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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 당하신 군대 대장

여호수아 5:13-15, 요한계시록 12:12, 에베소서 6:11-12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23-07-02

말씀내용
1. 맥락: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다 (수 3:16-17; 4:19; 5:2-9, 10, 11-12; 6:1)
40년 전 모세의 인도 아래서 부모 세대와 함께 갈라진 홍해 사이를 건너 광야로 들어섰던 백성은, 비록 부모 세대는 다 광야에서 죽었고 지도자 모세도 죽었지만 이제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서 갈라진 요단강을 밟고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왔습니다(수 3:16-17). 그리고 1월 10일에 길갈에 진을 친 뒤에(수 4:19) 그들이 하나님의 명을 받아 제일 먼저 한 일은 모든 남성들이 할례를 받는 일이었습니다(수 5:2-9). 그렇게 1월 14일이 되었고 그 날에 백성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수 5:10). 그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지 정확하게 만 4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튿날이 되자, 지난 40년의 광야 생활 중 변함 없이 하늘에서 내려서 그 백성을 먹이던 만나가 그쳤고, 그들은 그 땅의 소산물을 먹기 시작했습니다(수 5:11-12). 정확하게,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은 손쉽게 얻어질 땅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거기에는 여러 가나안 족속들이 살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첫 성인 여리고 성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성이 이중으로 되어 있는 요새였습니다. 게다가 6:1은 이 성이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다고 알려줍니다. 이런 요새가 굳게 닫혀 있는 상황은 훈련된 군사들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여리고 성을 넘어야 가나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기에, 이 성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가나안에서의 첫번째 전투를 앞둔 상황입니다. 여호수아는 비록 요단강을 밟고 건넘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검증되었다고 하기에는 불안한 새로운 지도자였습니다. 요새 중의 요새인 여리고는 성문이 굳게 닫힌 상태였습니다. 여리고 성의 백성의 마음이 이미 물 같이 녹았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지만(수 5:1) 여호수아와 백성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굳게 닫힌 요새의 성벽 뿐이었습니다(수 6:1). 여호수아는 “저 성벽을 오르려면 몇 개의 사다리가 필요할까? 저 육중한 성문을 파괴하려면 얼마나 많은 공성퇴가 필요할까?”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모세는 40년 동안 우리를 능히 인도했는데, 이제 저 새로운 리더 여호수아는 난공불락의 요새 여리고를 함락하고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인가?”를 염려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사건이 주어진 상황입니다.
어쩌면 교회도 비슷한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10년 뒤의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교회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 그리고 가족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우리는 염려와 고민이 끊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상황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2. 이스라엘의 군대 대장이 만난 여호와의 군대 대장 (계 22:8-9; 수 6:2, 3-5)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그가 군대 대장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선봉에 서서 가고 있던 것인지, 홀로 생각에 잠겨 여리고 가까이에 가고 있었던 것인지는 불확실합니다. 여호수아는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자신을 마주한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전투를 앞둔 여호수아가 갑작스럽게 자기 앞에 칼을 빼어 들고 나타난 장수를 보았으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일단 이 낯선 장수의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여호수아는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낯선 장수는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고 대답합니다. 이스라엘의 군대 대장이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난 것입니다. 하지만 낯선 장수의 이 대답은 그가 단지 누구의 편으로 제한될 수 없는 존재임을 시사합니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이 모호한 인물이 과연 누구인가 궁금합니다. 그가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라는 말을 들은 여호수아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말합니다.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이까?” 이것은 거의 경배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에서 보았듯이, 한 천사가 요한에게 나타나 계시를 주었을 때 요한은 그 천사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습니다. 그때 천사는 자신은 요한과 같은 종이니 자기에게 경배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합니다(계 22:8-9). 그런데 여기서 여호와의 군대 대장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배의 태도를 보이는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의 우월함은 인정하고 있지만, 아직 이 군대 대장의 정체를 완전히 아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내 주여”라고 부를 때, 하나님을 부르는 ‘아도나이(my Lord)'가 아니라 ‘아도니(my lord)'라는 총칭 명사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데이비드 하워드 Jr.). 그러나 곧 이어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말을 했을 때 여호수아는 자기가 마주한 장수의 정체를 분명하게 감지하기 시작합니다. 이 말은 모세가 광야의 불붙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들었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출 3:5). 여호수아는 자기가 마주한 분이 하나님 자신임을 감지했습니다.
이 사실은 이어지는 본문에서 확정됩니다. 본문은 6장의 시작으로 끊어지는 것 같지만, 본래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난 사건은 6:5까지 이어진다고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6:2에서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주시는 전투 지시 사항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여호수아 6:2).” 이것은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떠나고 나서 하나님께서 새롭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만난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확증해주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난공불락의 요새인 여리고를 무너뜨릴까 고심하던 여호수아에게 그리고 자신들의 지도자에 대해서 완전한 신뢰를 주지 못하고 불안해하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이 말씀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다!” 그리고 하나님, 즉 여호와의 군대 대장은 여리고를 함락 시킬 구체적 지시 사항을 주십니다. 한 마디로, 군사들이 일곱 제사장과 언약궤를 따라 성 주위를 매일 한 바퀴 씩 돌되 엿새 동안 그리하고,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불 때 함성을 지르면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수 6:3-5). 이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용기 백 배 하여 여리고 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오신 목적 (요 4:10)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하!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이때 여호수아에게 오신 것은 여리고 전투에서 승리의 비법을 주시고 용기를 더해 주시려는 목적이었구나!”라고 말입니다. 물론 기능적인 면에서 전투 지시 사항을 주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이때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신 본질적 목적은 새 시대의 시작과 함께 가나안에서의 첫번째 전투를 앞둔 여호수아와 그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복종하게 하시려는 것, 하나님 경외함을 가르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그들에게 나타내시고 당신의 존재를 보이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그 백성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땅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전에, 자신들이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분의 거룩한 임재 속에서 살아야 함을 알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취하여 얻는 것과 하나님 자신을 분리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이제 그 땅을 차지하는 거룩한 전투의 첫 전투를 앞둔, 그러나 물리적, 군사적으로는 불리하고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신 하나님은 불가능해 보이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전투 명령을 주십니다.
잘 보십시오. 여호수아는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군대 대장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네가 내 말을 듣기 전에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네게 말하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에게는 이 점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한복음 4:10).”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무력한 것이 아닙니까? 여호수아와 백성에게 중요한 것은 다가오는 전투의 승리 보다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그를 경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중요한 순간에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를 찾기도 전에 말입니다.


4. 여호와의 군대의 의미 (출 12:41; 왕하 6:17; 마 26:53; 수 6:2)
그래도 여전히 궁금한 것은 왜 하나님은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오셨는가 입니다. 먼저 ‘여호와의 군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번째 가능성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출애굽기 12:41).” 그러나 여호와의 군대가 하늘의 군대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아람 왕이 엘리사 선지자를 잡으려고 군대를 보내 도단 성을 에워쌌을 때 엘리사의 사환이 이를 보고 두려워 탄식하자, 엘리사가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지요. 그러자 사환이 “불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왕하 6:17). 그가 본 것은 하늘의 군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잡히실 때 베드로가 검으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떨어뜨리자,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태복음 26:53).”고 하셨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군단은 6천명의 군사로 구성되었는데, 주님은 원하시면 열 두 군단 더 되는 하늘 군대를 부를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의 군대가 존재한다고 증언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이스라엘 군대의 총사령관, 하늘 군대의 총사령관(삼상 17:45; 사 31:4-5; 시 89:6-8; 호 12:4-5)으로 부르는 칭호입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라는 명칭에서 여호와의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인지, 하늘의 군대인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후 여리고 성 전투의 승리를 숙고해보면, 하늘의 군대가 싸워준 승리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어쨌든 여호와의 군대 대장의 등장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다”는 말씀에서(수 6:2)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얻었을 위로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5. 죽임 당하신 여호와의 군대 대장 (마 4:1-11; 26:36-46; 엡 1:22)
고대의 전투에서는 대장이 보통 뒤에서 지휘하지 않고 선봉에서 군대를 이끌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은 전투의 선봉에서 하늘의 군대를 이끄셨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군대 대장이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교회의 선봉에서 마귀를 대적하여 싸우시는 대장이십니다. 주님은 그 싸움을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성육신하여 이 땅에 계시는 일생 동안 줄곧 이 영적 원수들을 만나셨습니다.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고(마 4:1-11), 겟세마네에서 원수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으셨습니다(마 26:36-46). 그리고 마귀는 십자가에서 사력을 다해 발악적으로 주님을 이기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마귀의 이 모든 공격을 주님은 교회를 대신하여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서 교회의 선봉에 서서 다 받으셨습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신 주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고 옆구리를 창에 찔리심으로써 이 모든 마귀의 공격을 무력화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골 2:15). 주님은 죽으심으로써 승리하셨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엡 1:22).”


6. 교훈과 적용


A. 교회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싸우고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승리한다(계 12:12; 엡 6:11-12; 고후 10:4-5; 계 18; 엡 1:22)
교회인 우리도 늘 이 싸움 속에 던져집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신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결정적으로 패배한 마귀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기에 더욱 발악적으로 교회를 공격합니다(계 12:12). 이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악의 영인 마귀를 상대하는 싸움입니다(엡 6:11-12). 이것은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사상과 이론, 그리고 시대 정신과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사로잡아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싸움입니다(고후 10:4-5). 그래서 이것은 진리 전쟁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힘이 아닌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리고 성 전투의 승리가 주는 교훈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가진 돈과 재산과 인적 자원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육적 능력으로 싸우는 것과 성령의 능력으로 싸우는 것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계획, 광고, 출판, 캠페인, 위원회 등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육적 능력으로 싸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 교회가 그런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점에서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승리합니다. 여리고 성을 함락한 것은 여호와의 군대 대장의 칼이었지 이스라엘 민족의 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앞에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 같은 세상과 세상의 정신이 높이 서 있지만, 주님이 오실 때 그 모든 성과 벽들은 여리고 성처럼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계 18).
여호수아 앞에 서신 여호와의 군대 대장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계셨습니다. 그로부터 1400 년이 지나,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다시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 대장의 손은 칼 대신 못 자국과 함께 높이 들려졌습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은 죽으셨고 옆구리는 창에 찔렸셨습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군대 대장은 우리의 선봉으로 나서서 죽으심으로 승리하셨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엡 1:22). 대장은 이렇게 우리를 위한 승리를 얻어내셨습니다.


B. 말을 듣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분을 알고 경외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단순합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여호와의 군대대장을 따른 것이 아니라, 그가 여호와의 군대 대장, 하나님 자신이요, 그리스도였기에 그를 따랐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단지 세상에서 무언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힘만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신적 도움을 얻어 성취하고자 그리스도를 따르는 게 아닙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 앞에 나타나신 것은 당신을 알려주심으로써 당신을 알고 경외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도우미가 아니라 그 절대자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떨며 즐거워하기를 배우십시오. 그러기를 구하십시오. 주님을 그렇게 알 때, 여러분은 비로소 그분의 말씀 앞에 떨며 순종하며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C.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배우라(계 7:10).
끝으로, 여러분이 의지하는 것, 의지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본문은 묻습니다. 벧샬롬 교회는 누가 이끌고 갑니까? 눈에 보이는 목사나 영향력 있는 어떤 사람에게 달려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많은 교인들이 자신들의 목사-지도자를 합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높이는 것을 봅니다. 복음은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며 교회는 인간이 세운 조직이 아닙니다. 주님만이 그 일을 하십니다. 여호수아는 탁월한 지도자였지만, 그가 여리고 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게 아닙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신 그리스도가 하신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의 종일 뿐, 대장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힘겨워 하지 않아도 됩니다. 불신앙이고 어리석음의 소치일 뿐입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의 등장은 눈에 보이는 인간 지도자를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요구합니다.
여러분 앞의 여리고 성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직면하는 여리고 성은 무엇입니까? 두렵고 막막할 때 우리의 선봉장으로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서 계신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공격을 십자가에서 홀로 다 받아 내셨습니다. 죽음으로써 죽음을 이기셨고 마귀를 무력화하셨습니다. 신자의 인생에, 교회의 여정에 고비 고비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함께 계시고 앞서 가심을 믿고 그를 신뢰하십시오.
언젠가 그분이 하늘 군대의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실 것입니다. 모든 전쟁이 끝나게 되는 날입니다. 그 영광의 날에 우리는 다시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신 그리스도를 뵈올 것입니다. 그리고 고백할 것입니다.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요한계시록 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