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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무한한 선하심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시편 31:19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23-06-14

말씀내용
오늘 본문은 단 한 구절입니다. 시편 31편 19절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너무나 압축적으로 요약하여 잘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곤고한 인생길을 가는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주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수많은 대적에게 둘러 싸여 있는 다윗은 피할 길을 찾고 있고 그 피할 길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피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곤고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 피하려고 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큰 위로를 주는 말씀입니다.


1. 다윗의 처지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1)”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면 다윗은 부끄러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물에 걸려 있다고 느낍니다(4). 뭔가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는 고난과 환난 중에 있습니다(7). 얼마나 근심했는지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습니다(9). 그러나 10절을 보면, 이 모든 고난이 다윗 자신의 죄악과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10).” 대적들은 다윗을 욕하고 멸시합니다(11). 그리고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12). 그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깨진 질그릇 같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이고 한계상황(限界狀況)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때 그리스도인이 취할 수 있는 행동, 태도는 무엇입니까? 믿음은 가진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살아계시고 전능하시며 무한히 선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누릴 수 있는 은혜는 과연 있습니까? 있다면 무엇입니까?


2. 다윗의 태도
다윗은 먼저 주님께 피한다고 말합니다(1). 그렇게 말하기만 하는게 아니라 그는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은, 물리적인 몸을 성전 안에 숨긴다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동일하게 할 수 있는 방식을 말할텐데, 그것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다윗의 기도는 시작됩니다. 그는 하나님께 견고한 바위, 구원하는 산성, 반석이 되어 달라고 기도합니다(2-4).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 성경》에서 2-3절을 이렇게 생생하게 번역했습니다. “주님의 견고한 동굴은 나의 은신처, 주님의 높다란 절벽 요새는 나의 피난처입니다. 주님은 내가 숨어드는 동굴, 내가 기어오르는 절벽. 나의 든든한 인도자, 나의 진정한 길 안내자가 되어 주소서.” 다윗은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하는데(5) 이 말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하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처지를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자기 영혼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오히려 이 환난 중에도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말합니다(7). 이 말은 중요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 끊어질 수 없고 실패할 수 없는 신실한 사랑을 기뻐합니다. 이것은 그 약속을 주시고 그것을 틀림 없이 이루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 시편의 중요한 요점이 있습니다. 환난 중에도 성도는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말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 그 하나님의 성품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라고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이 가르친 것이 아닙니까? 다윗은 환난 중에서도 사실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태도이고 자태입니다. 다윗이 어떤 방식으로 응답을 받게 되든지, 사실 다윗이 하나님께 피할 때, 그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이미 그 태도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과정을 주목해 보십시오. 처음부터 다윗은 내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즐거워한다고 말한 게 아닙니다. 그는 낙심천만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피한다고 말하고 하나님께 피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바위, 반석, 산성이 되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이런 과정을 지나면서 그는 드디어 주의 인자하심을 기억하고 그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기도에는 이런 단계의 체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 안에서 이런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만이 누리게 되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3. 위대한 찬송
그러나 주께 피하는 사람이 누리는 은혜의 선물은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저는 바로 19절로 가려고 합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19).” 이 구절을 읽을 때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으십니까? 저는 20여년 전에 이 구절을 읽으면서 감전된 듯이, 제 생각과 마음이 온전히 이 구절에 꽂혔던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누가 이보다 더 놀랍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구절을 조금 설명드리기 위해서 영어성경 NLT의 번역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How great is the goodness you have stored up for those who fear you. You lavish it on those who come to you for protection, blessing them before the watching world.” 이 영어번역을 우리말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저장해 두신 주님의 선하심은 얼마나 위대한지요. 주님은 보호를 받기 위해 주님께 나오는 사람들에게 그 선하심을 낭비하듯 헤프게 베풀어 주십니다. 그들을 지켜보는 온 세상 앞에서 그들을 축복하시면서 말입니다.”
먼저 은혜라고 표현된 단어는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선하심을 의미하는 ‘토브(טוּב)’라는 단어입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의 환난 속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즐거워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는 자리까지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하심을 베풀어 주시려고 하늘 창고에 가득히 저장해 놓으셨습니다. 하늘 창고는 높이와 넓이와 길이가 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늘 창고에 가득히 쌓아 두신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 백성에게 부어 주시기 위하여 준비가 완료된 상태입니다. 즉, 우리가 달라고 구하면, 그때부터 부랴부랴 뭔가 줄 것을 만드시기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늘 창고 가득히 차 있습니다.
여기서 ‘쌓아 두신’이라는 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본래 ‘숨긴다'는 뜻이 일차적 의미입니다. 남들이 보는 데서 쌓아 두신 것이라기 보다는, 몰래 쌓아 두셨다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한히 그리고 측량할 수 없는 당신의 선하심을 몰래 쌓아 두셨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눈이 아니면 그것을 볼 수 없도록, 하늘 창고에 쌓아 두셨습니다. 그 쌓아둔 선하심은 하늘 창고가 폭발할 지경으로 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무한한 선하심이니까요.
다윗이 환난 중에 하나님께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하나님을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알고 확신한다면, 환난 중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래서 환난 중에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발견하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쌓아 두고 저장해두신 선하심은 누구를 위해서 준비하신 것입니까? 누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하고 측량할 수 없는 선하심을 하늘 창고에 몰래 쌓아 두셨습니까?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위해서 쌓아 두시고 예비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주께 피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기 위하여 하늘 창고에 가득히 쌓아 두신 선하심을 받을 대상은 주님의 보호를 구하며 주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환난의 날에 주님 안에서 피난처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께 나아와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하늘 창고에 무한히 쌓아 두신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곧 하나님께 피하는 자, 하나님의 보호를 구하며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에게 베풀어 지기 위해 준비가 완료된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께 피하는 자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존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 선하심이 피조물인 인간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드러내시는 당신의 변함 없으신 부성애적인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환난의 날에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기 위하여하나님께 나아올 때 하나님께서 하늘 창고에 쌓아 두신 그 무한한 선하심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알고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성도가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고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은 얼마나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피하여 나오는 모든 자들을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베풀어 주실 선하심을 완벽하게 예비하신 채, 하나님은 당신 안에서 피난처를 찾으려고 나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베푸시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선하심을 베풀어 주시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선하심을 어떤 상황에서 베풀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까? “인생 앞에”라는 말을 주목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하심을 부어주시도록 그들을 축복하시는데, 놀랍고도 놀라운 것은, 몰래 감추어 쌓아 두셨던 그 선하심을 이제는 온 세상이 보는 앞에서 그들에게 부어주심으로써 그들을 축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NLT는 ‘인생 앞에’를 before the watching world (지켜보는 세상 앞에서)라고 번역했습니다. 온 세상이 보도록, 온 세상의 목전에서 베풀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믿는 주의 백성은 그날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며 사랑하며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끝으로 우리가 주목할 단어는 ‘베푸신’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몰래 쌓아 두신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당신의 선하심을 베푸시는데, 어떻게 베푸시는가 하면, 허비하고 낭비하시는 것처럼 쏟아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무나 귀한 것이라서 아까워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누어 주시지 않으시고 쏟아부어 주신다는 겁니다. 아낌 없이 허비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NLT가 이 단어를 lavish라고 번역한 것은, 그 원어 단어의 의미를 넘어, 이 구절과 문맥이 강조하는 바를 잘 드러낸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런 선하심이 “어찌 그리 큰지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측량할 수 없이 무한한 선하심이라는 것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찬양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즐거워하는 자리에 이른 것은 실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누리는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송하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환난 중에 있는 사람이 경험하는 반전입니다. 게다가 이 무한한 선하심을 우리의 원수들을 포함한 지켜 보는 세상 앞에서 물 붓듯이 부어 주신다니요?


4. 성도 인생의 반전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듯이, 성도의 삶에는 이런 반전이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편 23:5).”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반전은 때로는 우리의 인생 중에 다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죽음을 통해서, 혹은 죽음을 지나 영원으로 들어갈 때, 그 반전을 분명하게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반전의 클라이맥스는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재림하시고 온 세상을 심판하실 때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복됩니다. 그는 환난의 때에 하나님께 피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위해서 하늘 창고에 예비하고 쌓아 두신 무한한 당신의 선하심을 물 붓듯이 부어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마지막 날이 오기 전에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주의 인자하심을 즐거워할 수 있고, 나아가 주께 피하는 자들을 위하여 쏟아 부어 주시려고 하늘에 쌓아 두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하여 그 심령에 찬양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아십니까? 여러분이 섬기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심을 알고 살아가십니까? 이 하나님을 안다면, 그는 환난 날에 하나님께 나아가 그 안에서 피난처를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진정으로 강하고 담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시편을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24)”는 말로 마칩니다. 세상의 어느 것도, 어느 원수, 어느 대적도 그리스도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주눅들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만나든지,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물 붓듯이 아끼지 않고 부어주시기 위하여 하늘 창고에 몰래 쌓아 두신 그 무한한 선하심을 믿음의 눈으로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나아가십시오.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십시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저장해 두신 주님의 선하심은 얼마나 위대한지요. 주님은 보호를 받기 위해 주님께 나오는 사람들에게 그 선하심을 낭비하듯 헤프게 베풀어 주십니다. 그들을 지켜보는 온 세상 앞에서 그들을 축복하시면서 말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