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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샬롬 교회 단편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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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게 너희를 보내노라

요한복음 20:21, 요한복음 17:4, 요한복음 20:22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22-07-10

말씀내용
오늘 우리는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협력하던 자리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되는 역사적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어쩌면 이 자리는 우리 교회의 두번째 창립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회의 선교사 파송은 교회가 진정한 교회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적이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세워진 신약교회는 선교적 특성을 지닌 교회였고, 사도행전에서 보는 초대교회는 완전하지도 않았고 그 시대와 문화의 속박들로부터 자유롭지도 않았지만, 그 장애물들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돈이 있다고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는 돈이 많은 교회가 아닙니다. “제 코가 석자”라는 말이 우리 교회에 해당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정한 것은 1912년 9월 장로교의 창립 총회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3년 세 사람의 선교사를 중국 산동성으로 파송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1910년에 일제에 강점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것은 복음의 능력이 아니면 설명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감히 그 당시와 비교할 수도 없지만, 한 푼이라도 아껴서 모두가 한 자리에서 예배하고 다음 세대들을 말씀으로 양육할 수 있는 예배당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최우선적인 과제라는 것을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남경우 선교사 가정을 파송하기로 결정했고 오늘 파송예배를 드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감사함은 특별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아주 간단하게 전하려는 메시지의 주제는 “선교는 마음으로 하는 일”이며, “보냄을 받은 교회만이 선교사를 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지만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는 그렇게 천박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선교가 삼위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되었다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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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요 17:4)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 날 저녁, 두려움에 사로잡혀 문을 굳게 닫고 모여 있던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주님은 평강을 전하시고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선교가 교회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 하나님의 선교의 시작입니다. 선교라는 명사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선교는 ‘보냄을 받는다’ 혹은 ‘보냄을 받아서 하는 일’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선교는 보내는 자나 보냄을 받는 자가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선교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냄을 받으신 주님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임의로 행동하지 않으시고, 주님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한다’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철저하게 보내신 성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맡겨진 일을 감당하셨고,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한복음 17:4).”
선교는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땅에 보냄을 받으신 주님은 성부의 뜻을 좇아 성부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이루는 방식으로 선교를 감당하십니다.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라고 하신 말씀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보내신 분이신 성부 하나님과 보냄을 받으신 주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가 됨으로써 주님은 온 마음으로 그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2.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주님은 이어서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은 두려워 떠는 제자들을 지금 파송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방식입니까? 제자들이 지금까지 보았던 그 방식 그대로입니다. 그들은 3년 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주님이 얼마나 아버지의 뜻을 중요하게 여기셨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는지 그들은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용기 있게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나아가시는 모습을 그들은 보았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이고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은 보고 알았습니다.
이제 주님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보냄을 받아서 그 뜻을 좇아 온 마음 다해 하라고 하신 일을 감당하였듯이 너희가 이제 내 뜻을 따라 내가 명하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그들을 보내십니다.


3. 너희는 교회다.
주님이 ‘너희를’ 보낸다고 하시는데 ‘너희’는 분명히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21세기에 이 말씀을 읽는 독자들은 ‘너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저 당신의 제자들에게만 명하신 것이라고 읽을 수 있습니까? 아니면, 오늘날 전임 선교사역으로 헌신한 선교사들을 가리켜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것 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사도들을 보내심으로써, 교회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물론 전임 선교사역에 헌신하는 선교사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는 교회로서 어떻게 선교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정직하게 이 말씀이 교회를 세상으로 보내시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주님은 교회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 방식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자기의 영광을 구하고 쌓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길따름이들로서 우리를 보내신 주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존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사셨던 것 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보냄 받은 자의 삶이고 소명입니다.
알다시피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교회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존재로서 교회인 우리의 소원은 우리를 보내신 주님의 소원과 일치해야 하고, 주님의 목적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하고, 주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보냄을 받으신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선교의 방식이었습니다.


4. 성부 하나님—예수 그리스도—벧샬롬 교회—남경우, 윤진영 선교사—파송받을 선교사들
오늘 벧샬롬교회는 남경우, 윤진영 선교사를 파송하지만, 우리 모두가 주님이 하신 말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첫째는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고 둘째는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세번째는, 우리 곧 벧샬롬교회가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것처럼 남경우, 윤진영선교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에서 어떤 무게를 느끼십니까? 우리가 남경우, 윤진영 선교사를 보내려면, 우리자신이 먼저 주님의 보냄을 받은 자들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그 소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녹아 있는 의미를 가지고, 우리는 남경우, 윤진영 선교사에게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것 같이’라고 말하며 ‘우리도 당신들을 보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경우, 윤진영 선교사는 전에 섬기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로 들어가지 않고, 한국해외선교훈련원(GMTC)에서 훈련원장직을 맡아 해외선교사로 나가는 선교사들을 훈련하여 내보내는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남경우, 윤진영 선교사는 ‘벧샬롬 교회가 우리를 보낸 것 같이, 우리도 여러분을 보냅니다’라고 훈련 받는 수습 선교사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여러분, 어떤 그림이 상상되십니까? 벧샬롬교회가 남경우, 윤진영 선교사를 보낸 방식은 창조적인 재생산의 사이클을 만들어 내겠습니까, 아니면 역기능적인 사이클이 반복되겠습니까?
이점에서, 저는 오늘 벧샬롬교회의 교인인 여러분 모두에게 도전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성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따름이들로서 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습니까? 오늘 파송을 받는 사람은 단지 남경우, 윤진영 선교사만이 아니라, 우리 벧샬롬교회라는 사실을 아시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오늘은 벧샬롬교회의 제2의 창립일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마음이 성자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자 하나님의 마음이 벧샬롬교회의 마음으로, 벧샬롬교회의 마음이 파송을 받는 남경우, 윤진영 선교사의 마음으로, 그리고 두 선교사의 마음이 그들을 통해 훈련 받고 선교지로 파송을 받는 선교사들의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저는 기대합니다. 오늘 이 파송이 매월 선교비를 보내고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기는 천박한 선교사 파송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주님의 보냄을 받은 선교적 공동체로서 우리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온 마음을 쏟아 함께 우리를 보내신 주님의 뜻을 이루며 선교를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갈망합니다.


5. 성령의 선교 (요 20:22; 창 2:7; 겔 37:9)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0:22). 이 유사한표현에 해당하는 것이 구약성경에 두 번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표현과(창 2:7) 에스겔 선지자가 해골 골짜기에서 생기를 향하여 대언할 때, 생기가 마른 뼈들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된다는 표현(겔 37:9)에서 입니다. 주님은 지금 당신이 보내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써 그들을 살아나게 하십니다. 선교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하는 게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직 성령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 성령님께서 보내는 교회나 보냄 받는 선교사, 우리 모두를 하나로 결속하게 하시고, 한 방향으로 삼위 하나님을 향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교회와 선교사가 같은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게 하고, 그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일으키시는 선교의 마음은, 하나님을 기뻐함이 우리 안에 충만해지고 그 기쁨이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함께 교독한 시편 67편이 우리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 선교의 연료가 되게 하시고, 세계 도처에 하나님을 기뻐하는 공동체를 심는 것이 우리 선교의 이상이 되게 하십니다. 이런 은혜가 특별히, 남경우, 윤진영 선교사의 선교지인, 한국해외선교훈련원(GMTC)에서 훈련받는 선교사들의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기도합시다.
제가 좋아하는 선교시 하나 읽어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마가렛 클락슨 여사가 쓴 “나도 그렇게 너를 보내노라”는 내용의 시입니다.


6. “So send I you” by E. Margaret Clarkson (1915~2008)
(고난을 위하여)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보상 없이 일하라고,
값도, 사랑도, 요청도, 알아줌도 받지 못하고 섬기라고,
비난을 견디고 경멸과 조롱을 당하라고,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나 하나만을 위해 수고하라고.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상처받고 상한 자를 싸매라고,
유리하는 영혼들을 위해
일하고 울고 깨우라고,
지친 세상의 짐을 지라고,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나를 위해 고난받으라고.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사랑과 인정에서 굶주린 가슴을 안고
외로이 갈망하는 심령을 향해,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가정도 친척도 친구도 소중한 이도 버리고서
내 사랑 하나만을 알라고.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증오로 굳어진 마음을 향해,
보려고 하지 않아 멀어진 눈을 향해,
비록 피라도 소모하라고,
소모하고 아끼지 말라고,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갈보리를 맛보라고.

(승리를 위하여)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너로 강하여 이기게 하는 은혜로써
지옥과 흑암과 죽음과 죄의 권세를 이기라고.
세상을 이긴 내 이름을 너희에게 주어
내가 이긴 것같이 이기라고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묶여있는 영혼들에게로 가서
진리의 말씀으로 포로들을 자유케 하라고,
죄의 속박을 깨뜨리고 죽음의 족쇄를 풀어주어
잃어버린 자들을 내게 데려오라고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연약한 자들에게 내 힘을 알게 하라고
슬픈 자들에게 나의 기쁨을, 고통받는 자들에게 나의 완전한 평강을 알게 하라고,
내 능력, 내 은혜, 내 임재의 약속을 증거하여
영원한 열매들을 맺으라고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오래 참음으로 내 십자가를 견뎌서
어느 날엔가 십자가를 내려놓고 기쁨으로
“잘 하였도다. 나의 충성된 자여”하는 나의 칭찬을 들으라고
와서 나의 보좌, 나의 나라, 나의 면류관을 상속하라고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그처럼 나도 너희를 세상으로 보내노라.