설하기로 결의했고 권사는 안수집사와 같은 방식으로 선거하되 안수를 행하지 않고 세우는 종신직으로 규정하였습니다. 한편 감리교회는 장로교회와 달리, 남자에게도 권사직을 허용하였고 지금까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장로교회 중에서도 통합측은 1971년판 헌법에서 권사를 항존직으로 규정했고, 1999년의 84회 총회에서는 권사 안수를 결의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신약 성경의 가르침에서 너무 나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장로교 고신측의 경우는 2011년 개정 헌법에서 권사를 ‘준 항존직’으로 변경하게 되는데,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직분이기에 ‘준’이라고 붙인 것입니다. 우리 교단이나 고신 교단이 규정하고 있는 정도의 선에서 우리는 권사직분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비록 성경에 명시된 직분은 아니지만, 권사직분은 집사직분과 함께, 교인들의 처지를 돌봄으로써 온 교회에 사랑과 위로가 풍성하게 하는 일에 쓰임받는 귀한 직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권사직분은 잘 감당하면, 마치 한 가정의 어머니가 차지하는 역할처럼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여 교회를 부요하게 하는 직분인 것입니다.
집사의 직무인, 구제와 행정(재정) 중에서도 권사의 직무는 주로 구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구제를 경제적 일에 한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현대사회에서 경제적 문제 외에도, 이런 저런 돌봄이 다양하게 필요합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의 요소들이 신앙생활을 막지 않도록 모든 교우들을 여러 면에서 돌볼 수 있는 집사와 권사가 교회에 많다면 교회는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3. 교회의 투표—하나님의 뜻을 묻는 방법(행 6:3)
자, 이제 이런 직분자들을 어떻게 세워야 합니까? 성경에 빈번하게 나오는 제비뽑기 방식을 사용해야 할까요? 필요한 숫자만큼 표시를 해두고, 한 사람씩 나와서 뽑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왜 투표방식을 사용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대답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제비뽑기가 아니라 투표로 직분자들을 선출합니다. 교회에서의 투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행하는 투표와 본질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주주의는 주권재민(主權在民) 즉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전제로 세워진 정치체제입니다. 우리나라도 헌법 1조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합니까? 교회의 주권은 교인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목사나 장로입니까? 아닙니다. 교회의 주권은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투표라는 민주주의의 선출 방식을 사용하는 것일까요?
가장 중요한 차이는, 교회에서의 투표는 민주주의의 투표와 달리, 자기 뜻을 행사하는 장치가 아니라,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절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성과 판단력을 주셨고, 직분자의 자격을 제시하셨으며, 주의 뜻을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여 교인들의 인정을 통해서 직분자가 세워지게 하신 것입니다. 직분자가 교인들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교인들을 섬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표를 통해 교회는 직분자들을 선출합니다. 사도들은 히브리파 과부와 헬라파 과부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 6:3)”고 말했습니다. 사도들은 기준을 주었고, 교인들은 그 기준에 준하는 사람들을 택하여 세운 것은 교인들 즉 형제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을 택한 방식이 정확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투표방식이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각 사람의 판단—하나님의 뜻을 묻고 답을 얻는—을 존중하고 교회를 세워가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투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비뽑기가 오늘날 그 합당한 방법으로 사용될 수 없는 이유는, 특별계시로서 성경이 완성되었고, 그 안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명확하고 충분하게 계시되어 있기에, 이제는 주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고 그에 순종하여 그 뜻을 받드는 방식으로서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투표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사람을 하나님이 제시하신 기준에 따라 선출하는 것입니다.


4. 열쇠—경건의 비밀(딤전 3:15-16)
오늘 본문은, 많은 조건과 자격들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경건한 집사를 택하여 세우라는 말씀입니다. 일구이언하고 모함하고 치우쳐 있으며 말을 옮기는 사람이 집사와 권사들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온 교회가 그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많은 교회에서 일어납니다. 일단 선출되면 돌이키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어지는 본문에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이 말을 주목해보십시오.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교회 즉 하나님의 집에서 행하는 도리는 세상에서 행하는 도리와 같을 수 없습니다. 사도가 지금 장로와 집사직분의 자격을 논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는지에 대한 도리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일반은총의 영역이 완전히 무시되어서는 결코 안 되지만, 세상에서의 리더가 당연히 교회에서의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영적 원리로 돌아가며, 은혜가 지배하고 은혜를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딤전 3:16a).” 여기서 비밀이라는 단어가 또 나옵니다. 이 비밀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진리 그 자체를 말합니다. 그것이 이어지는 진술입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딤전 3:16).”
복음의 진리가 경건의 비밀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우리를 구원할 뿐 아니라, 이 직분에 해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성품과 자질과 조건을 만들어냅니다. 경건은 참된 복음의 산물입니다. 복음이 만들어낸 경건한 사람들은 복음의 은혜를 맛보고 그 은혜에 적셔진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조건들은, 유교적 의미에서의 도덕적 의가 아니며, 그는 소위 잘난 사람들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은혜를 맛보았고 은혜를 베풀고 싶은 사람들, 이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것을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경건한 집사와 경건한 권사를 찾아 택하여 세울 때입니다. 오늘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투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뻐하시는 사람들을 세워주시고 영광을 받으시기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